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갈길 다가도록 (삼상6:10-16)
본문
할렐루야!! 오늘은 참으로 의미 깊은 날입니다. 1996년의 마지막 주일밤입니다 금년이 앞으 로 꼭 이틀이 남았습니다. 이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그의 이름 을 부르는 성도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금년 한 해를 다 보내고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이시간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과연 한 해를 얼마나 후회없이 살아왔는지 한 번 돌이켜 보 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금년 한해를 보내면서 이순간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권투선수가 12라운드의 경기를 다 끝내고 자기 코너에서 기진 맥진한 중에 심판의 판결을 기 다리는 그 순간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권투 경기중 세계타이틀 매치를 보면 3분 씩 12회전을 싸웁니다. 우리는 금년 1년중 1달을 1라운드로 보며 30일을 3분으로 비유해 볼 때 우리들 의 지나온 삶이 꼭 권투경기와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권투 경기에는 어느 한 선 수가 일방적으로 잘 할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이 얻어 맞아 따운이 되기도 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1년간 우리들은 쓰러져 다운이 되었을 때도 있었으며 완전히 패색이 짙어지 다가 기사회생한 적도 있습니다. 금년 1년의 경기를 다 끝내고 이제 주님앞에 심 판을 기다리는 심정은 어떻하신지요 주님께서 과연 여러분의 손을 들어주면서 여러분의 승리를 인정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운동 선수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 며…"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 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 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은 금년 1년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워왔으며, 그 싸움 에서 승리를 하였는지, 1년간을 잘 달리면서 믿음을 지켰는지, 과연 의의 면류관 을 얻을 수 있을런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삼상6:10-16절의 말씀은 4장에서부터 읽어야 연결이 되는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함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무력과,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패역한 악행은 급기야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불레셋나라의 침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는 참패를 당하고 나라는 온통 수 라장이 되었습니다. 엘리 일족이 멸문지 화를 당하고 하나님의 선민의 상징인 법 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법궤를 빼앗아간 불레셋나라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벱궤를 두는 성읍마다 독종이 퍼져서 수백명씩 죽는 재앙이 일어서 불레셋나라의 방백들 이 의논 끝에 이 나라의 재앙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빼앗아온 법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 법궤를 이스라엘 나라로 돌려 보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 리고 새 수레를 만들고 수레를 메어보지 않은 소중에 새끼갖인 소를 택하여 송아 지는 떼어놓고 수레에 메워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나라 벧세메스를 향하여 내몰 았습니다. 이 소들은 젖먹는 새끼들을 떼어 놓았지만 수레를 끌고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다가 수레에 법궤가 실려 오는 것을 보고 맞이하여 그 소를 잡아 제 물로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1996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불레 셋에서 이스라엘 벧세메스까지 달려온 이 소들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이 지나온 1년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나는 지난 1년을 어떻게 달려왔는가를 생각하면서 신 년을 맞기전에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1. 그 소들은 수많은 소들중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불레셋 나라의 소가 어찌 이 두 마리 뿐이겠습니까 수를 셀수 없는 많은 무리 중에서 특별히 사명을 띄고 선택받은 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소들과 같이 사명받은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 아니 이 동리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여러분들 뿐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 소들과 같이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계셔서 큰 사명을 띄고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군인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나라의 명령에 따라 살고 죽는 것이 군인이듯이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소들은 젖먹는 송아지를 집에다 떼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수레를 끌고 가는 소가 송아지가 젖을 먹기 위해 어미소의 다리 사이로 왔다갔다 하면 수레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떼어 놓고 갈 때에 그 마음 이 어떻하였겠습니까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걸리적 거리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는 걸림돌이 있으면 과감 하게 모두 끊어버려야 합니다. 창22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삼일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도착하였을 때에 함께 동행한 하인들을 산아래에 머물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워서 산으르 올라갔습니다. 만약에 그의 하인들이 끝까지 따라갔다면 아브라함의 하는 행동을 보고 가 만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찍이 걸림돌이 되는 하인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미련도 끊어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머뭇머뭇 해서는 않됩니다.
3. 이 소들은 무거운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길로 바로 행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이 소들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 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 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지고 왔습니까 무겁다고 벗어 던진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잘 달려왔습니 까 <G.S>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앞에 아룁니다. 이한몸 주를 위하여 목숨버린다 했으나 주의영광 뒤로하고 나의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길이 주를 위한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이 때는 마침 밀을 거두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곡식을 거둘 때에 길가 의 한 이랑은 거두지 않고 그냥 놔 두어서 지나가는 객이나 가난한 사람들과 짐 승들을 위해 거두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얼마든지 먹을 것이 있어도 앞만 보고 걸어온 소들의 모습은 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한 번도 메어보지 않던 수레멍에를 메고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소들 처럼 여러분들은 지난 1년간 세상의 온갖 유혹과, 손만 뻣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세상의 향락 다 버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환란의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고, 유혹의 손길에 솔깃해서 나태하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면서 게으름도 피우고, 하며 힘들다고 쉬엄 쉬엄 걸어서 오늘에 이르지 않았는지요
4, 이 소들은 울면서 울면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의 멍에를 메고 십자가를 지고 영원한 벧세메스인 하늘 나라를 향해 갈 때에 울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믿음을 지키기에 너무 힘이 들어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구원받지 못 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불쌍해서 울고, 은혜받고 감격해서 울고, 자신의 지은 죄를 인하여 회개하며 울고, 울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이세상에 계실 때에 울으신적이 성경에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들은 1새끼들을 집에다 떼어 놓았습니다.
2한번도 끌어보지 않던 수레 를 끌고 갑니다. 3쉬지도 못하고 앞만보고 앞날을 알 수 없이 가야만 합니다. 그 러기에 이 소들은 울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떼어 놓고 자신들만 천성길을 가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운다는 것은 간구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은 우는 것으로서 의사 표시를 합니다. 배가 고파 울고, 몸이 아파 울고, 어디가 불편해서 울고, 똥 오줌 싸고도 울고, 이렇듯 우리 성도들의 울음은 곳 하나님을 향한 기도 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없으면 않됩니다. 예레미야는 눈이 상하도록 울고, 히스기야는 죽음의 예고를 듣고 심히 통곡할 때 그의 간구와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도 브엘세바 광야를 방 황하던 하갈은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을 위하여 방성대곡 할 때 하나님은 그의 눈 을 밝혀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까 괴롭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간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간 1년동안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여 왔는지 이시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5. 그 소들은 마침내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힘들여 쉬지도 못하고 애써 수레를 끌고 오니까. 물 한모금 주지 않고 오히려 잡아서 각을 떠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마지막 신앙의 휘날레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주님앞에 무익한 종 들입니다. 종들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영광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칭찬도 듣지 못하고 누가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 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들 바로 나의 모습은 외형적인 것에 치우쳤 고, 남에게 드러나기를 원했고, 주님이 알아주기 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 랬으며, 하늘 나라의 상급보다는 세상의 칭찬을 더 원했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참 성도는 이 소와 같이 마지막 희생의 제물이 될 때까지 주어진 사 명을 다한 후에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하여야 할 것을 한 것 뿐입니다"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찬 355장>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선택받은 소들은 불레셋나라에서 유다나라의 벧세메스까지 달려갈 길을 모두 마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도 1년간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오직 번제를 위한 희생제물이 될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모두 주님전에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었다(딤후4:6)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도 이 세상에 오셔서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물과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시고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시간 내 자신을 드려 주님 앞에 희생의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양초는 자기의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은 썩어야 많 은 열매를 맺듯이 오늘 이시간 우리들은 1996년의 한 해의 달림을 마치고 주님 앞에 심판을 받는 심정으로 희생제물이 될 때에 분명코 여러분들은 한알의 말알 이 되어 100배 천배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1년동안 살아온 길을 돌이켜 생각하면 구비 구비 아슬 아슬한 고비도 많 았으나 그럴때마다 주님의 손길이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면서 부족 한 것은 회개하면서 마지막 여력까지도 주님전에 바치는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 밝아오는 1997년의 새해에는 더 큰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운동 선수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 며…"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 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 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들은 금년 1년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워왔으며, 그 싸움 에서 승리를 하였는지, 1년간을 잘 달리면서 믿음을 지켰는지, 과연 의의 면류관 을 얻을 수 있을런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삼상6:10-16절의 말씀은 4장에서부터 읽어야 연결이 되는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함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무력과,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패역한 악행은 급기야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불레셋나라의 침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는 참패를 당하고 나라는 온통 수 라장이 되었습니다. 엘리 일족이 멸문지 화를 당하고 하나님의 선민의 상징인 법 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법궤를 빼앗아간 불레셋나라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벱궤를 두는 성읍마다 독종이 퍼져서 수백명씩 죽는 재앙이 일어서 불레셋나라의 방백들 이 의논 끝에 이 나라의 재앙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빼앗아온 법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그 법궤를 이스라엘 나라로 돌려 보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 리고 새 수레를 만들고 수레를 메어보지 않은 소중에 새끼갖인 소를 택하여 송아 지는 떼어놓고 수레에 메워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나라 벧세메스를 향하여 내몰 았습니다. 이 소들은 젖먹는 새끼들을 떼어 놓았지만 수레를 끌고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벧세메스까지 달려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다가 수레에 법궤가 실려 오는 것을 보고 맞이하여 그 소를 잡아 제 물로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1996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고 불레 셋에서 이스라엘 벧세메스까지 달려온 이 소들을 통하여 오늘의 우리들이 지나온 1년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나는 지난 1년을 어떻게 달려왔는가를 생각하면서 신 년을 맞기전에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1. 그 소들은 수많은 소들중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불레셋 나라의 소가 어찌 이 두 마리 뿐이겠습니까 수를 셀수 없는 많은 무리 중에서 특별히 사명을 띄고 선택받은 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소들과 같이 사명받은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 아니 이 동리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여러분들 뿐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 소들과 같이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계셔서 큰 사명을 띄고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군인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나라의 명령에 따라 살고 죽는 것이 군인이듯이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소들은 젖먹는 송아지를 집에다 떼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수레를 끌고 가는 소가 송아지가 젖을 먹기 위해 어미소의 다리 사이로 왔다갔다 하면 수레를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어미가 새끼를 떼어 놓고 갈 때에 그 마음 이 어떻하였겠습니까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걸리적 거리는 것들을 과감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는 걸림돌이 있으면 과감 하게 모두 끊어버려야 합니다. 창22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리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삼일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도착하였을 때에 함께 동행한 하인들을 산아래에 머물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를 지워서 산으르 올라갔습니다. 만약에 그의 하인들이 끝까지 따라갔다면 아브라함의 하는 행동을 보고 가 만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찍이 걸림돌이 되는 하인들을 산 아래에 머물게 하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미련도 끊어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머뭇머뭇 해서는 않됩니다.
3. 이 소들은 무거운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길로 바로 행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이 소들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 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 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1년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지고 왔습니까 무겁다고 벗어 던진적은 없습니까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바로 잘 달려왔습니 까 <G.S> 지금껏 내가 한일이 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지나간 세월 돌이켜 주님앞에 아룁니다. 이한몸 주를 위하여 목숨버린다 했으나 주의영광 뒤로하고 나의자랑 앞세웠으니 내가 가는 이길이 주를 위한것보다 예수 이름을 파는 가롯유다와 같습니다. 이 때는 마침 밀을 거두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곡식을 거둘 때에 길가 의 한 이랑은 거두지 않고 그냥 놔 두어서 지나가는 객이나 가난한 사람들과 짐 승들을 위해 거두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얼마든지 먹을 것이 있어도 앞만 보고 걸어온 소들의 모습은 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한 번도 메어보지 않던 수레멍에를 메고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소들 처럼 여러분들은 지난 1년간 세상의 온갖 유혹과, 손만 뻣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세상의 향락 다 버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환란의 바람에 쓰러지기도 하고, 유혹의 손길에 솔깃해서 나태하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면서 게으름도 피우고, 하며 힘들다고 쉬엄 쉬엄 걸어서 오늘에 이르지 않았는지요
4, 이 소들은 울면서 울면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의 멍에를 메고 십자가를 지고 영원한 벧세메스인 하늘 나라를 향해 갈 때에 울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믿음을 지키기에 너무 힘이 들어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구원받지 못 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불쌍해서 울고, 은혜받고 감격해서 울고, 자신의 지은 죄를 인하여 회개하며 울고, 울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도 이세상에 계실 때에 울으신적이 성경에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들은 1새끼들을 집에다 떼어 놓았습니다.
2한번도 끌어보지 않던 수레 를 끌고 갑니다. 3쉬지도 못하고 앞만보고 앞날을 알 수 없이 가야만 합니다. 그 러기에 이 소들은 울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 세상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떼어 놓고 자신들만 천성길을 가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운다는 것은 간구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은 우는 것으로서 의사 표시를 합니다. 배가 고파 울고, 몸이 아파 울고, 어디가 불편해서 울고, 똥 오줌 싸고도 울고, 이렇듯 우리 성도들의 울음은 곳 하나님을 향한 기도 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없으면 않됩니다. 예레미야는 눈이 상하도록 울고, 히스기야는 죽음의 예고를 듣고 심히 통곡할 때 그의 간구와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도 브엘세바 광야를 방 황하던 하갈은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을 위하여 방성대곡 할 때 하나님은 그의 눈 을 밝혀 샘물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습니까 괴롭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간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나간 1년동안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여 왔는지 이시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5. 그 소들은 마침내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힘들여 쉬지도 못하고 애써 수레를 끌고 오니까. 물 한모금 주지 않고 오히려 잡아서 각을 떠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마지막 신앙의 휘날레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주님앞에 무익한 종 들입니다. 종들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영광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칭찬도 듣지 못하고 누가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 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들 바로 나의 모습은 외형적인 것에 치우쳤 고, 남에게 드러나기를 원했고, 주님이 알아주기 보다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 랬으며, 하늘 나라의 상급보다는 세상의 칭찬을 더 원했던 것입니다. 모름지기 참 성도는 이 소와 같이 마지막 희생의 제물이 될 때까지 주어진 사 명을 다한 후에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하여야 할 것을 한 것 뿐입니다"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찬 355장>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선택받은 소들은 불레셋나라에서 유다나라의 벧세메스까지 달려갈 길을 모두 마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도 1년간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오직 번제를 위한 희생제물이 될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 모두 주님전에 희생의 제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었다(딤후4:6)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도 이 세상에 오셔서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물과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시고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시간 내 자신을 드려 주님 앞에 희생의제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양초는 자기의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은 썩어야 많 은 열매를 맺듯이 오늘 이시간 우리들은 1996년의 한 해의 달림을 마치고 주님 앞에 심판을 받는 심정으로 희생제물이 될 때에 분명코 여러분들은 한알의 말알 이 되어 100배 천배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1년동안 살아온 길을 돌이켜 생각하면 구비 구비 아슬 아슬한 고비도 많 았으나 그럴때마다 주님의 손길이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면서 부족 한 것은 회개하면서 마지막 여력까지도 주님전에 바치는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 밝아오는 1997년의 새해에는 더 큰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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