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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기도는 필요하다 (마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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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모두가 말은 많이 들었지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금식기도에 관해서 예수님의 교훈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금식과 기도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금식하면서도 기도를 안 할 수도 있고 기도한다고 해서 꼭 금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금식은 언제든지 기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식기도와 같은 합성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어느 미국 학자의 글을 보니,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우리나라의 교회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한국의 교회가 그렇게 갑자기 부흥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분석하고 연구해 놓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금식기도에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사가 한 100년 정도 되지 않습니까 지금 약 4만개 정도의 교회가 있으니까 평균적으로 보면 100년 사이에 매년 300개에서 400개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이 좁은 땅에서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지난 70년대부터 시작해서
3,40년 동안 이어진 부흥을 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지만 역시 그 미국 학자의 분석대로 금식기도가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교회 부흥과 함께 금식기도의 붐이 아주 뜨겁게 여기저기서 달아 오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최자실 금식 기도원이 생기고 나자 마치 금식기도는 한국교회의 전용물인 것 같은 인상을 세계 교회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많은 금식 기도원이 여기저기 세워졌는데 아마 크고 작은 금식 기도원을 다 합치면 전국적으로 5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자료에 의하면 그 동안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이 전국적으로 2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금식기도에 동참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기도원에 올라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능력을 구했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 나머지 진짜 영력 있는 지도자가 되어서 그 동안 한국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 금식기도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목사님들 중에는 40일 금식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다가 몸을 다쳐 10년이 넘도록 강단에 서지 못하고 투병 생활을 해야 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금식기도를 부정하면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금식기도가 한국교회를 부흥시키는 큰 요인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교회가 세상 앞에 맛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감당하지 못해서 무력증에 빠져 있는 형편에서 다시 한번 금식기도에 주목해야 된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요인 중에 하나가 금식기도라고 한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를 갱신 시킬 수 있는 열쇠도 금식기도에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1년에 하루만 금식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대 속죄일이라고 하는 금식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제사장이 짊어지고 1년에 한 차례씩 지성소로 들어가는 날입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차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어깨에 짊어지고 들어가서 회개하고 용서 받는 날이 대 속죄일입니다. 이 대 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하루를 금식하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6장 31절에 보면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은 금식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보고 금식하라고 명령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한 주일에 이틀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입니다. 그들은 금식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금식을 자기들의 경건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내가 이만큼 금식하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경건한지를 사람들에게 은근히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식하지 아니하는 일반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들은 엄청나게 거룩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 이 금식이 큰 공로로 인정받을 줄 알았습니다. 어느 바리새인들은 성전에 가서 '하나님 나는 이레의 이틀을 금식합니다. 나는 이만큼 의롭습니다. 하나님이여 인정해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거룩한가를 과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하나님 앞에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공로로써 금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외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금식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으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예루살렘의 장날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변에 있는 많은 촌락으로부터 사람들이 이 장터로 몰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것을 이용해서 자기가 지금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보이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실을 16절에서 그대로 지적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들은 금식하는 날 사람들 앞에서 슬픈 기색을 띠어 금식하는 티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더 창백하게 보이게 하려고 횟가루를 가지고 화장을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 분은 금식하고 있구나.' 하고 자기를 존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금식을 외식으로 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고 사람을 위한 금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지적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식기도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위험을 항상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금식하는 분들이 꽤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이 보면 금식하면서 은근히 그것을 과시합니다. 자기자랑으로 금식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마치 금식기도 한 것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교역자들은 자기 경력을 이야기 하면서 '40일 금식기도 제 1차 언제', '제 2차 언제' 하는 식으로 경력에 포함시켜 놓고 전시효과를 노립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이런 분들이 강단에 서면 마치 자기가 예수님이나 된 것처럼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폭력을 휘두릅니다. 사람들을 위압합니다. 그것이 영감인 줄 알고, 영권인 줄 압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분은 기도원에 가서 오래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하고 나면 자기가 거룩하다는 어떤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세상에 내려와 보면 모든 사람이 다 형편없는 사람들로 눈에 비칠 수가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윗저고리를 벗어서 손에 쥐고는 강단 아래로 내려와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등을 두들겨 패면서 '이 못된 것들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금식을 하다 보니 그것이 굉장한 공로가 되는 것처럼, 영권이 자기에게 임한 것처럼 착각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남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영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금식에는 이런 약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잘못된 금식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금식한 결과에 대해 하나님이 상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저희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 말은 아무 효력이 없는 금식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염두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금식은 사람에게 숨기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도록 하는 금식입니다. 17절을 보면 주님이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 얼굴을 씻고 여자들 같으면 화장도 하고 그래서 표가 나지 않도록 해라. 사람 앞에는 표 내지 말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만 알도록 해라. 이것이 참된 금식이니라.' 이렇게 바르게만 금식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상을 주시리라.' 성경을 보나 기독교 역사를 보나 또 우리 주변에 위대한 신앙인들을 보나 금식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참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 자신이 40일 동안 금식하므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이 금식하면서 기도한 결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는 역사적인 결단을 내리고 드디어 그 시점으로 인해서 전세계가 복음을 듣는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을 봅니다. 니느웨 성의 왕과 백성과 심지어 짐승까지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인해 40일 후에 그 땅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구원 받는 기적 같은 일들을 성경을 통해서 읽습니다. 우리 한국의 민족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고, 그 민족 복음화의 비전을 가슴에 안고 40여년동안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CCC를 결성해서 40년 동안 지금까지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도록 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 분입니다. 그 분의 글을 보니 지난 40년 동안 매일 아침은 금식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40여년 동안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앞에 놓고 있을 때마다 3일 금식, 7일 금식, 10일 금식, 20일 금식을 마치 죽 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금식기도를 함으로써 힘을 얻었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르게만 금식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금식기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해라 말라 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마음에 담고 묵상을 해 보면 하라는 말씀도 안하고 하지 말라는 말씀도 안 하시는데 그 뉘앙스가 하는 것을 권장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16절에도 '금식할 때에'라고 하지 않습니까 금식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금식 할 때, 금식하고 싶으면'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 다음 조금 밑에 내려가서 또 있습니다. 17절에 '너희가 금식할 때에'라고 나옵니다. 금식하고 싶으면 하라는 말입니다. 하되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금식기도를 권장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금식이란 무엇입니까 금식은 영적인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먹는 것을 일시로 보류하는 것이고 심지어 마시는 것까지도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면서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을 잠깐 그만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나의 이 행동이 하나님의 관심을 특별히 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맘대로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하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사생결단하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하고 그 진지함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금식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더 귀담아 들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금식하면 하나님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딸애가 자기 결혼상대로 정한 상대가 부모에게 안 맞습니다. 하고 많은 남자 중에 어떻게 저런 것을 택했나 싶으면 밤잠이 안 옵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달래고 얼러서 결혼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긴장이 팽팽하게 지속됩니다. 딸애가 최후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문 걸어 잠그고 안 먹고 안 마시는 것입니다. 이틀만 그렇게 버티면 부모는 손들어 버립니다.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좀 옆으로 제쳐 놓고 '하나님' 하고 부르면 하나님이 더 잘 들어 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더 관심을 가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점을 염두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금식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관심을 가진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을 놓고 볼 때 잘못된 견해는 아닙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어떤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 받기 위해서 기도 할 때 금식하면, 내가 얼마나 진지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회개하는가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분명히 하나님 앞에 범죄 했습니다. 잘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으니 회개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식사 후에 빵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먹고 싶은 것 실컷 다 먹고 나서 '하나님, 내가 이런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세요. 아시겠지요' 하고 아양을 떨지 모르지만 진정한 회개라고는 말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정말 잘못했으면 먹는 것도 삼가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실 것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국가적으로 중보 기도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는 주로 금식을 했습니다. 국가가 위기를 당할 때는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금식 기도를 종종 해야 할 필요를 가진 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를 안고 여러분이 밤낮 없이 씨름을 합니까 여러분이야말로 금식기도를 할 필요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영적으로 답답함을 느낍니까 그리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갈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금식기도를 해도 좋을 여건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절박한 문제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개인적인 위기일 수도 있고 가정적인 위기일 수도 있고 국가적인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기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에는 금식기도는 대단히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을 일컬어서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트집을 잡았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금식하고 바리새인들도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안하고 자꾸 먹기만 합니까" 이럴 때 예수님이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잔칫집에서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하는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느냐 그러나 언젠가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는 금식할 것이다.' 결혼식을 지금 하고 있는데 적군이 와서 동네를 불사르고 엉망을 만들었습니다. 남편이 끌려 가 버렸습니다. 이럴 때 신랑을 뺏긴 날에 신부더러 먹으라고 하면 먹겠습니까 마시라고 하면 마시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안고 그는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런 날에 금식한다 그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한 다음에 신혼에 단 꿈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서 남편이 끌려 나가 전사했고 한다면 그럴 때 그 신부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끼지 않겠어요 이럴 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은 저만큼 가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식음을 전폐하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금식이란 바로 그런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날에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금식은 언제 언제하라고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처럼 1조, 2조, 3조 해서 금식을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은 신랑을 빼앗기는 것과 같은 절망적인 날이 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기도의 방법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분들이 없으십니까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무서운 죄의 마수에 걸려서 몸부림 치고 있는 분들이 없으십니까 아내 모르게 자녀 모르게 남편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용납할 수 없는 어떤 범죄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는 위기를 만난 분은 없으십니까 이런 분들은 신랑을 빼앗기는 날과 같습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하나님이 건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갈등하고 이혼하겠다 하지 않겠다 하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두 사람 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제쳐 놓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할 만한 때입니다. 자녀가 지금 위험 수위에 있습니까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서 자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찾아옵니까 금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살길이 막막하고 생활고가 점점 목을 죄는 것처럼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소유하신 하나님 앞에 한번 식음을 전폐하고 달려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부자신데 나는 왜 이렇습니까 좀 도와주세요." 충분히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위기를 만나 절박한 상황에 빠져있으면 금식기도는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구약에 보면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사건이 아니지만 우리가 보면 재미있는 사건입니다.
다윗이라는 왕이 세도가 당당하고 전성기를 맞아서 눈 앞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항상 잘못되기 싶습니다. 최정상에 있을 때 잘못되기 쉬운 것입니다. 남의 아내를 꼬셨습니다.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 남편이 자꾸 마음에 걸리자 전방에 통보해서 사지에다 그를 몰아넣어서 죽였습니다. 즉 간음죄를 범하고 살인죄를 범한 것입니다. '임금이니까 그 정도야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누구나 다 하는 짓이지.' 이렇게 생각하면 모르지만 다윗왕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륜의 관계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서 하나님이 이 아들을 치시겠다고 했습니다. 죄 값으로 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고열이 오르면서 애가 막 소리를 지르고 울고 잠을 안자고 나중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모로서 다윗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겁니다. "죄는 내가 범했는데 왜 이 어린 죄 없는 아이를 이렇게 치십니까 나를 치십시오." 그래도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다. 애는 점점 더 아픕니다. 그러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먹고 마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땅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잠도 안 잤습니다. 먹지도 않았습니다. 애는 계속 아픕니다. 다윗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이 가버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안 먹고 하나님 앞에 매달린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그 정도 했으면 하나님이 다윗을 불쌍히 여겨서 그 아이를 살려주실 것도 같은데 일주일 만에 하나님이 애를 데리고 가버리셨습니다. 금식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100% 보장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응답을 받지 않았을 때는 그 응답에 못지아니한 놀라운 은혜를 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윗이 애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일어나서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먹었습니다. 다윗의 행동을 보고 신하들이 이해를 못했습니다. "애가 아플 때에는 금식하고 울고 그러시더니 애가 죽었다고 하니까 음식을 잡수시고 슬픈 기색을 전부 씻어버리십니까" 그랬더니 사무엘하 12장 22절에 참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지 누가 알까' 생각하고 해 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안 먹고 안자고 울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애를 살려주실 줄 알았지.
그런데 하나님이 데려갔지 않나 이제는 금식한다고 애가 살아나올 것도 아니고 내가 통곡한다고 애가 다시 일어날 것도 아니니 이제는 먹어야지." 절박한 상황을 만나면 금식기도라는 것은 한번 해 볼만한 중요한 기도의 형태라는 것을 마음에 담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러분 가운데서 '아 나도 금식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내가 이렇게 그저 평범하게 기도해 가지고는 이 기도가 안 풀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 대단히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가 점점 불안 해 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불투명해지고 경제는 휘청거리고 공교육은 무너지고 있고 성적 타락은 점점 더 만연해 가고 젊은 청소년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는 더 무력해 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현실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하나님 앞에 먹고 마시는 일을 잠깐 접어두고 합심해서 주 앞에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기는 남북전쟁 때였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그 어려운 시대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너무 상황이 어려워지자 링컨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금식의 날을 선포한 일이 있습니다. 그 금식날을 선포하면서 그가 국민 앞에 한 연설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황폐 시킨 남북전쟁의 끔찍한 재난이 우리의 뻔뻔스러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내리신 징벌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 동안 엄청난 축복을 누려왔습니다. 오랫동안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성공에 취한 나머지 우리는 너무 자만하여 우리를 구속하고 보존하시는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너무 교만하여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권능 앞에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이 나라의 죄악을 자백하고 그 분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상원의 요청에 따라 그리고 상원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하여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따로 지정하여 국가적 겸손과 금식과 기도의 날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굉장히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미국의 다른점이 어디 있는가를 이런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열세에 몰려있던 북군을 승리로 이끌게 하시고 노예를 해방 시키게 하시고 국가가 분열될 수 있는 최악의 위기를 피하게 하셔서 오늘의 미국으로 발돋움 하게 해 주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을 때 네 탓이다 내 탓이다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더 윌리스라고 하는 분은 좋은 말을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가 순수한 마음과 올바른 동기로 금식기도를 한다면 이 금식기도는 다른 열쇠로는 열리지 않는 잠긴 문을 열수 있는 열쇠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다음주간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 입니다. 그 고난주간 금요일 저녁에는 우리가 모여서 특별히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 날 금요일 하루는 우리 모두가 금식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날로 정했으면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분은 동참할 수 없겠지만 형편이 되는 분은 그날 하루만이라도 주님 앞에 기도하는 귀한 겸손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80년도 우리 교회가 아주 조그만 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신군부 세력하고 민주세력하고 서로가 대립을 하면서 나라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몇 사람 되지 않았지만 고난주간 중 금요일을 선택해서 하루 금식기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너무 팔자가 좋아서 그랬는지 20년이 넘도록 금식기도를 한 날을 정해 놓고 실천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의 후손을 위해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위해서 우리 자신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비상수단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여러분이 영적으로 막 갈급 합니까 좀더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아마 이런 영적인 갈증을 마음에 갖고 있는 분들은 금식을 하면서 기도 할 필요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습니다. 목사까지 다 포함해서 우리는 너무 많이 먹습니다. 너무 많이 마십니다. 너무 많이 잡니다. 너무 많이 즐깁니다. 너무 많이 세상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설교를 준비하면서 약간 장난기가 발동해 인터넷에 식도락이라고 하는 사이트를 한번 검색해 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데 미쳐있는 사람들이니 식도락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번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역시나였습니다. 전국의 유명한 음식점, 좋은 음식들로 요란하게 도배지를 해 놨는데 그 식도락 사이트에 방문한 사람이 21만 명이었습니다.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들 그저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기고 하는 일에 정신이 쏙 빠져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특별히 더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건강 타령을 해대면서 신경질이 날 정도로 모두가 건강 노이로제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까지 가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잡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먹는 일에 너무 관심이 많습니다. 마시는 일에 너무 관심이 많습니다. 그저 건강해서 오래 사는 일에 너무 관심이 많아요.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분복입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그래도 이만큼 먹고 마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매이면 안됩니다. 건강,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행복에 제1 조건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건강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많은 분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적게 자기 절제하고 너무 적게 자기를 부인하고 너무 적게 기도하고 너무 적게 말씀 듣고 너무 적게 순종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겉 사람은 기름이 흐르고 윤기가 나고 어떤 때는 좀 지나쳐서 몸무게가 자꾸 늘어나는데 속사람은 점점 여려지고 점점 초조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기현상을 우리 모두가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위기입니다. 이럴 때에는 우리가 영적으로 갈급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영혼이 잘 되고 육신이 잘 되어야지,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면서 육신만 건강하기를 계속 추구한다면 이것은 잘못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위기입니다. 이럴 때 금식기도 하면서 기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여러분 마음속에 든다면 그것은 성령의 음성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같이 이렇게 살이 잘 안 찌는 사람은 금식하기 어렵습니다. 하루이틀만 금식을 해도 표가 나기 때문에 이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금식을 잘 못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한 달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이 보입니다. 얼굴이 윤기가 돌고 살을 조금 뺏으면 좋겠다 하는 분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금식해 보십시오. 꿩 먹고 알 먹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은혜 받고 육신도 다이어트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금식과 건강법을 연계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금식하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예민해집니다. 금식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갑자기 큰 소리로 나에게 말씀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식해서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예민해지면 하나님의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안이숙 사모님을 기억하시죠 30대 초반의 그 처녀로써 신사참배 안 하겠다고 일본천황 신사 앞에서 절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쫓기는 몸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젠 형무소 끌려가서 사형을 당할 확률이 거의 90% 이상 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입니다. 그가 피해 다니던 어느 날입니다. '내가 앞으로 주님을 위해 죽을 텐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좀더 알아야겠어.
예수님에게 확 반해야지 내가 예수님을 위해 죽지.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황홀하고 행복한가를 그냥 흠뻑 젖도록 알아야지 내가 주님을 위해 죽어도 기분 좋게 죽지. 내가 지금 상태를 가지고는 좀 어렵겠다. 내가 은혜를 좀더 받아야 되겠어.'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금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 몸이 조그만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혈압입니다.
그런데 3일 작정을 하고 금식을 했는데 3일째 되는 날은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온몸이 불덩이가 되고 경련이 일어나고 미칠 것 같더랍니다. 그래도 죽는다 하고 이제는 금식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그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읽으면 그렇습니다. "금식이 끝나자 얼마나 놀라운 힘이 나고 믿음이 굳어지고 성경말씀이 더 깊이 깨달아지는 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나의 소망도 십자가에 대한 나의 감격도 더욱 더 깊어 가고 은혜는 날로 더 충만해 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재미를 봐서 그런지 그 다음에는 7일 금식, 10을 금식을 예사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은혜의 풍성한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그 은혜에 풍성함을 가슴에 안고 형무소로 갔기 때문에 6년 동안 그 기가 막힌 형국의 고통을 다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식음을 전폐하고 은밀히 보시는 자기 앞에 나와서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고민이 있습니까 성경을 봐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귀에 안 들어옵니까 기도는 짧으면 짧을수록 할렐루야입니까 예배가 지루합니까 예수는 믿는데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없이 날마다 짜증이 납니까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뭔가 지금 상당히 빈혈증에 걸려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면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를 사모하기 위해서 한 두끼 접어두고 깊이 말씀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보십시오. 한끼 먹어서 기분 좋은 것과는 상대가 안 되는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급을 주십니다. 그리고 다이어트가 되니까 몸도 좋아집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는 필요하다, 하나님이 해라 말라 명령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다.' 하는 사실을 배우고 여러분 각자에게 이 사실을 잘 적용해 보는 아름다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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