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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라 (유1:22-25)

본문

오늘은 우리는 유다서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긍휼히 여기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유다서를 강해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난주에 말씀드린 '자기를 건축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20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유1:20)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아주 튼튼하게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20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세운다는 말은 '건축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집을 짓는 심정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집을 날림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갈 집이기에 물자를 아끼지 말고, 기초부터 마감까지 최선을 다하여 튼튼하면서도 쓸모 있게 지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좀더 경건하게, 좀더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의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의 환경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환경이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말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가지고 말하면 시간이 자본은 누구나에게 골고루 주어진 것입니다. '나는 시간이라는 자본이 적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란 누구나에게 다같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란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 자기 자신 외에는 없습니다. 사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에는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존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고명한 생각을 하고, 고명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나 혼자 살아가고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우리 가정에 속하여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내가 있고, 자식들도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인들도 있고, 몇 명의 친구들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의 어려움이 곧 나의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웃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레위기를 읽어보면 추수할 때면 밭의 모퉁이를 성별하여 남겨놓아야 합니다. 그 모퉁이의 곡식은 거두지 않고 남겨놓아야 했습니다. 곡식을 거두다가 땅에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지 다시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면 안되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사람이라면 포도 송이 한 송이도 먹어보지 못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하거나 하면 안됩니다.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우리의 몸과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잘 믿는 사람들에게만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어떤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우리 지역 사회에 대한 어떤 의무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동네의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이요, 우리 동네의 자랑은 곧 우리의 자랑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불신자들 중에는 교회와 복음신앙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도 있지만, 교회를 비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 때문에 무슨 피해를 보았다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든지, 교회 가까운 곳에 살아서 소음 공해로 시달렸다든지 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극도로 비난하고 목회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이들입니다. 불신자들 중에는 최악의 이단자들이 있습니다. 극도로 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유해하고 위험스러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떠한 거룩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빚을 진 심정으로 어떤 강한 의무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사랑하는 의무 외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고 하여 그를 추방하거나 백안시하고, 외면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심방하다 보면 안 믿는 시어머니에 며느리는 교회에 등록할 때가 있습니다. 젊은 새댁이 등록해서 교회를 나옵니다. 한번 심방간다고 약속하고 찾아갔는데 그 날 마침 시어머니가 왔다가 '우리 집안은 예수 믿는 것들을 들어오게 할 수 없다'고 물을 끼얹는데 참으로 난감합니다. 들어오지 못하게 대야에 물을 담아 발코니에서 아래도 물을 뿌려댑니다. 왜 우리 집에 목사가 오게 했느냐면서, 소리 질러대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에게 욕을 퍼붓고, 달려들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빙그레 웃고 돌아서면 그도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바르게 보아주지 않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세 부류의 사랍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의심하는 자, 두 번째는 불 가운데 빠진 자, 세 번째는 육체로 더럽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의심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22절)
오늘 유다 선생님은 말씀하기를 그런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의심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향하여 대적하고, 같이 미워하고, '너 같은 사람들은 구원받을 자격도 없다'고 하면 안됩니다. 그들도 하루 속히 감화 감동을 받아 우리 안에 돌아오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여 오셨습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다 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사람들, 교회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감화 감동시켜 교회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잃은 자를 회복하는 힘이 없는 교회라면 이미 교회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직은 이단에 빠지지 않았으나 오히려 기독교를 의심하고, 이단에 솔깃한 마음을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긍휼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의 진정한 소망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말할 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거룩한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하나 하나가 다릅니다. 불신자들의 눈에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다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2.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하십니다. (23절상)

불신자들 중에는 악한 일에 빠져 있고, 거짓에 빠지고, 사탄의 종노릇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확실히 오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들은 자기들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끌어내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믿지 아니하면 이러한 사람을 대하여 싸우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든지 그런 이들을 내버려두면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단단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나 혼자는 잘 믿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말하려면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영리의 훈련,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통한 전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한번 말문이 열어야 자신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관계성을 가지고 찾아내어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교인 중에 불신 남편을 전도하면 50명은 쉽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3. 불쌍히 여기면서 경계할 사람이 있습니다. (23절 하)

'또 어떤 자를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가 말씀하는 의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여 구원하려고 하지만 위험이 따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구원하러 들어갔다가 자신도 오염되고, 이단에 속한 딸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어머니도 이단에 빠져서 아예 가정을 포기하고 그 이단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아야 좋습니다. 전염병을 고치는 사람은 자신도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 선생님은 말씀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데 그가 입었던 옷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를 고치려 할 때 우리는 그의 옷을 경계하고 불에 태워야 합니다. 옛날부터 교회에 내려오는 말씀 중에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은 육지에 단단히 매어 있어야 합니다.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밧줄을 던진다고 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을 잡아당길 때 딸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대단히 귀한 일이지만, 그를 따라 세상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무지한 사람이 무지한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어중간한 지식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이렇게 기독교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 이단의 불 속에 빠져 있는 자들, 정말 죄악과 이단 사설에 오염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주 단단한 각오와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마지막 찬미를 부르면서 이 편지를 마치고 있습니다. (24-25절입니다.) 마지막 송영입니다. 이 송영은 신약성경 중에 가장 걸작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아주 짧은 서신이면서 그 격식은 극히 장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축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 내용은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이며,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고 기간은 영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족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에게 결속되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견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마치 목자가 어린양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거침이 없이 서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의 존전에 흠 없이 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흠 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모모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특별히 희생 제물에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나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좋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때 바로 그렇게 흠이 없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흠없게 보존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씻어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즐거움으로 서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공포는 사라지고 기쁨과 희열로 아버지의 집에 감사와 즐거움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재판장이 되시지만,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 혼자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단단히 무장하여 우리 주변의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건져 살리시는 능력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죽었던 부자를 다시 살려서 이 땅에 보내시지 않고, 이 땅에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어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모세와 선지자들처럼 주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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