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아2:10-14)
본문
아가서의 특징 아가서를 읽어본 사람들은 이 책이 대부분 성경의 다른 책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놀라게 됩니다. 우선 내용 면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한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나,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일들이 전혀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내용 전체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것도 농도 짙은 표현이 가득한 에로틱 로맨스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책이 성경 안에 포함되어있을까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문학적 장르 면에서 성경의 다른 책들과 전혀 다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미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서정시들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렴구들이 많고, 주요 등장 인물들이 선창, 후창을 주고받는 일종의 가극시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용과 함께 형식면에서도 거룩한 성경책의 문학 형식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신학자들의 논쟁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합의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타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지극한 사랑이 은유적으로 하나님과 우리 성도들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사랑에 응답해야 할 것인가 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아가서의 주인공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라는 한 시골 처녀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지었고, 이스라엘 국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고, 무역과 외교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 가장 힘있는 나라를 만들었던 왕입니다. 개인적으로 부와 권력과 영화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또한 지혜가 뛰어나고 잠언을 3000이나 지어 후대에 남길 정도로 학식과 경륜 면에서 따를 자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고 모두가 부러워하던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반면에 술람미 여인은 그야말로 무명의 여인입니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술람미란 말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술람미란 말은 갈릴리 지역 나사렛 남쪽 11키로 지역에 위치한 수넴 지역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 여인은 갈릴리 지역 수넴이라는 조그만 촌 동네 출신의 미모의 여인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출신 지역도 시원치 않고, 가문도 보잘 것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신데렐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가서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격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두 사람은 사랑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을 아무런 자격 조건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택했고, 그렇게도 사랑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솔로몬만 알뿐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재계 모 재벌 비서실에 웃지 못할 지시가 윗 전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사윗감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찾을 대상의 자격 조건이 자세하게 기록된 서류봉투가 함께 전달됐습니다. 신체 조건:키 180 내외 외모 수려한 자, 학벌:모 대학 모과 출신으로 해외 유학 가능자, 가문:중상류층 이상으로 가풍과 뼈대가 있는 집안, 성격:원만하고 지도력을 갖춘자 비서진이 석 달 간 다방면으로 찾은 끝에 최종 대상자 4명을 회장실에 올렸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낙점 되어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결혼해서 미국 유학을 떠났고, 미국 생활 한 달만에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밝혀진 이혼 사유는 성격차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보다 조건을 맞춰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깨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건을 맞춰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부부를 만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보면 제 생각에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보다 이 두 사람은 잘 맞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심지어 이 두 사람이 왜 만나서 같이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관계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평가하든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 판단 제 생각과 관계없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합리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동의하고 남들이 인정을 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하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우리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41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열방 중에 가장 작은 족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보잘 것 없는 민족입니다. 수도 많은 것도 아니고,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건만 번번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번번이 하나님 마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때로 몹시 화가 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들이 뭔데 그토록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까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착하실까 뭐 대단한 민족도 아닌데 그토록 미련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버림받으시면서 짝사랑을 하실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내 이야기이고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고, 번번이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번번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나인데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황송한 마음으로 대왕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황송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청혼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청혼은 술람미 여인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우선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나의 비둘기야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던 동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입니다.
첫째, 순박하기 때문입니다. 호 7:11을 보면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잔꾀를 부릴 줄 모릅니다.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순박합니다.
둘째, 약하기 때문입니다. 호 11:11을 보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류에게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나 매가 나는 것만 봐도 무서워 떱니다.
셋째, 싸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서로 다투거나 싸울 줄 모릅니다. 남을 공격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넷째,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한 배우자만 짝을 이루고 삽니다. 그리고 그 배우자가 죽으면 구구구 슬피 웁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런 비둘기 한 마리가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있었습니다. 지금 어떤 적에 쫓겨 두려워 떨며 바위틈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눈에 사랑스런 술람미 여인이 이런 비둘기 같이 보였습니다. 연약하고 평화롭고 사랑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비둘기 같은 술람미 여인이 지금 어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불안해하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술람미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청혼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으로 볼 때 솔로몬이 찾아 온 것은 큰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 그것도 솔로몬과 같은 대왕이 자기에게 결혼하자고 찾아온 것입니다. 큰 보호자를 찾은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도, 어떤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문제가 무엇이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 혼자는 두려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야만 합니다. 나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찾으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내 편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이 용기를 되찾게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처럼 외로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꿈을 꿀 수 있게 됐습니다.
본문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입니다. 겨울도 지났고 비도 그쳤습니다. 이스라엘에 따뜻한 봄이 된 것입니다. 지면에는 꽃도 피고 새가 노래합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좋은 시절이 온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비록 오늘의 형편, 처지가 미약하고, 보잘것없고, 참담할 지라도 창대한 미래에 대한 꿈을 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은 미약하지만 창대해 지리라는 약속을 믿고 꿈을 꿨습니다. 지금 겨우 아들 이삭 하나 밖에는 없지만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자기 후손이 창대해져서 큰 민족이 될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상황이, 오늘의 처지가 미약하고 보잘것없어도,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절망뿐이어도 꿈을 꿉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꿈을 꾸는 것입니다. 지루한 장마가 며칠째 계속되어서 태양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저 구름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어두운 역사적 현실이, 고달픈 삶의 상황이 절망처럼 구름 되어 나를 덮쳐도 찬란한 태양 같은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장마 구름 저 너머의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 함께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본문에 보면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솔로몬은 이제 술람미 여인을 결혼식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그녀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냥 결혼식 장소로 오라고 연락한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닙니다. 술람미 여인이 일어서도록 그리고 차비하고 나설 때가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가고자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금 어려움에 처한 술람미 여인,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술람미 여인을 도와서 일으켜 주고, 기다려 주고, 함께 해 주었던 것입니다.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최근에 가정 파탄이 급속히 늘어간답니다. 가뜩이나 힘이 드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깨지고 파탄이 나는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지 않습니다. 힘들 때 서로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서로 짐을 나눠질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정사역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부부 사이에 서로 듣기 싫은 말을 더 많이 하게 됐답니다. 그 중에 남편이 많이 듣게 된 말은 '돈도 제대로 못 벌어 오면서 웬 큰소리냐', '옆집 아무개 아빠를 좀 봐요', '당신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 '당신 집안 다 그렇지 뭐' 이런 말이랍니다. 그리고 반대로 아내들이 많이 듣게 된 말은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해', '당신도 나가서 돈 벌어봐', '됐어 벌써 포기한 지 오래야', '다른 여자들 하는 것 좀 배워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뭐해', 이런 말들이 피차 서로를 멀게 느끼게 합니다. 서로 함께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려운 때 더 어렵게 만듭니다. 사랑은 어려울 때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최근 이태리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연예인은 단연 아니리자 미네티입니다. 그녀는 지난 4월 산레모 가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네티가 이태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작년 미스 이태리 선발대회 때문입니다. 이 미네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자였지만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도 이 사람이 시각장애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본선 최종 심사에서 당당 3위에 해당하는 미스 롬바디상을 받은 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각장애자라는 것이 알려졌고, 이태리 국민들은 벅찬 감동을 받으면서 미네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미네티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자기 머리 뒤쪽의 무선 수신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무대 밑에서 사랑하는 애인 파울로가 일일이 따라 다니면서 왼쪽, 오른쪽, 무선으로 알려 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된 것은 늘 파울로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라면서 수상의 기쁨을 파울로와 함께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앞을 볼 수 없을 때에게 일일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 일어서도록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걷지 못할 때 곁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해 주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주님의 눈에 여러분도 저도 어여쁜 자입니다. 사랑스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아가서의 주인공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이라는 한 시골 처녀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지었고, 이스라엘 국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고, 무역과 외교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 가장 힘있는 나라를 만들었던 왕입니다. 개인적으로 부와 권력과 영화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또한 지혜가 뛰어나고 잠언을 3000이나 지어 후대에 남길 정도로 학식과 경륜 면에서 따를 자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고 모두가 부러워하던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반면에 술람미 여인은 그야말로 무명의 여인입니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술람미란 말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술람미란 말은 갈릴리 지역 나사렛 남쪽 11키로 지역에 위치한 수넴 지역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 여인은 갈릴리 지역 수넴이라는 조그만 촌 동네 출신의 미모의 여인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출신 지역도 시원치 않고, 가문도 보잘 것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신데렐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가서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격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두 사람은 사랑할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을 아무런 자격 조건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택했고, 그렇게도 사랑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솔로몬만 알뿐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재계 모 재벌 비서실에 웃지 못할 지시가 윗 전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사윗감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찾을 대상의 자격 조건이 자세하게 기록된 서류봉투가 함께 전달됐습니다. 신체 조건:키 180 내외 외모 수려한 자, 학벌:모 대학 모과 출신으로 해외 유학 가능자, 가문:중상류층 이상으로 가풍과 뼈대가 있는 집안, 성격:원만하고 지도력을 갖춘자 비서진이 석 달 간 다방면으로 찾은 끝에 최종 대상자 4명을 회장실에 올렸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낙점 되어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결혼해서 미국 유학을 떠났고, 미국 생활 한 달만에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밝혀진 이혼 사유는 성격차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보다 조건을 맞춰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깨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건을 맞춰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부부를 만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려보면 제 생각에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보다 이 두 사람은 잘 맞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심지어 이 두 사람이 왜 만나서 같이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관계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평가하든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 판단 제 생각과 관계없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합리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동의하고 남들이 인정을 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모른 채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하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우리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41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열방 중에 가장 작은 족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보잘 것 없는 민족입니다. 수도 많은 것도 아니고,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분고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건만 번번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번번이 하나님 마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때로 몹시 화가 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들이 뭔데 그토록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까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착하실까 뭐 대단한 민족도 아닌데 그토록 미련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버림받으시면서 짝사랑을 하실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내 이야기이고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던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고, 번번이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번번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나인데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황송한 마음으로 대왕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황송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청혼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청혼은 술람미 여인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우선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나의 비둘기야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던 동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입니다.
첫째, 순박하기 때문입니다. 호 7:11을 보면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잔꾀를 부릴 줄 모릅니다.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순박합니다.
둘째, 약하기 때문입니다. 호 11:11을 보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독수리나 매와 같은 맹금류에게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나 매가 나는 것만 봐도 무서워 떱니다.
셋째, 싸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서로 다투거나 싸울 줄 모릅니다. 남을 공격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평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넷째,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한 배우자만 짝을 이루고 삽니다. 그리고 그 배우자가 죽으면 구구구 슬피 웁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이런 비둘기 한 마리가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있었습니다. 지금 어떤 적에 쫓겨 두려워 떨며 바위틈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눈에 사랑스런 술람미 여인이 이런 비둘기 같이 보였습니다. 연약하고 평화롭고 사랑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비둘기 같은 술람미 여인이 지금 어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불안해하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술람미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청혼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으로 볼 때 솔로몬이 찾아 온 것은 큰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 그것도 솔로몬과 같은 대왕이 자기에게 결혼하자고 찾아온 것입니다. 큰 보호자를 찾은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도, 어떤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문제가 무엇이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 혼자는 두려워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야만 합니다. 나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찾으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내 편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이 용기를 되찾게 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는 연인들처럼 외로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꿈을 꿀 수 있게 됐습니다.
본문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입니다. 겨울도 지났고 비도 그쳤습니다. 이스라엘에 따뜻한 봄이 된 것입니다. 지면에는 꽃도 피고 새가 노래합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좋은 시절이 온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두가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비록 오늘의 형편, 처지가 미약하고, 보잘것없고, 참담할 지라도 창대한 미래에 대한 꿈을 꿨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은 미약하지만 창대해 지리라는 약속을 믿고 꿈을 꿨습니다. 지금 겨우 아들 이삭 하나 밖에는 없지만 하늘의 별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자기 후손이 창대해져서 큰 민족이 될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상황이, 오늘의 처지가 미약하고 보잘것없어도,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절망뿐이어도 꿈을 꿉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꿈을 꾸는 것입니다. 지루한 장마가 며칠째 계속되어서 태양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저 구름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어두운 역사적 현실이, 고달픈 삶의 상황이 절망처럼 구름 되어 나를 덮쳐도 찬란한 태양 같은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장마 구름 저 너머의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 함께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본문에 보면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솔로몬은 이제 술람미 여인을 결혼식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그녀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냥 결혼식 장소로 오라고 연락한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아닙니다. 술람미 여인이 일어서도록 그리고 차비하고 나설 때가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가고자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금 어려움에 처한 술람미 여인,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술람미 여인을 도와서 일으켜 주고, 기다려 주고, 함께 해 주었던 것입니다.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최근에 가정 파탄이 급속히 늘어간답니다. 가뜩이나 힘이 드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깨지고 파탄이 나는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지 않습니다. 힘들 때 서로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서로 짐을 나눠질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정사역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부부 사이에 서로 듣기 싫은 말을 더 많이 하게 됐답니다. 그 중에 남편이 많이 듣게 된 말은 '돈도 제대로 못 벌어 오면서 웬 큰소리냐', '옆집 아무개 아빠를 좀 봐요', '당신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느냐', '당신 집안 다 그렇지 뭐' 이런 말이랍니다. 그리고 반대로 아내들이 많이 듣게 된 말은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해', '당신도 나가서 돈 벌어봐', '됐어 벌써 포기한 지 오래야', '다른 여자들 하는 것 좀 배워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뭐해', 이런 말들이 피차 서로를 멀게 느끼게 합니다. 서로 함께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려운 때 더 어렵게 만듭니다. 사랑은 어려울 때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최근 이태리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연예인은 단연 아니리자 미네티입니다. 그녀는 지난 4월 산레모 가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미네티가 이태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작년 미스 이태리 선발대회 때문입니다. 이 미네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자였지만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도 이 사람이 시각장애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본선 최종 심사에서 당당 3위에 해당하는 미스 롬바디상을 받은 뒤 인터뷰를 하면서 시각장애자라는 것이 알려졌고, 이태리 국민들은 벅찬 감동을 받으면서 미네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미네티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자기 머리 뒤쪽의 무선 수신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무대 밑에서 사랑하는 애인 파울로가 일일이 따라 다니면서 왼쪽, 오른쪽, 무선으로 알려 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된 것은 늘 파울로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라면서 수상의 기쁨을 파울로와 함께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앞을 볼 수 없을 때에게 일일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 일어서도록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걷지 못할 때 곁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해 주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주님의 눈에 여러분도 저도 어여쁜 자입니다. 사랑스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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