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 (욘1:11-17)
본문
성도 여러분, 여러분 건강을 위해서 혹 운동을 하십니까 부득불 나이가 들고 하면은 운동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혹 정구를 한다던가 탁구를 한다던가 골프를 한다던가 수영을 한다던가, 나름대로 운동들을 하고 계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잘 될 때도 있고, 마음대로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잘 안 될 때, 왜 안 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 안 되는지를 모르면 구제불능입니다. 전혀 발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 순간 안 될 때마다 왜 안 되느냐 그 원인을 알아야합니다. 가령 원인을 일기 탓으로 돌리고 감기 기운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는 옷을 잘못 입었기 때문이고 신발이 어떻고. 이렇게 다른데 원인을 돌리고 있는 동안에는 그는 향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가지는 잘 될때, 운동이 잘 될 때 또 생각을 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잘 됐나,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대화, 지켜 나가야 되겠는데 잘 될때 재수가 좋았다, 운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면 그는 영영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잘못된 일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생각하고도 싶지 않아요. 그래도 알아야 됩니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요. 그래도 알아야 됩니다. 이걸 모르면 이제 앞으로 발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나라의 교통문화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하는 그런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29일 조선일보에 나오는 걸 보니까요, 자동차 말입니다. 일 만대 당 사망자 수가, 몇 나라만 비교합니다. 일본은 1.64명 미국은 2.12명, 한국은 13.25명! 얼굴도 비슷하고 바로 이웃에 사는 나라인데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사망자 수 8배나 많습니다. 8배나. 이제 무얼 더 얘기를 해야 됩니까! 이 수준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의 교통문화요, 우리가 평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뼈가 아파도 인정을 해야 됩니다. 이 수준이에요.
뭐 GNP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그런 얘기가 안됩니다. 우리는 이 수준에 있어요. 그래 문제는 문화의 문제다. 이건 집단 습관이요, 오랫동안 흐른 형용할 수 없는 잘못된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병적인 거예요. 이에 대해서 유순하 교수는 일곱가지로 한국문화를 평가한 것을 그의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이기문화, 허위 문화, 허세문화, 조국 문화, 틋 문화, 모방문화, 폭력문화!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의 문화입니다. 우리 얼굴이올시다. 이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일곱가지를 종합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뭐냐하면 감성 주도적 문화입니다. 냉정하지를 못해요. 우리는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치논리, 경제논리, 논리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는데 논리적인 일이 하나도 없어요. 논리가 뭔지도 모르는 형편이에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생을 살아갑니다. 바로 며칠 전에 아주 참 재벌 속하는 분, 최 회장님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 여러 면으로 존경하던 분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을 됩니다. 그는 세상 떠날 때 "내 시체를 화장하라!" 그랬어요. 그 재벌 만일에 그 말씀 안 했더라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묘를 만들었을 겁니다. "내 시체를 화장하라." 왜요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거 무엇 때문에 그 묘지를 해 놓고 민족 이동을 해가면서 야단입니까!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입니까! 주은래 같은 분은 "내 시체를 화장해서 공중에서 뿌려라!" 그것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냉정하십시다. 정신 좀 차리세요. 우리의 감성이란 별로 선한 것이 못돼요. 그대로 젖어 들어가는 것이에요. 이대로는 안되기 때문에 큰 사건을 만난 거예요. 여러분, 참 뼈아픈 얘기지만 야만인이 뭡니까 야만인이라는 것은요, 감성위주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기분대로 살아요. 내 어느 나라라고 하면은 참 미안해서 못하겠습니다만 어느 나라는요, 남녀 비례가 6:1이요. 남자가 다 죽어서 여자만 남았어요. 왜 그러느냐 아 이웃나라하고 싸우는데 기분 나쁘다 너 죽고, 나 죽자 그냥 싸우다 보니까 다 죽었지요. 이게 바로 야만인이라는 거예요.
감성을 자제하고 감성에 따라가지 마세요. 왠 체면, 그게 무슨 썩어진 체면입니까!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냉정해야 됩니다. 좀 더 합리적이래야 합니다. 우리가 차 사고가 많은 이유도 그대로 법을 떠나지요, 또 어쩌다가 기분 나쁘면 '예이 꽝' 받아 버리지요. 이 노름에 많이 죽는 거예요. 나 죽고 남 죽이고 말이지요. 왜 이 모양입니까 자, 그러면 이 문화의 감성 주도적 잘못된 문화의 뿌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저 쪽에는 미신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샤머니즘이 있어요. 그런고로 애당 우리는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무속문화에서 온 것이에요. 자 한번 더 생각해 봅시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우리는 원인을 똑바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알아야 하고, 둘째는 인정해야 됩니다. 근데 인정하려고 하질 않아요. 그리고 원인을 자연이나, 외적조건에 돌려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이런 불평을 하더랍니다. 학생 가운데 문제아가 있거든요. 골치 아픈 문제아. 아무리 바로 가르쳐 보려고 해도 구제 불능한, 골치 아픈 학생을 앞에 놓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했었는데, 이거 뭐 대학교에 들어와서 이 못된 거 이거 어찌 할 수가 없구만. 중고등학교에서는 뭘 했나' 중고등학생 교사보고 물어 보니까 교사는 말하기를 "초등학교에서 잘 해야지 기초적으로 초등학교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애들이 이 모양이다."라고. 초등학교 보고 물어보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건 유치원에서 잘 가르쳐야지!" 유치원 선생님한테 물어 보니까 "가정교육이 잘 돼야지." 가정으로 돌아가니까 엄마 말이 뭔지 아세요 "종자가 좋아야지." 그러니까 아빠는 또 말합니다. "무슨 소리! 종자야 좋지. 밭이 못돼서." 언제까지 이 노름을 할 겁니까 언제까지 이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겁니까 이게 바로 우리의 병폐란 말이에요. 이게 깊이 병든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의 경륜 속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살펴야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여러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 한 척이 있었습니다. 이 배가 큰 풍랑을 만났고 이제 파선 직전에 왔어요.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선원들이 애를 써 보았지만 도리가 없어서 짐도 다 불려놓고, 바다에 던지고 배를 가볍게 한 다음에 살아보려고 했지만 이 이상 더 가면 파산하게 됐단 말입니다. 그럴 때에 저들은 생각합니다. '이유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풍랑에 이유 있다. 이 원인이 이 배 안에 있다. 무언가 이 풍랑은 공연한 풍랑이 아니다. 이건 자연현상이 아니다. 뭔가 큰 원인이 이 속에 있다.' 그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인간에게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 그래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이건 바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훌륭한 축복이 되겠고,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면 남 원만하다가 끝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원인을 모르면 회개도 없고, 회개가 없으면 구원도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른 원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원인이 있습니다. 현재에 원인이 있습니다. 보다 더 높은 차원은 미래로 향한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선교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자 이제 그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어요. 오늘 더구나 상징적인 것은 요나라는 사람이 원인인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금 다시스로 가는 길이니까 이 녀석이 찜찜하니까, 배 밑에 깊이 들어가 숨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원인이 깊이 숨었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원인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순간적이라도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려고 순간적 행복과 장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들은 원인부정, 원인모멸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행만 구합니다. 세월이 가면 무슨 해결이 있겠지, 세월이 약이겠지, 아니올시다. 오늘 본문은 그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그대로 해결될 얘기가 아니에요. 원인이 있으니까, 원인이 제거되기 전에는 이 풍랑 절대로 멎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해결이 될 거라는 이런 비과학적 망상을 버리세요. 아니올시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 풍랑을 절대로 잘 수 없는 풍랑입니다. 요나는 배 밑에 있다가, 깊이 잠들어 있다가 일이 이렇게 어려워질 때쯤에 나타나서 질문을 받습니다.
8절에 보면 '이 재앙이 무슨 연고뇨' 그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내가 원인이다. 나 때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세월동안 청문회도 해 봤고, 신문에 방송에 비판하고 뭐 검사가 시퍼렇게 날을 새워서, 그대로 감옥에 쳐 놓고, 쳐 놓고 해 봤지 아직도 밝혀진 건 하나도 없어요.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며 누가 원인인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요. 사람의 세계에서 이게 밝히게 돼 있지 않아요.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원인입니다.'라는 말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저 이리 도망 다니고 저리 피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몇 마디 했다가 끝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우리는 정직하지 못합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부정직하게 살아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나를 던지라." 이거 굉장한 말씀 아닙니까 1981년 3월 30일. 25세의 청년 존 힝클리라고 하는 청년이 말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서 권총을 쏘아서 여섯 발의 권총을 쏘았습니다. 물론 그 총은 빗나갔습니다. 이 청년은 거기서 체포됩니다. 왜 총을 쏘았느냐 이렇게 이렇게 조사해 보니까 정신 감정해 본 결과 이 아이는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고 있었어요. 우울증이라고 하는 무서운 정신병을 앓다가 이 같은 엄청난 일을 하게 됐어요. 그 총이 바로 맞았으면 레이건 대통령이 또 그렇게 시해 당할 뻔했지요. 아무튼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 그는 정신병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버지가 찾아가서 면회하면서 그 초라한 얼굴을 봅니다. 초췌해진 몸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다. 사업한다고 바빠서 네가 그처럼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잘못은 내게 있었구나.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네 아버지다." 그리고 그는 집을 팔아서 자기 집을 그 감옥 가까이 옮겨 놓고, 매일같이 면회를 가면서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죄인은 아버지인 나입니다. 저를 정신병자 만든 것도 나요, 저가 정신병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이 사건의 잘못은 내게 있습니다." 이렇게 몸부림치고 울었습니다.
여러분,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누가 지적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저렇게 밖으로 돌게 된 이유가 누구에게 있는 겁니까 아이들이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도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옛날에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문제아였어요. 요새는 조사해 보면은 엄연히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문제아 중의 90%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에요. 이건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합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아주 숨겨졌어요. 바다 밑에, 저 배 밑창에 숨겨진 것과 같은 요나를 끄집어내야 되요. 헌데 한가지 잊지 말 것을 요나 자신이 지금 내가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요나 밖에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살인을 했습니까, 간음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그런 죄가 아니거든요. 천하의 죽일 어떤 못된 죄를 지고 도망하는 그런 범죄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근데 멀쩡한 사람이 "내가 원인입니다."라고 하니다른 사람들이 이걸 인정할 수가 없잖아요.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해도 "나 무슨 그런 거 아니라고."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요나 자신이 내가 원인이라고 하는 이 말 한마디의 뜻은 오직 요나 만이 알고 있는 거예요. 남이 뭐라고 비판을 하던 비방을 하던 상관없어요. 그만이 알고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가는 길이요."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이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지. 그러나 요나는 압니다. 그래서 이 선원들은 이 배를 어떡해든 무사히 육지에 대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은 요나하는 말이 "안됩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세요." 사건에 대한 해석력이 있어야 되고, 사건에 대한 해결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돼요. "나를 던져라! 그리하면 배가 무사하리라." 얼마나 위대한 용기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요나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걸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사를 거역한 것입니다. 왜요 니느웨 성이 망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의 원수입니다. 원수 나라의 수도가 죄로 인해서 망한다는데 얼마나 잘된 겁니까! 얼마나 통쾌합니까! '망해야 당연하지, 어서 망하라고 말이지.' 그런 거예요. 이게 되겠습니까 저 원수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너무 기쁜 거예요.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 그러니까 가서 40일 후에 망한다고 전해라 했는데 요나 생각에 '내가 가서 전했다가 회개하면 어떡하나! 저 사람들 회개하면 하나님은 긍휼이 많아서 또 용서하실 건데 그래서 되겠느냐!' 안간단 말이에요. 다시스로 도망가는 거예요.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북한이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물론 공산당원이 있고 공산주의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분들은 "도와줍시다."하면 "공산당은 도와주면 안됩니다. 다 망해 가는데 가만히 계세요, 목사님." 이러더라고요. 요나하고 비슷한 놈들이 또 있더라고요, 여기도요. 다 망했는데 왜 공산당을 도와 주냐 이거예요. 이런 사람이 회개하기까지는 이 나라가 편안하지를 못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으로 살 겁니까! 요나의 마음속에 있는 그 비틀어진 마음, 그 못된 마음을 말이에요 하나님이 파괴시키는 거예요. 이놈을 그대로 주리를 틀어서 제자리 돌아오도록 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 가지고 물고기 뱃속에다 집어넣었다가 토해 버리는 바람에 니느웨 성으로 직행을 했지요. 그리고도 이 못된 사람은요 빨리 "회개하고 구원받으세요."라고 말을 안 했어요. 그 못된 것이… 돌아다니면서 할 수 없이 '40일 후에는 망한다, 40일 후에는 망한다.' 누가 들을까봐 조용히 했을 거예요 틀림없이. 망한다 했는데. 이 말을 듣고 니느웨 성이 회개를 한 거예요. 그 다음에 산에 올라가서 요나가 불평하지 않습니까! "망한 댔으면 망해야지 왜 안 망하는 겁니까" 요나가 이 모양이라니까요. 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지만은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붙들어서 그를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아니 하고는 못 견디도록 하나님이 친히 역사 하셨어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그 경륜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강하게 역사 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행동하십니다. 이 거룩한 역사 앞에 진실하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야 이 풍랑이 잘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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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 정구를 한다던가 탁구를 한다던가 골프를 한다던가 수영을 한다던가, 나름대로 운동들을 하고 계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잘 될 때도 있고, 마음대로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잘 안 될 때, 왜 안 되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 안 되는지를 모르면 구제불능입니다. 전혀 발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 순간 안 될 때마다 왜 안 되느냐 그 원인을 알아야합니다. 가령 원인을 일기 탓으로 돌리고 감기 기운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는 옷을 잘못 입었기 때문이고 신발이 어떻고. 이렇게 다른데 원인을 돌리고 있는 동안에는 그는 향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가지는 잘 될때, 운동이 잘 될 때 또 생각을 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잘 됐나,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대화, 지켜 나가야 되겠는데 잘 될때 재수가 좋았다, 운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고 만다면 그는 영영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잘못된 일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생각하고도 싶지 않아요. 그래도 알아야 됩니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요. 그래도 알아야 됩니다. 이걸 모르면 이제 앞으로 발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나라의 교통문화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고 말하는 그런 평가 기준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29일 조선일보에 나오는 걸 보니까요, 자동차 말입니다. 일 만대 당 사망자 수가, 몇 나라만 비교합니다. 일본은 1.64명 미국은 2.12명, 한국은 13.25명! 얼굴도 비슷하고 바로 이웃에 사는 나라인데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사망자 수 8배나 많습니다. 8배나. 이제 무얼 더 얘기를 해야 됩니까! 이 수준밖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우리의 교통문화요, 우리가 평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입니다. 뼈가 아파도 인정을 해야 됩니다. 이 수준이에요.
뭐 GNP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그런 얘기가 안됩니다. 우리는 이 수준에 있어요. 그래 문제는 문화의 문제다. 이건 집단 습관이요, 오랫동안 흐른 형용할 수 없는 잘못된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병적인 거예요. 이에 대해서 유순하 교수는 일곱가지로 한국문화를 평가한 것을 그의 책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이기문화, 허위 문화, 허세문화, 조국 문화, 틋 문화, 모방문화, 폭력문화!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의 문화입니다. 우리 얼굴이올시다. 이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일곱가지를 종합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뭐냐하면 감성 주도적 문화입니다. 냉정하지를 못해요. 우리는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치논리, 경제논리, 논리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는데 논리적인 일이 하나도 없어요. 논리가 뭔지도 모르는 형편이에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생을 살아갑니다. 바로 며칠 전에 아주 참 재벌 속하는 분, 최 회장님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 여러 면으로 존경하던 분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을 됩니다. 그는 세상 떠날 때 "내 시체를 화장하라!" 그랬어요. 그 재벌 만일에 그 말씀 안 했더라면 엄청난 돈을 들여서 묘를 만들었을 겁니다. "내 시체를 화장하라." 왜요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거 무엇 때문에 그 묘지를 해 놓고 민족 이동을 해가면서 야단입니까!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입니까! 주은래 같은 분은 "내 시체를 화장해서 공중에서 뿌려라!" 그것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냉정하십시다. 정신 좀 차리세요. 우리의 감성이란 별로 선한 것이 못돼요. 그대로 젖어 들어가는 것이에요. 이대로는 안되기 때문에 큰 사건을 만난 거예요. 여러분, 참 뼈아픈 얘기지만 야만인이 뭡니까 야만인이라는 것은요, 감성위주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기분대로 살아요. 내 어느 나라라고 하면은 참 미안해서 못하겠습니다만 어느 나라는요, 남녀 비례가 6:1이요. 남자가 다 죽어서 여자만 남았어요. 왜 그러느냐 아 이웃나라하고 싸우는데 기분 나쁘다 너 죽고, 나 죽자 그냥 싸우다 보니까 다 죽었지요. 이게 바로 야만인이라는 거예요.
감성을 자제하고 감성에 따라가지 마세요. 왠 체면, 그게 무슨 썩어진 체면입니까! 다 툭툭 털어 버리고 냉정해야 됩니다. 좀 더 합리적이래야 합니다. 우리가 차 사고가 많은 이유도 그대로 법을 떠나지요, 또 어쩌다가 기분 나쁘면 '예이 꽝' 받아 버리지요. 이 노름에 많이 죽는 거예요. 나 죽고 남 죽이고 말이지요. 왜 이 모양입니까 자, 그러면 이 문화의 감성 주도적 잘못된 문화의 뿌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저 쪽에는 미신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샤머니즘이 있어요. 그런고로 애당 우리는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무속문화에서 온 것이에요. 자 한번 더 생각해 봅시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우리는 원인을 똑바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알아야 하고, 둘째는 인정해야 됩니다. 근데 인정하려고 하질 않아요. 그리고 원인을 자연이나, 외적조건에 돌려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이런 불평을 하더랍니다. 학생 가운데 문제아가 있거든요. 골치 아픈 문제아. 아무리 바로 가르쳐 보려고 해도 구제 불능한, 골치 아픈 학생을 앞에 놓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했었는데, 이거 뭐 대학교에 들어와서 이 못된 거 이거 어찌 할 수가 없구만. 중고등학교에서는 뭘 했나' 중고등학생 교사보고 물어 보니까 교사는 말하기를 "초등학교에서 잘 해야지 기초적으로 초등학교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애들이 이 모양이다."라고. 초등학교 보고 물어보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그건 유치원에서 잘 가르쳐야지!" 유치원 선생님한테 물어 보니까 "가정교육이 잘 돼야지." 가정으로 돌아가니까 엄마 말이 뭔지 아세요 "종자가 좋아야지." 그러니까 아빠는 또 말합니다. "무슨 소리! 종자야 좋지. 밭이 못돼서." 언제까지 이 노름을 할 겁니까 언제까지 이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겁니까 이게 바로 우리의 병폐란 말이에요. 이게 깊이 병든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의 경륜 속에서 냉정하게 자신을 살펴야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여러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 한 척이 있었습니다. 이 배가 큰 풍랑을 만났고 이제 파선 직전에 왔어요.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선원들이 애를 써 보았지만 도리가 없어서 짐도 다 불려놓고, 바다에 던지고 배를 가볍게 한 다음에 살아보려고 했지만 이 이상 더 가면 파산하게 됐단 말입니다. 그럴 때에 저들은 생각합니다. '이유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풍랑에 이유 있다. 이 원인이 이 배 안에 있다. 무언가 이 풍랑은 공연한 풍랑이 아니다. 이건 자연현상이 아니다. 뭔가 큰 원인이 이 속에 있다.' 그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은 인간에게 축복이면서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다.' 그래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이건 바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훌륭한 축복이 되겠고,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면 남 원만하다가 끝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원인을 모르면 회개도 없고, 회개가 없으면 구원도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른 원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원인이 있습니다. 현재에 원인이 있습니다. 보다 더 높은 차원은 미래로 향한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선교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자 이제 그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어요. 오늘 더구나 상징적인 것은 요나라는 사람이 원인인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금 다시스로 가는 길이니까 이 녀석이 찜찜하니까, 배 밑에 깊이 들어가 숨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원인이 깊이 숨었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원인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순간적이라도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려고 순간적 행복과 장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들은 원인부정, 원인모멸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행만 구합니다. 세월이 가면 무슨 해결이 있겠지, 세월이 약이겠지, 아니올시다. 오늘 본문은 그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그대로 해결될 얘기가 아니에요. 원인이 있으니까, 원인이 제거되기 전에는 이 풍랑 절대로 멎지 않는단 말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해결이 될 거라는 이런 비과학적 망상을 버리세요. 아니올시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 풍랑을 절대로 잘 수 없는 풍랑입니다. 요나는 배 밑에 있다가, 깊이 잠들어 있다가 일이 이렇게 어려워질 때쯤에 나타나서 질문을 받습니다.
8절에 보면 '이 재앙이 무슨 연고뇨' 그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내가 원인이다. 나 때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많은 세월동안 청문회도 해 봤고, 신문에 방송에 비판하고 뭐 검사가 시퍼렇게 날을 새워서, 그대로 감옥에 쳐 놓고, 쳐 놓고 해 봤지 아직도 밝혀진 건 하나도 없어요.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며 누가 원인인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요. 사람의 세계에서 이게 밝히게 돼 있지 않아요. 참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원인입니다.'라는 말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저 이리 도망 다니고 저리 피해 다니다가 할 수 없이 몇 마디 했다가 끝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우리는 정직하지 못합니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부정직하게 살아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나를 던지라." 이거 굉장한 말씀 아닙니까 1981년 3월 30일. 25세의 청년 존 힝클리라고 하는 청년이 말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서 권총을 쏘아서 여섯 발의 권총을 쏘았습니다. 물론 그 총은 빗나갔습니다. 이 청년은 거기서 체포됩니다. 왜 총을 쏘았느냐 이렇게 이렇게 조사해 보니까 정신 감정해 본 결과 이 아이는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고 있었어요. 우울증이라고 하는 무서운 정신병을 앓다가 이 같은 엄청난 일을 하게 됐어요. 그 총이 바로 맞았으면 레이건 대통령이 또 그렇게 시해 당할 뻔했지요. 아무튼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제 그는 정신병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버지가 찾아가서 면회하면서 그 초라한 얼굴을 봅니다. 초췌해진 몸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다. 사업한다고 바빠서 네가 그처럼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잘못은 내게 있었구나. 널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네 아버지다." 그리고 그는 집을 팔아서 자기 집을 그 감옥 가까이 옮겨 놓고, 매일같이 면회를 가면서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죄인은 아버지인 나입니다. 저를 정신병자 만든 것도 나요, 저가 정신병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이 사건의 잘못은 내게 있습니다." 이렇게 몸부림치고 울었습니다.
여러분,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그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누가 지적해서가 아니라 남편이 저렇게 밖으로 돌게 된 이유가 누구에게 있는 겁니까 아이들이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밖으로 나도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옛날에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문제아였어요. 요새는 조사해 보면은 엄연히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문제아 중의 90%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에요. 이건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합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아주 숨겨졌어요. 바다 밑에, 저 배 밑창에 숨겨진 것과 같은 요나를 끄집어내야 되요. 헌데 한가지 잊지 말 것을 요나 자신이 지금 내가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요나 밖에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살인을 했습니까, 간음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그런 죄가 아니거든요. 천하의 죽일 어떤 못된 죄를 지고 도망하는 그런 범죄자가 아니란 말이에요. 근데 멀쩡한 사람이 "내가 원인입니다."라고 하니다른 사람들이 이걸 인정할 수가 없잖아요.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해도 "나 무슨 그런 거 아니라고."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요나 자신이 내가 원인이라고 하는 이 말 한마디의 뜻은 오직 요나 만이 알고 있는 거예요. 남이 뭐라고 비판을 하던 비방을 하던 상관없어요. 그만이 알고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가는 길이요."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이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지. 그러나 요나는 압니다. 그래서 이 선원들은 이 배를 어떡해든 무사히 육지에 대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만은 요나하는 말이 "안됩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세요." 사건에 대한 해석력이 있어야 되고, 사건에 대한 해결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돼요. "나를 던져라! 그리하면 배가 무사하리라." 얼마나 위대한 용기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요나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걸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사를 거역한 것입니다. 왜요 니느웨 성이 망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의 원수입니다. 원수 나라의 수도가 죄로 인해서 망한다는데 얼마나 잘된 겁니까! 얼마나 통쾌합니까! '망해야 당연하지, 어서 망하라고 말이지.' 그런 거예요. 이게 되겠습니까 저 원수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너무 기쁜 거예요. 하나님이 복음 전하라 그러니까 가서 40일 후에 망한다고 전해라 했는데 요나 생각에 '내가 가서 전했다가 회개하면 어떡하나! 저 사람들 회개하면 하나님은 긍휼이 많아서 또 용서하실 건데 그래서 되겠느냐!' 안간단 말이에요. 다시스로 도망가는 거예요.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북한이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물론 공산당원이 있고 공산주의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분들은 "도와줍시다."하면 "공산당은 도와주면 안됩니다. 다 망해 가는데 가만히 계세요, 목사님." 이러더라고요. 요나하고 비슷한 놈들이 또 있더라고요, 여기도요. 다 망했는데 왜 공산당을 도와 주냐 이거예요. 이런 사람이 회개하기까지는 이 나라가 편안하지를 못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으로 살 겁니까! 요나의 마음속에 있는 그 비틀어진 마음, 그 못된 마음을 말이에요 하나님이 파괴시키는 거예요. 이놈을 그대로 주리를 틀어서 제자리 돌아오도록 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 가지고 물고기 뱃속에다 집어넣었다가 토해 버리는 바람에 니느웨 성으로 직행을 했지요. 그리고도 이 못된 사람은요 빨리 "회개하고 구원받으세요."라고 말을 안 했어요. 그 못된 것이… 돌아다니면서 할 수 없이 '40일 후에는 망한다, 40일 후에는 망한다.' 누가 들을까봐 조용히 했을 거예요 틀림없이. 망한다 했는데. 이 말을 듣고 니느웨 성이 회개를 한 거예요. 그 다음에 산에 올라가서 요나가 불평하지 않습니까! "망한 댔으면 망해야지 왜 안 망하는 겁니까" 요나가 이 모양이라니까요. 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지만은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붙들어서 그를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아니 하고는 못 견디도록 하나님이 친히 역사 하셨어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그 경륜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강하게 역사 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행동하십니다. 이 거룩한 역사 앞에 진실하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야 이 풍랑이 잘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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