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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아버지 (눅15:11-32)

본문

비유의 출발은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는 바리세인과 서기관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다음에, 잃어버렸던 탕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 탕자의 행위에 대한 설명
(1)문학적 대구법(오광만, 시인과 농부)
1아들을 잃음-“내 분깃을 주소서”
2허랑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허비함
3다 잃음-“재산을 허비하여 … 궁핍한지라”
4큰 죄-“이방인을 위해 돼지를 침”
5다 그를 버림-“주는 자가 없는지라”
6마음의 변화-“자신을 돌아 봄-여기서 죽는구나”
6첫 회개-“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5전적으로 그를 받아 줌-“그의 아버지가 달려가 입을 맞춤”
4큰 회개-“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3다 얻음-옷, 가락지, 신(아들로 회복)
2기쁨의 축제를 위해 사용된 재산
1아들을 찾음-“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노라”
(2)비현실적인 요구들
1재산을 나누어주소서-[불효] 유대에서는 재산은 아버지가 임종 때에 나누어주는 것이지 아직 살아서는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재산을 나누어 달라는 자체가 이미 아버지의 노여움을 살만한 행위이다.
2재산 처분-뿐만 아니라, 그 재산을 파는 행위는 더욱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통상 장자가 ⅔ 를, 차자가 ⅓을 유산으로 받게 되는데, 이 재산을 나누어주더라도 부모의 생전에는 단지 관리만을 하는 것이지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탕자가 이를 처분한 것은 당시의 사고로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3)어리석은 탕자
1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 (50만 본토/ 400만 디아스포라)-무모하게, 술과 방탕(아데네우스)으로,
2궁핍해졌다.
3이방인의 돼지를 치는 자가 되었다.-이방인의 일을 하게 됨으로 탕자는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고, 유대인이 혐오하는 짐승(돼지)를 가까이 하게 되고, 많은 종교적인 금기를 어기게 되었다.
4쥐엄 얼매를 먹게 되었다.-최근의 연구의 결과 쥐엄는 두 종류가 소개된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울 때 먹는 수리아산 쥐엄(카롭, 케라토니아 실리쿠아)로 맛이 단 쥐엄이 있고, 또 하나는 야생 쥐엄(바리)으로 가시가 있고, 땔감으로 사용되는데, 키가 40㎝정도 자라며, 열매는 검은색이고 맛이 없어서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먹지 않았다.
5그러나 주는 자가 없었다.-야생 쥐엄을 먹고자 찾아다니는 모습,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그를 돌아보지 않으며 죽음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만일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근처에 있었다면,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서도 멀어진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의 결말을 보게된다. 아무 것도 없이, 누구도 주위에 없는 철저히 버려진 자의 모습이다.
2. 탕자의 회개 완전한 회개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먹을 것을 위해서 고향을 바라보는 것임, 이왕 외국에서 어렵게 사느니, 집에 돌아가서 품꾼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돌아가는 것이다.
(1)돌아섬 1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예상되는 고향 주민들의 냉대와 멸시를 무릅쓰고 고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2)품꾼 중 하나로 보소서 1아들의 권리를 포기하였다. 2일용 근로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돌아섬으로 시작된다.
3. 아버지의 사랑 잘못된 선택조차도 이해하시는 하나님 알면서도 속아주는 부모 디아스포라의 소식을 여전히 기다리는 아버지
(1)달려 감 1동양의 노인은 아무리 바빠도 천박하게 달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달리기 위해 옷자락을 걷어 올렸을 것이다.
(2)측은히 여기고 입을 맞춤
1그의 몰골을 본 고향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 봉변을 가로막는 사랑의 표현으로 그를 안고 입을 맞춤으로 “용서” “동등 됨”을 표시하였다.
(3)위치의 회복 1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거지 몰골을 하고 온 아들을 종들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함으로서 종들 앞에 자식의 권위를 세워 주고 있다.-제일 좋은 옷은 욥의 옷과 같이 사랑과 권위의 상징이었다.-손에 가락지를 끼는 것은 [인장]을 의미하여 바로가 욥에게 끼워 준 인장과 같은 의미이다-발의 신을 신기운 것은 노예는 신을 신지 않았다. 그러나 자주자는 신을 신었던 것이다.
2살진 소를 잡으라-소를 잡는 것은 [온 동네]의 잔치로 [공동체]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즐거워하겠다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3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아버지는 탕자를 진정한 아들로 다시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의 진정한 회개를 가져왔다. 눅 15장 21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이 아버지의 사랑이 어리석은 아들을 받아들였다. 어떤 죄인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용서함을 받으며, 다시 회복의 복을 받는 것이다.
결론: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잘못된 길에서 주께로 돌이키자.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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