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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신앙 (계22:8-21)

본문

먼저 '보고 들은 나 요한'라는 표현은 요한 자신이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예언의 내용들이 황홀경이나 어떤 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또한 당시의 수많은 이단들과 그 중에서 천사 경배자들에 대한 구별을 말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 성도들의 확신이라는 것이 이래야 합니다. 이런 확신이 있는 이들에게는 강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문의 결론인 것과 같이 넉넉한 기다림의 신앙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런 기대를 갖고 공동체를 가정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대부분의 신앙의 모습은 당연히 숨겨서 해야 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구제, 기도가 거의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늘 상급을 바라본다거나(12절)의 경우나 본문 8절에 나오는 신앙의 확신의 문제는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문제에 대해서 과감히 드러내놓는 삶이 필요합니다.
14절의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란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가지 복 중 마지막 복에 대한 묘사입니다.(7절;1;3;14:13;16:15;19:9;20:6). 이것은 사람들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옷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의 성도의 복은 곧 성결함이라는 상징이며, 동시에 이 성결함은 회개로 말미암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HAN 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성도의 은혜의 생활이 처음이요 나중은 오직 회개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축복의 삶입니다. 내 속만이 건강하다고 하면서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자신의 의복을 뒤돌아 봅니다. [HAN 계 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HAN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HAN 계 22:17] 성령님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HAN 계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HAN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HAN 계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HAN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0절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줍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로써 주님을 갈망하는 기다림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합니다. 고난 가운데 지나는 성도의 삶에서도 생활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을 결코 기대하지 않는 높은 경지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마라나 다'는 아람어 '마라나타'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주로 17절 이후부터 밀씀을 전하자면 기다리는 신앙이란
1. (값없이 주는) 생명수를 기다리는 신앙(17절)으로써 성령님의 은혜를 민감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입니다. 신앙의 문제의 심각성을 말합니다. 물을 기다리는 심정을 상상하자는 것입니다. 체면이나 격식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신앙과 생활의 여러 가지 필요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과의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나가는 신앙입니다. 마25:21-28
2. 말씀을 지키는 신앙(18-19절) 두 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가감없는 성도의 말씀생활
1)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생활 율법주의와 공로주의 관습과 경험이 자리를 파집고 들어옵니다. 무엇을 더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어느 무엇도 여러분 자신이 은혜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제하여 버리는 생활이란 말씀과 매일, 동행하지 않는 삶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어떤 문자적인 가감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는 말씀을 선택하여 듣는 신앙생활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무엇도 자신의 신앙의 도전과 다짐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3. 응답하는 신앙(20-21절) “오시리라”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계시록이 아니라 오라고 우리의 신앙을 부르는 것이 기다리는 신앙의 마지막입니다. 여러 가지 기도가 있고 응답받아야 할 것들이 지금보다도 그 당시는 더 갈급한 상태였을 것이지만, 당시의 성도들의 마지막 기도 제목과 예배의 중심 결론은 오직 예수님이 속히 오시는 것입니다.
1) 한마디로 아멘하는 신앙입니다.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네”만 있고 아니오는 없는 신앙입니다.
2) 예배 중심의 신앙일 수 있습니다. 빠지지 마십시오. 새벽조차도.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3) 순종의 신앙입니다. 하늘과 땅의 무엇을 가지고 다짐하거나 각오를 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순종하면서 아멘으로 응답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 나가지 않으면서 뒤좇아가는 즐거움을 갖는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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