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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딤후3:15-17,요1:1-4)

본문

오늘은 성서 주일이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 주신 특별 계시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소식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구원의 길”도 알 수 없다. 우리 인간의 “구원의 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중간의 막힌 담인(엡2:14)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 길이 열릴 수 없다. 이 막힌 담을 인간이 헐 수 없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그 중간의 막힌 담을 허셨다. 이 사실을 알려 주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하나님의 책이다. 인간의 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인간의 책에 대한 기준으로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기준과 가치로 판단을 하고 있다. 문학적인 한 작품의 차원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신화적인 차원에서, 과학적인 차원에서 놓고 판단하고 가치 매김을 하고 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이 판단하고 가치 매김을 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무리 부정하고 무시해도 성경은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언어와 사람의 손으로 기록 되어졌지만 사람의 말이 아니다. 사람의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영감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하나님의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에 대하여 살펴 보고져 한다.
1.신구약 66권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무려 1600 여년에 걸쳐 약40여명의 성경 기록자들이 시간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달리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에 맞추어져 있다. 왕, 정치인, 서기관, 제사장, 학자, 농부, 어부, 목자, 의사, 세리, 등등… 이 성경 기록자들은 참으로 다양한 직업과 시대적,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신구약 66권이다. 처음부터 66권으로 함께 묶여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각 의 성경들이 사본의 형태로 전해져 내려왔다. 사본이란 처음 기록한 “원본”을 보고 다른 사람이 기록한 것을 말한다. 책의 수명이 오래되지 못하였고, 또 개인이나 지역적인 문제로 “원본”을 “사본”으로 기록하여 간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본”은 사라져 없어지고, “사본”의 “사본”으로 전해져 오다가 하나의 “성경책”으로 완성을 이루게 된다. 구약은 A.D 90년경 얌니야 회의에서 39권으로, 신약은 A.D 397년 칼타고 회의에서 “정경”으로 결정된다. “정경”이란 “κανων ”으로 “표준”, “잣대”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정식 성경”이라는 뜻이다. 그때까지 여러 사람들의 기록들이 내려 왔으나, 성경으로 인정할 만한 책으로 신구약 66권을 결정한 것이다. “정경”외에도 “외경”이란 책들도 있고, “위경”이라는 책들도 있다. 카톨릭에서는 이들 11권을 더 포함시켜 카톨릭의 성경은 개신교의 성경과 다르다. 이런 “정경”의 결정은 “외경”이나, “위경”의 범람으로 교회가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 예로서 “모세의 승천기”, “동정녀 마리아 승천기” 등이 있다. 이는 성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개신교에서는 “참고하는 문헌”으로서 바라보지 다른 성경과 같은 “정경”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톨릭은 그렇지 않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신앙관”이 다르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위경”인 “마카비 하”에 나오기에 카톨릭에서는 이 말씀을 기준으로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신구약 66권이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3×9 = 27로 기억하면 된다. 이를 분류해 나누어 보면, 구약은
⑴.모세의 오경:창, 출, 레, 민, 신,
⑵.역사서:수, 삿, 룻,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 하, 역대 상하, 스, 느, 에,
⑶.시가서:욥, 시, 잠, 전, 아,
⑷.선지서:
1.대선지서:사, 렘, 애, 겔, 단,
2.소선지서:호, 요, 암, 옵, 미, 나, 합, 습, 학, 슥, 말,
※히브리 원문은 우리말 성경처럼 구약이라 하지 않고 율법, 예언, 시 라 한다(눅24:44) “예언 서”에서 제1예언서로, 역사서를제2예언서로 선 지서로 구분한다. 신약은
⑴.복음서:마, 막, 눅, 요, (공관복음:마, 막, 눅)
⑵.역사서:사도행전,
⑶.서신서:
1.바울 서신:㉠.옥중서신:엡, 빌, 골, 몬, ㉡.목회서신:디모데 전후, 딛, ㉢.교리서신:롬, 고린도 전후, 갈, 데살로 니가 전후, 히,
※히브리서는 학자에 따라 바울서신 혹은 공동서신에 넣기도 한다.
2.공동서신:약, 베드로 전후, 요한
1,
2, 3서, 유,
⑷.예언서:요한 계시록,
2.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다. 딤후 3:15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다. 베드로후서 1: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한 권, 두 권이 아닌 66권 모두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한다. 곧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졌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실 때에 오류 없이 기록하게 하기 위하여 성령님이 성경 기록자를 지도하고 감독하신 일이 바로 “성령님의 영감”이다. “성령님의 영감”은 성경 기록자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 기록자의 사상, 지식, 재능, 성격, 언어 등 인간적인 요소를 동원하여 오류 없이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같은 사건의 기록일지라도 기록자에 따라 표현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전하려는 뜻은 일치하고 있다. 곧 “성령님의 영감”으로 성경 기록을 지도하고, 감독했다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 새긴 패를 놓고 보면, 마태: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27:37) 마가: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막15:26) 누가: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눅23:38) 요한: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19:19) 네 사람 모두 표현이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같은 사건의 “죄패”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이렇게 “성령님의 영감”된 책이기에 약40 여명의 성경 기록자에 의해 1600여년에 걸쳐 기록되어졌으나 통일성을 잃지 않는다. 더욱이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또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심된 주제를 통하여 서로간의 모순 없이 “구원의 길”을 조화롭게 보여 주고 있다.
3.살아 있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곧 “살아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책 속에 묻혀 있는 말씀이 아니다. 글자 속에 잠자고 있는 말씀이 아니다. 읽는 이의 가슴 속에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다. 우리 성도는 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하나님을 알게 된다.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된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 모두가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속에 “살아 있는 말씀”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이 성경을 떠날 수 없다. 시편 119: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다. 다윗은 이 살아 있는 말씀의 맛을 본 자이다. 참으로 그 살아 있는 말씀 속에 담겨진 축복의 단맛을 본 자이다. 꿀보다도 더 달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살아 있는 말씀 사모하기를 “송이꿀 보다 더 사모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요한복음 1: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살아 있는 말씀이다. 그 말씀 속에는 생명이 있다고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신다(요6:63) 그러기에 이 말씀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신다(요5:25)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그 속에 살아 있는 말씀이 나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증거한다. 나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죄 많은 나의 모습을 보게 한다. 나의 죄를 말끔히 씻을 십자가의 보혈을 깨닫게 한다. 주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알려 준다. 주님 다시 오시어 믿는 자를 영접해 주님 계신 곳으로 데려가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한다.
4.날마다 상고하자. 사도행전 17:11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했다. 요한복음 5: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을 우리 성도가 왜 날마다 상고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성도들의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했다. 앞장서서 가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된 성도들은 “영생의 말씀”을 결코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따라야 할 “영생의 말씀”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귀한 “영생의 말씀”이다. 요한복음 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다. 주님이 주시는 물 곧 “영생의 말씀”은 먹는 이의 가슴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했다. 다시는 갈함이 없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시원함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영생의 말씀”이다. 사도행전 17:11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의 터 위에 나의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한다. 베뢰아 교회의 성도들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보다 더 낫다고 칭찬하는 사도 바울이다. 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사람들이다(살전2:13).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 말씀마다 아-멘, 아-멘으로 받은 성도들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보다,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베뢰아 교회 성도들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권위에 자신의 믿음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곧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위에 자신의 믿음의 집을 짓는 베뢰아 교회 성도들을 칭찬한 것이다. 마태복음 8:8-10절에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했다. 이 이방인 백부장은 주님이 칭찬하신 큰 믿음의 소유자이다.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큰 믿음이다. 주님 자신이 아니라도,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이다.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에 대하여 이렇게 진실되게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의 권위를 누구보다도 목도하고 경험한 선민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그 선민 이스라엘은 오히려 주님이 전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을 거역하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있고, 이방인 백부장은 자신의 삶을 통해 “말씀의 권위”를 깨달은 것이다. 비록 백부장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말”에 복종을 한다. 자기 또한 남의 수하에 있는 자로 “상사의 말”에 절대 복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말씀의 권위”를 알고 있다. 주님 말씀 한마디라면 “병마는 쫓긴다”는 것이다. 이 백부장처럼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이 바로 “큰 믿음”이다. 갈릴리 바다 위에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심히도 많은 고기가 잡혔다(눅5:5).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그 살아 있는 말씀, 영생의 말씀 위에 우리의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며 터를 닦고 벽돌을 하나 둘 쌓아 올라가는 나의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자. 그 속에 영생이 있다. 그 속에 주님이 계신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다. 그 속에서 구원의 길이 열린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참으로 살아 있는 말씀이요, 영생이 있는 말씀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내 영혼의 양식이요, 내 속에서 영원하도록 솟아나는 샘이 되는 말씀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참으로 이 성경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사랑해야 할 책이다.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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