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 갈 길 (행20,20-24)
본문
1,성령님에 매인바 된 길
2,환난이 기다리는 길
3,생명보다 귀한 사명의 길 바울은 밀레도에 잠시 머물때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다 놓고 자기의 지난 날들의 믿음의 삶을 회고하면서 마지막 유언과 같은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모든 일에 겸손으로 살아 오신 사도 바울의 길이었습니다. 그 둘째는 삼년 반을 눈물로 그것도 밤낮 눈물로 사역하셨음을 보았읍니다. 동족들로 인간 숱한 간계가 많았지만 인내로 참고 잘 견디어 왔습니다. 그리고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남김 없이 교회를 위하여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던 바울의 생애였습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사도 바울의 회고를 우리가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성령님에 매인바 된 길 " 22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여기 심령이란 말의 원 뜻은 성령님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심령에 곧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겸손으로 살았고 눈물로 살았고 인내하면서 살았던 모든 삶이 성령님의 인도였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원래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이름이 원래의 이름이 아닙니다. 바울의 원래의 이름은 바울이 아니라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의 선조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는데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같은 베내민 지파의 사람으로 사울은 왕의 이름을 따서 지는 훌륭한 이름으로 그 의미는 높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런 이름이 말하듯이 사울은 겸손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다움 그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개명 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라는 뜻은 "여호와께 구했다"라는 뜻과 낮다라는 의미가 있는 겸손의 이름인 것입니다. 또 바울은 원래부터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데반을 잡아 죽일 때의 일입니다. 한푼어치 인정사정 없이 돌로 치는데 앞장을 섯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젊은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눈하나 까닥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 만나서 눈물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되게된 것은 인간의 어떤 수양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소아시아로 전도를 갈려고 했을 때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행16;9절이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후 바울은 자기가 가고 싶었던 아시아를 포기하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이 때의 일을 행16;6절에선 "성령님이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이 밤에 본 환상이 곧 성령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성셩의 역사를 따라 죽도록 헌신을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22절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당시 바울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무리들이 바울이 오순절을 기하여 예루살렘으로 올 것을 알고 바울을 해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의 동료들이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물론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오지 말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위험한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의 일은 자기의 뜻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인도이기에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날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가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인도를 따라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여러분은 무었에 매인 사람들입니까 부모님 남편 아내 애인 직장 돈 물론 이런 것들을 떠나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세상의 줄에 매인 사람들이 되지 말고 오직 성령님에 매인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환난이 기다리는 길, 23절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의 달려갈 길은 성령님의 매인바 된 길임과 동시에 바울의 달려갈 길은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럼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환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천재지변입니까 사업의 실패입니까 바울을 괴롭히는 질병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환난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환난은 23절이 말씀과 같이 바울을 잡아 죽일려고하는 무리들이 바울을 결박하기 위하여 작당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달려갈 길은 바로 이 환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주님게서 나를 위하여 먼저 가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그냥 쉽게 가고 있지만 주님은 이 길을 우리들을 위하여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터벅 터벅 피 흘리시면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3,생명보다 귀한 사명의 길 "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었입니까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었입니까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들 일하면서 애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새명의 귀중함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었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었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리요"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입니다.
그런데 전도자인 사도 바울에겐 이 목숨 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그리고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것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이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조금도 기한 것으로 여기지 않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명감이란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무슨 사명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없잔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면서도 사명감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일을 해도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은 마지 못해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크게 부흥이되어서 큰 석조 건물을 짖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일하는 석공들을 둘러 보시면서 위로를 했습니다. "이런 뙤약 빛에 이렇게 땀을 흐흘리시면서 수고가 많습니다." 그랬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배운 재간이 이것 뿐인데 할 수 있습니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에게도 똑 같은 위로를 했더니 그 분은 "똘 다듬는 재간을 배웠더니 어렇게 성전 짖는 일을 하게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과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그럼 사명이란 " 군인의 사명 ! 경찰의 사명 ! 일군의 사명 ! 성도에겐 성도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집사 ! 권찰 ! 교사 ! 요셉 ! 모세 ! 에스더 ! 다니엘 ! 세레 요한 ! 바울의 사명은 받은 바 은혜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가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명의 길을 잘 가시기 위하여 여러분을 성령님께 의탁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바울처럼 사명위해 여러분들의 목숨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귀하여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천산 교회에 보내신 것은 큰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큰 일들을 하게하기 위하여 보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게서 여러분 모두에게 기대하시는바가 매우 큰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도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을 잘 가기 위하여 여러분을 성령님께 마끼심과 함께 목숨을 걸고 힘차게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는 사명의 길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환난이 기다리는 길
3,생명보다 귀한 사명의 길 바울은 밀레도에 잠시 머물때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다 놓고 자기의 지난 날들의 믿음의 삶을 회고하면서 마지막 유언과 같은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모든 일에 겸손으로 살아 오신 사도 바울의 길이었습니다. 그 둘째는 삼년 반을 눈물로 그것도 밤낮 눈물로 사역하셨음을 보았읍니다. 동족들로 인간 숱한 간계가 많았지만 인내로 참고 잘 견디어 왔습니다. 그리고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남김 없이 교회를 위하여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던 바울의 생애였습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사도 바울의 회고를 우리가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성령님에 매인바 된 길 " 22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여기 심령이란 말의 원 뜻은 성령님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심령에 곧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겸손으로 살았고 눈물로 살았고 인내하면서 살았던 모든 삶이 성령님의 인도였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원래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이름이 원래의 이름이 아닙니다. 바울의 원래의 이름은 바울이 아니라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의 선조 중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는데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같은 베내민 지파의 사람으로 사울은 왕의 이름을 따서 지는 훌륭한 이름으로 그 의미는 높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런 이름이 말하듯이 사울은 겸손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다움 그의 이름을 바울이라고 개명 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라는 뜻은 "여호와께 구했다"라는 뜻과 낮다라는 의미가 있는 겸손의 이름인 것입니다. 또 바울은 원래부터 눈물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스데반을 잡아 죽일 때의 일입니다. 한푼어치 인정사정 없이 돌로 치는데 앞장을 섯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젊은 사람이 사람 죽이는데 눈하나 까닥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 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 만나서 눈물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되게된 것은 인간의 어떤 수양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소아시아로 전도를 갈려고 했을 때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행16;9절이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후 바울은 자기가 가고 싶었던 아시아를 포기하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이 때의 일을 행16;6절에선 "성령님이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바울이 밤에 본 환상이 곧 성령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성셩의 역사를 따라 죽도록 헌신을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22절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당시 바울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무리들이 바울이 오순절을 기하여 예루살렘으로 올 것을 알고 바울을 해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의 동료들이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물론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오지 말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위험한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의 일은 자기의 뜻이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인도이기에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날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가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인도를 따라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여러분은 무었에 매인 사람들입니까 부모님 남편 아내 애인 직장 돈 물론 이런 것들을 떠나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세상의 줄에 매인 사람들이 되지 말고 오직 성령님에 매인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환난이 기다리는 길, 23절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바울의 달려갈 길은 성령님의 매인바 된 길임과 동시에 바울의 달려갈 길은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럼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환난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천재지변입니까 사업의 실패입니까 바울을 괴롭히는 질병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환난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환난은 23절이 말씀과 같이 바울을 잡아 죽일려고하는 무리들이 바울을 결박하기 위하여 작당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달려갈 길은 바로 이 환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주님게서 나를 위하여 먼저 가신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그냥 쉽게 가고 있지만 주님은 이 길을 우리들을 위하여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터벅 터벅 피 흘리시면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3,생명보다 귀한 사명의 길 "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었입니까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었입니까 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들 일하면서 애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새명의 귀중함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었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었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리요"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입니다.
그런데 전도자인 사도 바울에겐 이 목숨 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그리고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것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이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조금도 기한 것으로 여기지 않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명감이란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무슨 사명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없잔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면서도 사명감을 망각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일을 해도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은 마지 못해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크게 부흥이되어서 큰 석조 건물을 짖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일하는 석공들을 둘러 보시면서 위로를 했습니다. "이런 뙤약 빛에 이렇게 땀을 흐흘리시면서 수고가 많습니다." 그랬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배운 재간이 이것 뿐인데 할 수 있습니까"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에게도 똑 같은 위로를 했더니 그 분은 "똘 다듬는 재간을 배웠더니 어렇게 성전 짖는 일을 하게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과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그럼 사명이란 " 군인의 사명 ! 경찰의 사명 ! 일군의 사명 ! 성도에겐 성도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집사 ! 권찰 ! 교사 ! 요셉 ! 모세 ! 에스더 ! 다니엘 ! 세레 요한 ! 바울의 사명은 받은 바 은혜에 대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다 가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성령님에 매인바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명의 길을 잘 가시기 위하여 여러분을 성령님께 의탁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명의 길을 잘 가기 위하여 바울처럼 사명위해 여러분들의 목숨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귀하여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천산 교회에 보내신 것은 큰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큰 일들을 하게하기 위하여 보내신줄 믿습니다. 하나님게서 여러분 모두에게 기대하시는바가 매우 큰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사도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을 잘 가기 위하여 여러분을 성령님께 마끼심과 함께 목숨을 걸고 힘차게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는 사명의 길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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