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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시116:1-2)

본문

기도는 가히 영적 생명의 호흡이라 할 만하다. 구원의 은혜가 역사하는 곳에는 기도가 있기 마련이다. 기도가 없는 이유는 구원의 은혜가 없기 때 문이다. 기도는 온 삶에 가득해야 한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삶의 매순간 마다 기도다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마음이 초조해지거나 산만해질 정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 말에 어떤 권고를 덧붙이는가를 보라:"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부단 히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늘 자각한다는 말과 같고, 하나님 께서 주시는 구원과 보호와 유지와 인도와 축복을 힘입어 산다는 것을 늘 깨닫고 있다는 말과 같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분의 제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 시(無時)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고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실 때는 언제나 그 뛰어나신 지혜와 은혜로써 하 신다. 하나님이 뛰어나신 지혜와 은혜로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에 다음 두 가지 생각을 유추하게 된다.
1)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 심지어 생각할 수 잇는 것보다 훨 씬 높은 차원에서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는 그분의 계명과 언약에 입각하여 기도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려면 그 계명과 언약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 언약에 담겨 있는 의미와 그분의 생각과 뜻의 범위는 우리의 이해 수준 을 훨씬 넘어서 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같이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보 다 높으며,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의 분량을 우리의 깨달음의 정도와 동일시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대로 기도했다고 해서 반드시 응답하시지만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누가복음 18장 1-7절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베푸신 비유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대하시는 방법 가운데는 일종의 씨름이 있다. 그래서 번민하여 기도하는 일이 생긴다. 본인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대하시는 방법 가운데'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번민 하여 드리는 기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무엇보다도 크고 풍성한 응답으로 내려지기 위해 지나는 통로 역할을 번민의 기도가 종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그 백성에게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초월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 백성의 기도가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도, 실상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백성의 기도 에 응답하고 계신다. 지금 번민하여 그와 같이 하라고 하신 기도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깨달으면, 서두에 인용한 말씀 안에 함축되어 있거나 겉으로 표현된 심정과 고백이 우리 속에도 일깨워질 것이다.
1. 감사의 고백 본문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해 드리는 고백이다. 이 고 백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그 섭리를 어떻게 이루셨는지 관찰 하고, 그 사실에 감사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정련(精鍊)된 언어로 그 뜻에 입각한 기도를 드린 일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는 고백에서 우리는 그가 자신이 드린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가를 경성해서 관찰했음을 알게 된다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이렇게 하나님의 심정(혹은 의 향)을 이해하면 응답된 기도의 의미도 알 수 잇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 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의미이며, 또한 이미 우리 속에 기도할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향한 매우 가녀린 소원의 숨결조차 놓치지 않고 들으시기 위해 귀를 기울이시는 분임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극진하신 태도인가 !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이름이 거룩하신 지극히 높은 분이시다.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태도로 대해 주시는가.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어 보라.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시 102:19, 20).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主)는 나를 생각하시나이다(개역 한글성경에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 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主)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 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 70:5)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 상태 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 물론 자기 집착이나 자기 학대의 태도는 병적이고 해로운 주관주의로 빠져들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친 결백성을 우려한 나머지 자기 성찰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우(杞憂)요 나태이다. 시편 기자의 말을 들어보라:"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 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찰하시고 시험 하실 때는 친히 빈틈이 없고 무결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의 죄를 고소하는 사단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분명히 밝히신다. 그리고 종종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친히 우리를 감찰하셨음을 알려 주곤 하신다. 응답 받는 참된 기도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 라"라는 야고보의 경계의 말과 정반대되는 성격의 기도이다. 그 좋은 예 (例)가 시편 66편에 소개된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主)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 하셨도다"(18, 19절). 이 기도에는 이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 고 있음을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써 인정해 주기고 증거해 주셨다는 고백이 담겨있다. 이처럼 우리 마음 속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기도할 마음이 일 어나는 것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 되는 그 은혜의 산물이다.
2. 주님께 대한 사랑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이 구절을 대할 때 시편 기자가 과연 아무런 사심(私心) 없이 이런 고백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는지도 모른다. 그의 사랑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이 고백의 기저(基底)에는 자기 이익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가 진 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과 무관하게 그분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가 응답받았다는 사실이 사랑과 고백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 영광에 무슨 보탬이라도 되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이신 까닭에 사랑을 받으셔야 마땅하다.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분은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므로 마땅히 극진한 사랑의 대상이 되셔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사실이라면 자기 사랑 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없게 되는 셈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고 보호하기를"이란 에베소서 5장 29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본질상 스스로를 미워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물론 이기심이나 이기적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잇는 것이 사실이며, 그런 것들은 정죄되고 억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사랑은 우리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 만일 죄인이 자기 자신의 최고선(最高善)에 대해 무관심하 다면 은혜로 구원얻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마치 남편의 자기 사랑을 아내 에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듯이 자기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품는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라는 구절이 진정 한 자기 이익과 자기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는 바로 뒤의 구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의 마음을 부풀게 만드는 대상은 주님이며, 그의 사랑이 향하는 대상도 주님이시다. 그가 즐 거움을 얻는 것도 주님 안에서이다. 모든 샘물을 그분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의 사랑을 조절하고 간직하시는 대상이시다. 그가 받은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더 깊고 풍성히 알려 주는 매체가 되어 왔으며, 그분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을 알려 주는 이 매체는 그분의 완전하심 을 더욱 광범위하고 확고히 깨달아가는 통로가 되어 왔다. 사랑의 대상이되 시는 주님은 이처럼 그 영광스런 은혜와 지혜, 그리고 능력과 사랑으로 자 신을 알려 주시는 분이다. 이 모든 은혜를 우리의 유익을 위해 내려 주셨으 니 모든 찬양을 그분께 돌려야 할 것이다.
3. 다시 기도할 마음을 품음 본문은 끊임없이 기도하겠다는 그의 결심과 그 이유를 말한다. 참된 기도는 기도-응답-사랑-기도로, 이어지는 동심원(同心圓)을 그려낸다. 기도의 응답 안에 다시 기도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 기도에 응답받음으로써 우리 속에는 은혜가 더욱 증가하며 장성하게 된다. 우리 속에서 은혜가 장성할수 록 그 은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를 지향해 나간다:"모든 강물은 다 바 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 르느니라"(전 1:7).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은 사람이 그것을 경험하고 목도할수록 보고 싶은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일으켜 준다. 찬란하고 신비한 우주를 단 한 번 관측하고 나서 이제 볼 것을 다 보고 알아야 할 것을 다 알았다고 확신하면서 연구를 중단한 천문학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단 한 번 바라본 뒤 그 영광 을 충분히 보았다고 고백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있는가 그런 일은 결 코 있지 않다. 일반 지식을 얻은 방법도, 은혜를 얻은 방법도 결코 그런 식 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 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生前)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 을 앙망하며 그 전(殿)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우리가 우리 의 지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어느 정 도 체험하게 될 때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그만큼 넓어지며, 하나님께 대 한 확신과 그분을 가까이하려는 마음이 우러나오며, 더 웅대한 기도와 찬양 을 드리게 만드는 그 은혜 언약의 부요함과 그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찬양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경험 하나하나를 더 풍성히 기도해야 할 이유와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구하라 그러면 너희 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 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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