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지 말라 (요14:1-7)
본문
“근심을 덜어놓고 다함께 차차차”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신나고, 그 노래를 들으면 근심을 덜어버릴 것 같지만 들을 때 뿐이지 듣고 나면 다시 근심이 더 쌓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근심을 이기는 삶에 대하여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걱정과 근심의 세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다가 죽음의 날이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기시며 당신이 곧 그들을 떠나가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스승이고, 전부인 주님이 없는 세상은 앙코없는 찐방처럼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그 제자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근심하지 말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걱정, 근심, 고난, 두려움 뿐임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그들을 떠나간다는 것이 걱정,근심이요,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예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자기의 직업도 포기하였습니다. 어부라는 직업, 돈 잘버는 세리라는 직업을 포기하였습니다. 또 자기의 아버지와 가족을 과감하고 뒤로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만큼 예수를 믿고 신뢰하며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자기들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살아갈 길에 대한 걱정이 가로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할 일인 것입니다.
예화) 앞날에 대한 근심걱정-미래의 살길에 대해 걱정하던 제자들은 각각 자기의 이전 직업을 찾아 나섰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걱정 때문에 제자들은 다시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어떤 제자는 무서워서 둘렀던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쳤으며, 베드로는 어린 소녀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없는 제자들은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 뿐이었습니다. 주님없는 인간의 걱정근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가지 근심이 떠나면 다른 근심이 또 찾아옵니다. 그래서 삶이 괴롭다고 합니다.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힘은 없고 일이 닥쳐오니 걱정을 안할 수 없다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한 번 봅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에 들어갈 걱정, 고등학교 3년내내 대학에 들어갈 걱정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기뻐야 하는데 오히려 그 등록금댈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하던 대학을 나오면 취직할 걱정이 또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사서 걱정을 합니다. 큰 아들은 짚신장사를 하고 작은 아들은 나막신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뿐입니다. 비가 오면 짚신 파는 아들이 걱정입니다. “아이고 왜 이리 비가 오나 우리 큰 아들이 짚신을 못팔텐데”하며 한숨을 쉬며 해가 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해가 드니까 나막신 파는 아들이 걱정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해가 쨍쨍찌니
둘째 아들이 나막신을 못팔텐데”하며 한숨을 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입니다.’ 90살된 할아버지가 70살된 아들과 같이 길을 가다가 언덕을 내려가는데 자기의 몸은 생각지도 않고 “애야 조심해서 내려가거라”하면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본다니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근심을 다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에 세상의 근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이 무널질까’ 근심하는 사람이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근심이 우리 가운데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존층의 문제는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자외선을 직접 보기에 피부암의 걱정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이 오염되어서 산성비와 눈이 와서 머리가 빠진다고 걱정하며 비와 눈을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이 오염이 심하다고 걱정이 되어서 정수기를 사다놓고 먹는데 그 정수기가 더 오염된 물을 준다고 합니다. 이 환경문제가 심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어야지 근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근심은 영적질병입니다. 왜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주님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근심은 영적 질병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증거이며,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불신이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 영적 질병입니다. 병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고칠 가능성이 있고, 새로움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을 조기에 발견하면 더 고칠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내 자신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바로 진단하고 영적질명을 고침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근심하지 말라는 주님 그러면 왜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가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심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눅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눅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위해 근심한다고, 자녀를 위해 근심한다고, 세상을 위해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근심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밤잠을 못자며 사업을 위해 근심하고 걱정해서 사업이 잘된다면 몇날 밤이라도 새가면서 근심하겠지만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자녀를 위해 머리가 새도록 근심하여 자녀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검은머리가 흰머리가 되도록 근심하지 않겟습니까 세상을 위해 근심해서 세상이 바로 돌아간다면 머리가 빠지도록 근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근심하고 걱정해서 병이 났는다면 병이 안나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병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며 걱정 근심을 해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밤이 새는 한숨이 기도로 바뀌고, 머리가 빠지고 새도록 하는 근심이 기도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근심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심이라는 영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길은 기도 뿐입니다. 성령님이 행하시기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님이시니라”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신 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환난 가운데서 좀더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잘 예수를 증거할까 하고 아름다운 염려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행하시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이 주어졌는데,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걱정이 있지 않습니까 “말을 안들으면 어떻하지”“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데 어떻하지”“전도했다 화를 내면 어떻할까”하며 전도하기 전에 걱정과 근심이 앞서서 전도의 발걸을 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시니 근심하지 말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걱정과 근심이 앞서지 않습니까 그러나 언제나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히 성령님은 믿는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을 믿고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요14:16-18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할 때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근심하지 않고 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성령님이 그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믿는 성도는 ‘성령님충만’하여 날마다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19:16-22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께 와서 영생을 묻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아마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물질도 소유하고, 지식도 소유하고, 종교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엇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나와서 ‘영생의 길’을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어려서 부터 그 계명을 열심히 지켰다고 말하였고 예수님은 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합니다. 이 부자청년의 근심은 그를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천국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그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였다면 영생을 얻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에 대한 근심, 미래에 대한 근심, 천국에 대한 근심이 우리를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별 걱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재미 없어서 어떻게 사냐’ 매일 찬양만 하며 사니 무슨 재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지도 않는 사두개인들이 한 여인이 7남편을 두었었는데 천국에 가면 누구와 사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무슨 말을 쓰냐”는 이야기도 합니다. 근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행하여 천국에 이르는 신앙인 되시기 바랍니다. 천국이 예비 되었기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지만은 우리를 위해 집을 예비하러 가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준비해 주신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깐 사는 육신을 위한 집이 아니라 영원한 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이 오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오고, 아픔이 온다할지라도 믿는 성도는 이겨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아파트가 당첨이 되어서 2-3년 후에 입주를 한다면 현재가 당장은 어렵더라도 소망하며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세를 살며 어려움을 겪어도 참으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현재 사는 집이 조그만해도,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수도요금 전기요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낍니다. 10년 후에라도 확실히 성공할 보장이 있고, 큰 돈을 벌 보장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힘을 기울여 사업을 할 것입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온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농부는 가을에 추수를 확실히 믿기에 봄이되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비료도 주고, 땀을 흘립니다. 왜 그 어려운 일을 열심히, 기쁨으로 합니까 가을에 추수를 할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소망이 있기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이기게 됩니다. 근심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다해도 근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으면 바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근심, 건강에 대한 근심, 자녀에 대한 근심, 사업에 대한 근심, 가정에 대한 근심, 병에 대한 근심 등 우리를 짓누르는 영적인 질병인 근심, 예수가 없어서 생긴 이 근심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근심한다고 이룰 수 없는 것이 없으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이 앞서 행하기에 근심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하며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예비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1. 걱정과 근심의 세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다가 죽음의 날이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기시며 당신이 곧 그들을 떠나가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스승이고, 전부인 주님이 없는 세상은 앙코없는 찐방처럼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그 제자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근심하지 말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걱정, 근심, 고난, 두려움 뿐임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그들을 떠나간다는 것이 걱정,근심이요, 두려움입니다. 그들은 예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자기의 직업도 포기하였습니다. 어부라는 직업, 돈 잘버는 세리라는 직업을 포기하였습니다. 또 자기의 아버지와 가족을 과감하고 뒤로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만큼 예수를 믿고 신뢰하며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자기들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살아갈 길에 대한 걱정이 가로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할 일인 것입니다.
예화) 앞날에 대한 근심걱정-미래의 살길에 대해 걱정하던 제자들은 각각 자기의 이전 직업을 찾아 나섰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걱정 때문에 제자들은 다시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어떤 제자는 무서워서 둘렀던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쳤으며, 베드로는 어린 소녀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없는 제자들은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 뿐이었습니다. 주님없는 인간의 걱정근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가지 근심이 떠나면 다른 근심이 또 찾아옵니다. 그래서 삶이 괴롭다고 합니다.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힘은 없고 일이 닥쳐오니 걱정을 안할 수 없다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한 번 봅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고등학교에 들어갈 걱정, 고등학교 3년내내 대학에 들어갈 걱정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기뻐야 하는데 오히려 그 등록금댈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하던 대학을 나오면 취직할 걱정이 또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사서 걱정을 합니다. 큰 아들은 짚신장사를 하고 작은 아들은 나막신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뿐입니다. 비가 오면 짚신 파는 아들이 걱정입니다. “아이고 왜 이리 비가 오나 우리 큰 아들이 짚신을 못팔텐데”하며 한숨을 쉬며 해가 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해가 드니까 나막신 파는 아들이 걱정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해가 쨍쨍찌니
둘째 아들이 나막신을 못팔텐데”하며 한숨을 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입니다.’ 90살된 할아버지가 70살된 아들과 같이 길을 가다가 언덕을 내려가는데 자기의 몸은 생각지도 않고 “애야 조심해서 내려가거라”하면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본다니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근심을 다 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에 세상의 근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이 무널질까’ 근심하는 사람이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근심이 우리 가운데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존층의 문제는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자외선을 직접 보기에 피부암의 걱정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이 오염되어서 산성비와 눈이 와서 머리가 빠진다고 걱정하며 비와 눈을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이 오염이 심하다고 걱정이 되어서 정수기를 사다놓고 먹는데 그 정수기가 더 오염된 물을 준다고 합니다. 이 환경문제가 심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어야지 근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근심은 영적질병입니다. 왜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주님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근심은 영적 질병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증거이며,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불신이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 영적 질병입니다. 병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고칠 가능성이 있고, 새로움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을 조기에 발견하면 더 고칠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내 자신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바로 진단하고 영적질명을 고침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근심하지 말라는 주님 그러면 왜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가 근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근심으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눅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눅 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위해 근심한다고, 자녀를 위해 근심한다고, 세상을 위해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근심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밤잠을 못자며 사업을 위해 근심하고 걱정해서 사업이 잘된다면 몇날 밤이라도 새가면서 근심하겠지만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자녀를 위해 머리가 새도록 근심하여 자녀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검은머리가 흰머리가 되도록 근심하지 않겟습니까 세상을 위해 근심해서 세상이 바로 돌아간다면 머리가 빠지도록 근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근심하고 걱정해서 병이 났는다면 병이 안나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병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며 걱정 근심을 해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빌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밤이 새는 한숨이 기도로 바뀌고, 머리가 빠지고 새도록 하는 근심이 기도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근심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심이라는 영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길은 기도 뿐입니다. 성령님이 행하시기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님이시니라”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신 후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환난 가운데서 좀더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잘 예수를 증거할까 하고 아름다운 염려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행하시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이 주어졌는데,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걱정이 있지 않습니까 “말을 안들으면 어떻하지”“나는 말을 할 줄 모르는데 어떻하지”“전도했다 화를 내면 어떻할까”하며 전도하기 전에 걱정과 근심이 앞서서 전도의 발걸을 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시니 근심하지 말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걱정과 근심이 앞서지 않습니까 그러나 언제나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히 성령님은 믿는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도하심과 지켜주심을 믿고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요14:16-18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할 때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근심하지 않고 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성령님이 그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믿는 성도는 ‘성령님충만’하여 날마다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하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19:16-22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께 와서 영생을 묻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아마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물질도 소유하고, 지식도 소유하고, 종교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엇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나와서 ‘영생의 길’을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켜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어려서 부터 그 계명을 열심히 지켰다고 말하였고 예수님은 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합니다. 이 부자청년의 근심은 그를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천국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그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였다면 영생을 얻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에 대한 근심, 미래에 대한 근심, 천국에 대한 근심이 우리를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별 걱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재미 없어서 어떻게 사냐’ 매일 찬양만 하며 사니 무슨 재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지도 않는 사두개인들이 한 여인이 7남편을 두었었는데 천국에 가면 누구와 사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무슨 말을 쓰냐”는 이야기도 합니다. 근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행하여 천국에 이르는 신앙인 되시기 바랍니다. 천국이 예비 되었기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지만은 우리를 위해 집을 예비하러 가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준비해 주신 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깐 사는 육신을 위한 집이 아니라 영원한 집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이 오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오고, 아픔이 온다할지라도 믿는 성도는 이겨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아파트가 당첨이 되어서 2-3년 후에 입주를 한다면 현재가 당장은 어렵더라도 소망하며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세를 살며 어려움을 겪어도 참으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현재 사는 집이 조그만해도,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수도요금 전기요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낍니다. 10년 후에라도 확실히 성공할 보장이 있고, 큰 돈을 벌 보장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힘을 기울여 사업을 할 것입니다. 집을 팔아서라도, 온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농부는 가을에 추수를 확실히 믿기에 봄이되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비료도 주고, 땀을 흘립니다. 왜 그 어려운 일을 열심히, 기쁨으로 합니까 가을에 추수를 할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추수할 소망이 있기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이기게 됩니다. 근심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다해도 근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으면 바로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근심, 건강에 대한 근심, 자녀에 대한 근심, 사업에 대한 근심, 가정에 대한 근심, 병에 대한 근심 등 우리를 짓누르는 영적인 질병인 근심, 예수가 없어서 생긴 이 근심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근심한다고 이룰 수 없는 것이 없으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이 앞서 행하기에 근심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하며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예비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근심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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