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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즐기자 (눅15:1-10)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고 소망을 얻는 성경의 수많은 말씀 중에서 참 아름답고 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 이 유명한 비유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 곧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인들이라 함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힘든 사람, 문제가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항상 부모의 말을 거역하면 그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죄인들을 사랑하신다" 하는 말씀을 간절하게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이 어려운 때 위로와 치유와 소망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둘째는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나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시는냐 그 죄인이 사랑받을 만큼 변화된다든지 의인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서 사랑하는게 아니고 죄인으로 있을 그때에,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도 하나님이 그런 죄인을 사랑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리고 성경 신.구약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것이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 1절 2절을 읽어보십시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 사람들과 음식을 같이 잡수셨는데 그 같은 일은 당시나 지금이나 용납이 안되는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파격적인 태도입니다. 그런 일은 없지만은 제가 만일에 무서운 깡패하고 어울려 다니면 소문이 어떻게 나겠습니까 제가 가끔 제 막내딸을 승용차 옆에 태우고 어디를 갈 때가 있어요. 가끔 그럽니다. 무슨 생각이 드냐면 "야! 벧엘교회 손목사님이 어떤 젊은 이쁜 여자 태우고 어디 가더라" 그렇게 소문 날 것 같아서 조금 주저 될 때가 있어요. 누가 제 딸인지 아닌지 알겠습니까 우리 벧엘교회 분들은 알겠지만, 또 벧엘교회 교인 중에서도 다 압니까 제 막내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데 예쁘게 생겼거든요. 그런 딸을 옆에 태우고 가면 틀림없이 그럴것 아닙니까 "벧엘교회 손목사님이 젊은 예쁜 여자 태우고 어디 온천에 가더라고" 예수님께서 그런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같이 식사를 하시는 모습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받아 드리기 어려운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원망을 했다는 말은 원어로 "막 수군거리고 이상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찢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애통(통곡)하시는 마음으로 오늘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백마리 양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의 양이 어디로 가 버렸습니다. 그럴 때에 잃어버린 그 한 마리 양을 기어코 찾아 가지고 그 찾은 한 마리 양을 어깨에 매고 와서 즐거워하는 목자에 마음!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열 드라크마 중에 한 드라크마를 잃어 버렸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열 드라크마는 결혼 지참금으로 받은 선물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온 집을 뒤져서 찾아 가지고 기뻐하는 그 여인의 모습! 바로 이것이 죄인 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애타시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또 10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어떤 문제인가 하면 곧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분명히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에 사람들의 마음, 심리, 영혼의 밑바닥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하면 하나님과 나와 단절된 상태. 곧 하나님은 나같은 것을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것을 관심을 갖고 사랑하시겠느냐 그게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그런 불안을 실존적인 불안이라고 그럽니다. 사람마다 다 근본적으로는 영혼, 심리, 마음 밑바닥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비록 그런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이런 나를 사랑하신다." 하는 것을 예수님이 간절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많은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들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챨스빈'이란 분이 계신데 변호사 하다가 부름받고 목사가 되신 유명한 분입니다. 이분이 영국 런던에 가서 집회를 하게 됐는데 집회를 마치고 수많은 사람이 다 흩어지는데 그 중에 어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데 아주 인상이 허막하게 생긴 남자 한사람이 화가 잔뜩 나서 챨스 빈 목사님에게 와서는 " 목사님! 저와 상담 좀 하십시다. "그러니까 " 여기서 말씀하십시오."
그런데 자기 집에 가서 상담하자는 거에요. 그래 옆에 따라오는 여러 사람들이 "목사님! 가지 마십시오. 저 사람은 런던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 집에 가서 또 뭔 일을 당할지 압니까 보니까 화가 잔뜩 나 있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그런데 빈 목사님은 뭔가 느낀 게 있어서 "아닙니다. 그 사람이 뭔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가서 들어 봐야 되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 거실에서 둘이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화가 잔뜩난 표정으로 하는 말이 " 목사님! 오늘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었는데 저를 굉장히 화 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가 났습니다. " 분명히 단 둘 이니까 정직하게 말해 달라고 하면서 " 목사님 정말로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 하십니까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사랑하십니다.목사님! 쉽게 말하지 마세요 제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벽 좀 둘러보세요." 벽을 둘러보니까 그릇 들어 있는 찬장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 술병이 꽉 차 있었어요. " 목사님! 나 술주정뱅이요. 나 술 중독자입니다. 나 인생이 무너진 사람이요. 이런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까예.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나를 모르고 그럽니다.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더니다시 자기 앞에 책상 서랍을 탁 끄집어당기더니 서랍 속에 있는 트럼프(카드)를 끄집어 앞에다 내더니 "보십시오. 저는 노름꾼입니다. 이 트럼프로 사기 처서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뺏은 사람입니다. 이런 못된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저를 사랑하십니까예. 사랑하십니다.진짜로 목사님 저 화나게 만듭니다. 목사님! 보십시오" 또 오른쪽 서랍을 끄집어내더니 그 속에서 권총이 나와요. 권총을 들이 대면서 " 목사님! 전 이 권총으로 수많은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인간인데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까예. 하나님은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화가 났던 이 사람이 어린아이가 엎드러지듯이 거꾸러지면서 대성 통곡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째서 저같은 인간을 사랑하십니까 " 그리고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정말로 사랑하시겠느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 의문입니다. 저 자신도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럴 때 전 불행했습니다. 꼭 나 혼자만 잃어버린 양 같아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끈이 떨어진 무엇처럼 그런 고독, 외톨이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건 정말로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렸고 그 사랑 안에 들어갔습니다. 오늘까지 그 사랑 안에 살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겁니다. 내가 의인이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부끄러운 사람인데 못난사람인데
그런데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는 거지요 마태복음 9장 13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은 도저히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제 가슴에 느끼기에는 하나님이 꼭 이러시는 것 같아요. "내 앞에 하나님이 무릎을 딱 끓으시고 손을 비비시면서 애야! 내 사랑을 좀 받아라 받아라" 그러시는 것 같에요. 나는 그냥 심술궂은 애기처럼 그 사랑을 안 받아 드리려고 토라지는데 하나님은 쫓아오시면서 무릎을 꿇으시면서 " 아들아! 사랑한다 내 사랑을 받아라 " 꼭 그러시는 것 같에요 하나님은 참 다르시구나! 무엇이 아쉬워서 나 같은 것을 놓고 그렇게 사랑을 받으라고 또 나를 사랑해 주시고 싶으신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 같은 것이 도대체 이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 하늘에서 큰 기쁨이 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10절에는 "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큰 기쁨이 있다." 나 같은 죄인 하나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니까 하늘에서 기뻐하느니. 하늘에서 기뻐하니 내 영혼도 이제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이고, 내 삶속에 기쁨이 시내물이 흐르듯이 흐르는 겁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았다. 여인이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다. 이것을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7절과 10절에 "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즐거워 하는 건 그게 뭐냐면 "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이 뭐냐 하면 이 죄인 된 내가 할 일은 "회개하는 것" 그런 회개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회개입니까 세 가지를 해야 회개입니다.
(1). 내가 잃어버린 양이다. 죄인이다. 이것은 다 시인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나는 잃어버린 양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는, 아주 잊어버린 ,망각되어 버린 아무도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잃어버린 양으로 자신을 생각하는데 예수님께서는 " 너는 비록 잃어버린 양이고 죄인이지만 사람들은 너를 잊어버리고 너를 망각해 버리지만 하나님만은 너를 잊지 않고 찾고 계시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일본 교도소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분의 간증을 제가 읽었는데 일본 교도소에는 쪽복음서가 있어요. 누가복음 이런 것 하나만 인쇄해서 보는 책인데 유명한 강도가 있는데 이 강도가 하루는 쪽 복음 누가복음 15장 오늘 본문을 우연히 읽게 되고는 거기서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이 흉악한 죄수가 " 내가 잃어버린 양이구나!" 그렇게 깨달아 지면서 동시에 무엇이 열려졌느냐면 "나는 잃어버린 사람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나를 누가 진정 나를 사랑하겠느냐 나는 잃어버린 양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도 안 갖고 나를 찾지도 않는 그런 외톨이 세상이니까 이세상이 미운거에요.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웃고, 떠들고 사는 것이 미워. 나만 잃어버린 상실된 망각되어 버린 인간이고 그러니까 막 세상을 때려부수려고 하는 것이에요. 증오심이 나서 파괴를 하고 피를 흘리고 그래서 속에서 불이 나서 세상을 때려고 부수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잃어버린 자기에 대한 분노가 있었는데 이 말씀을 보니까 "세상은 나를 잊어버릴지라도 이 세상 그 누구도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고 계시다." 이 사실앞에 이 죄수가 그냥 가슴이 녹아내린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를 잊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기막힌 사실인지. 이제자기를 찾게 된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나를 찾으셨구나! 그래서 변화가 되는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곧 회개라는 것은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찾고계시구나! "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2). 회개란 은혜의 자리를 말하는데 의인 아흔 아홉이 있고, 죄인 하나, 그룹 둘이 있는데 두 그룹중에 나는 어느 쪽에 들어가야 되는가 어느 쪽에 들어가야 하나님이 사랑하시겠는가 당연히 의인 아흔 아홉 측에 들어가야 되지요. 죄인 하나 쪽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의인 아흔 아홉쪽에 나는 아무래도 낄 수가 없어요. 끼어 들어갈 수도 없어요. 남는 건 무엇입니까 죄인의 자리인데 여기밖에 남은 자리가 없어요. 성도 여러분 중에 나도 의인 아흔 아홉 그 속에 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만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까 없어요. 그럼 남는 자리는 죄인 하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저는 의인이 못되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나님을 만난다 하는 것입니다. 의인 노릇하지 마세요. 항상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그래야 되요. 바울 사도가 왜 항상 은혜 안에 살았는가 하면 디모데전서 1장15절에 보면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그리고 말하길 내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저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제가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아! 내가 의인 아흔 아홉이 아니고 그 축에 끼여 들지 못하고 죄인주의 하나인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신다는 것 참 이상한 복음이구나! 할렐루야. 그래요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요. 곧 교만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3). 회개는 여기까지 가야 온전한 회개입니다.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불 속에 들어가면 뜨겁습니다. 타집니다.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사랑이라는 것은 불보다 더 뜨겁고 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사랑을 재대로 받아 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반드시 새것이 된다는 거에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그런데 나는 왜 변화가 없나! 여러분! 내가 잃어버린 양입니다. 나 죄인입니다. 인정하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다. 거기까지는 인정하고,
그런데도 왜 변화가 없습니까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다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하냐면 내가 변화되는 것 내가 뒤집어지는 것을 감히 받아 드릴 용기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면서도 문을 반틈만 열어 놓는 겁니다. 발 한쪽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여놓고 발 한쪽은 아직도 세상쪽에다가 들여놓고 있는 거예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활짝 100% 문을 열고 받아드리지 못하는 그런 주저함, 엉거주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그런 변화를, 그 새로워 진다는 것을, 내가 뒤집어져 버린다는 것을 받아드릴 용기가 아직 안 납니다. 머뭇거립니다. 그속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뒤집으실 때에 그것이 나쁜 것이겠습니까 얼마나 좋은 것인데,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데, 얼마나 행복한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것이라. 따라 하세요. "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이 없나니" 받아 드리세요 "여보! 이거 먹어요. 먹으면 되요먹다가 큰일나면 어떻해  괜찮아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것은 모험입니다. 내 문제가 뭡니까 "나 믿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런데도 왜 어정쩡한가! 답답하기 그지없지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50%만 마음을 여는 그 상태에 머물지 마시고 나머지 50%까지 활짝 열어서 "하나님! 받아드립니다 오시옵소서. 저도 하나님 사랑 안에 쑥 들어갑니다. 하나님! 내 온몸, 마음, 내 삶 전체를 받으셔서 하나님 원하신대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럴 때 하늘에서 즐거움이 넘치고 큰 잔치가 벌어지고 내 아들이 돌아왔다. 나도 내 영혼속에 하나님 사랑의 기쁨이 강물같이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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