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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막9:14-29)

본문

오는 본문의 말씀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려 벙어리가 된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데려왔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는 그 아버지의 말을 듣고 믿음이 없는 세대를 바라보시며 통탄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더욱 비통스러운 것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통탄하시는 주님 앞에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도와 달라는 그 아버지의 간청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경책하실 수 밖에 없는 주님, 그러나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해 믿음의 능력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능치 못한 일이 없는 믿음 , 그런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고 예수님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호소하는 그 아버지의 부르짖음이 어쩌면 가장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이 시간 우리는 그 아버지의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는 부르짖음을 들으며 스스로를 한번 살펴보자. 나는 믿음이 있고 적어도 그 사람 보다야…. 하는 생각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그 부르짖음 속에 무엇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져 한다. 그 부르짖음의 의미는,
1.자신의 부족함을 고백. 본문 22절에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다. 병든 아들을 고치려고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제자들도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받았다(막6:7) 그 아버지의 듣던 소문과는 딴판이었다. 예수에 관한 소문에 의구심이 생겼다(눅5:15) 그래서 제자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 속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 앞에서도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 하고 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을 별것도 아닌 소문의 주인공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란 그 말 속에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설 때의 기대감이나 부푼 가슴은 이미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밑져 봐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한 그 아버지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의 꾸짖음에 정신을 차리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는 능력 있는 믿음의 선포 앞에서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능력 있는 믿음이 제자들에게 없음 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없음이 더 큰 문제임을 깨달았다. 자신을 바로 보게 되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 왔으나 정작 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아들의 병 고치는 기대뿐이었다. 그저 내 아들의 병도 고쳐 줄 수 있는 분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이 많은 분으로, 그래서 돈 안 받고도 남의 병을 고쳐 주시는 분으로 알고 찾아 왔다. 히브리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상 주신다 함은 약속의 축복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 그가 누구이신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질병을 고치시기 위해 오신 의사가 아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세주이시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왜 필요한가 나의 질병 때문인가 오늘 본문 말씀의 아버지처럼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가
그렇다면 예수를 잘 못 알고 있다. 나의 소원풀이를 위해 필요한 예수라면 잘 못 믿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아들의 병 고치기 위해 찾아온 그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부족함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잘 못 바라보고 있음을 고백하고 “도와 주소서” 부르짖고 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눅18:13) 또한 자신의 부족을 드러내고 자신을 낮추며 개가 되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하는 가나안 여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마15:26)
2.연약한 믿음 붙들어 주소서. 본문 23-24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고 했다. 예수님의 책망으로 자신의 부족과 믿음 없음을 깨닫게 된 그 아버지는 곧 바로 고백했다.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능력 있는 믿음,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된 그 아버지는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아니고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자심임을 알게 된다. 능력 있는 믿음,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능력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없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우리 성도의 믿음은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함께 해야 합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잘하니 주여 도우심의 손길로 날 붙잡아 주옵소서! 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보세요. 누가 22:31-32절에 시몬아,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고 했다. 베드로의 믿음은 “다른 제자들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고 고백하는 믿음이지만 닭 두번 울기 전에 세번 주를 부인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이다. 주를 위해 일사각오의 충성을 결심하지만(눅22:33) 작은 계집 아이 하나 앞에서도 주를 부인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믿음이다(요18:17) 주께서 이를 아시고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셨다. 의심 많은 도마의 경우를 보세요. 요한 20:27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의 연약한 믿음을 굳게 세우시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그 다섯 상처를 보이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의 믿음을 붙들어 주셨다.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없이는 잠시도 믿음의 길에 바로 서지 못할 우리들, 또한 세상도 너무나 악하기에,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에(벧전5:8) 우리의 연약한 믿음 붙들어 주소서기도할 수 밖에 없다.
3.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본문 24절에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 했다. 아들의 병 고침을 위해 찾아 나온 아버지, 제자들이 “능히 못하더이다”라는 비아냥거림의 고발,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하신 예수님의 통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제자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 주소서. 모두가 다 침울하고 절망스런 분위기이다. 그러나, 주님은 외치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능력 있는 믿음을 선포하신다. 그 아버지에게는 다시없는 기쁜 소식이요 소망이 넘쳐 나는 소식이요 복된 소식이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통탄하시는 주님 앞에서 제자들을 보아도, 모인 무리를 보아도, 자신을 보아도, 자기 아들을 보아도 능력 있는 믿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그 능력 있는 믿음을 구할 대상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찾았다 능력의 주님을. 그 아버지는 사랑의 주님을, 승리의 주님을, 구원의 주님을 깨달았다. 능력 있는 믿음을 구할 대상을 찾았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그 아버지는 능려의 주님께 “능력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간청한다. 그 능력 있는 믿음만 있으면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을 텐데 다시 말하면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텐데 곧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하는 기도이다. 주님도 믿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아들의 병 고침을 위해 주님을 찾아 나왔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그 부르짖음 속에 간절함이 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혈루증 앓는 여인, 내 비록 예수님의 안수기도는 바랄 수 없지만 옷자락만이라도 만질 수 있었으면(마9:20) 간절한 마음의 기도가 응답 받음을 보여 준다. 그런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 속에 있는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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