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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없는 생활의 비결 (시34:1-22,마6:25-33)

본문

산상보훈의 말씀에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권고하신대로 우리가 의식주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리는 염려없이 살 수 있겠는가 도대체 염려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바보 아니면 어린 아 이 정도가 아닐까요. 정신이 온전한 사람치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가난하게 살아온 백성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큰 문제였습니다. 얼마나 먹는 것이 문제였으면 어린 아이들의 동요에서도 먹는 걱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토끼야 토끼야 산 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흰 눈이 내리면 무얼 먹고 사느냐> 오늘 경제적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걱정 근심없이 사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돈을 많이 번 사람일수록 근심 걱정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당장 먹을 것만 염려하지만, 지금 먹 고 쓸 것이 넉넉한 사람은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이 먹을 것까지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필요 이상의 돈을 모으느라 혈안 이 되어서 야단들이겠습니까 어쨌든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고 또 실현할 수도 없는 꿈속의 이야기같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상 염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하시기 위하여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또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염려할 수 있는 기능조차 없는 식물이나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인고로 그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간단한 이런 차이를 모르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아 닐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 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 들의 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도 새들처럼 심지도 말고 거두어 들이지도 말고 일하지도 말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노동을 인정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노동 을 하지 않는 새나 들풀도 사는데 하물며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살 수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이고, 땀흘려 일하 고, 길쌈을 하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은 바로 인간들은 자연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가진 존재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말씀은 인간들 보다 못한 짐승이나 식물도 하나님이 돌 보시며 기르시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겠 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창조의 제일 목적은 인간에 있었 음을 우리는 구약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관심은 자연을 돌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 서 인간은 새보다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만 가지고는 근심없는 생활의 비결을 발견하였 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본문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 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옷보다 중하지 아니하 냐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 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즉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질에 관한 것입니다. 목숨 그 자체, 몸 그 자체를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옷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는 이 말씀은 중요한 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정 염려해야 할 것은 음식이나 옷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목숨이나 몸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의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숨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이 만 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여기서 목숨으로 번역된 희랍어는 영혼 혹은 생명을 뜻합니다. 온 천 하를 주고라도 구원받아야 할 것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바로 이 생명을 보 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목숨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것들만 있 으면 목수을 보존하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 을 하신 후에 든 예수님의 비유를 우리가 잘 압니다. 한 부자가 풍성하게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아마도 만석지기가 넘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앉아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창고를 크게 늘려짓고 거기에다 가득히 쌓아두고 평생을 즐기며 평안히 살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가신 다면 그 쌓아놓은 곡식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리신 예수님의 결론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수고하는 것은 좀 더 많은 물질을 얻 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물질을 풍족히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염려 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돈을 얼마나 벌어야 만족할까 요 아마도 온 천하를 다 얻어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염려하고 수고하여 얻은 그 많은 물질을 통해 사람이 얻는 유익이 무엇일 까요 여러 가지로 좋은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다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돈을 가지고 다 할 수 있어도 한가지 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영혼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라는 가수의 노래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해서 돈 주고 그 노래를 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 돈 이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함으로 키를 한 자인들 늘일 수 있느냐 여 기서 키로 번역된 말은 길이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 생명의 길이를 말합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생명을 한 치라도 연장할 수 있겠 느냐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교훈은 우리의 생명과 물질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진정으로 얻기를 원하고 사랑한다면 물질 내지는 물질에 대 한 염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염려를 버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로 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심인 것입니다. 참 생명을 얻는 길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려 함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염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때이므 로 우리가 힘써 찾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루어질 때는 모든 것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진 정한 기쁨을 발견하는 때입니다. 세상의 모든 악이 정복되는 때입니다.
내가 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 내가 들어갈 자격 을 얻게되기를 열망하고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나라가 완성되는 때 내가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고 열망하라는 것입니다.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절대적인 의인데 그것을 구하라는 것은 내가 그 의에 도달할 수 있기를 간구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을만큼 의롭게 되기를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열망이 내 삶의 최고의 목표가 되고 내 삶의 보람이 될 때 먹고 마시는데 대한 염려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먹고 마시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여 살아온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이득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선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모든 것을 버 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쳐 선 교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의 수 많은 순교자들도 신앙을 버리고 목숨을 건 지는 것보다 순교당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 사람들입니다.
먹고 마시는데 대한 염려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 구하여 산 역사상의 인물들을 나열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아프리 카에 들어가 일생을 헌신한 리빙스턴이나 슈바이쩌같이 이름이 알려진 유 명한 인사들도 많지만, 그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수 많은 평신도들 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들은 히브리서 표현에 의하면 모두 다 이 땅의 생활을 천막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이 땅의 생활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 은 먹고 마시는 데 대해 염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지으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 에 살 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한 줄 아시는 분입니다. 또 이러한 모 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또 주시기로 약속한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분을 바로 알고 그 분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없다면 그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이 나에게까지 공급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구할 때 우리의 영혼도 살고 우리의 몸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본문 9절에도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 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나라를 찾는 자에게는 모든 것에 부족함 이 없다는 신앙은 몇 천년을 두고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은 하루 아침에 값싸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신앙 체험과 또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많은 신앙인들의 확증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근심없는 생활의 비결은 먼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데 대한 염려 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염려는 아무리 해봤자 우리에게 참 생명을 가 져다 주지 못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면 마음의 평강을 얻을 것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비결은 생명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일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노라면 이 세상의 근심 걱정은 모 두 사라지고 기쁨과 감격만이 내 가슴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데 쏟던 모든 정열을 주를 향하여 쏟아부을 때 우리의 생애속에서 근심 걱 정은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만이 우리 속에 가득차고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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