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역사를 일으킵니다. (왕상18:41-46)
본문
새벽에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이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옛말에 “잔칫날 잘 먹기 위하여 굶다가 잔칫날 죽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평소에 공부를 잘하다가 시험 때를 잘 넘기지 못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운동 선수가 경기를 잘하기 위해서 강한 훈련을 받다가 경기 임하기 직전에 부상을 입어 출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차게 잘 준비해 왔습니다. 내일부터 제3차 춘계특별새벽기도회 를 가집니다. 온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합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나의 순간 순간의 삶의 발자취에 아름다운 자국을 남깁시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영적인 교통입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내리는 은혜의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은혜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창세기 6:8). 죄악이 관영한 세상이지만 노아의 의로운 옷을 더럽히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고”(디모데후서 2:1)라고 했습니다. 은혜 아래 있을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강한 성도가 됩니다. 중동지역에는 년중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초목들이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밤에 내리는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이슬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오늘은 엘리야의 기도를 배우고자 합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독백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응답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에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서 5:17-18)고 했습니다.
첫째:큰비의 소리를 들읍시다. 읽을말씀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의 담력이 어디서 나왔는가 엘리야가 지금 이러한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아합의 심기가 먹고 마실 만큼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무슨 배짱으로 아합에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있는 영적인 용기요, 담력입니다. 그가 지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인을 기손 시냇가에서 죽이고 올라와서는 아합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기근 전국에 지진 상태요, 그들의 선지자들도 다 죽은 상태인데 그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아합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비가 묻어 오는 환상적인 계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은 성령님의 은혜속에서 자라갑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믿음이 자라야 세상과 마귀와 사단의 권세를 이깁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2)고 했습니다. 물질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환란의 바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석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천지가 변하는 사건이 일어나도 태산같은 믿음만 있으면 승리합니다. 엘리야의 말씀은 엘리야의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하늘 문이 닫힌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죄악의 장벽이 가리워져서 그러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우상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9:2)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가로놓인 죄악의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둘째:땅에 무릎을 꿇읍시다. 읽을말씀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열왕기상 18:42) 무릎이 강한 자가 이깁니다. 하나님은 무릎의 사람을 쓰십니다. 무릎의 사람이 역사를 창조해 나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로 할려고 합니다. 머리가 무릎의 감동을 받지 않은 이성과 지각은 마귀와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맙니다. 당신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어야 합니다. 당신의 이성과 지각과 아이디어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님에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의 사역에 하나님이 보호와 간섭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은 것은 자신의 이성적인 지각을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하 아래 두겠다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거지 소경 바디메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7)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만나 주셨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마가복음 7:26)라고 했습니다.
개같이 취급을 받는 여인도 만나 주셨습니다. 창기와 같은 세리도 만나 주십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8:13) 기도응답에 확실한 보장은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사례가 없습니다. 절대의존은 절대보장입니다. 땅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완전한 항복입니다. 그는 가장 높이 올라가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그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가장 비천한 자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가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이요,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하나님께 완전한 항복선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 4:6)고 했습니다.
셋째:일곱번까지 계속 기도합시다. 읽을말씀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서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43-44) 영적인 안목이 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인을 볼 줄 아는 눈이 열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운동장이요, 영적인 경기장입니다. 성도들은 십자가 깃발을 든 주님의 용사들입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감독과 코치가 순간 순간 보내는 싸인과 신호를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선수가 되고 선수의 수명이 길어집니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홍해 앞에 지팡이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애굽기 14: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골리앗 장군과 블레셋 군대 앞에 십대 소년 다윗과 물맷돌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 17:45)고 했습니다. 주님은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로 수만의 무리를 먹였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매”(마가복음 6:4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기도는 절대로 부도나는 법이 없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처럼 그렇게 급하게 서두러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일곱번까지 가게 하심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고 했습니다. 다섯째:아합을 앞서갑시다. 읽을말씀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열왕기상 18:45-46) 하나님은 당신이 앞서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소금으로 부패를 막고 빛으로 어두움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인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엘리야는 구보로 달려갔으나 마차를 타고 가는 아합을 앞질러 갔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금수례를 타고 가는 자보다 맨발로 뛰어가나 복음의 비밀을 소유한 자는 앞서가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하면 세상을 앞서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기도응답을 받고 나니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님세례를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서 5:17-18)고 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십니다. 당신에게도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의 기도를 이러했습니다. 큰비의 소리를 듣고 기도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했습니다. 일곱번까지 낙심하지 않는 기도했습니다. 아합을 앞서가는 능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고”(디모데후서 2:1)라고 했습니다. 은혜 아래 있을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강한 성도가 됩니다. 중동지역에는 년중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초목들이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밤에 내리는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의 이슬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오늘은 엘리야의 기도를 배우고자 합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독백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응답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에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서 5:17-18)고 했습니다.
첫째:큰비의 소리를 들읍시다. 읽을말씀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의 담력이 어디서 나왔는가 엘리야가 지금 이러한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아합의 심기가 먹고 마실 만큼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무슨 배짱으로 아합에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있는 영적인 용기요, 담력입니다. 그가 지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팔백오십인을 기손 시냇가에서 죽이고 올라와서는 아합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기근 전국에 지진 상태요, 그들의 선지자들도 다 죽은 상태인데 그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아합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비가 묻어 오는 환상적인 계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이 믿음은 성령님의 은혜속에서 자라갑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믿음이 자라야 세상과 마귀와 사단의 권세를 이깁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2)고 했습니다. 물질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환란의 바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석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천지가 변하는 사건이 일어나도 태산같은 믿음만 있으면 승리합니다. 엘리야의 말씀은 엘리야의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하늘 문이 닫힌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죄악의 장벽이 가리워져서 그러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우상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9:2)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가로놓인 죄악의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
둘째:땅에 무릎을 꿇읍시다. 읽을말씀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열왕기상 18:42) 무릎이 강한 자가 이깁니다. 하나님은 무릎의 사람을 쓰십니다. 무릎의 사람이 역사를 창조해 나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로 할려고 합니다. 머리가 무릎의 감동을 받지 않은 이성과 지각은 마귀와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맙니다. 당신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어야 합니다. 당신의 이성과 지각과 아이디어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님에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의 사역에 하나님이 보호와 간섭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은 것은 자신의 이성적인 지각을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하 아래 두겠다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거지 소경 바디메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가복음 10:47)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만나 주셨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마가복음 7:26)라고 했습니다.
개같이 취급을 받는 여인도 만나 주셨습니다. 창기와 같은 세리도 만나 주십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8:13) 기도응답에 확실한 보장은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사례가 없습니다. 절대의존은 절대보장입니다. 땅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완전한 항복입니다. 그는 가장 높이 올라가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그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가장 비천한 자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가 산꼭대기로 올라간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이요,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하나님께 완전한 항복선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 4:6)고 했습니다.
셋째:일곱번까지 계속 기도합시다. 읽을말씀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서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43-44) 영적인 안목이 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인을 볼 줄 아는 눈이 열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운동장이요, 영적인 경기장입니다. 성도들은 십자가 깃발을 든 주님의 용사들입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감독과 코치가 순간 순간 보내는 싸인과 신호를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선수가 되고 선수의 수명이 길어집니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홍해 앞에 지팡이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애굽기 14: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골리앗 장군과 블레셋 군대 앞에 십대 소년 다윗과 물맷돌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 17:45)고 했습니다. 주님은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로 수만의 무리를 먹였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매”(마가복음 6:4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기도는 절대로 부도나는 법이 없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처럼 그렇게 급하게 서두러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사환에게 일곱번까지 가게 하심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고 했습니다. 다섯째:아합을 앞서갑시다. 읽을말씀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열왕기상 18:45-46) 하나님은 당신이 앞서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소금으로 부패를 막고 빛으로 어두움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인들에게 밟히게 됩니다. 엘리야는 구보로 달려갔으나 마차를 타고 가는 아합을 앞질러 갔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금수례를 타고 가는 자보다 맨발로 뛰어가나 복음의 비밀을 소유한 자는 앞서가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어떻게 하면 세상을 앞서갈 수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기도응답을 받고 나니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부탁하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님세례를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야고보서 5:17-18)고 했습니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십니다. 당신에게도 엘리야의 기도가 있으면 엘리야의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의 기도를 이러했습니다. 큰비의 소리를 듣고 기도했습니다. 땅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했습니다. 일곱번까지 낙심하지 않는 기도했습니다. 아합을 앞서가는 능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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