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을 통한 자기 훈련 (눅4:1-13)
본문
언제부턴가 방학 때만 되면 대부분의 기도원이, 금식을 하려는 일반인들로 붐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금식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풍요로와진 이후에 영양분 과잉 섭취에 대한 해결책으로 금식을 권유한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일정한 기간 동안, 먹는 것을 절제 하거나, 때로는 마시는 것까지 절제하는 금식은, 본래, 슬픔을 애도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금식을 해 본 사람은, 사람의 몸이, 하루 종일, 또는 몇 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전혀 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금식을 하겠다고 해서 무조건 식사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단계를 밟아서 금식을 해야 합니다. 금식을 하면, 우리의 몸은 일상적인 신체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몸 안에 과도하게 공급되어 있 던 영양분을 소모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불필요한 지방질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결과를 보면, 금식은 암이 진전되는 것을 막는 데에 도 놀라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암에 다 적용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암 세포는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식으로 암 세포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금식에는, 이러한 신체적인 유익 외에도, 영적인 유익 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금식은, 자신의 몸과 영을 단련시켜, 순종의 가르침 과 종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훈련이 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 어서, 금식은, 회개의 표시였으며(삼상 7:6/ 왕상 21:27 참조), 간절한 기도 를 의미했고(삼하 12:16-17/ 시 35:13 참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 자 신을 준비시키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출 34:28/ 신 9:9/ 단 9:3, 10:3 참 조). 예수님께서도, 지상 사역을 시작하실 때, 먼저 40일 동안 금식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령님 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님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금식하시며 주 리셨을 때, 사단은 주님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이끌리신 주님은 사단의 시험을 능히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우리도 사단의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다면, 우리도 능히 그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간절한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음식을 탐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기 훈련
롬 8:5-6 자기 훈련을 음식에 적용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체중을 감량하기 위한 다이어트 정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의학 잡지에 실린 글 이, 음식에 대한 자기 훈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인간의 성장 초기 단계에서, 인체의 지방을 저장하는 세 포 안에, 여분의 지방 세포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지방 세포의 숫자는, 아무리 살이 빠지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지방 세포의 크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때 문이지, 지방 세포 자체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분의 지방 세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불필요한 지방 세포에도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평균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탐욕은, 비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소화 기관, 심장, 기타 신체 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일상적인 신체 리듬에 이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몸 안에 있는 여분의 지방 세포가,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끈질긴 탐욕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자 신의 영광을 구하는 타락한 생활의 원인이, 우리 안에 있는 심령의 악한 본성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 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했 습니다(롬 7:23-2
4). 아마도 사도 바울은 육신의 법과 마음의 법이 자기 안 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갈등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인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내적 고뇌에 싸이는지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뇌는 아무 방향 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습니다. 육신을 좇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의 동기와 목적이,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영을 좇는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성공이 아니라 파멸의 길 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에 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 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을 모두 먹이셨는가
살후 3:7-10 "하나님께서 배고픈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 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라고 대답합니다. 또 "예수님이 배 고픈 군중들을 먹이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고기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 떡과 고기 만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실지 약속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 10절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 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마 6:33). 누가복음 12장 23절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지는 24절에서는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 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때마다 우리를 먹이시겠다" 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필요 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 채 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 적,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오 히려, 그 약속을 의지해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7절로 10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 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 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 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 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그렇습니다. 당시 복음 전도 자들은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 도 바울과 그 일행이 복음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스스로 일해서 마련했던 것은,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살도록 성도들을 촉구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건강한 육체는 그 몸에 섭취된 영양분을, 필요한 각 지체에게 골고루 나눕니다. 만일 섭취된 영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몸의 생존에 꼭 필요한 기관을 살리기 위해, 지방과 같은 조직은 스스로 분해되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건 강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 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님 안에서 한 지체된 성도들의 필요를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식욕이 있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있다는 뜻 !
마 5:6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병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백 결핍성 소아 영양 실 조"라는 긴 이름을 가진 병(病)이 있습니다. [콰슈이오어코어(Kwashiorko r)]라고 불리는 이 병은, 최근 심각한 기아 현상을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관찰된 것으로, 인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백질이 결핍된 상태에 서 나타나는 증세를 가리킵니다. 이 병의 가장 뚜렷한 증세는 팔, 다리가 가늘고 길어지면서, 복부가 부풀고, 피부가 까칠하게 건조해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외적인 증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나중에는, 식욕을 완전히 잃고, "자신이 얼마나 배가 고픈지도" 잊 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먹을 것을 보 고도 받아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여서라도, 식 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굶주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 프리카 난민 수용소의 자원 봉사자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들에게 아 직 식욕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배고픈 상태, 그것은 죽음 만큼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육체적인 기아 현상과 영적인 기아 현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 신의 영적 기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07편 4절 로 6절, 8절과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 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 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 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혹시,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방황하며, 주 리고 목마름으로 피곤에 지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을 구세주로 영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죄 가운데에서, 그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죄를 느끼 지 못하는 "영적 불감증"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힘써 기도하며,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주린 영혼을 만족 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육체를 위한 음식, 영혼을 위한 양식 눅 24:30-31 성경책을 열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음식에 관련된 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음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800개 이상 됩니다. 물론 기도나 믿음과 함께 등장하는 것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에서도, 음식이나 잔 치, 농사와 같이, 직, 간접적으로 음식에 관련된 가르침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생산량이 사람들의 생존을 충분히 보장할 만큼에 미치지 못했고, 식량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야 했기 때문에, 식량 문제에 집착했던 것으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양식은, 생존을 위한 필 수품이지, 미식가의 눈요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음식의 존재 목적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육 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면,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 적인 양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야곱의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 습니다. 잠시 후에 제자들이 주님께 "무엇이라도 좀 드십시오"라고 음식 드시기를 권했을 때, 주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 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식사하실 때마다, 예수님은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음식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예수님은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하실 때에도, 그들의 영 적인 필요까지 채워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과 31 절을 보십시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 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이 장면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 두 사람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도를 설명하신 장면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길에 서, 예수님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떼어 주신 떡을 받아 먹 었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육신의 양식과 함께, 영의 눈이 뜨이도록 영의 양식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영의 양식을 사모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4장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령님 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님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금식하시며 주 리셨을 때, 사단은 주님을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이끌리신 주님은 사단의 시험을 능히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우리도 사단의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른다면, 우리도 능히 그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간절한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음식을 탐닉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기 훈련
롬 8:5-6 자기 훈련을 음식에 적용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체중을 감량하기 위한 다이어트 정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의학 잡지에 실린 글 이, 음식에 대한 자기 훈련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인간의 성장 초기 단계에서, 인체의 지방을 저장하는 세 포 안에, 여분의 지방 세포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지방 세포의 숫자는, 아무리 살이 빠지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이 찌고 빠지는 것은, 지방 세포의 크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때 문이지, 지방 세포 자체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분의 지방 세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불필요한 지방 세포에도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평균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탐욕은, 비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소화 기관, 심장, 기타 신체 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일상적인 신체 리듬에 이상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몸 안에 있는 여분의 지방 세포가,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끈질긴 탐욕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자 신의 영광을 구하는 타락한 생활의 원인이, 우리 안에 있는 심령의 악한 본성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타락한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 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말했 습니다(롬 7:23-2
4). 아마도 사도 바울은 육신의 법과 마음의 법이 자기 안 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갈등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인이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내적 고뇌에 싸이는지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뇌는 아무 방향 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습니다. 육신을 좇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의 동기와 목적이, 육신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영을 좇는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성공이 아니라 파멸의 길 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에 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 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배고픈 사람을 모두 먹이셨는가
살후 3:7-10 "하나님께서 배고픈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 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라고 대답합니다. 또 "예수님이 배 고픈 군중들을 먹이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고기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 떡과 고기 만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실지 약속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 10절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 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마 6:33). 누가복음 12장 23절은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지는 24절에서는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 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때마다 우리를 먹이시겠다" 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필요 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까지 채 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 적,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오 히려, 그 약속을 의지해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7절로 10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 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 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 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 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그렇습니다. 당시 복음 전도 자들은 교회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 도 바울과 그 일행이 복음 사역에 필요한 비용을 스스로 일해서 마련했던 것은,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살도록 성도들을 촉구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건강한 육체는 그 몸에 섭취된 영양분을, 필요한 각 지체에게 골고루 나눕니다. 만일 섭취된 영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몸의 생존에 꼭 필요한 기관을 살리기 위해, 지방과 같은 조직은 스스로 분해되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건 강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 고 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님 안에서 한 지체된 성도들의 필요를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식욕이 있다는 것은 아직 소망이 있다는 뜻 !
마 5:6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병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백 결핍성 소아 영양 실 조"라는 긴 이름을 가진 병(病)이 있습니다. [콰슈이오어코어(Kwashiorko r)]라고 불리는 이 병은, 최근 심각한 기아 현상을 보이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관찰된 것으로, 인체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백질이 결핍된 상태에 서 나타나는 증세를 가리킵니다. 이 병의 가장 뚜렷한 증세는 팔, 다리가 가늘고 길어지면서, 복부가 부풀고, 피부가 까칠하게 건조해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외적인 증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나중에는, 식욕을 완전히 잃고, "자신이 얼마나 배가 고픈지도" 잊 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먹을 것을 보 고도 받아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여서라도, 식 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굶주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 프리카 난민 수용소의 자원 봉사자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들에게 아 직 식욕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배고픈 상태, 그것은 죽음 만큼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육체적인 기아 현상과 영적인 기아 현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 신의 영적 기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07편 4절 로 6절, 8절과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 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 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 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혹시,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방황하며, 주 리고 목마름으로 피곤에 지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을 구세주로 영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죄 가운데에서, 그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죄를 느끼 지 못하는 "영적 불감증"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힘써 기도하며,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주린 영혼을 만족 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육체를 위한 음식, 영혼을 위한 양식 눅 24:30-31 성경책을 열면,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음식에 관련된 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음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800개 이상 됩니다. 물론 기도나 믿음과 함께 등장하는 것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에서도, 음식이나 잔 치, 농사와 같이, 직, 간접적으로 음식에 관련된 가르침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생산량이 사람들의 생존을 충분히 보장할 만큼에 미치지 못했고, 식량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야 했기 때문에, 식량 문제에 집착했던 것으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양식은, 생존을 위한 필 수품이지, 미식가의 눈요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음식의 존재 목적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육 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면,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 적인 양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야곱의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 습니다. 잠시 후에 제자들이 주님께 "무엇이라도 좀 드십시오"라고 음식 드시기를 권했을 때, 주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 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식사하실 때마다, 예수님은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음식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예수님은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하실 때에도, 그들의 영 적인 필요까지 채워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0절과 31 절을 보십시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 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이 장면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 두 사람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도를 설명하신 장면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길에 서, 예수님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떼어 주신 떡을 받아 먹 었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육신의 양식과 함께, 영의 눈이 뜨이도록 영의 양식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영의 양식을 사모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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