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단6:10)
본문
우리 모두 기도운동을 일어킵시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3월 10일-30일(21일간)까지 제3차 춘계특별새벽기도회을 가집니다.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기도할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연이어 땅까지 주신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제2의 도약기로서 선교원을 개원케 하셨습니다. 선교원은 교회개척 못지 않게 중요한 사역입니다. 저는 밀알선교원에서 자라가는 새싹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적인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 지금부터 장학금을 적립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기도할 문제가 많습니다. 환보사태로 인하여 국민경제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지도자들의 정치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국력의 소모가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십이란 수는 고난에 대한 상징적인 수입니다. 모세의 광야 사십년이나 엘리야의 사십일 호렙산행이나, 주님의 사십일 금식은 다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부활주일 이전의 사십일을 주님의 고난과 고통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세속적인 즐거움을 절제하면서 살고자 경건한 종들은 사순절을 지킵니다. 이러한 기간이 정해진 것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부터입니다.
토마스 아켐퍼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금식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시기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치지 않을 때에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축복을 받을 때에만 찬양합니다. 자기 위로와 만족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속에서도 항상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아멘 다니엘의 기도를 배웁시다. 우리는 특별 기도주간에 앞서 다니엘에게 영적인 큰 도전을 받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운동은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다니엘은 놀라운 역사를 일어켰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기도는 어떠했는가
첫째:어인이 찍혀서도 기도합시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했습니다. 그는 어인이 찍힌 것을 보고도 기도했습니다. 그 어인이 무엇인가 다리오왕이 통치할 그 때에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도에는 방백을 세우고 그 위에 3총리를 두어 다스리게 하셨는데 다니엘은 그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그 세 총리 중에 가장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달동안(31일간) 왕 외에는 다른 어떠한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에 이 법을 어기면 사자굴에 집어넣게 했습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다니엘 6:9)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어인이 찍혀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단은 당신이 기도하지 못하게 교묘하게 어인으로 묶습니다. 당신의 환경을 기도하지 못하게 묶습니다. 기도할 수 없도록 사건을 일어킵니다. 당신의 발과 건강을 묶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사단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악인의 꾀로 죄인의 길로 오만한 자의 자리를 앉게 하여 기도를 포기하게 합니다. 바울은 도무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인데 기도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25-26)고 했습니다. 시간적으로 밤중이지요, 장소적으로 옥중이지요, 육체적으로는 피투성이가 된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시다. 성전중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성전 중심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올 때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것을 작정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우주의 중심이요, 모든 인간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잃어버린 인생은 중심을 잃은 자와 같습니다. 중심을 잃어버렸으니 환경따라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중심에 언약의 말씀이 있으니 환경을 극복할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천국이지만 지상 성도들의 중심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멜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킬 때 성막중심으로 생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은 성민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눈은 항상 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은 시온산입니다. 시온산에는 시온성이 있습니다. 그 시온성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에는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가 있으며, 그 안에 언약궤가 있으며, 그 언약궤 위에 시은소 보좌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바로 그는 그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합시다. 담대하게 기도했습니다.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열린 창에서 기도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일생동안 부르짖어 기도하실 것인데 한달정도는 쉴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되 문을 닫고 기도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문을 열고 열린 창문에서 기도했을까 이전에 하던 그 방법 그대로 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 올 때 이미 그 마음에 뜻을 정했습니다(다니엘 1:8). 우상제물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며,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을 것이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것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는 변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뜻이 일정한 초지일관된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오순절을 통과한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19-20)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을 통과한 이후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령님은 비급한 자를 담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넷째:무릎꿇어 기도합시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항복의 자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항복했습니다. 겸손하게 낮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고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어 켰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력은 왕의 권세도 두렵지 않고 굶주린 사자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는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담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한 경우가 없습니다. 세상을 정복한 자들은 다 무릎으로 살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무릎으로 아합과 그 무리를 정복했습니다. 갈멜산 기도는 무릎의 기도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가라”(열왕기상 18:42-43)
엘리야의 기도는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섯째:감사함으로 기도합시다.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의 사람입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같은 동료들의 중상과 모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직의 박탈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으니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았던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수십년 전에 포로로 잡혀올 때 십대의 몸으로 죽었을 몸인데 지금까지 산 것이 덤으로 산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여 감사할 뿐이며, 나아가서 이전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번에도 함께 하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는 하늘보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한 민족의 흥망성쇠가 하늘 문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하늘문을 닫으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막아도 주님이 여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늘문을 여는 열쇠는 감사의 키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생활철학이 감사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0-21)고 했습니다. 그에게 주신 어려운 삶이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어인이 찍혀서도 기도합시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시다.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합시다. 무릎 꿇어서 기도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토마스 아켐퍼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금식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시기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치지 않을 때에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축복을 받을 때에만 찬양합니다. 자기 위로와 만족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속에서도 항상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아멘 다니엘의 기도를 배웁시다. 우리는 특별 기도주간에 앞서 다니엘에게 영적인 큰 도전을 받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운동은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다니엘은 놀라운 역사를 일어켰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기도는 어떠했는가
첫째:어인이 찍혀서도 기도합시다.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했습니다. 그는 어인이 찍힌 것을 보고도 기도했습니다. 그 어인이 무엇인가 다리오왕이 통치할 그 때에 전국을 120도로 나누고 도에는 방백을 세우고 그 위에 3총리를 두어 다스리게 하셨는데 다니엘은 그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그 세 총리 중에 가장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일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달동안(31일간) 왕 외에는 다른 어떠한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에 이 법을 어기면 사자굴에 집어넣게 했습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다니엘 6:9)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어인이 찍혀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단은 당신이 기도하지 못하게 교묘하게 어인으로 묶습니다. 당신의 환경을 기도하지 못하게 묶습니다. 기도할 수 없도록 사건을 일어킵니다. 당신의 발과 건강을 묶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사단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악인의 꾀로 죄인의 길로 오만한 자의 자리를 앉게 하여 기도를 포기하게 합니다. 바울은 도무지 기도할 수 없는 상황인데 기도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사도행전 16:25-26)고 했습니다. 시간적으로 밤중이지요, 장소적으로 옥중이지요, 육체적으로는 피투성이가 된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둘째: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시다. 성전중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성전 중심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올 때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것을 작정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우주의 중심이요, 모든 인간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잃어버린 인생은 중심을 잃은 자와 같습니다. 중심을 잃어버렸으니 환경따라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중심에 언약의 말씀이 있으니 환경을 극복할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천국이지만 지상 성도들의 중심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전이나 신약의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멜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시킬 때 성막중심으로 생활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은 성민의 생활의 중심입니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성전이요 교회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눈은 항상 산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은 시온산입니다. 시온산에는 시온성이 있습니다. 그 시온성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에는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가 있으며, 그 안에 언약궤가 있으며, 그 언약궤 위에 시은소 보좌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바로 그는 그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합시다. 담대하게 기도했습니다.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열린 창에서 기도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일생동안 부르짖어 기도하실 것인데 한달정도는 쉴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되 문을 닫고 기도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문을 열고 열린 창문에서 기도했을까 이전에 하던 그 방법 그대로 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 올 때 이미 그 마음에 뜻을 정했습니다(다니엘 1:8). 우상제물로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며,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을 것이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것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는 변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뜻이 일정한 초지일관된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오순절을 통과한 사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19-20)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을 통과한 이후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령님은 비급한 자를 담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기쁨으로 순교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넷째:무릎꿇어 기도합시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항복의 자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항복했습니다. 겸손하게 낮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아니고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어 켰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력은 왕의 권세도 두렵지 않고 굶주린 사자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는 보이는 사람 앞에서는 담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한 경우가 없습니다. 세상을 정복한 자들은 다 무릎으로 살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무릎으로 아합과 그 무리를 정복했습니다. 갈멜산 기도는 무릎의 기도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가라”(열왕기상 18:42-43)
엘리야의 기도는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섯째:감사함으로 기도합시다. 감사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의 사람입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같은 동료들의 중상과 모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공직의 박탈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으니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았던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수십년 전에 포로로 잡혀올 때 십대의 몸으로 죽었을 몸인데 지금까지 산 것이 덤으로 산 것입니다. 그러니 오히여 감사할 뿐이며, 나아가서 이전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이번에도 함께 하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는 하늘보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한 민족의 흥망성쇠가 하늘 문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하늘문을 닫으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막아도 주님이 여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늘문을 여는 열쇠는 감사의 키입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생활철학이 감사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0-21)고 했습니다. 그에게 주신 어려운 삶이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어인이 찍혀서도 기도합시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시다.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합시다. 무릎 꿇어서 기도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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