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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요14:12-18)

본문

우리 신자들이 가장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는 잘 모르고 있으며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만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하는 것 같은 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막연하게 생각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기도는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롭고 능력 많으심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도가 무엇이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인 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기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고 또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 놓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을 다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이 하나의 핵심적인 면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이 가장 핵심적인 면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가 모일 때마다 암송합니다. 그것은 모든 기도의 핵심적인 내용을 집약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핵심이요 중심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기도를 생각하지 않고 오늘 본문을 택한 것은 오늘 본문은 기도에 있어서 독특한 면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는 모든 기도의 내용의 핵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은 기도의 자리를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왜 기도하게 되며 또 기도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것 또한 기도의 핵심적인 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자기가 세상을 떠나갈 것을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가 성령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2절 끝에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해 놓고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한 것이 기도가 바로 성령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은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이루고 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스리는 것을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으로 다스리는 것과 기도를 연결짓는 것은 기도란 성령님 안에서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제자들과 신약의 신자들은 아버지의 사역을 다 이루신 주님의 영으로 기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성령님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아버지께 행하여 달라고 구하는 것인데 이러한 간구를 성령님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 안에서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 성령님을 따라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오랜 연유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봉헌식을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열왕기상 8장에 나옵니다. 그 긴 내용을 요약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 곳임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성전 건물 자체가 기도를 듣도록 하는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전'이라고 불리는 성전은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에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곧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면 자기가 듣고 시행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일 뿐만 아니라 자기가 곧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성전에 계시던 여호와가 곧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바로 여호와의 사역을 완성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면 자기가 다 듣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부름받은 사람은 기도를 해도 나타나신 여호와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영을 보내어서 자기 사람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은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을 따라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소원성취의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이 자기의 뜻을 시행하는 도구입니다. 자기의 뜻을 시행하되 자기 택한 백성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주셔서 자기의 일을 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의 인간적인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마구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서 구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증인되기 위해서 십자가 지는 것을 구하라는 것이요 서로 사랑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기도는 주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에 참여하고 헌신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마음을 주시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인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자기 일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이나 일을 위해서 기도할 마음을 주시거든 여러분 자신이 그 기도에 응답할 자라는 것을 아십시오. 만약 선교를 위하여 기도할 마음을 주시거든 주님이 자신에게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라고 하시는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마음을 주시거든 자신에게 그 가난에 동참하라는 줄을 아십시오. 이와 같이 기도는 십자가를 따르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아무 기도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주님이 아무 요구도 하지 않는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아무 요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즈음 무엇을 기도합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런데 주님을 믿는데 기도하지 않거든 자기가 육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이든지 육적인 것을 구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시키지 않는 육적인 것을 억지로 구하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있거든 자기 자신을 돌이켜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주님께 묻고 주님이 기도하게 하시는 것을 가지고 기도해 보십시오. 즉 자기가 주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기도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가 이런 것이기 때문에 신자에게는 기도가 힘드는 일이기는 하지만 호흡과 같이 자연스런 것이겠지요. 살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사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서 가는 헌신된 삶 자체가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바라보고 주님과 한 영이 되기를 소원하며(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한 영이 되어 사는 신자의 삶 자체를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신된 신자의 마음이 성령님 곧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을 통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님이 기도를 중재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마음과 믿는 신자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일을 하는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신자에게 전달해 주고 신자의 마음을 주님께 전달하는 일을 성령님이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령님은 주님과 신자를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왜 주님과 우리 사이에 성령님의 중재가 필요합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할 뿐 실제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계시는 양식이 지금 우리의 존재 양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니면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육체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을 18절에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다시 오시는가를 17절에서 밝혀주십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성령님으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자기 교회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도 우리가 주님을 실제로 느끼지 못합니다. 서로 존재하는 양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통해서 존재하고 주님은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육신은 육신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식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인식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것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육신을 벗어나는 것은 육신의 감각기관이 감지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계시는 주님을 우리는 감지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주님은 성령님을 보내어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영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그 영을 통해서 신자가 주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하고 또 주님께 자기의 의도하는 것을 아뢸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령님은 주님과 신자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중매자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신자에게 전달되고 또 그것을 따르는 신자의 마음이 주님께 전달되는 것입니다. 기도란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과 신자간에 교통하면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온 세상의 신자들에게 자기의 뜻을 전달하시고 또 그들의 기도를 들으셔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아시고 들으시지만 동시에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 응답을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면서 다스리십니다.
이것을 에베소 1:21절 이하에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고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주님의 통치로 가득 채운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온 세상을 교회로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동시에 다스려야 하며 또 과거도 미래도 다 보시면서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처럼 지나간 모든 사건들을 하루의 일과 같이 보시기도 하시며 또 창세 전에 예정하셨다고 하는 말씀처럼 모든 미래도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도 현재가 되고 미래도 현재가 되어 항상 현재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지고 사건만 있는 현재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온 세상의 모든 것을 동시에 보시면서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또 온 세상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영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하나인 것처럼 알 수 있는 것이 영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 한 사람을 아시듯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동시에 아시고 기도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길고 오래 된 사건들이라도 일순간의 사건처럼 아시고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미래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계시록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1:8)고 하는 말씀은 이런 뜻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즉 성령님으로 영원한 통치자 하나님으로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임재하시는 것은 이러한 통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주님과 하나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온 세상 신자가 주님의 마음을 알며 또 온 세상 신자가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주님의 생명을 받은 자들의 생명현상입니다. 지금까지 성령님 안에서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먼저는 성령님을 따라 기도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자기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님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개인과 온 세상의 기도를 중재하는 자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인식 양식이 육신적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했고 또 온 세상을 동시에 통치하며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 성령님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주님과 신자들이 성령님으로 하나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명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생명을 주고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교통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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