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39:7)
본문
본문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그의 생애는 고난과 영광을 가장 진하게 경험했던 사람이었다. 다윗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최고 통치자로서의 영광을 누렸는가 하면, 왕위에 오르기까지 많은 수난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겪은 고통과 시련과 위기 의식은 다른 왕들에 비하면 헤아릴수 없을 정도입니다. 순간순간 사울의 추적을 당해서 생사의 위기를 당했던 때가 수 없었고, 블레셋군인들과 싸울때에 승전하느냐 패전하느냐 하는 위기 속에서도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하였고, 그렇게도 믿었던 아들 압살롬이 애비를 욕되게 하고 반역을 해서 그로인하여 당한 수난과 부끄러움. 그 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본문의 주인공은 고난과 시련과 여러 가지 고통과 위기 속에서.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잘 이겨 나갔고, 마침내 좋은 세월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주인공은 어떻게 그런 위기를 만났을 때 마다 잘 이겨 나갔습니까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찾아 보고저 합니다.
첫째로, 인간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시39:4절 말씀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세계의 종말이 있는가하면 국가의 종말이 있고 개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정도로. 새가 머리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너무나도 연약하기 한량없는 것이 인생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왕으로서 왜 연약했겠습니까 왕은 강자 중에 강자입니다. 삼권을 한 손에 쥐고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말이 법이요, 계획이 법입니다. 가진자 중에 가진자요, 누리는 자 중에 누리는 자요, 지배하는 자 중에 지배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약하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는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은 겸손해 지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인생처럼 연약하기 한량없는 것이 어디 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대영박물관에 가서 보니까, 여러 역사적인 유물중에 거의 다 이집트 지역에서 옮겨 온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미이라들만 전시한 곳이 있는데, 왕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미이라 였습니다.
그런데 이빨은 허옇게 나오고, 손과 발이 오그라진 모습으로 있는데. 어떤 미이라는 뻣뻣하게 누워있고, 어떤 미이라는 다리를 오무리고 있는 것이 어떻게 흉물스러운지 모릅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시커멓게 그 해골, 마른 뼈들.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그 미이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전시해 놓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이라가 되는 것도 서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잘사는 귀족이나 왕족들이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부제 처리를 잘 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의 그 영광과 부귀, 세상을 흔들어 댈수 있었던 권세. 왕후의 그 아름다운 미모.
그런데 그런것들은 다 지나가고 어떻게 저런 모습이되어서 흉물스럽게 변해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자신도 더듬어 보면, “나도 몇년이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콰일론 지방의 어느 지하실에 있는 낙서가 지금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 낙서는 2차대전 당시에 포로로 끌려갔던 포로들이 그 속에서 저들이 소망의 세계를 바라보고 쓴 것입니다.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때에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엄연히 함께 하심을 믿는다” 하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과거에도 함께 하시고 현재에도 함께 하십니다. 다윗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면서. 연약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겸손해 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날마다 날마다 새힘을 얻어서 승리롭게 살아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는 덧없는 존재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시39:5-6절 말씀에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덧없는 생을 한탄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손바닥만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은 인생이라 했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747점보 비행기는 400명을 탑승시킵니다. 그 육중한 것이 하늘의 나는 것을 보면 엄청나지만, 그러나 밑에서 보면 잠자리 만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봅니다. 육중하고 거대한 비행기이지만 폭풍이 한번 몰아치면 어디가서 떨어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운동장만한 항공모함도 거대한 태평양 바다 앞에서는 가랑잎만도 못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을 돌이켜 보니 손바닥만한 인생이요, 그림자와 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재물은 모아 놓았지만 누가 쓸런지 모르는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덧없는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이체와 같은 허무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전능자 하나님 앞에 서 보니 인생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돌이켜 보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미약하고 연약하고 허무한 것임을 깨달을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은 “오직 주께만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유씨엘에이 대학에 로저 골든 박사는 성의의 심리 발달을 연구하는데 7단계로 나누어서 연구를 했습니다. 사람의 성년시기를 16살로 보면서 첫 번째 단계, 16-17살까지는 도피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자꾸 벗어 날려고 하고, 선생님의 잔소리가 싫어서 벗어 날려고 하는. 그래서 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둘째로, 18-20살까지는 탐색기 인데, 자기 장래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만 성공할지 자꾸 탐색해 보는 것입니다.
셋째로, 21-28살까지는 투쟁기인데, 세상은 강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승리해 볼려고 언제든지 경쟁에서 강자가 될려고 발버둥을 치는 단계인 것입니다.
넷째로, 29-34살 사이에는 “장차 어떻게 될것인가”라는 장래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단계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35-44살까지는 불안한 시기로서 삶이 불안해서 어떻게 될것인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45-50세는 회고의 시기인데 과거를 돌아보면서 잘한것도 많고 못한것도 많고. 그래서 돌이켜 보면서 후회하는 단계입니다. 일곱번째로, 50세가 넘어가면 성숙기 인데 이때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삶에 지혜가 생기고, 출세보다는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고, 가족의 귀중함을 알고, 이웃과 친구를 귀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걸어다니면서 자꾸 운동을 시키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한번은 지나가다가 만났습니다. 연세가 많아 보이셔서 인사를 하니까 누구냐고 물어서 성광교회 목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거의 잘 못걸으시는 모습이고 할아버지가 부축을 하고 손을 잡아서 운동을 시키는데, 할머니는 아주 작아서 할아버지의 거의 반 만하고, 할아버지는 키가 훨출하면서 잘 생기셨습니다. 아마 젊었을 때는 아주 잘 생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과거의 얘기를 해 주시는데, 이제는 다 팔아서 없지만 옛날에 이 지역의 땅은 거의 자기 땅이었고,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이고.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사실은 제가 젊어서 이 사람 속을 많이 썪이고, 주먹질도 많이 하고.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늙고 생각을 해 보니까 이제야 철이 들어서 이 사람 오래 살라고 이렇게 붙들고 운동을 시키는 겁니다” 하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할머니는 그 할아버지의 짝은 아닐 것 같은데. 이제는 그렇게 사랑스러워 하고,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어서 종종걸음으로 걸어갑니다. 할머니는 워낙 작으셔서 할아버지가 한 발을 걸으면 두 세발은 걸어야 하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어서 걸어 가시는 것입니다. 매일 한 두번씩 꼭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로저 박사의 인간 심리연구 결과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덧 없었던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한평생을 지나 오면서, 늦게서야 삶의 지혜를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손바닥같고 그림자 같은 인생이요, 그래서 “오직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나이다!”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은 존재로 깨달은 것입니다. 시39:8절 말씀에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라고 했고, 시39:13절 말씀에서도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 시키소서”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죄에 대해서 약합니다. 죄가 강하게 나를 엄습할 때 누구든지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다 넘어졌습니다. 그 죄성은 유전적으로 오늘날 까지 물려 받고 있습니다. 그 죄성이 다윗의 마음속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기회가 오니까 드러난 것입니다. 다윗은 사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없이 살아 왔던 사람입니다. 그의 감성이 얼마나 풍성한지 자기를 수없이 죽일려고 따라다녔던 사울이 죽었는데, 조사를 읊은 내용이 어떠했습니까 웬만한 사람 같으면 잘 죽었다고 할텐데, 그 원수같은 사울을 향하여 한없이 한없이 그를 높이며 아름다운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탄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놀라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속에 조금 남아 있었던 유전적인 죄성이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충성스런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여 그 죄가 탄로 날까봐,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서 죽게 만들고 급기야는 그를 자기의 아내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비유로 지적을 할 때, 다윗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침상이 젖도록 회개한 것입니다. 용서받은 사랑에 감격하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요, 허무한 인생을 돌이켜 보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체코의 소설가 카푸카라는 사람이 ‘변신’이라는 작품에서 한 남자가 기왕이면 세상을 멋있게 살고 싶어서 카멜레온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저렇게 살고, 저런 곳에서는 저렇게 살고.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하면서 마치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변장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진실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나 때가 늦어서 이미 고질화된 자기의 품성을 띁어 고치지를 못하고, 안되니까 결국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벌레만도 못하고 지렁이 만도 못하고 티끌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죄많고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을 받는 은혜를 받았으니. 평생을 두고 갚을 길 없는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주님께 소망으로 든든히 의지하고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긴급한 문제는 소망의 문제입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와 문화, 도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사회의 지도계층이라고 해서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정치가 믿을만 하고, 어떤 제도가 사람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었습니까 어떤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이 시대를 보면 가면 갈수록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나, 고통과 시련과 위기의 상황 앞에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삶에 활력을 부어 주신 은혜가 감격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하므로 한 세대 성군으로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덧없는 것입니다. 빨리 지나갑니다. 손바닥만하고 그림자 같은 인생입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는 하나님앞에서 용서받은. 갚을 길 없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 감격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소원은 언제나 실망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가면 갈수록 진실하게 살고 싶은 믿음을 주시고, 온전하게 살게 하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 성광의 성도들은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므로. 날마다 날마다 새힘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서 복되고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첫째로, 인간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시39:4절 말씀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영원히 살 것 같지만, 세계의 종말이 있는가하면 국가의 종말이 있고 개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정도로. 새가 머리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고, 너무나도 연약하기 한량없는 것이 인생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왕으로서 왜 연약했겠습니까 왕은 강자 중에 강자입니다. 삼권을 한 손에 쥐고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말이 법이요, 계획이 법입니다. 가진자 중에 가진자요, 누리는 자 중에 누리는 자요, 지배하는 자 중에 지배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약하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는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은 겸손해 지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인생처럼 연약하기 한량없는 것이 어디 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대영박물관에 가서 보니까, 여러 역사적인 유물중에 거의 다 이집트 지역에서 옮겨 온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미이라들만 전시한 곳이 있는데, 왕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미이라 였습니다.
그런데 이빨은 허옇게 나오고, 손과 발이 오그라진 모습으로 있는데. 어떤 미이라는 뻣뻣하게 누워있고, 어떤 미이라는 다리를 오무리고 있는 것이 어떻게 흉물스러운지 모릅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시커멓게 그 해골, 마른 뼈들.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그 미이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전시해 놓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이라가 되는 것도 서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잘사는 귀족이나 왕족들이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부제 처리를 잘 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왕으로서의 그 영광과 부귀, 세상을 흔들어 댈수 있었던 권세. 왕후의 그 아름다운 미모.
그런데 그런것들은 다 지나가고 어떻게 저런 모습이되어서 흉물스럽게 변해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자신도 더듬어 보면, “나도 몇년이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인생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콰일론 지방의 어느 지하실에 있는 낙서가 지금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 낙서는 2차대전 당시에 포로로 끌려갔던 포로들이 그 속에서 저들이 소망의 세계를 바라보고 쓴 것입니다.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때에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엄연히 함께 하심을 믿는다” 하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과거에도 함께 하시고 현재에도 함께 하십니다. 다윗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면서. 연약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겸손해 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날마다 날마다 새힘을 얻어서 승리롭게 살아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는 덧없는 존재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시39:5-6절 말씀에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덧없는 생을 한탄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손바닥만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은 인생이라 했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747점보 비행기는 400명을 탑승시킵니다. 그 육중한 것이 하늘의 나는 것을 보면 엄청나지만, 그러나 밑에서 보면 잠자리 만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을 봅니다. 육중하고 거대한 비행기이지만 폭풍이 한번 몰아치면 어디가서 떨어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운동장만한 항공모함도 거대한 태평양 바다 앞에서는 가랑잎만도 못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을 돌이켜 보니 손바닥만한 인생이요, 그림자와 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재물은 모아 놓았지만 누가 쓸런지 모르는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덧없는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이체와 같은 허무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전능자 하나님 앞에 서 보니 인생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돌이켜 보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미약하고 연약하고 허무한 것임을 깨달을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주인공은 “오직 주께만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유씨엘에이 대학에 로저 골든 박사는 성의의 심리 발달을 연구하는데 7단계로 나누어서 연구를 했습니다. 사람의 성년시기를 16살로 보면서 첫 번째 단계, 16-17살까지는 도피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자꾸 벗어 날려고 하고, 선생님의 잔소리가 싫어서 벗어 날려고 하는. 그래서 가출을 가장 많이 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둘째로, 18-20살까지는 탐색기 인데, 자기 장래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만 성공할지 자꾸 탐색해 보는 것입니다.
셋째로, 21-28살까지는 투쟁기인데, 세상은 강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승리해 볼려고 언제든지 경쟁에서 강자가 될려고 발버둥을 치는 단계인 것입니다.
넷째로, 29-34살 사이에는 “장차 어떻게 될것인가”라는 장래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단계라고 합니다. 다섯째로, 35-44살까지는 불안한 시기로서 삶이 불안해서 어떻게 될것인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45-50세는 회고의 시기인데 과거를 돌아보면서 잘한것도 많고 못한것도 많고. 그래서 돌이켜 보면서 후회하는 단계입니다. 일곱번째로, 50세가 넘어가면 성숙기 인데 이때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삶에 지혜가 생기고, 출세보다는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고, 가족의 귀중함을 알고, 이웃과 친구를 귀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걸어다니면서 자꾸 운동을 시키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한번은 지나가다가 만났습니다. 연세가 많아 보이셔서 인사를 하니까 누구냐고 물어서 성광교회 목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거의 잘 못걸으시는 모습이고 할아버지가 부축을 하고 손을 잡아서 운동을 시키는데, 할머니는 아주 작아서 할아버지의 거의 반 만하고, 할아버지는 키가 훨출하면서 잘 생기셨습니다. 아마 젊었을 때는 아주 잘 생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과거의 얘기를 해 주시는데, 이제는 다 팔아서 없지만 옛날에 이 지역의 땅은 거의 자기 땅이었고,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이고.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사실은 제가 젊어서 이 사람 속을 많이 썪이고, 주먹질도 많이 하고.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늙고 생각을 해 보니까 이제야 철이 들어서 이 사람 오래 살라고 이렇게 붙들고 운동을 시키는 겁니다” 하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할머니는 그 할아버지의 짝은 아닐 것 같은데. 이제는 그렇게 사랑스러워 하고,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어서 종종걸음으로 걸어갑니다. 할머니는 워낙 작으셔서 할아버지가 한 발을 걸으면 두 세발은 걸어야 하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어서 걸어 가시는 것입니다. 매일 한 두번씩 꼭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로저 박사의 인간 심리연구 결과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덧 없었던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한평생을 지나 오면서, 늦게서야 삶의 지혜를 깨달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손바닥같고 그림자 같은 인생이요, 그래서 “오직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나이다!”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로 다짐을 한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은 존재로 깨달은 것입니다. 시39:8절 말씀에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라고 했고, 시39:13절 말씀에서도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 시키소서”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죄에 대해서 약합니다. 죄가 강하게 나를 엄습할 때 누구든지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다 넘어졌습니다. 그 죄성은 유전적으로 오늘날 까지 물려 받고 있습니다. 그 죄성이 다윗의 마음속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기회가 오니까 드러난 것입니다. 다윗은 사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없이 살아 왔던 사람입니다. 그의 감성이 얼마나 풍성한지 자기를 수없이 죽일려고 따라다녔던 사울이 죽었는데, 조사를 읊은 내용이 어떠했습니까 웬만한 사람 같으면 잘 죽었다고 할텐데, 그 원수같은 사울을 향하여 한없이 한없이 그를 높이며 아름다운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탄식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놀라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속에 조금 남아 있었던 유전적인 죄성이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충성스런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여 그 죄가 탄로 날까봐, 우리야는 전쟁터에 나가서 죽게 만들고 급기야는 그를 자기의 아내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비유로 지적을 할 때, 다윗은 무릎을 꿇고 눈물로 침상이 젖도록 회개한 것입니다. 용서받은 사랑에 감격하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요, 허무한 인생을 돌이켜 보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체코의 소설가 카푸카라는 사람이 ‘변신’이라는 작품에서 한 남자가 기왕이면 세상을 멋있게 살고 싶어서 카멜레온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저렇게 살고, 저런 곳에서는 저렇게 살고. 상황에 따라 잘 적응하면서 마치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변장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진실되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나 때가 늦어서 이미 고질화된 자기의 품성을 띁어 고치지를 못하고, 안되니까 결국은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벌레만도 못하고 지렁이 만도 못하고 티끌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죄많고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을 받는 은혜를 받았으니. 평생을 두고 갚을 길 없는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주님께 소망으로 든든히 의지하고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긴급한 문제는 소망의 문제입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와 문화, 도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사회의 지도계층이라고 해서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정치가 믿을만 하고, 어떤 제도가 사람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었습니까 어떤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이 시대를 보면 가면 갈수록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그러나, 고통과 시련과 위기의 상황 앞에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삶에 활력을 부어 주신 은혜가 감격해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하므로 한 세대 성군으로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덧없는 것입니다. 빨리 지나갑니다. 손바닥만하고 그림자 같은 인생입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는 하나님앞에서 용서받은. 갚을 길 없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 감격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소원은 언제나 실망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가면 갈수록 진실하게 살고 싶은 믿음을 주시고, 온전하게 살게 하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 성광의 성도들은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므로. 날마다 날마다 새힘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서 복되고 좋은 세월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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