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난을 보시고 주여 구하소서 (시119:153-160)
본문
1. 구원에 대한 확신(153-154절)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이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의 이성이 영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에게는 생각하는 이성이 있습니다. 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의 존재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세상 떠날 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2) 여러분 마음 속에 물어보십시오. 심령 깊은 곳에 영혼이 있는가를 우리는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합니다. 옛날 애굽 사람은 죽으면 약을 발라 썩지 않게 하고 피라밑에 보존합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중국 진시왕은 삼신왕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나, 동녀 500인을 구하여 보냈고, 한무제는 승로반의 찬 이슬을 왜 받아 먹기를 힘썼습니까? 다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왜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영생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기 싢어함은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은 말합니다.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계 21:11에 “내가 크고 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자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릇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 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볼못에 던지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생, 심판, 내세, 천당, 지옥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논하다가 마지막 결론의 말씀으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일을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2. 주의 규례로 구원하소서(155-156절) 세상에 종교 없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종교를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경제, 학술, 과학, 정치의 필요성을 다 논하지만 종교를 말하면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1) 그러나 종교는 누구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의식주가 풍족하면 족한 줄 알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영혼의 만족입니다.
(2)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해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지식 이상의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학문으로 얻어질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합니다. 행복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종교를 반드시 찾게 되어 있습니다.
(3) 사람의 심령에 전능자의 기운이 있어 총명을 줍니다. 욥 32:8에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영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기운”으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아와 하나님의 세계와 맺어지는 곳, 그러한 거룩한 영역이 있는데 이것이 성찬식입니다. 예수의 보혈 ‘포도즙’과 예수의 살 ‘떡’은 우리의 종교성을 기르는 유일한 음료수, 영생의 양식이 됩니다.
(4) 종교 없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 바닥 없는 배입니다. 종교 없는 사람은 뿌리 없는 꽃꽂이 꽃과 같아서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은 그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종교는 유한한 사람에게 무한함을 주는 것입니다. 종교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3. 주의 인자로 구원하소서(157-159절) 우리 주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눅 19:1-10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고 했습니다. 백부장 하인을 병에서 고치신 일,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를 구원하신 일, 막달라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로 은혜주신 일,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을 죄사하신 일 등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주께서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영적으로 버림받아 구원의 소망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긍휼히 사랑하시사 구원의 손길을 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인지하심을 베풀어 우리를 소생케 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4. 주의 의로운 규례는 영원하리이다(160절)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한 사랑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있는 “모든 말씀이 신실하고 모두 받아들이기에 극히 가치 있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외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고 끝까지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1) 건전한 교리 성서를 어떻게 읽는 것이 옳은가를 가르치는 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이비 교리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바른 교리에 믿고 그에 따른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2) 건전한 신앙 우리의 신앙이 지식에 기인하지 않으면 미신에 기울기 쉽고, 지식에 기인하면 영적 방면이 등한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신앙이 건전한 신앙입니까? 신앙의 대상자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경험으로 그 신앙의 대상을 삼는 것은 건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사업, 번영, 출세, 무병, 입명을 바라는 기복신앙은 건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장소를 따라, 시기를 따라 변합니다. 이것들은 땅에서 나온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신앙은 성서적인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단 사상에 물든 갈라디아 교인을 향해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건전한 신앙으로 지식과 영적인 것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사람의 사랑은 조건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건전한 이타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건전한 사랑이 영원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사랑의 감화력으로서만 죄인을 회개케합니다. 사랑의 힘으로서만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듭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이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의 이성이 영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에게는 생각하는 이성이 있습니다. 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의 존재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세상 떠날 때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2) 여러분 마음 속에 물어보십시오. 심령 깊은 곳에 영혼이 있는가를 우리는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합니다. 옛날 애굽 사람은 죽으면 약을 발라 썩지 않게 하고 피라밑에 보존합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중국 진시왕은 삼신왕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나, 동녀 500인을 구하여 보냈고, 한무제는 승로반의 찬 이슬을 왜 받아 먹기를 힘썼습니까? 다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왜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영생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기 싢어함은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은 말합니다.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계 21:11에 “내가 크고 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자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릇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 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볼못에 던지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생, 심판, 내세, 천당, 지옥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논하다가 마지막 결론의 말씀으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일을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2. 주의 규례로 구원하소서(155-156절) 세상에 종교 없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종교를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경제, 학술, 과학, 정치의 필요성을 다 논하지만 종교를 말하면 그 필요를 인정하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1) 그러나 종교는 누구에게나 다 필요합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의식주가 풍족하면 족한 줄 알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영혼의 만족입니다.
(2)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해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지식 이상의 요구가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학문으로 얻어질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합니다. 행복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종교를 반드시 찾게 되어 있습니다.
(3) 사람의 심령에 전능자의 기운이 있어 총명을 줍니다. 욥 32:8에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영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기운”으로만 충족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아와 하나님의 세계와 맺어지는 곳, 그러한 거룩한 영역이 있는데 이것이 성찬식입니다. 예수의 보혈 ‘포도즙’과 예수의 살 ‘떡’은 우리의 종교성을 기르는 유일한 음료수, 영생의 양식이 됩니다.
(4) 종교 없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 바닥 없는 배입니다. 종교 없는 사람은 뿌리 없는 꽃꽂이 꽃과 같아서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사람은 그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종교는 유한한 사람에게 무한함을 주는 것입니다. 종교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3. 주의 인자로 구원하소서(157-159절) 우리 주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눅 19:1-10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고 했습니다. 백부장 하인을 병에서 고치신 일,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를 구원하신 일, 막달라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로 은혜주신 일,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을 죄사하신 일 등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주께서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영적으로 버림받아 구원의 소망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긍휼히 사랑하시사 구원의 손길을 펴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인지하심을 베풀어 우리를 소생케 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4. 주의 의로운 규례는 영원하리이다(160절)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한 사랑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있는 “모든 말씀이 신실하고 모두 받아들이기에 극히 가치 있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외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고 끝까지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1) 건전한 교리 성서를 어떻게 읽는 것이 옳은가를 가르치는 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이비 교리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바른 교리에 믿고 그에 따른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2) 건전한 신앙 우리의 신앙이 지식에 기인하지 않으면 미신에 기울기 쉽고, 지식에 기인하면 영적 방면이 등한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신앙이 건전한 신앙입니까? 신앙의 대상자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경험으로 그 신앙의 대상을 삼는 것은 건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사업, 번영, 출세, 무병, 입명을 바라는 기복신앙은 건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장소를 따라, 시기를 따라 변합니다. 이것들은 땅에서 나온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신앙은 성서적인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단 사상에 물든 갈라디아 교인을 향해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건전한 신앙으로 지식과 영적인 것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사람의 사랑은 조건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건전한 이타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건전한 사랑이 영원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사랑의 감화력으로서만 죄인을 회개케합니다. 사랑의 힘으로서만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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