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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서 승리한 야곱 (창32:24-30)

본문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체험을 하면 확신에 찬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잊을 수 없는 영적 체험을 두 번에 걸쳐 한 사람 이었습니다. 하나는 벧엘에서의 경험이고, 또 하나는 브니엘에서의 경험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함께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서 태어났으면서도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복을 받지 못한 것이 서운해서 형이 배고픈 것을 틈타서 팥죽을 쑤어 장자의 명분을 사 드리고,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챘다가 집에서 도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벧엘의 본 이름은 루쓰였는데, 형이 무서워 집을 나간 야곱은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가다가 루쓰라는 들판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에 닿았는데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13-15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음성을 들으면서 그는 꿈을 깨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베개 하였던 돌을 세워 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이름하고, 중대한 서원 세 가지를 했습니다.
창세기 28:20-22을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1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요 3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하고 서원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20여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외삼촌의 양을 치면서 두 아내와 두 여종의 몸에서 13남매를 낳고 종들을 거느리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 것입니다. 돌아오던 야곱은 요단강의 동쪽 지류인 얍복강 앞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거에 자기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 챘던 죄로 인하여 형 에서를 만나기가 몹시 두렸웠습니다. 그래서 그가 부리던 종들을 미리 보내서 정탐해 본 결과 그 형인 에서가 야곱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종 400인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마 야곱에게 복수하려는 형의 살기 등등한 도전이 아닐수가 없는 것 입니다. 이러한 때에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야곱은 이때에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아니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없슴을 깨닭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생에 최대의 결사적인 기도를 하나님에게 드린 것 입니다. 야곱은 어떠한 태도로 기도했습니까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1. 야곱은 하나님의 뜻과 언약에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32:9에 보면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내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 즉 약속을 이루어 주십사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나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졸라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시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세상을 영화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길을 미리 아시고 또 그 길로 가는 과정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이라는 방법을 우리로 하여금 그 뜻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이루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도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었고, 또 언약을 통해서 자신들이 그 뜻에 연결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위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그리고 땅의 티끌같이 번성하고, 또 천하만국을 복되게 하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뚯이 언약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연결이 된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과도 연결이 된 것입니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과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모두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순종하며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구한 것이 기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대로, 또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 줍시사고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의 날을 몇시간 앞두고 기도하실 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 있는 것 입니다.
2. 야곱은 확신의 사람으로 변하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32:26이하에 보면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던 천사가 날이 새려하므로 떠나고자 할 때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 않겠노라고 졸라댔습니다. 그 때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야곱도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처럼 몇번이나 언약도 받았고, 체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질 정도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사백명의 종을 이끌고 에서가 마주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확신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하면 알면서도 약합니다. 믿으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는 하나님이 살이 계심을 믿는 목사님이었고, 성경을 잘 아는 학자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미국으로 떠나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위험에 있을 때 그는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만큼의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같이 타고 있던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러한 풍랑 중에도 하나님을 오히려 찬양하고 구원의 확신속에 당당한 것을 보고는 새삼 깨닫게 된 것 입니다. 나는 무어냐 소위 목사 선교사 성경 학자가 아닌가 도데체 내가 왜 이러는가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에 모순이 있음을 발견하고 확신과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모자라면 문제가 생길때에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게 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 하시길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 하심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담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왜 필요했습니까 예수님이 이루어야 될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의 두려움과 고통을 이길 만큼의 확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지식이 많아도, 교회에 다닌지 오래 되어도 확신이 없으면 여전히 불완전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해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신을 같기위한 기도의 노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야곱의 기도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수 있습니까
3. 야곱은 자아가 깨어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창세기 32:25 후반부에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위골되었더라> 라는 말은 야곱에게 더 이상 의지할 힘이 업어진 것입니다. 환도뼈는 엉덩이 뼈의 힘줄을 의미 합니다. 이것이 위골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육체적인 힘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기도의 응답만이 이제부터의 살아갈 힘이라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될 만큼 자기가 파괴되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포기 할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됨다는 사실을 말 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아홉가지 열매가 언제 열립니까 자기의 의지, 자기의 감정, 자기과시, 자만과 교만의 자아를 다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게 믿음으로 순종할 때 성령님의 열매가 열립니다. 다시 말하여 자기의 지식, 재능, 경험,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모세는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미디안으로 망명해야 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마챤가지입니다. 왕의 지위와 권세가 불가능이 없는 자신감을 가졌을 때, 우리아의 아내로 말미암아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지위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기독교인을 핍박했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아니하면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순종의 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공은 무엇이고 승리는 무엇 입니까 오직 순종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그 곳에 다윗처럼 승리도 있고, 솔로몬 처럼 성공도 있고, 요셉처럼 존귀와 영광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처럼 부활도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의 완전히 자기 파괴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의 형 에서 앞에서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할 수 있었습니다. 형을 골탕먹이고, 아버지를 속이면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던 그 옛날의 당돌했던 모습이 다 죽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에서는 자기 앞에 일곱번이나 절하는 야곱을 발견했을 때 그만 복수심에 불탔던 그의 마음도 녹아지고 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세상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 전에 먼저 우리들 각자가 완전한 자기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오랄 로버츠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은혜를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1.받을 준비가 되 있어야 한다.
2.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라.
3.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4.성령님 안에서 성경을 상고하라.
5.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라.
6.그의 지시에 따라 행하라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의 얍복강가의 기도는 이런 기도였습니다.
1 하나님의 뜻과 언약대로 이루어지면 된다는 믿음의 기도,
2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내어 쫓는 확신을 추구한 기도 였으며,
3 그리고 자아를 완전히 죽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순종괴 신뢰의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를 본받고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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