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은 해시계 (왕하20,8-11)
본문
1,해 시계는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2,해 시계는 때때로 구름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3,나의 남은 해 시계의 년수는 히스기야 왕이 죽고 살지 못할 병에 걸렸다. 그것도 39 세인 한참의 나이에 죽을 병이 든 것이다. 히스기야처럼 경건하게 기도로 사시는 분에게도 죽음이라는 문제는 반듯이 찾아 오는 것임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사는 이야기를 해야 좋와하지 죽는 이야기는 모두가 다 싫어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잘 사는 문제보다는 잘 죽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잘 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임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은 그 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우리들 모두는 이 땅에서도 아주 멋지게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죽을 땐 더 멋진 죽음을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이 시간 우리들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를 계산해 보자.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들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다시 건강해서 하나님집 즉 성전에 출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 앞으로 15 년을 더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15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15 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징조가 어떤 것인가를 다시 물었다. 9절에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10절에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다." 그랬더니 11절에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 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고 했다. 그래서 놀라운 이적과 함께 히스기야 왕은 그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를 십오년이나 연장해 받는다.
1,해 시계는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이제 히스기야는 마음놓고 15 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해 시계는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여 지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해 시계는 해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바로 서 있어야 함을 말함이다. 해가 없고는 해 시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스기야는 곧 해 시계이고 하늘의 하나님은 곧 해 자체가 되시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씀을 하면 해 시계는 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향해서 살아야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 주심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들도 다 히스기야처럼 하나 하나의 해 시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모두들도 해 시계의 원동력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해 시계가 해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서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해 시계는 전혀 자기의 의지를 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해 시계가 자기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은 매일 매일 그가 나타내어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표기 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성도들이 그렇다. 우리들이 아무리 잘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지 아니하시고 간섭하시지 않는다면 해 시계가 해 없이 스스로 시간을 알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2,해 시계는 때때로 구름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 해 시계가 정확하게 해가 원하는 대로 살아 가기를 방해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다. 비를 동반한 구름같은 것들이다. 때로는 폭풍우를 동반하기도 한다. 때로는 몇일을 두고두고 지루하게 해를 가리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해가 종종 구름에 가리지게 된다. 난데 없이 구름이 나타나서 해를 가리게 되는 날에는 해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가 없게 된다. 성도들의 살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늘 형통한 것만은 아니다. 때대로 구름이 우리를 가리울 때가 있다, 근심과 걱정의 구름이 있다. 의심과 누명의 구름도 있다. 환난과 시련의 구름도 있다. 질병과 낙망의 구름도 있다. 좌절과 죽음의 구름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구름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방해할 때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 구름들이 우리가 가는 방향을 바꾸어 놓을 때가 많다. 그래서 구름때문에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질때가 있곤 한다. 그래서 해 시계는 항상 구름이 덮힐 것을 각오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많은 체험이 필요하다.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사랑의 교제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난는 체험을 많이 가져야 한다. 몇일전에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잘 두기로 소문난 15 세의 소년 기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소년 기사 이 창호 !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바둑을 잘 둘 수 있을까 그렇게 바둑을 잘 두게될 수 박에 없는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을 알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바둑에 관계되는 책을 무려 5 천권이나 탐독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책은 몇번이고 반복을 하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어떠한 구름이 우리를 덮어 온다 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 온다 할지라도 정확하게 천성을 향하여 지우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 소년 이 창호 기사의 배후에는 조 훈현이란 대 스승이 있었기에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태양이 되시는 전능자 하나님이 계신다. 하늘엔 구름이 많은것 같을 뿐이지 구름이 낀 날보다는 햇빛 비치는 날이 더 많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름 뒷편엔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는 것이다.
3,나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는 ' 문제는 구름이 아니다. 히스기야에게 15 년이란 년수가 주어 졌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년 수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게 15 년이면 어떻고 80년이면 어떤가 인생이 70 이요 강건하면 80 이라도 쉬 지나가기는 매 일반인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런 소리를 한다. "나도 히스기야처럼 나의 날 수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그 날을 알 수 있으면 때를 따라 더 멋지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날 수를 몰라서 하나님께 충성을 못함이 아니다. 나의 남은 날이 얼마 못된다고 그 얼마 못되는 시기를 마추어 충성을 한다고 한다면 이는 가장 못난 불충이라 생각된다.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할려면 남은 날이 짧다고 느껴지면 짧은 만큼 더 충실해야 할 것이고 길다고 느껴지면 그 긴 만큼 더 길게 많게 충성을 해야 그게 옳바른 층성인 것이다. 나의 남은 해 시계의 수명을 재고 있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남은 해 시계는 멈출 수 있다는 가정 밑에서 오늘 나에게 주신 일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함이 곧 충성인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시라. 오래 오래 살았다고 더 많은 충성을 한 것이 아니다. 물론 짧게 살았다고 더 보람되었던 것도 아니다. 일직 부름을 받은 자는 일직 부름을 받은 만큼 늦게 부름을 받은 사람은 늦은만큼 그 나름대로의 분량이 있었다. 아늬 남은 때를 알 수 있는게 축복이 아니라 알지 못함이 더 축복이 된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순간을 더 힘 있게 헌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이 아니 이 순간이 나의 그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매 순간이 값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었다. 우리가 힘써 일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위한 일을 얼마나 하겟나 우리들의 해 시계가 많이 남은 것이 아니다. 주님은 전 생애를 나위하여 주셨는데 . 우리들은 우리의 남은 것을 드리지 못한데서야 말이나 되겟나 우리들의 남은 것을 다 드린다 할지라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오를까지는 나를 위하여 살았더라도 이제는 나의 남은 해 시계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 드리자. 나의 남은 해 시계는 나를 위해 내가 쓰지 말고 해 시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하나님께 드리자. 남은 날들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2,해 시계는 때때로 구름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3,나의 남은 해 시계의 년수는 히스기야 왕이 죽고 살지 못할 병에 걸렸다. 그것도 39 세인 한참의 나이에 죽을 병이 든 것이다. 히스기야처럼 경건하게 기도로 사시는 분에게도 죽음이라는 문제는 반듯이 찾아 오는 것임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사는 이야기를 해야 좋와하지 죽는 이야기는 모두가 다 싫어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잘 사는 문제보다는 잘 죽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리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잘 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것임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은 그 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우리들 모두는 이 땅에서도 아주 멋지게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죽을 땐 더 멋진 죽음을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이 시간 우리들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를 계산해 보자.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들게 되자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다시 건강해서 하나님집 즉 성전에 출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 앞으로 15 년을 더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15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15 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징조가 어떤 것인가를 다시 물었다. 9절에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10절에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다." 그랬더니 11절에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 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고 했다. 그래서 놀라운 이적과 함께 히스기야 왕은 그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를 십오년이나 연장해 받는다.
1,해 시계는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이제 히스기야는 마음놓고 15 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해 시계는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여 지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해 시계는 해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바로 서 있어야 함을 말함이다. 해가 없고는 해 시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스기야는 곧 해 시계이고 하늘의 하나님은 곧 해 자체가 되시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씀을 하면 해 시계는 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향해서 살아야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 주심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들도 다 히스기야처럼 하나 하나의 해 시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모두들도 해 시계의 원동력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해 시계가 해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서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해 시계는 전혀 자기의 의지를 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해 시계가 자기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은 매일 매일 그가 나타내어야 할 시간을 정확하게 표기 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성도들이 그렇다. 우리들이 아무리 잘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지 아니하시고 간섭하시지 않는다면 해 시계가 해 없이 스스로 시간을 알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
2,해 시계는 때때로 구름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 해 시계가 정확하게 해가 원하는 대로 살아 가기를 방해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다. 비를 동반한 구름같은 것들이다. 때로는 폭풍우를 동반하기도 한다. 때로는 몇일을 두고두고 지루하게 해를 가리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해가 종종 구름에 가리지게 된다. 난데 없이 구름이 나타나서 해를 가리게 되는 날에는 해 시계가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가 없게 된다. 성도들의 살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늘 형통한 것만은 아니다. 때대로 구름이 우리를 가리울 때가 있다, 근심과 걱정의 구름이 있다. 의심과 누명의 구름도 있다. 환난과 시련의 구름도 있다. 질병과 낙망의 구름도 있다. 좌절과 죽음의 구름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구름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방해할 때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 구름들이 우리가 가는 방향을 바꾸어 놓을 때가 많다. 그래서 구름때문에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질때가 있곤 한다. 그래서 해 시계는 항상 구름이 덮힐 것을 각오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많은 체험이 필요하다.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사랑의 교제로 하나님과 자주 만나는 체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자주 만난는 체험을 많이 가져야 한다. 몇일전에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잘 두기로 소문난 15 세의 소년 기사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소년 기사 이 창호 !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바둑을 잘 둘 수 있을까 그렇게 바둑을 잘 두게될 수 박에 없는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을 알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바둑에 관계되는 책을 무려 5 천권이나 탐독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책은 몇번이고 반복을 하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어떠한 구름이 우리를 덮어 온다 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 온다 할지라도 정확하게 천성을 향하여 지우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천재 소년 이 창호 기사의 배후에는 조 훈현이란 대 스승이 있었기에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태양이 되시는 전능자 하나님이 계신다. 하늘엔 구름이 많은것 같을 뿐이지 구름이 낀 날보다는 햇빛 비치는 날이 더 많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름 뒷편엔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는 것이다.
3,나의 남은 해 시계의 년 수는 ' 문제는 구름이 아니다. 히스기야에게 15 년이란 년수가 주어 졌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년 수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게 15 년이면 어떻고 80년이면 어떤가 인생이 70 이요 강건하면 80 이라도 쉬 지나가기는 매 일반인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런 소리를 한다. "나도 히스기야처럼 나의 날 수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그 날을 알 수 있으면 때를 따라 더 멋지게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날 수를 몰라서 하나님께 충성을 못함이 아니다. 나의 남은 날이 얼마 못된다고 그 얼마 못되는 시기를 마추어 충성을 한다고 한다면 이는 가장 못난 불충이라 생각된다.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께 충성을 할려면 남은 날이 짧다고 느껴지면 짧은 만큼 더 충실해야 할 것이고 길다고 느껴지면 그 긴 만큼 더 길게 많게 충성을 해야 그게 옳바른 층성인 것이다. 나의 남은 해 시계의 수명을 재고 있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남은 해 시계는 멈출 수 있다는 가정 밑에서 오늘 나에게 주신 일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함이 곧 충성인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시라. 오래 오래 살았다고 더 많은 충성을 한 것이 아니다. 물론 짧게 살았다고 더 보람되었던 것도 아니다. 일직 부름을 받은 자는 일직 부름을 받은 만큼 늦게 부름을 받은 사람은 늦은만큼 그 나름대로의 분량이 있었다. 아늬 남은 때를 알 수 있는게 축복이 아니라 알지 못함이 더 축복이 된다.
왜냐하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순간을 더 힘 있게 헌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이 아니 이 순간이 나의 그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매 순간이 값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었다. 우리가 힘써 일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위한 일을 얼마나 하겟나 우리들의 해 시계가 많이 남은 것이 아니다. 주님은 전 생애를 나위하여 주셨는데 . 우리들은 우리의 남은 것을 드리지 못한데서야 말이나 되겟나 우리들의 남은 것을 다 드린다 할지라도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오를까지는 나를 위하여 살았더라도 이제는 나의 남은 해 시계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 드리자. 나의 남은 해 시계는 나를 위해 내가 쓰지 말고 해 시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하나님께 드리자. 남은 날들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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