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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사망 사이는 한걸음 뿐이다 (삼상20:1-11)

본문

I. 여러분은 앞으로 몇년을 더 살 것 같습니까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약 70-80년을 살다가 갑니다. 그럼 여러분은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됩니까 어떤 사람은 20년 어떤 사람은 30년을 더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죽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과 자기 자신 사이에는 아직도 거리가 많이 남아 있 다고 생각을 하며 삽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과 같은 생각으로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와 죽음 사이는 겨우 한걸음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한걸음만 더 뛰어 놓으면 죽음의 강,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요단 강을 건너가게 됩니다. 큰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대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곡간을 헐고 새로 크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곡간 마다 곡식을 가득 가득 채웠읍니다. 곡간마다 곡식이 가득차자 그는 영원히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 고 즐거워하자"(눅12:19)고 말을 했습니다. 곡식을 많이 쌓아두니 오래 살 것 같았습니다. 죽음과는 거리가 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은 "어린석운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게 되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과 너와는 한걸음 밖에 안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죽어서 가게되는 저승은 이렇게 붙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차이가 겨우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음의 나라와 한걸음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나, 나이 많 은 먹은 사람이나 모두가 다 죽음과는 한걸음 사이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나와 죽음 사이는 한걸음 뿐이다"라고 말한 때는 다윗이 나이 많아 죽을 때가 되었을 때 한 말이 아닙니다. 왕도 되기 전 에, 이제 막 결혼 을 한 젊은 청년 시절에 한 말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 사람들만 죽음과의 사이가 한걸음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다 죽음과 한걸음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자기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삼 은 사무엘이 있는 라마나욧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다윗이 라마나욧에 있 다는 소식이 사울 왕에게 전해지자, 사울 왕은 사자들을 보내서 다윗을 잡 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자들이 라마나욧에 도착하자 그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다른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전번 사 자들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번째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전번 사자들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울 왕이 직접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나욧으로 갔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라 마나욧으로 가는 길에서 내내 예언을 하며 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 지자 앞에서 옷을 벌거벗고 누워서 예언을 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그곳을 도망하여 사울 왕의 아들이자, 자기의 친구인 요나 단에게 왔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무엇을 잘 못했다고 너의 아버지가 나 를 죽이려고 하느냐 "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요나다는 "결코 네가 죽 지 아니하리라. 우리 아버지가 대소사를 나와 상의하지 않고는 행하시는 일이 없다.
그런데 너를 죽이겠다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없다. 그러 니 우리 아버지가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니다. 너와 내가 아주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너에게 나를 죽인다고 하면, 네가 슬퍼할까 바 너에게 이 일 만은 이야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합니다.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There is only a step between me and death) 이것은 물론 다윗이 그렇게 위험한 상황속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언 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 중의 진리 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음과 한걸음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금 만 잘못하면 생명의 땅에서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런데 이한걸음은 얼만 안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그 한걸음이 우리를 생과 사로 나눕니다. 생과 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생과 사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큽니다.
그러므로 이 한걸은 우리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 만큼 중요합니다. 이 아주 작은 한 걸음이 우리를 천지차이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걸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한걸음 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우리를 천지차이로 만드는 아주 작은 한걸음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생명과 사망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세계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은 두 나라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고 삽니다. 또 실제로 죽음과 삶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실제적으로 말을 하면 생명과 죽음의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실제로는 한걸음의 차이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루 밤에 한 응급실에 실려온 한 자들 중에 하나는 아기를 낳아서 새생 명을 얻어서나가는가 하면, 하나는 죽어서 영안실로 내려 갑니다. 일가족이 타고가던 승용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온 식구들이 응급실에 실 려 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자는 죽어서 영안실로 내려가고, 어떤 자는 살아서 병실로 올라갑니다. 정말로 생과 사는 이렇게 한걸음 밖에 되 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한 다윗은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추격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그의 말대로 죽음과 삶의 경계선상 에 서 있었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죽음의 구렁으로 떨어지고,조금 잘하면 왕이 되는 경 계선상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윗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상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걸음 밖에 안되는 죽음과 삶의 사이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늘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한걸음만 가면 죽음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 서도 자고 있을 자가 어디있겠습니까 내일이면 영원한 죽음의 땅에 들어가는데, 오늘을 허송세월할 자가 어디에 있겠읍니가 우리는 이렇 게 한걸음 밖에 안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서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과의 사이가 한걸음 밖에 안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 죽음의 나라에 들어가도 괜찮도록 죽음에 대한 모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죽 음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죽음과 삶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지만 그 차이가 가져 오는 결과는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살아서 이 땅에 있을 동안에는 다 똑같은 것 같은데, 그 한걸음만 지나 고 나면 엄청난 차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에 들어 가고, 하나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이루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우리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곳입니다. 지옥은 우리 인간이 가장 비극적으로 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 옥 사이는 극과 극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과 죽음의 나라 사이는 한 걸음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하나는 천국에 들어가고, 하나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천국과 지옥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죽음과 사망의 사이 가 한걸음 밖에 되지 않는 것과 같이 아주 작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그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는 아주 간단하고 작은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중 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 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한번은 영국에 챨스 피스(Charles Peace)라는 그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이름은 평화이지만 그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이든 사람의 계명이든 하나도 지키지 않 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했다. 그는 폭력, 도적질, 싸움 등 수 많은 죄 를 범하여 전과자가 되었다. 마침대 영국 정부는 그를 체포하여 재판을 해서 사형선고를 내렸다. 재 판관은 그를 리드스(Leeds)에 있는 암리 감옥(Armley Jail)에서 교수형을 시키라고 했다. 그의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 아침, 교수형을 집행하는 일에 관계 된 자들 이 피스의 감옥방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이제 피스를 데리고 교수대 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들 중에는 목사가 있었다. 그 목사가 하는 일은 그로 하여금 죽음 넘어의 세계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였다. 이제 피스를 마지막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엄숙한 죽음의 행진이 시작 되었다. 목사는 그 길을 가면서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가는 자에게 종교적 위안을 주기 위하여 종교적 위로서를 낭독을 하면서 따라 간다.
그런데 그 목사는 몹씨 졸리웠다. 그래서 지금 한 사람이 죽어 영원한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도 하품을하며 매우 성의 없이 그 위로서를 암송했다. 그래서 그 암송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목사는 갑자기 자기의 어깨를 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누군 가가 자기에게 "목사님, 지금 무엇을 읽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하는 소리 를 들었다. 그 사람은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피스 였다. 그래서 "종교적 위로서를 읽고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피스는 "목사님은 그 내용을 믿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목사는 불분명하게 "아마 나는 믿는 다고 생각을 한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피스는 그 목사를 뚫어지라고 바라보면서, 크게 놀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목사님이 읽어 주는 글에 의하면 이제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가 고 있는 그는 자기가 이 땅에서 지은 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정죄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영원한 지옥에 들어 갈 것 이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는 그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마치 진절머리 나는 귀찮 은 것을 말하는 것 같이 말을 하고 있었으며,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 같이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래서 피스는 그 목사에게 말을 했다. "나는 목사님이 믿는 그런 믿음은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목사님 이 말씀하는 그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을 내가 믿었다면, 그 지옥에 가는 단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비록 이 영국 이 끝에서 저끝까지 온 통 깨진 유리조각으로 가득차 있다고 하더라도,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갈 것이며, 그것을 조금도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 다" 마지막 지옥에 가는 자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아직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이 온통 깨진 유리들로 가득 덮여 있는 이 지구를 낮은 포복을 하면서 가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천국 가는 것과 지옥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늘과 땅과 같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져다 주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2. 부와 가난 사이가 한걸음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가난한 자들은 당장 먹를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그러나 부자들 은 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한달간 먹을 수 있는 것을 한 끼에 먹는 부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와 가난 사이에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거리는 하늘과 땅과 같이 먼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부한 자는 행복한 자라고 생각을 하고, 가난한 자는 불행한 자라 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가치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난과 부 사이는 한걸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삼상18:23) 말씀을 보면 다윗은 자기 자신을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가난한 시골 마을 베들 레헴에서 양을 치는 가난한 집의 여덟째 막내아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왕의 딸 미갈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사울 왕에게 보고 되었습니다. 당시 다윗을 잡아 죽여서 후한을 없게 하려던 사울은 이번 기회에 다윗 을 자기 사위로 삼아서, 그것이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 리고는 그를 블레셋과의 전투에 내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죽게 하 려고 다윗 보고 "네가 오늘 내 사위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왕의 사위가 되면 다윗은 부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작은 산 골마을 베들레헴의 가난하고 천한 사람과 왕의 사위의 부한 사람 사이의 차 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 부한 자가 따로 있고 가난한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지만, 그러나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이 땅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와의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가난한 자는 돈이 없어 죽지만, 부한 자는 돈이 있어서 죽을 병도 고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사이는 한걸음 밖에 안되 지만 한걸음이 가져오는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에 그 한걸음 중요하게 여겨 야 합니다.
그럼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게도하고, 가난한 자가 되게도 하는 이 한걸 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할 이 한걸음은 무엇 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똑같은 쌍둥이라도 하나님이 축복해 주 시는 자는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는 자는 가 난하게 됩니다. (삼상2:7) 말씀을 보면 한나는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간나하게도 하고, 부하게도 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부하게 하시고, 어떤 자들을 가난하게 하실 까요 신명기 28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 을 받습니다. 자녀들과 토지의 소산물과 짐승의 새끼들이 복을 받습니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 을 받습니다. 대적들이 우리를 치러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고와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우리 땅 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민족에 꾸어줄지라도 우리는 꾸이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런 엄청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치 않으면 엄청난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저주를 내리십니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 주를 받습니다. 자녀와 토지 소산과 짐승의 새끼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들아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저주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치 않았기 때 문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축복과 저주 사이는 엄청나게 크지만 그런 차이를 가져 오는 것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 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한걸음에우리가 부하게 되느냐, 아니면 가난하 게 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축복을 받아 부하게 되느냐, 아니면 저주를 받아 가 난하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 그러나 중요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3. 성공과 실패 사이가 한걸음 사이입니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에 합격한 자와 떨어 진 자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학을 들어가고, 하나는 대학을 못들어갑니다. 하나는 직장에 들어가고 하나는 직장에 못들어 갑니다. 하나는 판검사가 되고 하나는 못됩니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 사 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 차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학 시험에 합격한 자와 떨어진 자 사이에는 불과 1점도 차이가 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성공하여 이스라엘 왕이 되느냐, 아니면 역적이 되 어 죽느냐 사이에는 한걸음의 차이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사울 왕이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려고 추적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에게는 수십 만의 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겨우 400 명의 군사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이 400명의 군사로 수십만명의 사울 왕의 군대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 싸움에서 싸워서 이기면 이스라엘 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지면 역적이 됩니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를 가져오는 차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성공자와 실패자 사이는 한걸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공자라도 실패와 한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실패자라도 성공과는 한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나도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공과 실패를 갈라놓는 한걸음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럼 이 성공과 실패를 갈라 놓는 한걸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 로 세우신 것을, (행13:22)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라" 사울 왕이 40년가 누리던 왕좌에 쫓겨나고, 다윗이 왕위에 오른 것은 다 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였고,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아 니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면 지금 나의 모습과 형편이 어떠하던 간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자가 될 수 없습니다.
캐시 허드슨(Kathi Hudson)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성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즉 지식, 능력, 에너지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될때 성공자가 되 고, 하나님의 목적에 합한 자가 되지 않을 때 실패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는 이 작은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노 력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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