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창31:17-55)
본문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야곱의 졸업식장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야곱은 20여년 전 삼촌 라반이 운영하는 인생학교에 입학을 하였었습니다. 그는 이 학교에 입학을 한 후 많은 연단과 훈련을 받 았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한 야곱이 호된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천하의 사기꾼 라반을 만난 것이죠. 그는 라반을 만나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다.
38-41절에 어떤 세월이었습니까 즐겁고 유쾌한 세월처럼 보여집니까 아닙니다. 정말 그의 말 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40절을 읽다보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살아 왔던 야곱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혹독 한 학교에서 이제는 졸업을 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 졸업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야곱이 뭔가 졸업할 만큼 성장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이제 이 시간은 이런 것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이 지난 20년 동안 인생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것이 변했는가를 살피면서 함께 은혜 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삶을 살면서 세월의 변화를 경험하신 분이라면 이 세월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알고 계실 것 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장년이 노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여쁘고 아름답던 여인 도 이 세월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늙어갑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장사도 이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세월은 때로 가난한자를 부자로 만들기도 하며 부자를 가난한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무명하던 자를 유명 한 자로 만들기도 하고 유명한 자를 무명한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권세 없는 자를 권세 있는 자로 만들기도 하 며, 권세 있는 자를 권세 없는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월의 힘입니다. 이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 느 누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세월의 무서운 힘을 대항해서 야곱은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살아온 것입니다. 홀홀 단신으로 이 인생학교에 입학을 해서 바람막이 하나 없이 거친 세월을 살아온 것이죠.
그런데 이 제 야곱이 이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렇다면 뭔가 틀림없이 변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서 면밀히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주로 시작하고 도주로 끝을 맺음 이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야곱은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입학식과 졸업식입니다. 이 두 장면은 너무나 흡사해서 어떻 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야곱이 어떻게 이 라반이 경영하는 학 교에 입학을 했었던 가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떻게 입학을 했죠 그렇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몰래 도망을 쳐 이곳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야곱은 또 어떻게 졸업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그 렇습니다. 다시금 도망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졸업식을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입학 식이 제대롭지 못했으면 졸업식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년만에 하는 졸업인데 좀 그럴 듯 하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할만한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도망으로 입학을 하고 도망으로 졸 업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 그것이 바로 이 야곱의 운명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양털 깎는 때 자 그러면 이 도주 장면을 좀더 자세히 관찰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절을 한 번 읽겠습니다. 자 여기서 말하는 때 란 어떤 때입니까 그렇습니다. 야 곱이 도망치려는 바로 그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때가 언제와 맞아 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의 집이 양털을 깎는 것과 맞아떨어집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양털을 깎는 것은 그저 심심하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양털을 깎는 것은 그 집안의 축제였다고 합니다. 즉,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며칠 씩 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무때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날짜를 정해서 하는 일입니다.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며칠 동안 이 일을 할 것인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 역시 20년 동안 그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 때를 자신이 도망을 칠 찬스로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누구입니까 천하의 사기꾼, 모사꾼이 아닙니까 이런 야곱이 그냥 되는대로 도망 계획을 새웠겠 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도망을 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가 이런 것을 세밀하게 살핀 연후에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일 때 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그냥 떠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야곱은 나름대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연후에 떠나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라반의 추격
그런데 바로 이 소식이 라반에게 들립니다. 21,22절을 읽습니다. 며칠만에 들리죠 그렇습니다. 3일 만에 들 렸습니다. 라반이 어떻게 합니까 추격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마치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쫓고 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도망을 쳤겠습니까 그렇죠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서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얼마간의 가축 희생을 각오한다고 하더라도 붙잡히지 않는다면 그 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야곱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라반의 입장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붙잡아야만 합니다. 적어도 자신 과 야곱이 삼일 길 간격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라반 역시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쫓았 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력을 다하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결국 이 추격전이 어떻게 됩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드디어 칠일을 뒤 쫓아 길르앗 산에서 만나게됩니다. 이 길르앗 산은 야곱이 살던 곳에서부터 약 445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서울서 부산 정도의 거리이죠.
그런데 이 거리를 10일 만에 도 달한 것입니다. 야곱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고 이렇게 빨리 달린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당시 형편을 고려 할 때 그렇게 신속하게 여행을 했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빨리 도망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급했던 것이죠, 붙잡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라반은 야곱보다 더 빨리 달려 왔습니다. 이들은 얼마만에 이곳에 도착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7일 만에 이곳에 도착을 합니다. 물론 가축이 없었을 터이니까 빨리 달릴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들 역시 무척 빨리 달린 것입니다. 따라서 라반 역시 사력을 다해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린 것은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면서 라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놈 붙잡히기만 해 봐라, 죽여 버리겠어. 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이놈을 혼내지 세상에 이 럴 수 있담 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게 달려온 라반이 야곱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 어날 까요 글쎄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야곱이 도망친 것을 빌 미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처지로 만들든지, 재산을 다 압수하고 보내든지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그런데 보십시오. 이 때 누가 나타나십니까 예,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함께 2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야 곱을 돌려보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십니다. 만약 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 지 않았다면 야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을 갔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밤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지키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을 구해 주시는 이 유는 어디 있을까요 야곱이 무엇인가 사랑을 받을 만 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저에게는 사랑을 받을만한 조 건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0년 전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을 치다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저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 라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이 언제 약속입니까 그렇습니다. 20년 전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실행에 옮기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기 어이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민수기 기자는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 말하 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어이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어쩌면 야곱이 20년의 세월을 보내면 서 하나님의 이 약속을 의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날 지키신다고 하더니만 겨우 이런 삶을 살게 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야곱은 20년 동안 아무 변화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약속 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바로 이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하신 약속도 틀림없이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좀 더딘 것처럼 보여도 기다리 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의 세월이 길게 느껴져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 적절하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야곱을 위한 추적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그렇게 능력이 있으시다면 라반이 뒤쫓지도 못하게 하시지 왜 라반이 뒤쫓게 하셨습니까 참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천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못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왼 줄 아십니까 다 야곱 을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야곱을 위하는 일인지 궁금하시죠. 자 본문의 상황을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다. 야곱이 라반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력을 다해서 도망을 했었기 때문에 잡혔을 때 그 실망감 또한 클 것입니다. 다시 이 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가 다시 그런 세월을 보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낙망스러운 마음으로 라반 앞에 섰을 것입니다. 자 이런 야곱에게 라반이 드디어 말을 꺼내기 시작을 합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26-28절을 읽죠
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슴 조이며 들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라 변명을 해야 하나. 어떻게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순간을 지냈을 것입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라반 앞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29절에서 무엇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떻습 니까 야곱이 기대했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라반이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야곱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 겠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야곱의 마음을 생각 해 보십시오. 살기 등등하게 자신을 쫓아 왔던 라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 말하기를 라 말했을 때 그는 누구를 생각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여년 전에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그 약속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렇게 자신을 지키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감격했을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부흥회를 해서 은혜를 입은 것 보다 더 큰 은혜가 야곱에게 넘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라반을 쫓아오지 못하도록 아예 멀찌감치 막아섰다면 야곱은 어떻게 했 을까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자신의 계획이 멋지게 맞아 떨어졌음에 대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 지 역시 내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사하고 또 다른 자긍심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훈련을 하기 위해서 저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어떻게 됩니까 라반을 멀찌감치서 내 쫓았던 하나님은 어떻게 되죠.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이렇게 라반에게 나타나셨기에 야곱은 이 순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시기 적절하게 라반에게 나타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보십시오. 라반은 무엇을 위해 여기 등장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신앙고취를 위해 여기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라반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았다면 야곱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라반이 하나님 운운하면서 자신을 해치지 않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라반의 추적은 야곱 의 신앙을 고취시키는데 무엇보다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간담이 서늘 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멋진 기 회였으며,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찬스 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잘 살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들도 이렇게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냥 라반이 쫓아오게 둡니다. 야곱이야 처음에는 초조하고 두렵죠. 그러나라반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자기를 죽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합니다. 그러면 이 때의 기분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때때로 이런 라반의 추적을 당합니다. 이렇게 추격을 당할 때는 죽을 맛입니다. 입이 바싹바싹 탑니다. 숨도 가쁩니다. 등에 서 식은땀이 주르르 흐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나 를 사랑하신다 던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 갈 것입니다. 드디어 이 라반과 정면으로 대면을 합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입니다. 하늘이 노 래지는 그런 순간이죠.
그런데 이 때 나를 쫓던 라반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치게 되 고 기뻐하게 됩니다. 어깨를 누르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한꺼번에 다 사라진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해 최고의 속도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라반을 그냥 내버려두실 수 있습니다. 내를 바짝 추격 해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순간까지 가까이 오도록 내어버려 두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라반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면 힘을 잃지 마십시오. 그래도 그 중에 여러분들 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이렇게 추격을 당하도록 내버려 주시는 이유가 내게 더 큰 유익이 있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삼촌의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고무됩니다. 물론 야곱이 드라빔을 훔쳐 갔다는 말을 듣고 잠시 기가 죽지만 자신이 훔쳐가지 않음이 증명되자 드디어 삼촌 앞에 당당하게 섭니다. 당당하게 섬
36절 말씀을 읽죠. 오히려 야곱이 라반을 책망하는 입장에 섭니다. 삼촌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야곱 그가 붙들려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함께 42절 말씀을 읽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 이 경외하는 하나님, 이라 말합니다. 사실 야곱은 이 말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개를 배고 자고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이 말은 네가 아는 것처럼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선대하셨던 그 하나님이며, 너 의 아버지 이삭을 선대 하셨던 그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이렇게 대우했던 것처럼 너도 그렇게 대우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야곱은 하나님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간의 세월이 필요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벧엘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 고백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떤 신앙고 백을 했죠 그렇습니다. 흥정을 하는 고백을 했었습니다. 어떻게요 예, 이러저러하게 하시면 제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했던 것이 야곱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야곱은 하나님에 대 해서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 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이삭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느끼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멋지고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외삼촌께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젯밤에 외 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20년의 세월들이 야곱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야곱에게 있었던 지난 20년 의 세월들이 쓸데없는 세월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월들이 험악 하기 그지없는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의 성숙에 있어서 이 20년의 세월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값 진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야곱과 같은 세월을 보내시고 계십니 까 낙망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것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우나 그것이 결코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 제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고난의 세월이 나를 더 든든히 세우고 나의 신앙을 더 자라게 하는 그런 날 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42절의 야곱의 고백처럼 우리들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 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 석용이와 함께 하셔서 나를 공수로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나를 선대해 주셨나이다 고요. 라반의 기죽음 이렇게 야곱이 당당하자 이번에는 라반이 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자고 제안을 합니다. 여러분 왜 라반이 야곱을 향해 언약을 맺자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51-53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고는 이제자 신이 복수를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난 20년 동안 야곱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야곱이 이 일에 대해서 저토록 가슴에 묻어 두고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맺자는 것이죠. 어떤 약속이요 예, 사실을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당하면 세상이 우리들을 어쩌 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기죽어 있으면 오히려 세상이 당당하게 우리들에게 다 가온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당하십시오. 사탄이 물러갈 것입니다. 세상이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라반처럼 그렇게 기죽어 물러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힘으로는 이 거센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깁니다. 야곱이 어떻게 라반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제사하는 야 곱 야곱은 이렇게 라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53절 하반절 말씀서부터 보시겠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생애를 지금까지 살피면서 야곱이 이렇게 제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물론 지난 20년 전 벧엘에서 돌 단을 쌓은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곳에서도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야곱의 생애는 아브라함의 생애와 비교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죠
그런데 야곱은 달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이 일을 행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 디어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바라보며 제사합니다. 나와 함께 하 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20년 동안 인생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어떻습니까 많이 변했죠 인생학 교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지금 인생학교에 입학을 해서 다니고있는 중이라 면 너무 힘들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너무 어렵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들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손 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라는 고백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참고 견디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8-41절에 어떤 세월이었습니까 즐겁고 유쾌한 세월처럼 보여집니까 아닙니다. 정말 그의 말 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40절을 읽다보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살아 왔던 야곱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혹독 한 학교에서 이제는 졸업을 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 졸업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야곱이 뭔가 졸업할 만큼 성장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이제 이 시간은 이런 것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이 지난 20년 동안 인생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것이 변했는가를 살피면서 함께 은혜 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삶을 살면서 세월의 변화를 경험하신 분이라면 이 세월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알고 계실 것 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장년이 노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여쁘고 아름답던 여인 도 이 세월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늙어갑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장사도 이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세월은 때로 가난한자를 부자로 만들기도 하며 부자를 가난한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무명하던 자를 유명 한 자로 만들기도 하고 유명한 자를 무명한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권세 없는 자를 권세 있는 자로 만들기도 하 며, 권세 있는 자를 권세 없는 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월의 힘입니다. 이 세월의 힘 앞에서는 어 느 누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세월의 무서운 힘을 대항해서 야곱은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살아온 것입니다. 홀홀 단신으로 이 인생학교에 입학을 해서 바람막이 하나 없이 거친 세월을 살아온 것이죠.
그런데 이 제 야곱이 이 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렇다면 뭔가 틀림없이 변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서 면밀히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주로 시작하고 도주로 끝을 맺음 이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야곱은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입학식과 졸업식입니다. 이 두 장면은 너무나 흡사해서 어떻 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야곱이 어떻게 이 라반이 경영하는 학 교에 입학을 했었던 가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떻게 입학을 했죠 그렇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몰래 도망을 쳐 이곳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오늘 야곱은 또 어떻게 졸업을 하려 하고 있습니까 그 렇습니다. 다시금 도망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졸업식을 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입니다. 입학 식이 제대롭지 못했으면 졸업식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년만에 하는 졸업인데 좀 그럴 듯 하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할만한 처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도망으로 입학을 하고 도망으로 졸 업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 그것이 바로 이 야곱의 운명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양털 깎는 때 자 그러면 이 도주 장면을 좀더 자세히 관찰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절을 한 번 읽겠습니다. 자 여기서 말하는 때 란 어떤 때입니까 그렇습니다. 야 곱이 도망치려는 바로 그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때가 언제와 맞아 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의 집이 양털을 깎는 것과 맞아떨어집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양털을 깎는 것은 그저 심심하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양털을 깎는 것은 그 집안의 축제였다고 합니다. 즉,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며칠 씩 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아무때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날짜를 정해서 하는 일입니다. 야곱은 이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며칠 동안 이 일을 할 것인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 역시 20년 동안 그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 때를 자신이 도망을 칠 찬스로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누구입니까 천하의 사기꾼, 모사꾼이 아닙니까 이런 야곱이 그냥 되는대로 도망 계획을 새웠겠 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도망을 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가 이런 것을 세밀하게 살핀 연후에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 보일 때 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그냥 떠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야곱은 나름대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연후에 떠나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라반의 추격
그런데 바로 이 소식이 라반에게 들립니다. 21,22절을 읽습니다. 며칠만에 들리죠 그렇습니다. 3일 만에 들 렸습니다. 라반이 어떻게 합니까 추격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마치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쫓고 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도망을 쳤겠습니까 그렇죠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서 도망을 쳤을 것입니다. 얼마간의 가축 희생을 각오한다고 하더라도 붙잡히지 않는다면 그 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야곱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라반의 입장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붙잡아야만 합니다. 적어도 자신 과 야곱이 삼일 길 간격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라반 역시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쫓았 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력을 다하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결국 이 추격전이 어떻게 됩니까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드디어 칠일을 뒤 쫓아 길르앗 산에서 만나게됩니다. 이 길르앗 산은 야곱이 살던 곳에서부터 약 445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서울서 부산 정도의 거리이죠.
그런데 이 거리를 10일 만에 도 달한 것입니다. 야곱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고 이렇게 빨리 달린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당시 형편을 고려 할 때 그렇게 신속하게 여행을 했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야곱은 빨리 도망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급했던 것이죠, 붙잡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라반은 야곱보다 더 빨리 달려 왔습니다. 이들은 얼마만에 이곳에 도착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7일 만에 이곳에 도착을 합니다. 물론 가축이 없었을 터이니까 빨리 달릴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들 역시 무척 빨리 달린 것입니다. 따라서 라반 역시 사력을 다해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린 것은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면서 라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놈 붙잡히기만 해 봐라, 죽여 버리겠어. 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이놈을 혼내지 세상에 이 럴 수 있담 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게 달려온 라반이 야곱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 어날 까요 글쎄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야곱이 도망친 것을 빌 미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처지로 만들든지, 재산을 다 압수하고 보내든지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그런데 보십시오. 이 때 누가 나타나십니까 예,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죠
함께 2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야 곱을 돌려보내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십니다. 만약 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 지 않았다면 야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을 갔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밤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지키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을 구해 주시는 이 유는 어디 있을까요 야곱이 무엇인가 사랑을 받을 만 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저에게는 사랑을 받을만한 조 건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20년 전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을 치다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저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지 라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약속이 언제 약속입니까 그렇습니다. 20년 전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실행에 옮기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기지 않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기 어이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민수기 기자는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 말하 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자신이 한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어이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어쩌면 야곱이 20년의 세월을 보내면 서 하나님의 이 약속을 의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날 지키신다고 하더니만 겨우 이런 삶을 살게 하시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야곱은 20년 동안 아무 변화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약속 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바로 이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하신 약속도 틀림없이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좀 더딘 것처럼 보여도 기다리 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의 세월이 길게 느껴져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 적절하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야곱을 위한 추적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그렇게 능력이 있으시다면 라반이 뒤쫓지도 못하게 하시지 왜 라반이 뒤쫓게 하셨습니까 참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천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못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왼 줄 아십니까 다 야곱 을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야곱을 위하는 일인지 궁금하시죠. 자 본문의 상황을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다. 야곱이 라반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력을 다해서 도망을 했었기 때문에 잡혔을 때 그 실망감 또한 클 것입니다. 다시 이 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가 다시 그런 세월을 보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낙망스러운 마음으로 라반 앞에 섰을 것입니다. 자 이런 야곱에게 라반이 드디어 말을 꺼내기 시작을 합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26-28절을 읽죠
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슴 조이며 들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라 변명을 해야 하나. 어떻게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순간을 지냈을 것입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라반 앞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29절에서 무엇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떻습 니까 야곱이 기대했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라반이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야곱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 겠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야곱의 마음을 생각 해 보십시오. 살기 등등하게 자신을 쫓아 왔던 라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서 말하기를 라 말했을 때 그는 누구를 생각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여년 전에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그 약속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렇게 자신을 지키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감격했을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부흥회를 해서 은혜를 입은 것 보다 더 큰 은혜가 야곱에게 넘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라반을 쫓아오지 못하도록 아예 멀찌감치 막아섰다면 야곱은 어떻게 했 을까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자신의 계획이 멋지게 맞아 떨어졌음에 대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 지 역시 내 머리는 아직 녹슬지 않았어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사하고 또 다른 자긍심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훈련을 하기 위해서 저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어떻게 됩니까 라반을 멀찌감치서 내 쫓았던 하나님은 어떻게 되죠.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이렇게 라반에게 나타나셨기에 야곱은 이 순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시기 적절하게 라반에게 나타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보십시오. 라반은 무엇을 위해 여기 등장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의 신앙고취를 위해 여기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라반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았다면 야곱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라반이 하나님 운운하면서 자신을 해치지 않자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라반의 추적은 야곱 의 신앙을 고취시키는데 무엇보다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간담이 서늘 한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멋진 기 회였으며,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찬스 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잘 살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들도 이렇게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냥 라반이 쫓아오게 둡니다. 야곱이야 처음에는 초조하고 두렵죠. 그러나라반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자기를 죽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합니다. 그러면 이 때의 기분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때때로 이런 라반의 추적을 당합니다. 이렇게 추격을 당할 때는 죽을 맛입니다. 입이 바싹바싹 탑니다. 숨도 가쁩니다. 등에 서 식은땀이 주르르 흐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나 를 사랑하신다 던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 갈 것입니다. 드디어 이 라반과 정면으로 대면을 합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입니다. 하늘이 노 래지는 그런 순간이죠.
그런데 이 때 나를 쫓던 라반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 하나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이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치게 되 고 기뻐하게 됩니다. 어깨를 누르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한꺼번에 다 사라진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해 최고의 속도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라반을 그냥 내버려두실 수 있습니다. 내를 바짝 추격 해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순간까지 가까이 오도록 내어버려 두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라반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면 힘을 잃지 마십시오. 그래도 그 중에 여러분들 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이렇게 추격을 당하도록 내버려 주시는 이유가 내게 더 큰 유익이 있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삼촌의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고무됩니다. 물론 야곱이 드라빔을 훔쳐 갔다는 말을 듣고 잠시 기가 죽지만 자신이 훔쳐가지 않음이 증명되자 드디어 삼촌 앞에 당당하게 섭니다. 당당하게 섬
36절 말씀을 읽죠. 오히려 야곱이 라반을 책망하는 입장에 섭니다. 삼촌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야곱 그가 붙들려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함께 42절 말씀을 읽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 이 경외하는 하나님, 이라 말합니다. 사실 야곱은 이 말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돌 베개를 배고 자고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이 말은 네가 아는 것처럼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선대하셨던 그 하나님이며, 너 의 아버지 이삭을 선대 하셨던 그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이렇게 대우했던 것처럼 너도 그렇게 대우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야곱은 하나님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간의 세월이 필요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벧엘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 고백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떤 신앙고 백을 했죠 그렇습니다. 흥정을 하는 고백을 했었습니다. 어떻게요 예, 이러저러하게 하시면 제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했던 것이 야곱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야곱은 하나님에 대 해서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 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이삭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느끼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멋지고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외삼촌께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젯밤에 외 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20년의 세월들이 야곱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야곱에게 있었던 지난 20년 의 세월들이 쓸데없는 세월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월들이 험악 하기 그지없는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의 성숙에 있어서 이 20년의 세월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값 진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야곱과 같은 세월을 보내시고 계십니 까 낙망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것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우나 그것이 결코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 제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고난의 세월이 나를 더 든든히 세우고 나의 신앙을 더 자라게 하는 그런 날 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42절의 야곱의 고백처럼 우리들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 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 석용이와 함께 하셔서 나를 공수로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나를 선대해 주셨나이다 고요. 라반의 기죽음 이렇게 야곱이 당당하자 이번에는 라반이 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자고 제안을 합니다. 여러분 왜 라반이 야곱을 향해 언약을 맺자고 말하는 줄 아십니까
51-53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이렇게 당당한 모습을 보고는 이제자 신이 복수를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자신이 지난 20년 동안 야곱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야곱이 이 일에 대해서 저토록 가슴에 묻어 두고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겁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맺자는 것이죠. 어떤 약속이요 예, 사실을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당하면 세상이 우리들을 어쩌 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기죽어 있으면 오히려 세상이 당당하게 우리들에게 다 가온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당하십시오. 사탄이 물러갈 것입니다. 세상이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라반처럼 그렇게 기죽어 물러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힘으로는 이 거센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깁니다. 야곱이 어떻게 라반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것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제사하는 야 곱 야곱은 이렇게 라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53절 하반절 말씀서부터 보시겠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생애를 지금까지 살피면서 야곱이 이렇게 제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물론 지난 20년 전 벧엘에서 돌 단을 쌓은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곳에서도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야곱의 생애는 아브라함의 생애와 비교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죠
그런데 야곱은 달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이 일을 행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 디어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바라보며 제사합니다. 나와 함께 하 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20년 동안 인생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어떻습니까 많이 변했죠 인생학 교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지금 인생학교에 입학을 해서 다니고있는 중이라 면 너무 힘들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너무 어렵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들을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손 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라는 고백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참고 견디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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