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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르짖음을 (시1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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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태넌 은 부부간의 의사 소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남자가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을 더 많이 한다.그러나 결혼 후 에는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그에 반해 여자는 한 남자와 편안한 사이가 되고 나 면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고 했습니다. 라이언 볼머 가 소개한 남편과의 대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적절한 시간을 선택할 것
둘째.남편의 대답을 이끌어 내도록 할 것
셋째.구체적인 내용을 얘기할 것
넷째.말 이외의 다른 행동은 조심할 것 다섯째.취미생활을 함께할 것 여섯째.남편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할 것 등입니다. 부부가 됐건 친구가 됐건 대화의 단절은 답답한 것입니다.그리고 가까운 사람일 수록 대화의 단절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전혀 모르는 사람과 한자라에 앉아서 네 시간동안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그러나 부부가 한자리에 앉아서 네 시간동안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은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는 긴장완화와 화해를 위해 다양한 접촉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쟁 당사국이었거나 적대관계였던 나라들이 대화와 타협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북경과 상해를 방문했습니다.선교관계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인 사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북경시내를 거닐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 낀게 많습니다. 우선 오랜세월 동안 모택동 사상에 젖어 있던 사람들답지 않게 중국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고 대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리고 10년 안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조짐들이 비전문가인 제눈에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회가 깊은 것은 제가 직접 중국을 방문하고 중요한 인사들 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됩니다.대화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대화가 있습니다.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그것을 시인은 본문에서 나의 부르짖음 이라고 표현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대화로 표현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 시고 대답을 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의 고백과 간구를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그의 신앙이 밝 혀져 있습니다.
1.시인의 고백을 찾아 봅시다.
1)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크게 셋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성장기입니다.그는 목축업에 종사하는 이새의 막내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탈없이 자랐습니다.전원을 뛰놀며 목가를 부르며 자랐습니다.
둘째는 수난기입니다. 사울 왕에게 발탁 되면서부터 정치권에 입문했습니다만 그 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질투로 눈에 어두워진 사울 왕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사울 왕조가 망하고 왕이 되기까지 그리고 찢겨진 민심을 수습하고 통일왕조를 세우기까지 그는 숱한 고통과 재난을 겪어야 했습니다.그리고 자기가 낳은 아들 압살롬이 혁명군을 일으켜 부왕 다윗을 제거하고 왕권을 쟁탈하기 위해 다윗을 추격할 때 그가 겪은 수모와 고통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그뿐입니까 그의 주변에 언제나 간신과 충신이 비례하며 에워싸고 있었습니다.이러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재난을 겪으면서 그가 열망했던 것은 피난처라는 것이었습니다. 피난처란 안전한 곳,평안한 곳을 의미합니다.다윗은 가장 안전하다는 아둘람 굴 에도 숨어 보았고 적이 침공하기 어렵다는 천연요새 엔게디 계곡에도 피난해 보 았습니다.그리고 근위병과 경호원이 24시간을 경호하는 왕궁에서 살았습니다.그러나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 라고. 지금 세계 열강들이 무기감축이나 핵개발을 제한하자는 노력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 무기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의 살상력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누구는 살 아 남고 누구는 죽고하는 식의 원시적인 무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 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피난처는 안전한 곳,편한 곳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참으로 안전한 곳과 편안한 곳은 없습니다.오래 서 있으면 앉고 싶고,오래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오랫동안 누워 있으면 등뼈가 쑤시고 아파서 다시 일어나고 싶 은 것이 인간의 신체 기능입니다. 시인 다윗은 몸이 편하다든지 기분이 좋은 것 정도를 피난처로 이해한 것은 아 닙니다.다윗의 피난처론은 영혼의 피난처였습니다.그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제 일 편했습니다.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안전했습니다.하나님은 나의 피난 처입니다.
셋째는 영광기입니다.그가 이룩한 통일왕국을 다스리며 존경받고 영광받았던 후 반기를 영광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을 나의 분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의 분깃이란 내 몫이라는 뜻입니다.사회주의 경제원리와 자본주의 경제 원리 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몫 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자본주의 경제원 리는 내 몫이 있습니다.일한만큼 내 몫을 가져갑니다.장사한만큼 내 몫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열심으로 일합니다.그리고 보람도 있습니다.그러나 사회주의 경 제원리는 제아무리 노동을 하고 장사를 해도 내게로 돌아오는 몫이 없습니다.그 러니까 죽기작정하고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그래서 사회주의 경제원리는 포장은 그럴듯하지만 모조리 몰락하고만 것입니다. 중국의 정치경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이후부터 중국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발걸음이 달라졌습니다.옷차림이 달라지고 얼굴표 정이 달라졌습니다.내 몫을 챙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분깃이 돌아갑니다.
첫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르는 대상은 엄마,아빠입니다. 철들고 친구 사귀면서부터는 친구나 형제를 부릅니다.결혼하고 나면 여보를 부르 고 당신을 부릅니다.그리고 두 눈을 감고 세상을 더날 때는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어떤 사람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생각 하십니까 다윗은 행복한 사람입니다.이유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나의 몫이라 고 부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분깃으로 받게 됩니다.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해도 한국이 제일 좋고 세계 여러나라의 크고 작은 교회 들을 다 둘러 보아도 충신교회가 제일 좋고 이곳저곳을 다녀보아도 내 집이 제 일 좋고 편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삶의 뿌리가 여기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한국이라든지 충신교회라든지 내 집이라고 하는 것들 은 영원한 분깃이 아닙니다. 다윗의 경우 어릴적 뛰놀던 베들레헴이나 왕궁이 자리잡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분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이 나의 분깃이라는 뜻은 영원한 나라를 의 미합니다. 현대병 가운데 하나인 노이로제는 그 주원인이 스트레스에 있습니다.스트레스가 쌓여서 노이로제가 되는데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부분이 욕구불만이라는 사실 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욕구불만,사는 집이나,환경에 대한 욕구불만,가족관계에 대 한 욕구불만,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불만 등이 쌓여서 스트레스가 되고 그 스트레 스군이 쌓여서 노이로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분깃이라고 믿는 사람은 욕구불만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영원한 분깃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루하루의 삶이 풍요롭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욕구불만은 노이로제 병원균으로 작용합니다.우리가 늘상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은 지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은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이만하면 됐다 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학문의 세계 도 끝이 없고 돈버는 것도 끝이 없고 잘 사는 것도 끝이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 을 나의 분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만족이 있습니다.만족이 있기 때문에 감사가 있고 찬송이 있는 것입니다.다윗의 위대한 고백인 주는 나의 피난처,나의 분깃이 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시인의 간구를 찾아 봅시다. 그는 6절에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라고 했고, 나를 건지소서 라고 했습니다.그리고 7절에서는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 서 라고 했습니다.이 같은 시인의 간구는 하나님이 자신의 간구를 들으신다는 신 앙과 확신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그의 간구는
첫째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입니다.그리고 부르짖음을 들어 달라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그것은 심히 비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세상 사람들은 높은 사람,힘있는 사람들의 부탁을 먼저 들어 줍니다만 하나님은 비천한 사람의 부탁 을 들어주신다는 것이 다윗의 신앙이며 고백입니다.
둘째 나를 건지소서입니다.그는 나를 핍박하는 자로부터 건져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핍박자들은 나보다 강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 뜻은 자신의 힘으로는 강한 자를 이기거나 물리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들보다 강 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그들을 물리쳐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케 하소서입니다.7절을 보면 네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옥은 음부 곧 지옥을 말합니다. 지옥의 특징이 있습니다.거기엔 희망이 없습니다.감사도 없습니다.영원한 고통, 원망,좌절,절망만 있습니다. 다윗은 지옥같은 생활에서 자신을 이끌어 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다윗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고통과 낙망스 런 환경이나 고통때문에 지옥같은 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그때 그는 감사 하지 못했고 원망을 일삼으며 살았습니다.거기서 건져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네 생활은 어떻습니까 날이면 날마다 감사와 찬송이 있습니까,아니면 원망 과 시비로 채워져 있습니까 내 심령은 지옥입니까,천국입니까,우리 가정은 지옥 입니까,천국입니까
다윗의 시편 142편이 감사하게 하소서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그리고 감사하는 생활 이후에 오는 축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합니다.다윗은 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후대란 후한 대우와 친 절을 의미합니다. 정말로 필요할 때 나를 도와 준 사람들과 까닭없이 괴롭힌 사람들은 둘 다 잊 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정말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배은망덕 이 됩니다.그러나 나를 괴롭힌 사람을 오래토록 기억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됩니다.그러기 때문에 오래 기억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일년 반만에 일기를 쓰지 않기로 작정하고 일기장을 불태워 버렸습니다.이유는 간단합니다.훗날 내가 쓴 일기장이 공개됐을 때 나를 괴롭혔거나 내 목회를 방해했던 사람들과 나를 돕고 위해 주었던 사람들의 이름과 그 사건들이 나란히 공개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그 이후로 저는 일기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기록 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억마져 다 사라져 없어진건 아닙니다.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후대는 그 어느 누구의 후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그 후대는 감사 하는 사람에게 넉넉하게 임하는 것입니다.감사해야 더 받고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제임스 피셔 의 말이 생각납니다.그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덕은 친 절이다.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는 있다.미 소를 짓는데는 돈 한푼 들지 않지만 그러나 그 보상은 크다.사람을 만나면 먼저 안녕하십니까.오랜만입니다.라고 말하라 고 했습니다.우리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립시다.그리고 우리 서로 감사하며 살아갑시다.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후대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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