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마18:15-20)
본문
우리는 위의 말씀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있는데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 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이 말씀의 전후 이야기를 살펴보면 상당히 다른 내용이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 본문으로 인용한 마태복음 18장 15절 이하도 이런 이야기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를 한다. 너희가 매면' 여기서 '너희'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오늘의 조직된 교회개념이 아닌 '합심된 성도들'을 말한다.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성도들의 그룹을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이 내용에서 '너희'는 개인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야고보서의 성경구절도 같은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해서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면서 '죄를 짓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이야기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과 한사람이 기도하는 것과는 대표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한 사람이 하는 것은 정당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기도할 때의 정당치 못함을 지적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합심하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두 사람', 또는 '두 세사람' 곧 마태복음 18장과 야고보서 4장을 잇는 부분이 이것이다. 왜 두 사람의 합 심기도를 강조하는가 하면 우리의 기도가 사욕을 좇는 기도이거나 혼자서 생각해 낸 아전인수격인 교만한 기도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성경이 합심기도 곧 '두 사람'이라는 이유를 드는 것은 '너희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만한 기도인가, 응답을 받을만한 기도인가' 하는 것을 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기도제목인가'를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것이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 하는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공정한 기도인가, 정당한 기도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인가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야고보서 4장의 앞서 읽은 내용으로 가져와 보니까 그 문제가 좀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 4:1)"
우리의 기도에서 가장 우리가 크게 그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기도가 싸움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고 올라서기 위한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일 때가 많다.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느 누구와도 할 수 있는 기도의 제목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로 어느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있는 내용인가를 이 시점에 서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얼마나 큰 약속을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신가를 보 아야 한다. '너희가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 서도 풀리리라' 이것이 교회에 준 약속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라는 이름으로 기도를 해서 응답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기도들이 정당한 기도 제목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이 야기도 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다. 한국 민족 앞에 단 한 교회만 바로 서 있다면 한국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회가 어느 교회가 되더라도 한 교회만 바로 서 있다면 망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가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만은 그렇게 되도록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에서 삼일 저녁마다 기도회로 모이고 한달에 한번씩 철야기도로 모일 때에 합심기도 제목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있는가를 교회적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모두가 우리 교회 가 다른 교회보다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우리 교회가 정당한 것으로 다른 교회가 정당치 않은 것을 비난하는 정도로 밖에 우리가 안되어 있는지 야고보서 4장을 근거로 해서 돌이켜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당함으로 말미암아 갖고 있는 것은 아직 '누릴 단계'가 아니라 비로 소 정당하게 구비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국가 와 민족과 시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기도이다.
그런데 아직 도 우리는 국가와 민족과 시대를 위해서 꺼내놓을 수 있는 큰 기도제목이 없다. 우리는 물론 잔다크는 아니다. 모세도 아니다. 우리가 엘리야도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 중에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듣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있다. 두 사람이라고 했다. 이 두 사람은 숫자적인 두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도를 하는 제목, 그 기도라면 단 두 사람이 하는 기도라도 들으시겠 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엄청난 교세를 가지고 우리는 감격이 없다. 해 놓은 일은 많다. 그러나 참으로 한 일은 없다. 아직도 시대 앞에, 세상 앞에, 민족 앞에 꺼 내 놓은 기도의 제목은 없다. 이것은 신자들의 책임인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기도'라는 제목에서 우리가 나의 위치를 돌아 보아야 할 중요한 결론인 것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인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도해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도해야 될 사람'이라는 것은 기도해야 할 사람이 그 일을 게을리 하 고 있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얻고 있는가를 명심해야 할 사람이다. 국가의 위정자가 잘못함으로 그 시대와 국가가 받는 피해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잘못됨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잘못 키워지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파이프 라인에서 수도꼭지가 되어 있는 우리가 게으르고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어느만큼 안 타까와 하시겠는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이 무엇인가 돌아볼 필요 가 있는 것이다. '너희 중에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듣는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이 내용에서 '너희'는 개인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야고보서의 성경구절도 같은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해서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면서 '죄를 짓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이야기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과 한사람이 기도하는 것과는 대표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한 사람이 하는 것은 정당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기도할 때의 정당치 못함을 지적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합심하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두 사람', 또는 '두 세사람' 곧 마태복음 18장과 야고보서 4장을 잇는 부분이 이것이다. 왜 두 사람의 합 심기도를 강조하는가 하면 우리의 기도가 사욕을 좇는 기도이거나 혼자서 생각해 낸 아전인수격인 교만한 기도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성경이 합심기도 곧 '두 사람'이라는 이유를 드는 것은 '너희의 기도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만한 기도인가, 응답을 받을만한 기도인가' 하는 것을 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기도제목인가'를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것이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 하는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공정한 기도인가, 정당한 기도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인가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야고보서 4장의 앞서 읽은 내용으로 가져와 보니까 그 문제가 좀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 4:1)"
우리의 기도에서 가장 우리가 크게 그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기도가 싸움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고 올라서기 위한 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일 때가 많다.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느 누구와도 할 수 있는 기도의 제목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진실로 어느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있는 내용인가를 이 시점에 서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얼마나 큰 약속을 하나님께서 선포하고 계신가를 보 아야 한다. '너희가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 서도 풀리리라' 이것이 교회에 준 약속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라는 이름으로 기도를 해서 응답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기도들이 정당한 기도 제목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이 야기도 될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다. 한국 민족 앞에 단 한 교회만 바로 서 있다면 한국 민족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회가 어느 교회가 되더라도 한 교회만 바로 서 있다면 망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가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만은 그렇게 되도록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에서 삼일 저녁마다 기도회로 모이고 한달에 한번씩 철야기도로 모일 때에 합심기도 제목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있는가를 교회적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모두가 우리 교회 가 다른 교회보다 나아지기를 기도하고, 우리 교회가 정당한 것으로 다른 교회가 정당치 않은 것을 비난하는 정도로 밖에 우리가 안되어 있는지 야고보서 4장을 근거로 해서 돌이켜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당함으로 말미암아 갖고 있는 것은 아직 '누릴 단계'가 아니라 비로 소 정당하게 구비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국가 와 민족과 시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기도이다.
그런데 아직 도 우리는 국가와 민족과 시대를 위해서 꺼내놓을 수 있는 큰 기도제목이 없다. 우리는 물론 잔다크는 아니다. 모세도 아니다. 우리가 엘리야도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 중에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듣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있다. 두 사람이라고 했다. 이 두 사람은 숫자적인 두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도를 하는 제목, 그 기도라면 단 두 사람이 하는 기도라도 들으시겠 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엄청난 교세를 가지고 우리는 감격이 없다. 해 놓은 일은 많다. 그러나 참으로 한 일은 없다. 아직도 시대 앞에, 세상 앞에, 민족 앞에 꺼 내 놓은 기도의 제목은 없다. 이것은 신자들의 책임인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기도'라는 제목에서 우리가 나의 위치를 돌아 보아야 할 중요한 결론인 것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인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도해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도해야 될 사람'이라는 것은 기도해야 할 사람이 그 일을 게을리 하 고 있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얻고 있는가를 명심해야 할 사람이다. 국가의 위정자가 잘못함으로 그 시대와 국가가 받는 피해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잘못됨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잘못 키워지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영적인 파이프 라인에서 수도꼭지가 되어 있는 우리가 게으르고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어느만큼 안 타까와 하시겠는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이 무엇인가 돌아볼 필요 가 있는 것이다. '너희 중에 두 세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듣는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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