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13:6-9)
본문
오늘 읽으신 본문의 내용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고 쉬운 비유입니다. 그렇지만 단순 한 비유 가운데는 아주 중요하고 심오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서 3년 후에 갔는데 열매를 맺 지를 않는 아주 이상한 잘못된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 한즉 포도원을 관리하는 과원지기가 "금 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정성껏 돌보겠습니다. 그런 다음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는 찍 어 버리소서 " 그런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또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이 비유 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요점은 우리의 삶이 무엇이냐 또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 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오늘 여기 내가 살아 있다.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한마디로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찍어 버리게 됐는데 찍어 버림을 당할 이유를 보면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 무화과나무는 주인의 수고와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2). 1년도 아니고 3년동안 계속해서 열매를 맺지 못한 참 이상한 나무입니다.
(3). 땅만 쓸데없이 차지하고 땅을 버리는 그런 쓸모 없는 나무입니다.
(4). 이 무화과나무는 땅속에 있는 좋은 영양분을 흡수함으로 열매는 못 맺으면서도 영양분 을 빨아들이므로 열매 맺는 이웃 나무들이 (포도나무들) 빨아 들여야 될 영양분을 흡수해서 이웃 나무를 해롭게 하는 그런 찍어버림을 당해야 될 악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 했지만 과원지기가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서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습니다" 하고 사정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 주석 가들 은 이 과원지기를 예수님의 상징으로 봅니다. 당연히 찍어 버림을 당해야 될 이 무화과나무가 찍힘을 받지 않고 금년에도 그 목숨이 붙어 있는 이유는 오직 은총이며, 과원지기의 중보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이 찍어 버림을 당해야 될 무화과나무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0절에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나는 어떤 나무겠느냐! 한즉 다른 사람은 모르겠습니다만 저 자신을 놓고 보면 내가 나를 아닌까. 아무리 봐도 아무리 뜯어보고 뒤집어 보아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좋 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찍혀 버림을 당해야 될 이 무화과나무는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열 두 번도 더 오래 전에 찍어 버림을 당했어야 될 죄인입니다. 내가 압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찍어 낼 수 있는데도 찍어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이 그게 무슨 의미냐! 이 무화과나무를 보면은 분명히 찍힘을 당해야될 못된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금년에 계속해서 그 생명이 보존이 되는 까닭은 오직 주인 의 긍휼, 자비, 은총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깊이 받아들일 때 "아! 찍 힘을 당해야 될 무화과나무 같은 이 죄인이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은 분명히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구나" 하고 뜨겁게 깊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두가지 소망이 생깁니다. 이 찍어 버릴 무화과나무를 찍지 아니하고 남겨 두신 까닭 은 내가 두루 파서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다는 과원지기의 결심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 나를 이 땅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큰 은총은 다만 내가 겨우 살아 있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게 하신 하나님은 내 속에 두루 파서 내 안에 있는 악한 것들, 돌멩이, 잡 초, 열매맺지 못한 것들을 다 골라내고 거름을 부어 주어서 나 자신을 좋은 열매맺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함이고 내 환경 속에 나와 관계된 자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러한 나의 환경과 나와 관계된 것들 속에서도 주님은 역사 하셔서 두루두루 파서 거름을 부어 주심으 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 결심,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뜻이 이 큰 은총 속에 들어 있으니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큰 은총이라면 단순히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아! 이 큰 은총 속에서 나는 앞으로 열매를 맺겠구나! 잘되겠구나!" 하는 큰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다시 보십시오. 찍힘을 당하려 했던 무화과나무 같습니다. 못났습니다. 문제가 많아요. 삐뚤어 졌습니다. 소망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찍지 아니하고 무화과나무 를 남겨 주신 것처럼 오늘도 이렇게 살도록 하심은 큰 은총이다. 그리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총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니 오! 나도 소망이 있구나, 나도 되겠구나 그런 뜨거운 마음을 오늘 이 시간부터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좀 나아가서 옆에 있는 형제를 봅시다. "야! 형편없는 사람, 저 사람 아주 못 된 사람인데 저 열매도 안 맺고"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저 사람 형편없어. 소망 없는 인간이야. 찍힘을 받아야 될 무화과나무 같애."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형제를 남겨 두셨습니다. 내게만 큰 은총을 주신 게 아니라 바로 저 문제 많은 형제도 하나님은 찍지 아니하시고 큰 은총과 자비를 베푸셔서 오늘 살게 하셨으니, "이 형제도 큰 소망 있는 형제이구나" 그렇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큰 은총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새롭게 보고 내 옆에 있는 형제를 새롭게 보면서 " 아!우리는 찍힘을 당할 무화과나무야 소망 없는 사람들이야. 나나 너나 쓸모 없는 무화과나 무 같은데 너나, 나를 하나님의 큰 은총 가운데 살게 하셨구나!" 그것을 뜨겁게 받아들이게 되 면은 우리에게 퍼진 큰 은총이 우리의 삶의 지경 속에 두루 파고 들어와서 나와 너를,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좋은 열매 맺는 그런 삶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7장 4절에 보면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큰 기쁨 넘치네 " 라고 찬양했습니다. 내게 생명 있으니 이 생명은 하나님의 큰 은총이다.
그렇다면 이 생명은 사망을 이긴 생명이다. 그래서 큰 기쁨이 있다. 또 똑같은 찬송이 405장 3절입니다. "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 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우리는 이제 큰 은총 안에 사는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어 주신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단순히 겨우 목숨만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과 삶 속에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속에 놀라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은총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2. " 금년에는 그대로 두소서 " 금년입니다. 시한부입니다. 금년뿐이예요. 우리가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을 보고 시한부 인생이라 그럽니다. 암선고 받은 사람만 시한부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입니다. 다만 우리의 남은 때가 얼마인지 모를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이 땅에서 한도가 있습니다. 한정이 주어졌습니다. 시한부의 삶을 삽니다. 엿장수가 엿가락을 마음대로 늘리듯이 내게 주어진 삶,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맘대로 늘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놔두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 무에게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1년 시한부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찍어 버 린다는 것입니다. 이젠 찍는다. 우리의 삶이 시한부의 삶이다. 끝이 있다는 그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 시한부의 삶이 끝날 때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더 중 요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분 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 떠난다. 그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다음에 있는 심판은 인정을 안하려고 합니다. 눈가 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죽 으면 끝났지 그 뒤에 심판이 있나 그런 건 없어! 내가 없다고 해서 없어지는 겁니까 분명 히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좀 심술궂은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 한다고 합시다. 목사님!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째서 못된 사람들, 아주 악한 사람들 많은데 왜 하나님이 그것들을 즉각 즉각 심판해서 죽이시고 심판하시지 가만두고 보고만 계십니까 하나님 의 심판이 어디 있어요" 대단한 논리였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왜 하나님이 심판 할 수 있는데 오늘 즉시 찍어 버릴 수 있는데 찍어 버리지 아니하고, 죽이지 아니하고 심판하지 아니하시는가! 당신과 나 때문입니다. 나와 당신을 하나님께서 찍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든지 회개시키고 구원 시키시려고 하나님이 도끼를 내려 찍지 아니하시고 도끼만 내려져 있어요. 만일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을 전부 즉각 즉각 찍어서 심판하신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은 몇 번째나 되겠냐는겁니다.! 당신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지요. 줄서기를 해봅시다. 당신은 몆번째나 되겠습니까 로마서 2장 415절에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 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 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했습니다.
3.
그러므로 오늘 여기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네가지 결심을 해야 합니다. 네가지 뜨거운 작정을 내 마음에 세워야 합니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소망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열매를 못 맺었어요. 참으로 나도 내가 싫을 정도입니다. 찍어 버려야 할 나의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오늘도 살게 하셨습니다. 그 만큼 내가 하나님의 큰 은총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한 바울의 마음처럼 나는 누구보다 더 찍힘을 받아야 될 무화과나 무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스스로 내가 내 자신을 향하여 "아! 그렇구나. 내가 참으로 쓸모 없는 무화과나무지만 하나님은 이런 나에게 이런 큰 은총을 주셨고 그러니 이 큰 은총 속에 사는 나는 반드시 열매를 맺겠구나!" 내 자신을 향해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세우십시오. 이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2). 오늘이라고 하는 이 주어진 시간에 즉시 해야 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으니 오늘 주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놓으신 구원 을 받는 것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여기 앉아 계시는 중에 어느 분 아직도 내가 예수를 믿어 야 될까! 말아야 될까! 아직도 작정을 못하신 분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여 기에서 " 정신차려야 되겠구나. 내일로 미루어선 안되겠구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구원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늘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 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 제가 참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운 것이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살게 해 놨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 네가 살아 있으므로 너와 관계된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느냐 위로를 받느냐 너 어째서 그 모양이냐! 어째서 사람을 괴 롭히냐! 나는 너에게 큰 은총을 주어서 아름답고 복스럽게 살라고 했거늘 너는 어째서 너와 함 께 사는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주느냐! 아픔을 주느냐! 네가 똑똑하면 무엇하느냐 내가 세상 지위가 높으면 무엇하느냐! 가슴이 아픕니다. 너 못나도 괜찮아. 돈 없어도 괜찮아. 너로 인해 서 너와 함께 사는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라 그게 사랑이다." 그런 결심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4). 이렇게 살다가 드디어 우리의 주어진 시한부가 마감이 됩니다. 야외에 가족끼리 놀러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 야! 시간 됐다. 아빠! 벌써요 지금 출발해야 지 가자!" 그러면 가져왔던 물건들 음식들을 가방에다 담습니다. 깔아 놓은 자리를 둘둘 말아 서 짊어지고 출발합니다. 마침내 여기에 살던 우리의 장막 집을 거둘 때가 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갈곳이 어딜 까요 자리를 거둘 건 거두었는데 갈곳이 정처가 없어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날 훨씬 더 좋은 집,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 눈물도 아픔도 없는 영원한 집이 우리 앞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송가 295장 4절에 " 그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 겠네" 그날 거기서 우리 모두 만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1.오늘 여기 내가 살아 있다.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한마디로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3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찍어 버리게 됐는데 찍어 버림을 당할 이유를 보면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 무화과나무는 주인의 수고와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2). 1년도 아니고 3년동안 계속해서 열매를 맺지 못한 참 이상한 나무입니다.
(3). 땅만 쓸데없이 차지하고 땅을 버리는 그런 쓸모 없는 나무입니다.
(4). 이 무화과나무는 땅속에 있는 좋은 영양분을 흡수함으로 열매는 못 맺으면서도 영양분 을 빨아들이므로 열매 맺는 이웃 나무들이 (포도나무들) 빨아 들여야 될 영양분을 흡수해서 이웃 나무를 해롭게 하는 그런 찍어버림을 당해야 될 악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 했지만 과원지기가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서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습니다" 하고 사정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 주석 가들 은 이 과원지기를 예수님의 상징으로 봅니다. 당연히 찍어 버림을 당해야 될 이 무화과나무가 찍힘을 받지 않고 금년에도 그 목숨이 붙어 있는 이유는 오직 은총이며, 과원지기의 중보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이 찍어 버림을 당해야 될 무화과나무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0절에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 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나는 어떤 나무겠느냐! 한즉 다른 사람은 모르겠습니다만 저 자신을 놓고 보면 내가 나를 아닌까. 아무리 봐도 아무리 뜯어보고 뒤집어 보아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좋 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찍혀 버림을 당해야 될 이 무화과나무는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열 두 번도 더 오래 전에 찍어 버림을 당했어야 될 죄인입니다. 내가 압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찍어 낼 수 있는데도 찍어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이 그게 무슨 의미냐! 이 무화과나무를 보면은 분명히 찍힘을 당해야될 못된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금년에 계속해서 그 생명이 보존이 되는 까닭은 오직 주인 의 긍휼, 자비, 은총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깊이 받아들일 때 "아! 찍 힘을 당해야 될 무화과나무 같은 이 죄인이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은 분명히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구나" 하고 뜨겁게 깊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두가지 소망이 생깁니다. 이 찍어 버릴 무화과나무를 찍지 아니하고 남겨 두신 까닭 은 내가 두루 파서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다는 과원지기의 결심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 나를 이 땅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큰 은총은 다만 내가 겨우 살아 있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게 하신 하나님은 내 속에 두루 파서 내 안에 있는 악한 것들, 돌멩이, 잡 초, 열매맺지 못한 것들을 다 골라내고 거름을 부어 주어서 나 자신을 좋은 열매맺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함이고 내 환경 속에 나와 관계된 자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러한 나의 환경과 나와 관계된 것들 속에서도 주님은 역사 하셔서 두루두루 파서 거름을 부어 주심으 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 결심,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뜻이 이 큰 은총 속에 들어 있으니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이 큰 은총이라면 단순히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아! 이 큰 은총 속에서 나는 앞으로 열매를 맺겠구나! 잘되겠구나!" 하는 큰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다시 보십시오. 찍힘을 당하려 했던 무화과나무 같습니다. 못났습니다. 문제가 많아요. 삐뚤어 졌습니다. 소망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찍지 아니하고 무화과나무 를 남겨 주신 것처럼 오늘도 이렇게 살도록 하심은 큰 은총이다. 그리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총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니 오! 나도 소망이 있구나, 나도 되겠구나 그런 뜨거운 마음을 오늘 이 시간부터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좀 나아가서 옆에 있는 형제를 봅시다. "야! 형편없는 사람, 저 사람 아주 못 된 사람인데 저 열매도 안 맺고"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저 사람 형편없어. 소망 없는 인간이야. 찍힘을 받아야 될 무화과나무 같애."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형제를 남겨 두셨습니다. 내게만 큰 은총을 주신 게 아니라 바로 저 문제 많은 형제도 하나님은 찍지 아니하시고 큰 은총과 자비를 베푸셔서 오늘 살게 하셨으니, "이 형제도 큰 소망 있는 형제이구나" 그렇게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큰 은총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새롭게 보고 내 옆에 있는 형제를 새롭게 보면서 " 아!우리는 찍힘을 당할 무화과나무야 소망 없는 사람들이야. 나나 너나 쓸모 없는 무화과나 무 같은데 너나, 나를 하나님의 큰 은총 가운데 살게 하셨구나!" 그것을 뜨겁게 받아들이게 되 면은 우리에게 퍼진 큰 은총이 우리의 삶의 지경 속에 두루 파고 들어와서 나와 너를, 우리의 삶 전체를 새롭게 좋은 열매 맺는 그런 삶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7장 4절에 보면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큰 기쁨 넘치네 " 라고 찬양했습니다. 내게 생명 있으니 이 생명은 하나님의 큰 은총이다.
그렇다면 이 생명은 사망을 이긴 생명이다. 그래서 큰 기쁨이 있다. 또 똑같은 찬송이 405장 3절입니다. "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 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우리는 이제 큰 은총 안에 사는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어 주신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단순히 겨우 목숨만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과 삶 속에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속에 놀라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은총으로 역사 하실 것입니다.
2. " 금년에는 그대로 두소서 " 금년입니다. 시한부입니다. 금년뿐이예요. 우리가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을 보고 시한부 인생이라 그럽니다. 암선고 받은 사람만 시한부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입니다. 다만 우리의 남은 때가 얼마인지 모를 뿐이지 우리는 분명히 이 땅에서 한도가 있습니다. 한정이 주어졌습니다. 시한부의 삶을 삽니다. 엿장수가 엿가락을 마음대로 늘리듯이 내게 주어진 삶,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맘대로 늘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놔두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 무에게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1년 시한부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찍어 버 린다는 것입니다. 이젠 찍는다. 우리의 삶이 시한부의 삶이다. 끝이 있다는 그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 시한부의 삶이 끝날 때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더 중 요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분 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 떠난다. 그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다음에 있는 심판은 인정을 안하려고 합니다. 눈가 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죽 으면 끝났지 그 뒤에 심판이 있나 그런 건 없어! 내가 없다고 해서 없어지는 겁니까 분명 히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좀 심술궂은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 한다고 합시다. 목사님!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째서 못된 사람들, 아주 악한 사람들 많은데 왜 하나님이 그것들을 즉각 즉각 심판해서 죽이시고 심판하시지 가만두고 보고만 계십니까 하나님 의 심판이 어디 있어요" 대단한 논리였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왜 하나님이 심판 할 수 있는데 오늘 즉시 찍어 버릴 수 있는데 찍어 버리지 아니하고, 죽이지 아니하고 심판하지 아니하시는가! 당신과 나 때문입니다. 나와 당신을 하나님께서 찍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든지 회개시키고 구원 시키시려고 하나님이 도끼를 내려 찍지 아니하시고 도끼만 내려져 있어요. 만일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을 전부 즉각 즉각 찍어서 심판하신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은 몇 번째나 되겠냐는겁니다.! 당신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지요. 줄서기를 해봅시다. 당신은 몆번째나 되겠습니까 로마서 2장 415절에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 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 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고 했습니다.
3.
그러므로 오늘 여기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네가지 결심을 해야 합니다. 네가지 뜨거운 작정을 내 마음에 세워야 합니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소망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열매를 못 맺었어요. 참으로 나도 내가 싫을 정도입니다. 찍어 버려야 할 나의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오늘도 살게 하셨습니다. 그 만큼 내가 하나님의 큰 은총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한 바울의 마음처럼 나는 누구보다 더 찍힘을 받아야 될 무화과나 무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스스로 내가 내 자신을 향하여 "아! 그렇구나. 내가 참으로 쓸모 없는 무화과나무지만 하나님은 이런 나에게 이런 큰 은총을 주셨고 그러니 이 큰 은총 속에 사는 나는 반드시 열매를 맺겠구나!" 내 자신을 향해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세우십시오. 이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2). 오늘이라고 하는 이 주어진 시간에 즉시 해야 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으니 오늘 주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놓으신 구원 을 받는 것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여기 앉아 계시는 중에 어느 분 아직도 내가 예수를 믿어 야 될까! 말아야 될까! 아직도 작정을 못하신 분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여 기에서 " 정신차려야 되겠구나. 내일로 미루어선 안되겠구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구원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늘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 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한다. 제가 참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운 것이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살게 해 놨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느냐! 네가 살아 있으므로 너와 관계된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느냐 위로를 받느냐 너 어째서 그 모양이냐! 어째서 사람을 괴 롭히냐! 나는 너에게 큰 은총을 주어서 아름답고 복스럽게 살라고 했거늘 너는 어째서 너와 함 께 사는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주느냐! 아픔을 주느냐! 네가 똑똑하면 무엇하느냐 내가 세상 지위가 높으면 무엇하느냐! 가슴이 아픕니다. 너 못나도 괜찮아. 돈 없어도 괜찮아. 너로 인해 서 너와 함께 사는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라 그게 사랑이다." 그런 결심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4). 이렇게 살다가 드디어 우리의 주어진 시한부가 마감이 됩니다. 야외에 가족끼리 놀러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 야! 시간 됐다. 아빠! 벌써요 지금 출발해야 지 가자!" 그러면 가져왔던 물건들 음식들을 가방에다 담습니다. 깔아 놓은 자리를 둘둘 말아 서 짊어지고 출발합니다. 마침내 여기에 살던 우리의 장막 집을 거둘 때가 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갈곳이 어딜 까요 자리를 거둘 건 거두었는데 갈곳이 정처가 없어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날 훨씬 더 좋은 집,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 눈물도 아픔도 없는 영원한 집이 우리 앞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찬송가 295장 4절에 " 그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 겠네" 그날 거기서 우리 모두 만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