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아2:8-13)
본문
사랑하는 자를 보기 위해서 신부에게 다가오는 신랑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나의 사랑 어여쁜 자야 나와 함께 가자”고 그리고 함께 새 보금자리를 향해 헌신과 사랑과 봉사와 축복 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어보자고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발걸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는 연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찾아오고 계심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분은 찾아오셔서 해방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성육신 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의 절정을 이룹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실의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여 깊은 낙담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모습을 힘과 민첩함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산을 넘고 들을 가로질러 빠른 발걸음으로 건너옵니다. 그의 힘찬 걸음으로 찾아오는 모습은 마치 “노루(영양)와 어린 수사슴”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찾아옴은 마치 침입해 들어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넓은 세상에로 사랑하는 자를 초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연인은 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창살” 뒤에서 바라보던 그의 삶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께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아2: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로 달음질하되 빨리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달음질하는 상도는 주를 사랑함이 없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내가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께로 달음질하는 자의 그의 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힘찬 발걸음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시작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깨우시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주님을사랑하는 성도는 끊임없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번씩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그의 고백은 진실성이 없습니다. 주를사랑하는 성도는 모두가 다윗처럼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법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를 듭읍시다. 찾아오시는 그분은 이제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멀리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초대하는 목소리요 깨우는 목소리입니다.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그의 부름의 소리는 마치 후렴처럼 사용되어서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슬로우 비디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또한 반복적인 목소리는 포기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보혈로 값 주고 구속한 백성들이니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은 잠들어 있는 우리들의 심령을 깨웁니다. 그 음성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영혼과 죄악의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심령들을 깨우시는 그분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심령을 불러 깨우시는 음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의 심령을 깨우셨습니다. (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 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불순종과 무관심의 잠에 빠진 요나의 심령도 깨우신 분이십니다. “(욘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 “(욘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 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호세아가 죄악에 빠진 아내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 부르십니다. 그분의 부르심은 사랑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으심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시고, 우리의 얼굴 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 어떤 것보다 감미롭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것보다도 어여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찬양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시고 기도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함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계속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봄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은유는 생명력 넘치는 새봄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겨울은 지나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 있습니다. 묘사의 장면마다 비옥함과 풍성함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운 세계를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새로운 삶의 풍요를 전하고 싶어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년을 더 유예기간으로 인내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처럼 풍성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푸른 열매가 익게 하고 계십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풍작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남해안의 적조현상이 일어나 많은 어민들이 죽어 가는 고기떼를 보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만 오늘 아침 이 풍요로운 열매를 그들에게 허락하사 단비를 주시어 바다의 온도를 낮추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집 나간 탕자를 문 열어 놓고 밤새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부르셔서 창조적인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새생명의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셔서 교회의 삶 가운데 역사 하시며, 계속해서 새생명의 세계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계로 나아와 생명을 풍성히 얻고 더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개인들의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그들 속에서 풍성함이 있게 해 주십니다. 그물을 바다 깊은 곳으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지 못하였지만 주께서 제자들의 삶 가운데 찾아주시면 풍성함이 있습니다. 크고 좋은 물고기를 낚을 수가 있습니다. 그물이 찟어질정도로 풍성함이 있습니다. 오천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는 풍성함입니다. 그물이 찢어져 잡은 고기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습니다.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풍성함을 주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옛삶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헌신함으로 진정한 삶의 풍성함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과 동거해야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이듯이 주님과 우리 성도들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거처를 함께 사는 사람은 주님을 나의 주님과 나의 하나님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주님을사랑하는 성도입니다. 그분을 문지방에 서시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이 왕좌에 앉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성도도 아닙니다. 주님과 함게 살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풍성한 삶으로 그 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하나님 아버지의 찾아오심과 부르심은 새로운 생명과 삶에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찾고 계시며 부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습을 보이고 우리의 찬양을 들려주며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소리를 들려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과 목소리와 찬양과 감사와 예배를 기뻐하시며 새로운 생명의 풍성함으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1.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발걸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해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찾아오는 연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찾아오고 계심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분은 찾아오셔서 해방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성육신 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찾아오심의 절정을 이룹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실의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여 깊은 낙담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모습을 힘과 민첩함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산을 넘고 들을 가로질러 빠른 발걸음으로 건너옵니다. 그의 힘찬 걸음으로 찾아오는 모습은 마치 “노루(영양)와 어린 수사슴”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찾아옴은 마치 침입해 들어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살고 있는 넓은 세상에로 사랑하는 자를 초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연인은 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창살” 뒤에서 바라보던 그의 삶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께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아2: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주를 사랑하는 자는 주님께로 달음질하되 빨리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달음질하는 상도는 주를 사랑함이 없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내가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께로 달음질하는 자의 그의 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힘찬 발걸음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시작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깨우시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주님을사랑하는 성도는 끊임없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수십번씩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그의 고백은 진실성이 없습니다. 주를사랑하는 성도는 모두가 다윗처럼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법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를 듭읍시다. 찾아오시는 그분은 이제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멀리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초대하는 목소리요 깨우는 목소리입니다.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타나는 그의 부름의 소리는 마치 후렴처럼 사용되어서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해 줍니다.(슬로우 비디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또한 반복적인 목소리는 포기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보혈로 값 주고 구속한 백성들이니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은 잠들어 있는 우리들의 심령을 깨웁니다. 그 음성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영혼과 죄악의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심령들을 깨우시는 그분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심령을 불러 깨우시는 음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의 심령을 깨우셨습니다. (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 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불순종과 무관심의 잠에 빠진 요나의 심령도 깨우신 분이십니다. “(욘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 “(욘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 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호세아가 죄악에 빠진 아내를 찾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 부르십니다. 그분의 부르심은 사랑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으심을 나타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시고, 우리의 얼굴 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그 어떤 것보다 감미롭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 어느 것보다도 어여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찬양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시고 기도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함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계속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는 새봄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은유는 생명력 넘치는 새봄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열린 것입니다. “겨울은 지나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 있습니다. 묘사의 장면마다 비옥함과 풍성함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요로운 세계를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새로운 삶의 풍요를 전하고 싶어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1년을 더 유예기간으로 인내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처럼 풍성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푸른 열매가 익게 하고 계십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풍작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남해안의 적조현상이 일어나 많은 어민들이 죽어 가는 고기떼를 보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만 오늘 아침 이 풍요로운 열매를 그들에게 허락하사 단비를 주시어 바다의 온도를 낮추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집 나간 탕자를 문 열어 놓고 밤새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부르셔서 창조적인 새로운 생명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새생명의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살아 계셔서 교회의 삶 가운데 역사 하시며, 계속해서 새생명의 세계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계로 나아와 생명을 풍성히 얻고 더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개인들의 삶 가운데 찾아오셔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그들 속에서 풍성함이 있게 해 주십니다. 그물을 바다 깊은 곳으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지 못하였지만 주께서 제자들의 삶 가운데 찾아주시면 풍성함이 있습니다. 크고 좋은 물고기를 낚을 수가 있습니다. 그물이 찟어질정도로 풍성함이 있습니다. 오천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는 풍성함입니다. 그물이 찢어져 잡은 고기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습니다.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풍성함을 주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옛삶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헌신함으로 진정한 삶의 풍성함을 맛보게 됩니다. 주님과 동거해야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이듯이 주님과 우리 성도들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거처를 함께 사는 사람은 주님을 나의 주님과 나의 하나님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주님을사랑하는 성도입니다. 그분을 문지방에 서시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신이 왕좌에 앉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성도도 아닙니다. 주님과 함게 살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풍성한 삶으로 그 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하나님 아버지의 찾아오심과 부르심은 새로운 생명과 삶에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찾고 계시며 부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습을 보이고 우리의 찬양을 들려주며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소리를 들려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과 목소리와 찬양과 감사와 예배를 기뻐하시며 새로운 생명의 풍성함으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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