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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조만 (요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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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조만이란 기도 응답의 빠르고 늦고를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어떤 기도는 즉각 들어주시는가 하면 어떤 기도는 안들어 주시고 어떤 기도는 한달후에 혹은 1년후에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랜후에 들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 마리아와 마르다가 오라버니가 죽을 병 든것을 예수님게 알렸습니다. 이 병은 보통 약을 먹어서 고칠병도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는 살릴 수 없는 아주 중병이었기에 사경을 헤메는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다급하니 마르다와 마리아는 100리밖에 떨어져 계신 예수님께 당신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지금 병들어 사경을 헤메고 있으니 급히 와달라고 하는 전갈을 보냅니다. 예수님은 그 급한 보고를 들으시고 “그래 알겠다!” 하시며 시치미를 뚝 떼시고 하루 이틀 지체 하시다가 사흘째 되는 날 “어디 가보자!” 하시면서 벌써 죽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물론 그 결과가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불평은 없겠지만 이 때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일각이 여삼추라! 빨리 주님이 오시면 우리 오라버니가 살아 나겠는데 예수님은 더디 오시니.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태평스럽게 묵던 곳에 이틀씩이나 더 묵으시다가 사흘째 되는 날 이슬렁 어슬렁 가셨지만 때는 이미 늦어 그만 나사로가 죽은 후였습니다. 그러니 마리아와 마르다가 얼마나 실망했겠으며 어저면 그러실 수 있냐고 야속한 주님이시라고 얼마나 불평하고 원망했겠습니까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틀이나 계시던 곳에서 지체를 하시고 급히 가시지 않았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다 아셨습니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나사로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돌릴 목적이 있었던 것 다 아셨고 나사로의 부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사건이 될것이라는 것도 다 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이나 당사자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하고 실망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도 그렇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조급하게 주님을 기다린것처럼 우리들도 종종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만 눈앞에 있는 것 밖에 볼 줄 모르던 우리들이기에 당장 기도의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회의를 품었던 적이 어디 한 두번입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즉각 응답해 주실 때도 있지만 본문과같이 우리의 기도에 대해 응답을 지체하실 때도 있으며 때로는 기도한 제목이 아닌 다른것을 주실 때가 있으며 아예 안주실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할때 즉각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기도에 대한 온전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응답의 조만과 함께 몇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마7:7-11에 보면 “구하라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악하지만 자기 자식에게만은 얼마나 진실하묘 얼마나 선량하며 얼마나 희생적이냐 인간의 부자간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아들과 딸들이 구하는데 어찌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자상하게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하면 응답하마’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빌4:6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도하는 자에게 인간의 상식과 지식과 이치 이상의 다른 각도에서 놀라운 응답을 주시마 하고 성경은 약속했습니다. 또한 마6:31-33에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식주 문제 가지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처절하고 비참하게 살지 말고 높은 데다가 뜻을 두고 살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와같은 기도의 약속은 지극히 지극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죄많은 세상에서 연약한 몸을 가지고 사는 일이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아시기에 행여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고생할세라, 행여나 답답한 일을 당하여 절망할세라, 행여나 곤란한 문제에서 방황할세라 끔직이도 사랑하시고 배려하시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모로 보면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것은 요3:16 말씀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 지도 모릅니다.
마11:28의 말씀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딸자식을 키워 시집을 보냅니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살림살이, 형제들이 마련해준 살림살이를 차에 가득 싣고 새 살림을 떠나려고 합니다. 떠나기 전 이 딸은 70이 넘으신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인사를 받은 노 어머니 ‘가냐 그러면 나가봐야지!’ 하시면서 밖으로 나와 차에 가득 실려 있는 살림살이를 이리저리 훑어 봅니다. 그리고 ‘이것 가지고 되겠냐’ 하시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권한 내에서 집안밖을 돌아다니며 하다못해 몽당 빗자루나 깨진 쪽박이라도 줏어 넣어 주면서 ‘얘야 새 살림 차리다다 보면 이런것들이 다 필요할 때가 있느니라.’ 하시면서 이삿짐에 한구석에 끼워 줍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얘야, 살다가 필요한 것이 있거든 와서 얘기해라. 더 줄께!” 그 한마디 속에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까 주고 주고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다 주고도 그래도 못다 준것 같아서 행여나 고생할세라, 행여나 불편할세라, 행여나 아쉬울세라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에서 나온 말이 “아쉬운 것이 있거든 와서 얘기해라. 또 줄께!”하는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안주셨습니까 우리가 입은 것이 육체이기 때문에 육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늘로 부터 땅으로 부터 바다로 부터 안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강은 강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먹는 것만해도 그렇습니다. 짭짤한 것 먹다가 싫증나면 달콤한 것 먹고 달콤한것 먹다가 싫증나면 고소한 것 먹고 한가지 맛만 있으면 금방 싫증나니까 얼마나 많은 맛을 주셨습니까 꽃도 그렇습니다. 흰꽃 보다 싫증나면 노란꽃 보고, 노란꽃 보다가 싫증나면 붉은꽃 보고, 붉은꽃 보다 싫증나면 파란꽃 볼 수 있도록 가지가지 색깔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육체가 이 땅에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주셨습니다. 또한 사람은 몸둥이가 다가 아닌 정신적인 동물이기에 정신적으로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문화도 주시고, 예술도 주시고, 음악도 주시고, 시도 주시고.그리고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아시고 가정도 주시고, 친구도 주시고 민족도 주시고, 국가도 주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만물의 영장인지라 영적인 요소가 필요하기에 영적인 충족을 위해 성자 예수님도 주시고, 성령님도 주시고, 성경도 주시고, 교회도 주시고, 못났기는 하지만 전도사도 주시고, 때를 따라 은혜도 주시고무엇을 안 주셨습니까 육체를 위하여 자연 물질 세계를 다 주셨습니다. 정신을 위하여 정신적인 셰계를 다 주셨습니다. 영을 위하여 영적인 세계도 다 주셨습니다.
이렇게 다 주셔놓고도 행여나 이 땅에 살아가는데 그래도 뭔가 부족할까봐 “구해라 더 줄께. 찾아라 만나줄께. 두드려라 열어 줄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거든 구하기만 해라. 그러면 내가 기가막히게 응답하마. 너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채워 주마”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마치 부모가 딸 살림 떠나는 것처럼 “더 줄께!” 하는 심정과 같이 기도를 약속하셨겠습니까 이 사실에 대해 여러분 가슴 뜨겁게 고마워 해본적이 있습니까 기도 시간에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에 감격해 본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정신 운동이 아닙니다. 기도는 판토마임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약속이요 특권입니다. 기도의 약속속에 담겨 있는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주고 주고 또 주고 다 주고도 행여나 부족할세라. 행여나 불편할세라, 행여나 방황할세라, 우리에게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고마우심에 가슴 뜨거워 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속에 숨어 있는 사랑의 감격을 안고 “아버지-”하고 부르는 아들과 딸의 행복이 기도 시간에 여러분을 황홀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기도를 돕기위해 성령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주고 주고 다 주어 놓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귀를 바짝 세우시는 하나님, 그래도 인간인지라 기도를 잘못할까봐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우리에게 배치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롬8:26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님도.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세계에서 사니까 물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 세계에서 사니까 시간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잘못 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쳐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낸신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해 자식을 유치원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입학을 시켜 놓았습니다. 방도 마련해 주고, 교과서도 사주고, 학자금도 대주고 하여튼 공부에 필요한 것이라면 다 주었습니다. 그래 놓고도 공부하는데 혹 부족한 것이 있을까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다 줄께!”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행여나 공부하는데 부족한 것이 있을까 해서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물어보고 틀리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라고 가정교사 하나를 옆에 딱 앉혀 주었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고 하니 모든 것 다 주시고 그리고도 모자를까봐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기도의 언약을 주신 다음에 그래도 못믿어워 성령님을 보내시어 바로 내 곁에 앉아 기도할 때 바른 생각 갖게 하시고, 기도할 때 바른 회개 하게 하시고, 기도할 때 올바른 간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세밀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 사랑을 까닫기 바랍니다. 그럼 실제적으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어떻게 도우십니까 예를 들어 기도할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입을 엽니다. 그러나 사실 기도의 모습은 갖추었습니다만은 하루종일 세상것만 생각하고 거기에 골몰하던 마음 가지고 무슨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그저 어색하고 암담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한 5-10분쯤 지나게 되면 마치 동편에 아침해가 훤하게 비쳐 오듯이 기도의 세계가 희미하게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심령의 눈이 밝아 옵니다. 무엇을 구할것인가 순서가 정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 현상도 심리현상도 아닌 내 곁에 게시는 성령님께서 나를 기도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기도가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기도할 때는 욕심의 기도가 나오고 나 중심의 기도가 나옵니다.(내 집, 내 돈, 내 아들, 내 남편.) 그러나 이런 기도가 어느 정도 계속되다보면 어느 순간에 자기의 초라한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구질구질한 모습이 발견되면서 하나님앞에 진지해 집니다. 진실해 집니다. 때로는 눈물이 터지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회개가 나오는데 “아버지 하나님, 내가 지금 주님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초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누더기만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친년 같습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뜻대로 하옵소서! 이제는 아버지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제가 다 하겠습니다. 아버지 즐거워 하시는 일이라면 제가 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의 기도의 경지인 것입니다. 욕심으로 기도하던 내가 어떻게 신령한 것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까 나 중심의 기도에서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바뀌었습니까 감정과 혈기로 기도하던 내가 어떻게 상대방을 사랑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까 복수심에 불타던 기도가 어떻게 상대방을 용서하는 기도가 되었습니까 이것이 바로 내곁에 계셔서 나를 인도하여 이러한 기도의 경지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참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들어가야 할 마땅한 기도의 경지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에게 얼마나 깊은 기도가 있습니까 일주일 내 내 얼마나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가 있습니까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신령하고 황홀한 세계에 도달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그러면 기도 응답의 조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렇게 기도할 때 어떤 때는 즉각 응답을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의 기도나 엘리야의 기도나 다윗의 기도나 사무엘의 기도나모두 모두 즉각적으로 응답받은 실례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있을때 기도합니다. 궁지에 몰렸을때 기도합니다. 금전 문제때문에 기도합니다. 어떤 원수문제때문에 기도합니다. 물론 정욕을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두 마음을 품은 불신앙의 기도는 더 더욱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 물론 제가 건강해서 죄지으면서 오래오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왕 하나님께 헌신한 몸, 기왕이면 일하다가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병들어 일 못하다가 병상에서 하나님 오라하시면 그렇게 가겠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나 손해이십니까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제게 건강 주시옵소서.” 어제 밤에 이렇게 기도하고 잤는데 오늘 아침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다 낳아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한 예입니다. 이런 경우는 아는 자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금전문제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 기도합니다. 그렇다고 돈떼먹은 사람 망하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이 사람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배 마치고 집에 갔더니만 그 사람이 돈갚으러 와서 사람이 없으니까 대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괘씸한 사람이 있습니다. 원수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다 보니 그 사람이 불쌍해져 “하나님, 그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고니 집에 돌아오니 대문 틈에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끼어져 있습니다. 발신자를 보니 바로 그 원수같은 사람입니다. 뜯어서 읽어보니 자기가 큰 죄를 지었으니 자기를 용서해 달라는 편지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할때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고민스러운 문제를 가지고 무릎을 꿇습니다. 원망스럽고 절망스럽고 어떤 사람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한참 기도를 하는데 기도시작할 때는 원한 가지고 기도했는데 조금 기도하다보니 갑자기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이 그 사람이 불쌍해 집니다. 처음에는 벼락맞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것이 이제는 용서하고 사랑해 달라는 기도로 바뀝니다. 절망스러운 문제가 기도하는 중에 소망으로 바뀝니다. 고민스러운 문제가 기도하는 중에 기쁨으로 바뀝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의 마음속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켜 줍니까 정신 현상입니까 심리 현상입니까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속에 역사하셔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즉각 응답해 주시는 실례인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어떤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을 안 주실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마리아 마르다가 사람을 일부러 시켜서 예수님 빨리 내려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는데도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 오느라고 하루가 지나 사흘이 지난 후에야 예수님이 턱 나타나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나사로는 죽어 장사지내 썩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을 안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때는 한달 후에 응답이 될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1년후에 응답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 어두운 눈 가지고, 내 짧은 지식가지고 기도 응답이 즉각적으로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진실성에 대하여 언짢게 생각하는 조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멀리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넓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완전한 것을 보십니다. 완전하신 눈을 가지고 먼 미래를 보시는 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중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면 위험하다고 판다하실 때 즉각적으로 안이루어 주십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아버지 책상에 있는 칼을 달라고 졸라 댑니다. 아이 생각에 꼭 가졌으면 좋겠나 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래” 하고 대답만 해놓고는 시치미만 떼지 줄 생각을 안합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 마지막 유치원을 마치고 국민학교에 등교하는 날, 그 아이가 책가방을 챙끼고 있는데 “아무개야!” 이름을 부릅니다. 가보니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칼이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칼을 필통에 넣어 주면서 “연필깍을 때 조심해서 써라.”고 주의를 줍니다. 왜 유치원 다닐때는 안주셨다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그때서야 줍니까 유치원 다닐때는 아직 칼이 필요치 않을 뿐더라 다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듣기는 들었지만 응답을 보류해 놨다가 1년이 지난 다음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칼을 줍니다. 우리의 기도도 때로는 응답 받아서 그 것 소화못해 잘못 쓸 위험성이 있을 때는 듣기를 들어도 “오냐 내가 알고 있다. 그러나 적당한 때 가서 응답하마!” 하고 즉각 응답을 안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때는 감당할 힘이나 인격이 부족할 때 조금 더 훈련을 시켜 인내심을 기른다든지,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신다든지, 물질 사용하는 법을 훈련시키신다든지 해서 감당할 만한 인격과 신앙과 믿음과 품성이 갖추어 졌을때 비로소 응답해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간구하여 즉각 응답이 안된다고 해서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다 아시고 적당한 시기에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셋째, 어떤 때는 기도했는데 기도한 것은 안주시고 엉뚱한 다른 것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몸에 찌르는 가시가 너무 괴로워 이것 없애 달라고 기도했는데도 하나님 그 기도 안들어 주시고 대신에 그 가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안질이라는 가시가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고 그것을 통하여 바울이 약해지니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것을 구했는데 이것은 안주시고 다른 것을 주시는 것은 달라고 한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따라서 내가 달라고 하는 것 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훨신 더 줗은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말입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간 한 어린아이가 음식점 진열장을 놓여 있는 만두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어머니가 알았다고 대답은 하면서 그냥 갑니다. 이 아이가 섭섭해서 웁니다. 한골목을 지나니까 어머니가 음식점에 쑥 들어가 만두를 사줍니다. 아이는 심통이 나서 항의 합니다. “엄마 왜 아까 그 것 안사주고 이거 사주는 거야” 어머니가 말합니다. “그것은 초로 만든 모조품이야. 그것은 먹을 수가 없어!” 어떤 때 우리는 멍청하게 먹지도 못하는 모조품을 달라고 하는 아이같이 엉뚱하고 유치한것 구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당시는 안이루어 주시지만 얼마 안가서는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신앙생활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하셨으리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네쩻로 응답을 전혀 안주는 기도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깜깜 무소식이라. 이것도 응답입니다.
어느 먼 훗날가서 그 때 응답받지 못한 기억을 되살려 그 때와 오늘의 사정을 비교해 보면 “아하, 맞았어, 그 때 만일 응답해 주셨다면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갔을 거냐, 그 때 응답을 안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것이 아닌가 아하, 이것도 응답이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 신앙생활 잘하는 어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서 땅을 팔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땅만은 안팔립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신문에 뉴스가 나기를 그 동네로 고속도로가 지나게 되었고 팔려고 내놓았던 장로님 땅은 휴게소가 서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몇백배 비싸게 팔려서 아주 풍성하게 교회건축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말을 맺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 응답을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무슨 권리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바른 기도 할 수 있도록 성령님까지 파송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기도를 때로는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어떤 때는 한참 후에 응답해 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다른 것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안들어 주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일 가보면 그것이 바로 응답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얼마나 여러분의 생활에 기도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능력은 믿음과 기도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기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믿음의 여부를 판단됩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기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능력의 여부를 판단됩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고아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해서 살아가야 합니다만 부모 모신 자식은 매사를 어버이와 의논하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살아 갑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셨으니 기도로 대화하고, 기도로 아뢰이고, 기도로 응답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천성가는 험한 길, 기도없이는 못갑니다. 우리 가정, 기도 없이는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 기도 없이 불량자 되는 길 막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기도 없이 부흥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전도사님, 성도들의 기도없이 능력 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기도가 있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 힘입어 한번 뻔대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영광스럽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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