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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인의 기독교적 교훈 (삿13:1-14)

본문

예루살렘 서쪽 22.5㎞ 지점에 위치하고 있던 단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생산치 못하므로 무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내는 엄청난 사태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는 여호와의 사자의 수태예고를 받았던 일이었습니다. 더우기 여호와의 사자가 예고한 그의 아들은 ‘나실인’이 된다고 하는 충격적인 메세지까지 겸하여 주었습니다. 나실인(나지르)이란 ‘헌신하다’, ‘봉사하다’, ‘구별하다’라는 말인 나자르에서 유래한 말로 구별한 자, 성별한 자, 헌신자 곧 바쳐진 자의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그것은,
I.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선행하고 있습니다(13:2-5) 소라 땅에 살던 마노아의 부인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마치 이삭의 어머니였던 사라(창11:30)와 야곱의 어머니였던 리브가(창25:2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삼상1:2),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눅1:7) 등과 같았습니다. 무자의 여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본래 잉태치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니 이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여 주었습니다(13:3). 그리고 그 사자가 예고한 아들은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까지 지목해 주었습니다(13:5). 정말 천만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 자신 편에서 일방적으로 알려온 메세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직접으로 선언된 메세지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그녀의 가정에 나타낸 1 주권적 계시요2 선택적 계시요 3 목적적, 계획적 계시요4 필연적 계시요 5 객관적 계시요 6 무조건적 계시요 7 불가항력적 계시였습니다. 그녀와 그 가정에 나실인의 출생을 예고한 자는 다름아닌 여호와의 사자(13:6, 9, 10, 13, 15-22)였습니다. 나중에 그 분의 이름을 물은 마노아 부부에게 자신의 이름을 또 가르쳐 주기를 ‘내 이름은 기묘니라’(13:18)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불시에 나타나 나실인의 아들을 예고한 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이 기묘자였습니다(사9:6). 그녀는 나중에 자기 남편에게 그분을 소개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게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 같아서 심히 두려워 했다고 하였습니다(사13:6).
그렇다면 나실인의 기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부모의 뜻과 목적이나, 요청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알고 보면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계획, 주권적 계획 속에서 우리들의 자녀가 온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므로 그 자식을 얻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보다 먼저 하나님의 기쁘신 작정이 먼저 있었고, 그것을 받게 하는 방법으로 인간편에서 기도하게 하실것입니다.
Ⅱ. 나실인의 내용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나실인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타나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실인의 서원 곧 맹세의 서원이라고 합니다.
첫째, 세속주의에서 몸을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13장 4절에
그러므로 너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것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민6:3-). 이 말은 여호와의 사자께서 그의 남편에게도 반복하신 말씀입니다(13:14).
둘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13:5)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1 경외, 존숭을 뜻하는 표식이요(민6:7)
2 그의 명령에 대한 지극한 순종과 헌신, 그리고 축복을 뜻함입니다. 머리는 피조물의 영광입니다. 존귀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마노아의 아들로 태어난 삼손의 경우에서 명백히 증거되었습니다. 그가 순종했을 때 힘이 더했고, 불순종 했을 때 곧 그 머리털의 비밀을 누설했을 때, 그는 머리털이 깎이워 졌고, 그 결과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민6:7). 이것은 나실인된 자가 모든 부정과 부패에서 떠나야 될 정결인의 삶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Ⅲ. 나실인은 사명인이라고 하였습니다. 13장 52절 하반절에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마노아 부부에게 더 감명적인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가정에 1 아들을 낳는 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2 그 아들이 나실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더욱 기쁜 소식입니다. 3 더우기 그 아들이 뚜렷한 목적 의식을 받아 가지고 출생한다는 것은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블레셋의 압제에서 죽음을 겪고 있는 자신들과, 자신들의 조국을 구원할 구국(救國)의 아들로 태어난다고 한 것입니다. 그의 아들은 이미 존재 의미와 목적과 계획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강국 블레셋의 침략 때문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엄청난 혼란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마노아의 아들, 곧 삼손이 이 일을 해 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그 아들은 우연히 태어난 우연이나, 맹목의 산물이 아니라, 구국인의 남자로 태어난다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명인으로 태어날 나실인이라고 하였습니다.
Ⅳ. 나실인의 기독교적 교훈 신약에 구세주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나실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유대인과의 충돌에서 계속해서, 변함없이 주장하기를
1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2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3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을 성취함이 십자가의 대속물이 됨이라고 하였습니다(막10:45).
4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받은 우리의 자녀들은 예외가 없이 신령한 나실인들입니다.
1. 하나님의 예정(계획)을 따라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듭났습니다. 영적 재 출생을 하였습니다(요1:12-13, 요3:5-6, 고후5:17).
2. 그리스도인으로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당원’을 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신약적 나실인의 표를 삼고, 성찬에 참여하게 하므로 신약적 나실인으로 맹세를 합니다.
3.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합니다.
그것이 1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2 주일성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사람의 사람된 제일의 본분을 다하게 합니다. 3 주 예수의 복음 전파를 삶의 목적으로 하는 선교적 삶을 가르치게 합니다. 저마다 타고난 재능은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나실인의 사명이 내용입니다. 그 모든 달란트 활용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바쳐지도록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고 그 목적 성취를 위하여 우리에게 수단으로 모든 건강, 지식, 재능이 주어졌음을 가르치고, 실행하게 합니다. 철두철미하게 사명인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아무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자가 없습니다. 엿새동안 네 모든 일을 다하는 부지런한 사명인으로 살도록 합니다.
4. 그리고 영원한 영생인으로 소망하고 살게 합니다. 결코, 유한한 이 세상은 우리에게 나그네요, 거류자요, 우거하는 객이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장차 예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상에서 완전히 구별하여 영생의 몸, 부활의 몸, 그리스도와 다시 살게 된다고 하는 하나님 창조 본연의 목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그리스도인은 나실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 자녀들을 성별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신 예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합니다. 뿐아니라 확실한 미래의 영생 소망을 통하여 불확실의 미래에서 우리 자녀를 구별시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신약적 나실인의 삶은 현실도피적이거나, 반(反) 역사적이거나, 반문화적이거나, 반지식적이란 말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사는 것’, 맛을 잃은 세상에 ‘소금’으로 사는 변화의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복음 선교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실인으로서의 사명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목적과 방향과 내용을 가지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이나 신약에 나실인의 교육은 모두 성공하고 축복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라의 아들 이삭이 성공하였습니다. 리브가의 아들 야곱이 성공하였습니다.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성공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의 아들 세례 요한도 성공하였습니다. 삼손도 성공중에 연약하였으나, 나중에 또 성공하여 그 이름이 히브리 신앙 영웅의 명단에 빛나고 있습니다(히11:32). 역사를 새롭게 창조한 모든 시대, 모든 역사의 주인공들은 그 대부분이 기독교적 나실인의 신앙과 교육과 삶에 의하여 나타났습니다. 건국 200년을 지난 오늘의 저 거대한 미국이 있게 된 것은 미국 각 분야 발전에 공헌한 사람의 90% 이상이 어릴 때 성경을 믿고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에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린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는 미국 케네디가의 비극을 잘 압니다. 그 가정은 대대로 로마 카톨릭을 신봉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전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의 부친은 양조공장을 경영해 부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조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후, 그의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카톨릭 신앙을 교육시켜, 그들로 하여금 성공의 길을 달리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그 아들 중 하나는 중병에 걸려 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들은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출세와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J. F 케네디 역시 오스왈드의 총격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 케네디의 비극은 여기에서 그친것이 아니었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올랐던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케네디가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에드워드 케네디 조차도 여비서와의 추문 때문에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늙은 케네디옹은 울면서 이렇게 고백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수십년 동안 술을 만들어 그 술을 마신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하며, 사랑과 안정을 빼앗았더니 이제 그 보응을 받는 구나!”라고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나실인의 규례에 포도주와 독주가 금지되었는데, 이러한 나실인의 규례를 파괴한 장본인 이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를 봅니다. 록펠러(Rocke feller. 1839-1937)는 세계 제일의 거부로써 손꼽혔던 사람입니다. 미국과 전세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이 그의 명성은 재계에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부와 명성을 타고 났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지독하게 가난해서 하루 4센트의 보수를 받아가며, 뜨거운 감자밭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청년의 시기에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아픔도 씹었습니다. 그러던 록펠러가 어떻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던가 역사상 가장 남에게 자선을 제일 많이 베푼 사람이 되었을까 98세까지 무명으로 살면서 장수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가 그것은 그가 바로 나실인적인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전적으로 성경을 믿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주일이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땐스 파티나, 기타 세상의 쾌락적인 유흥장에는 아예 갈 줄을 몰랐습니다. 식사 때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은 자기의 생활에 적용을 하였습니다. 그는 “만약에 내가 90센트의 주급 가운데서 십일조를 바칠 줄 몰랐더면, 지금 셀 수없는 금액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영적으로 나실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실인 곧 성별인(성도)으로 기쁘게 예정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를 영접하게 하므로 새로 출산(거듭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이름과 신분과 내용과 목적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실인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나실인적 그리스도인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인 축복의 사람을 받고야 말것입니다. 그 확실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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