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의 신앙 (룻1:1-18)
본문
나오미가 가진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으나 잘못된 신앙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남편의 이름은 엘리멜렉(하나님은 왕이시다.) 나오미(은혜스러운 자, 사랑스러운 자) 말론(연약한 자, 병약한자) 기론(사모하는 자) 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메시아가 탄생하신다는 곳으로 매우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고대하며 기다려 왔던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특히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떡집으로도 유명하고, 먹을 것도 풍부한 곳인데도 흉년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왜 이 땅에 흉년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은 까닭 없이 자신이 세우신 기업의 땅을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정은 흉년이 들어 삶의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 앞에서 뜻을 발견한다거나 깊이 있는 기도도 한 번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이라는 땅은 가나안 동편에 있는데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땅입니다. 이 땅은 초목이 무성한 넓은 들판입니다. 아마 나오미의 가정이 모압 땅에 살았어도 자신의 동족을 멀리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에 르우벤 지파가 모여서 살고 있었으며 그 근처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정착지로 정했을 것입니다. 또 멀리 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과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나서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이들은 떠나서는 안될 거룩한 땅을 떠나 버렸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모압이라는 땅을 선택하였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고난 후 나오미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들들을 결혼시키기로 했는데 자신의 동족 중에서 자부를 맞이하지 않고 모압 땅에 사는 이방인을 자부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갓 결혼한 두 아들들도 끝내 죽어 버리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곳에 정착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남은 것은 이제자신의 몸과 외로움, 쓸쓸함 뿐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물질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무엇이 나오미의 가정을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까 그가 가진 잘못된 신앙관 때문입니다. 그의 잘못된 신앙은 무엇일까요
1. 영적 문제보다 육신적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당장에 먹을 양식과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방 나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근의 날이 있다면 풍족한 날도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지도 아니했으며 참을성도 없이 즉각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바로 살아야 하는 가치관보다는 육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일을 더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만약에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내 신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에 배고픈데, 당장에 사업이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는 골몰하면서도 이러한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내 삶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려 할 때 조급하며 서두려는데 이처럼 조급한 결정은 실수를 동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은 육신의 문제가 영의 문제보다 앞서게 되며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나 가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자신과 가족의 영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일시적인 생활이 나오미로 하여금 고통의 굴레에 빠지게 하였고 이 고통은 자신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적으로 가려는 도피적인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해결의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도피적인 삶의 결과는 잠시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풍요로운 삶을 바라보았으나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의 가정을 볼 때 하나님 앞에서의 도피적인 생활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관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6절에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기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라는 소식이 들려지자 나오미는 한 가닥의 희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신다는 소식은 그 동안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소망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살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복된 소식입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 새로운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된 소식 들려지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옳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복된 소식을 들을 때에 멈칫거려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소식이 들려질 때에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이 권고의 기간에 내가 그 동안 잘못 결정해서 일어난 지난날의 모든 잘못들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할 적절한 시기입니다. 이제 나오미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331장♪ 3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2. 하나님 뜻보다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더 생각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자부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두고 갈 것인가 나오미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두 자부를 자기들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기 혼자 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11절에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이처럼 두 자부를 두고 가려는 나오미의 선택은 또 다른 실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제시한 선택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제도와 관습에 매여서 자식도 없이 과부로서 평생을 살아야 가야 하는 불행한 삶보다는 그 굴레를 벗어 줌으로서 자유를 주고 또 재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시어머니 입장으로서의 생각은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돌려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고향 땅에 머물게 하려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지녀 왔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옛날 우상을 섬기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선택의 길목에 서서 두 자부에게 권면하려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서 제시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잘되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육신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도 육신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자녀들을 향해 “교회는 어른이 되어서 나가도 되니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려는 부모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해 주는 지혜로운 선택 같습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의 이성과 판단력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앙의 상태로 굳어지고 형성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영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나중에 장성하여 가정을 다스리며 사회인으로 살아 갈 그 때에 영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권면 하시렵니까
그렇다면 이미 불신자로 형성된 그들이 돌아오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녀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불신자의 길을 걸어가는 그때에 부모로서의 영향이 얼마나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도 내 자녀가 지금과 같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따를까요 갈수록 자기의 개념이 강하게 형성되는 신세대 자녀들 앞에서 연로한 부모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할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따라서 믿겠지 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성도의 가정을 심방 해보면 내 자녀들이 신앙이 없어서 고민입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돌아오겠지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가 지금까지 잘못하고서는 이제 와서 하나님의 뜻에 맡겨 두려고 하는가) 부모가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줘도 자녀는 부모의 경건성을 50%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적당하게 살아가므로 나의 경건성을 50%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 자녀는 몇%를 받아들일까요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생각해도 부끄러운데 만약 내 자녀가 내 모습의 20%밖에 본받지 못한다면 그 자녀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 회복되어지는 나오미의 신앙 나오미는 자기 자신이 비참하게 된 원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제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라도 더 이상 변명할 형편도 처지도 못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게 되었고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의 신앙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의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당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30장2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오미는 비로소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1 나오미는 하나님만이 나를 선대 하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8)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좋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신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여호와는 너를 시온에서 축복 하시오며” 라는 성경 구절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주께서 나를 선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역경속에서도 주께서 당신을 선대 하신다고 말하면 비웃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도 그렇게 말합니다. 포도나무가 말라죽었고, 무화과도 말라죽었고, 양도 죽었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때에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선대 하신다고 그래서 영적으로 방임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실 나오미는 이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속의 땅보다 이방인의 땅을 더 의지하였고, 남편만 있으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또 건장한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 마음이 든든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소망이라고는 가질 수가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이때에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나를 선대 하시오며”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 바르게 살지 못하여 수 없는 시간동안 아픔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내가 여호와께로 나아간다면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선대하시며,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밑바닥의 인생을 살아왔으나 이제 하나님은 고통의 긴 터널에서도 나를 구원하시고 건져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나오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선민들이 있어야할 자리는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던 그 자리로 나오미는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인데,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떡, 생명의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6:48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뉘우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먼 이국땅으로 갔으나 결국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나의 고집, 나의 생각, 나의 주관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디어진 영적 상태를 바로잡고 말씀 앞에 바로 서기 위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이방인의 객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의 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특히 베들레헴이라는 곳이 떡집으로도 유명하고, 먹을 것도 풍부한 곳인데도 흉년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왜 이 땅에 흉년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은 까닭 없이 자신이 세우신 기업의 땅을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가정은 흉년이 들어 삶의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 앞에서 뜻을 발견한다거나 깊이 있는 기도도 한 번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모압이라는 땅은 가나안 동편에 있는데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땅입니다. 이 땅은 초목이 무성한 넓은 들판입니다. 아마 나오미의 가정이 모압 땅에 살았어도 자신의 동족을 멀리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에 르우벤 지파가 모여서 살고 있었으며 그 근처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정착지로 정했을 것입니다. 또 멀리 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과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떠나서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이들은 떠나서는 안될 거룩한 땅을 떠나 버렸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모압이라는 땅을 선택하였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고난 후 나오미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들들을 결혼시키기로 했는데 자신의 동족 중에서 자부를 맞이하지 않고 모압 땅에 사는 이방인을 자부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갓 결혼한 두 아들들도 끝내 죽어 버리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곳에 정착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남은 것은 이제자신의 몸과 외로움, 쓸쓸함 뿐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물질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고통의 삶이었습니다. 무엇이 나오미의 가정을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까 그가 가진 잘못된 신앙관 때문입니다. 그의 잘못된 신앙은 무엇일까요
1. 영적 문제보다 육신적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당장에 먹을 양식과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방 나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근의 날이 있다면 풍족한 날도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지도 아니했으며 참을성도 없이 즉각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바로 살아야 하는 가치관보다는 육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일을 더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만약에 내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내 신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에 배고픈데, 당장에 사업이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는 골몰하면서도 이러한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내 삶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려 할 때 조급하며 서두려는데 이처럼 조급한 결정은 실수를 동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 사람들은 육신의 문제가 영의 문제보다 앞서게 되며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나 가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자신과 가족의 영적인 가치관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일시적인 생활이 나오미로 하여금 고통의 굴레에 빠지게 하였고 이 고통은 자신에게 있어서 죽음의 고통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적으로 가려는 도피적인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해결의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도피적인 삶의 결과는 잠시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풍요로운 삶을 바라보았으나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오미의 가정을 볼 때 하나님 앞에서의 도피적인 생활은 결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관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6절에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기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 하사-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라는 소식이 들려지자 나오미는 한 가닥의 희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신다는 소식은 그 동안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소망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양식을 주신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살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복된 소식입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이 새로운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된 소식 들려지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옳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복된 소식을 들을 때에 멈칫거려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소식이 들려질 때에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이 권고의 기간에 내가 그 동안 잘못 결정해서 일어난 지난날의 모든 잘못들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할 적절한 시기입니다. 이제 나오미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331장♪ 3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2. 하나님 뜻보다 인간의 현실적 문제를 더 생각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자부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두고 갈 것인가 나오미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두 자부를 자기들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기 혼자 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11절에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이처럼 두 자부를 두고 가려는 나오미의 선택은 또 다른 실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제시한 선택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제도와 관습에 매여서 자식도 없이 과부로서 평생을 살아야 가야 하는 불행한 삶보다는 그 굴레를 벗어 줌으로서 자유를 주고 또 재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는 시어머니 입장으로서의 생각은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는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돌려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고향 땅에 머물게 하려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지녀 왔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옛날 우상을 섬기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15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선택의 길목에 서서 두 자부에게 권면하려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서 제시한 것입니다. 나오미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잘되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육신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도 육신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자녀들을 향해 “교회는 어른이 되어서 나가도 되니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려는 부모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해 주는 지혜로운 선택 같습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의 이성과 판단력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앙의 상태로 굳어지고 형성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면 그들의 영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나중에 장성하여 가정을 다스리며 사회인으로 살아 갈 그 때에 영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권면 하시렵니까
그렇다면 이미 불신자로 형성된 그들이 돌아오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자녀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불신자의 길을 걸어가는 그때에 부모로서의 영향이 얼마나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도 내 자녀가 지금과 같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따를까요 갈수록 자기의 개념이 강하게 형성되는 신세대 자녀들 앞에서 연로한 부모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할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따라서 믿겠지 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성도의 가정을 심방 해보면 내 자녀들이 신앙이 없어서 고민입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돌아오겠지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가 지금까지 잘못하고서는 이제 와서 하나님의 뜻에 맡겨 두려고 하는가) 부모가 자신의 경건한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줘도 자녀는 부모의 경건성을 50%밖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적당하게 살아가므로 나의 경건성을 50%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내 자녀는 몇%를 받아들일까요 말씀 앞에서 내 모습을 생각해도 부끄러운데 만약 내 자녀가 내 모습의 20%밖에 본받지 못한다면 그 자녀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3. 회복되어지는 나오미의 신앙 나오미는 자기 자신이 비참하게 된 원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제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구 앞에서라도 더 이상 변명할 형편도 처지도 못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게 되었고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의 신앙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의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당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30장2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오미는 비로소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1 나오미는 하나님만이 나를 선대 하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8)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좋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신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여호와는 너를 시온에서 축복 하시오며” 라는 성경 구절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주께서 나를 선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역경속에서도 주께서 당신을 선대 하신다고 말하면 비웃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도 그렇게 말합니다. 포도나무가 말라죽었고, 무화과도 말라죽었고, 양도 죽었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때에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선대 하신다고 그래서 영적으로 방임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실 나오미는 이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속의 땅보다 이방인의 땅을 더 의지하였고, 남편만 있으면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또 건장한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 마음이 든든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소망이라고는 가질 수가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할 이때에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나를 선대 하시오며”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 바르게 살지 못하여 수 없는 시간동안 아픔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내가 여호와께로 나아간다면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선대하시며,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밑바닥의 인생을 살아왔으나 이제 하나님은 고통의 긴 터널에서도 나를 구원하시고 건져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나오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선민들이 있어야할 자리는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던 그 자리로 나오미는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인데,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떡, 생명의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요6:48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떡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란 뉘우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먼 이국땅으로 갔으나 결국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나의 고집, 나의 생각, 나의 주관으로 살아왔으나 이제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디어진 영적 상태를 바로잡고 말씀 앞에 바로 서기 위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이방인의 객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의 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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