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시는 하나님 (빌4:10-13)
본문
전도서 3장 1절에서 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평생을 살면서 웃기만 하면서 살면 좋겠는데 울때도 있으며 평생을 춤추면서 살면 좋겠는데 슬퍼 애통을 해야만 하는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삶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삶입니다. 참으로 성공 할 때가 있으면 실패 할 때가 있으며 일서설 때가 있는가면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삶은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성공만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실패만 하여야 할 터인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잘 믿는 자도 실패 할 수 있고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데도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만 가지고는 그의 믿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안정된 삶의 여건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은 그와같은 안정된 삶의 조건과 여건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여집니다. 미신적인 종교는 안정된 삶의 조건과 여건을 약속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거짖말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안정된 삶의 여건과 조건이 아닙니다. 어떠한 삶의 여건과 조건도 능히 뛰어 넘어 극복할 수 있는 삶의 능력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저들의 삶의 남들과 달리 늘 좋기만 하고 성공적이기만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은 어떠한 삶의 여건과 조건속에서도 능히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자신은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와같은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하나님을 안정된 삶의 여건과 조건 때문에 믿으셨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정된 삶의 여건들이 흔들리게 될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흔들리게 되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어떠한 삶의 여건과 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해 낼 수 있는 삶의 능력을 얻는데 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능력을 깨닫고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우연을 믿지 않습니다. 매사가 필연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일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도와 뜻은 우리에게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그리고 좋게 느껴지든 그렇지 않게 느껴지든 언제나 선하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타난 사건과 환경만을 보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러한 일을 만나게 하셨을까 이와같은 사건과 일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무엇일까를 언제나 생각합니다. 모든 환경과 사건과 일들을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모든 실패와 고난과 역경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는 그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더 큰 성공과 축복을 받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는 근사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를 만나고 그로인하여 고난과 역경속에 빠지게 되는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으실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회개와 돌이킴을 위함입니다. 지금 호주에 계시는 장로님 한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 안수집사님이셨던 분입니다. 사업을 아주 잘 하다가 그만 어려운 일을 만나 부도를 내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감옥에 가지 갇혔던 일이 있었던 분입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하루 종일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또 교만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중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나게 되었고 풀려난 후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본시 사업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 다시 사업이 잘되게 되었고 전에 졌던 빚도 잘 갚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장로님에게 '장로님 그 때 잘 망하셨네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그 장로님은 무릎을 치면서 '목사님 맞습니다. 그 때 참 잘 망한 겁니다. 그 때 망하지 않았으면 저 망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망하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재미있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다. 아주 정확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 때 그 장로님을 망하게 하신 것은 망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라고 그리하여 다시 회복하고 더 잘되라고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중에는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일이 없는가를 꼼꼼히 살펴 볼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 연단을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12장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하나님께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예레미야의 질문은 왜 하나님을 믿도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의 삶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하고 사는 사람의 삶이 형통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같은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편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하나님의 이 질문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행자와 함께 경주하는 정도의 사람의 아니라 말과 경주하며 편안한 땅에서나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역경속에서도 능히 그것을 헤쳐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셔서 예레미야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격었던 고난과 역경에 대한 하나님의 뜻고 의도는 '연단'이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역경을 당하는 이유가 정금과 같은 존재로의 연단과 단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의도중의 하나는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한 땅과 환경에서나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나약자가 아니라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자족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의 능력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환난과 역경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면류관을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5장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란 '핍박중에도 의를 버리지 아니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는 핍박중에 더 빛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순경(順境)중의 義도 중요하지만 역경(逆境)중의 義는 더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를 빛내시기 위하여 우리를 때때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환경으로 몰아 넣으시는 때가 있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핍박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의도중의 하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믿고 이해하게 되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고난과 역경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을 덧입게 될 때 우리도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비천함 속에서도 자족할 줄 알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되어 그때에도 기뻐할 수 있고 그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비천에 처했을 때,
첫째, 쉽게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둘째, 무조건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쓸데 없는 열등의식에 사로 잡히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리고 용감하게 그것에 직면합니다.
셋째,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얻어 그것을 보다 더 큰 성공의 기회와 발판으로 삼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와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함부로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요셉과 같이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다시 시작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 교회 교인들이 모두다 이와같은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부로 비천한 환경을 자초할 필요는 없으나 비천한 환경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고 힘쓰기 이전에 먼저 그 환경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극복해 낼 수 있기를 위해서 힘쓰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비천에도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지만 성공과 부요함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성공과 부요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성공과 부요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내야만 우리는 부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과 부요함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요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부요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천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과 똑같아서 절대로 그의 삶에서 진정한 의미의 승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부요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부요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셨고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그날 부르셨습니다. 그는 내 영혼아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그에게는 그와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비천한데 처할 줄 모른 사람도 많지만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줄로 착각하여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힘씁니다.
둘째, 물질이 은사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은사대로 물질을 바로 쓸 줄을 모릅니다. 무조건 쓰지 않고 모아만 두는 수전노가 되거나 아니면 사치와 방탕으로 물질을 탕진하는 탕자가 되거나 둘중의 하나가 됩니다.
셋째, 물질이 은사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도 모릅니다. 자연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넷째, 결국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생의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문제는 부한데 처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비천에 처하게 된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매사를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처리해 보십시다. 모든 일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그 뜻을 깨달아 어떠한 환경과 여건도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보십시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부요함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비천한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비천함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대로 열심히 이 어려움을 극복하여 비천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다. 회개 하여야 할 사람은 핑계하지 말고 회개하십시다. 작은 일 하나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보십시다. 사탄은 그것과 이일이 상관없는 일이라고 우리를 속이겠지만 속지 마십시다. 우리는 나의 죄 때문에 이와같은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상한 심령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십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면 사탄은 절대로 앞으로 우리를 시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험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면 손해를 보리만큼 철저히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단 받아야 할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철저히 연단을 받아 보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대하시는대로 말과도 경주하고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의 비천함이 절대 우리를 침몰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천함이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며 그속에서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자족하며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능력으로 그와같이 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한데 처하게 하실 때에 능히 부한데도 처할 줄 아는 근사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줄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환경과 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편안한 땅에서나 무사하게 살아서야 어떻게 하겠습니다.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아내고 말과도 능히 경주해 내며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알아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삶을 살아내는 그 믿음의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정말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능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건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그 여건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을 놓고 기도하기 이전에 이와같은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능히 이겨살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간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잡아 그 믿음으로 능력을 받아 승리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만 가지고는 그의 믿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안정된 삶의 여건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은 그와같은 안정된 삶의 조건과 여건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여집니다. 미신적인 종교는 안정된 삶의 조건과 여건을 약속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거짖말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안정된 삶의 여건과 조건이 아닙니다. 어떠한 삶의 여건과 조건도 능히 뛰어 넘어 극복할 수 있는 삶의 능력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저들의 삶의 남들과 달리 늘 좋기만 하고 성공적이기만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들은 어떠한 삶의 여건과 조건속에서도 능히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자신은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와같은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하나님을 안정된 삶의 여건과 조건 때문에 믿으셨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정된 삶의 여건들이 흔들리게 될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흔들리게 되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어떠한 삶의 여건과 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해 낼 수 있는 삶의 능력을 얻는데 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능력을 깨닫고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우연을 믿지 않습니다. 매사가 필연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일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도와 뜻은 우리에게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그리고 좋게 느껴지든 그렇지 않게 느껴지든 언제나 선하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타난 사건과 환경만을 보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러한 일을 만나게 하셨을까 이와같은 사건과 일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무엇일까를 언제나 생각합니다. 모든 환경과 사건과 일들을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모든 실패와 고난과 역경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는 그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더 큰 성공과 축복을 받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는 근사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를 만나고 그로인하여 고난과 역경속에 빠지게 되는데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으실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회개와 돌이킴을 위함입니다. 지금 호주에 계시는 장로님 한분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 안수집사님이셨던 분입니다. 사업을 아주 잘 하다가 그만 어려운 일을 만나 부도를 내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감옥에 가지 갇혔던 일이 있었던 분입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하루 종일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또 교만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철저히 회개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는 중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나게 되었고 풀려난 후 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본시 사업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 다시 사업이 잘되게 되었고 전에 졌던 빚도 잘 갚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장로님에게 '장로님 그 때 잘 망하셨네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그 장로님은 무릎을 치면서 '목사님 맞습니다. 그 때 참 잘 망한 겁니다. 그 때 망하지 않았으면 저 망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망하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재미있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다. 아주 정확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 때 그 장로님을 망하게 하신 것은 망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라고 그리하여 다시 회복하고 더 잘되라고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중에는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일이 없는가를 꼼꼼히 살펴 볼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 연단을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12장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하나님께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예레미야의 질문은 왜 하나님을 믿도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의 삶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하고 사는 사람의 삶이 형통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같은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편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하나님의 이 질문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행자와 함께 경주하는 정도의 사람의 아니라 말과 경주하며 편안한 땅에서나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역경속에서도 능히 그것을 헤쳐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셔서 예레미야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격었던 고난과 역경에 대한 하나님의 뜻고 의도는 '연단'이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욥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역경을 당하는 이유가 정금과 같은 존재로의 연단과 단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의도중의 하나는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한 땅과 환경에서나 겨우 겨우 살아가는 나약자가 아니라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자족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의 능력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환난과 역경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면류관을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5장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란 '핍박중에도 의를 버리지 아니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는 핍박중에 더 빛이 나는 것입니다. 물론 순경(順境)중의 義도 중요하지만 역경(逆境)중의 義는 더 가치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를 빛내시기 위하여 우리를 때때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환경으로 몰아 넣으시는 때가 있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핍박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의도중의 하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믿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믿고 이해하게 되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고난과 역경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을 덧입게 될 때 우리도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비천함 속에서도 자족할 줄 알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되어 그때에도 기뻐할 수 있고 그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비천에 처했을 때,
첫째, 쉽게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둘째, 무조건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쓸데 없는 열등의식에 사로 잡히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리고 용감하게 그것에 직면합니다.
셋째,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얻어 그것을 보다 더 큰 성공의 기회와 발판으로 삼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와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함부로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요셉과 같이 밑바닥에서부터 열심히 다시 시작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 교회 교인들이 모두다 이와같은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부로 비천한 환경을 자초할 필요는 없으나 비천한 환경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고 힘쓰기 이전에 먼저 그 환경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극복해 낼 수 있기를 위해서 힘쓰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비천에도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지만 성공과 부요함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역경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성공과 부요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성공과 부요함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내야만 우리는 부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과 부요함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부요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부요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천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과 똑같아서 절대로 그의 삶에서 진정한 의미의 승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부요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부요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셨고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그날 부르셨습니다. 그는 내 영혼아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였으나 그에게는 그와같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비천한데 처할 줄 모른 사람도 많지만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줄로 착각하여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힘씁니다.
둘째, 물질이 은사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은사대로 물질을 바로 쓸 줄을 모릅니다. 무조건 쓰지 않고 모아만 두는 수전노가 되거나 아니면 사치와 방탕으로 물질을 탕진하는 탕자가 되거나 둘중의 하나가 됩니다.
셋째, 물질이 은사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도 모릅니다. 자연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넷째, 결국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생의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의 문제는 부한데 처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비천에 처하게 된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매사를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처리해 보십시다. 모든 일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그 뜻을 깨달아 어떠한 환경과 여건도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보십시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부요함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부한데 처할 줄 모르는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비천한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비천함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대로 열심히 이 어려움을 극복하여 비천한데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다. 회개 하여야 할 사람은 핑계하지 말고 회개하십시다. 작은 일 하나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보십시다. 사탄은 그것과 이일이 상관없는 일이라고 우리를 속이겠지만 속지 마십시다. 우리는 나의 죄 때문에 이와같은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상한 심령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십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면 사탄은 절대로 앞으로 우리를 시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험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면 손해를 보리만큼 철저히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단 받아야 할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철저히 연단을 받아 보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대하시는대로 말과도 경주하고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십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의 비천함이 절대 우리를 침몰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천함이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며 그속에서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자족하며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능력으로 그와같이 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한데 처하게 하실 때에 능히 부한데도 처할 줄 아는 근사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줄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좋은 환경과 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편안한 땅에서나 무사하게 살아서야 어떻게 하겠습니다.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아내고 말과도 능히 경주해 내며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알아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삶을 살아내는 그 믿음의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정말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능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건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그 여건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을 놓고 기도하기 이전에 이와같은 환경과 여건속에서도 능히 이겨살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간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잡아 그 믿음으로 능력을 받아 승리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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