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우릴 새롭게 하셨네 (엡2:11-22)
본문
금주의 본문은 새롭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에, 그분이 역사하시는 곳에 새롭게 하시는 사건들이 발생되어집니다. 사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또한 역사가 바뀝니다. 몇 년 전 여러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뮤지컬 “올리버”라는 영화가 한국에도 소개되고 모 TV 방송에서 전파를 탄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린이 영화이면서도 잔잔하 감동을 주는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어린아이들을 데려다가 밥을 먹여주고 재워 주면서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하도록 강요하는 소매치기단에 소속되어 있는 올리버라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매일 번화가로 나가 소매치기를 해야 했고, 훔친 것을 매일 그들의 두목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하고 착한 올리버는 소매치기를 잘 하지 못합니다. 실적이 좋지 않은 올리버는 매일 매를 맞고 혼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 소매치기를 하다가 발각되어 다른 아이들은 도망쳤지만 올리버는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서 올리버는 한 백작의 양자로 입적됩니다. 그 후 그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옷과 잠자리, 먹는 음식, 삶의 여러 여건들, 그 삶의 변화를 통해서 그 아이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의 신분은 상승 되었고, 삶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신분 상승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만약 아직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1. 본래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였습니까 하나님은 에베소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밖에 있었을 때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의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상승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장에 들어와서는 우리들이 주님을 알기 전의 모습을 얼마나 상세하게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몇가지 단어만 들어도 우리의 옛모습과 그때의 운명을 자세하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묘사합니다.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으며
2). 육체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던 우리였고
3).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우리의 신분이었습니다.
4). 하나님의 복을 감히 받을 수 없는 이방인이들이었습니다.
5).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객이었습니다.
6). 하나님의 은총과 기업을 받을 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상태가 이교도의 우상과 미련한 풍습과 육체를 따라서 살아갔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어두움 가운데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형벌을 면치 못하는 처지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대단한 식견과 야망과 자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두가 다 바람을 잡는 것같은 허풍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원수로 지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축복도 약속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약속, 성령님의 약속, 축복의 약속, 영생의 약속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밖에 있었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축복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조 시대에 적자가 누리던 신분과 유산을 받을 수 없었던 서자의 서러움과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자가 아파하고 서러움에 탄식하며 가졌던 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의 차원이 아니라 저주의 차원이요, 멸망의 차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운명을 안고 살았으며,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실 유일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가 없음으로 희망도 없이 스스로 멸망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소망이 없는 삶을 살었던 것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일 뿐입니다. 이 땅에 대한 소망이 어찌 소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변하고, 지나가고, 사라져 허무하게 되고마는 것들 앞에서 인생의 장래가 정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없는 자의 처절한 실상입니다.
2. 신분상승-“그러므로 생각하라”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아버지는 그 먼 상거밖에서 매일 기다리시면서 돌아온 아들에게 이는 내 죽었다가 살아돌아온 아들이라면서 동네 사람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좋은 옷을 입히면서 자기의 아들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에게는 극적인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할 저주를 온몸으로 받으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분이 다 받으신 후 우리에게는 놀라운 신분 상승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로 모든 것을 소멸하셨고, 막힌 담을 허무셨으며 갈라진 틈은 다리가 되어 매우셨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의 신분은 바뀌어 이제는
1). 하님의 자녀가 되고,
2). 상속자가 되었으며,
3).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으며,
4).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5). 전제는 약속밖에 있었으나 이제는 약속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미국 시민권)
6). 이제는 은총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귀순자)
그러므로 생각합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비극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바르게 예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헌신의 삶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었던 존재였으며,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어떠한 존재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기억해야만 바로 믿을 수 있고 바로 설 수 있게 됩니다.
3.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감격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함께 주의 성전이 되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분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백작의 아들이 되어서도 거지의 삶이나 소매치기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면 주염열매와 돼지들이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서는 안됩니다. 어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다 내것이 되었음으로 형제와 화목을 이루며 식솔들과 함께 평안을 누리면서 한 상에 둘러앉아 손으로 수고한 떡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왕자가 되어서는 왕자의 걸맞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시녀들을 괴롭히고 시중드는 신하들을 때리는 망나니의 삶을 살면 안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라져야 하는 삶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본문은 두서너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서로 연결되라는 말이고
2).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거룩성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다운 인간 관계, 그리스도인다운 사회 생활이 첫 번째 내용이라면, 생의 중심이 언제나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강조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거룩성이 개발되는 성도여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강조점입니다. 얼마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제는 시민으로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질서도 의무도 책임도 사고 방식도 달라져야 진정한 시민이 되고 시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으로 온전한 처소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상 교회는 여전히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온전한 교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두 사람 이상 모인 성도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드시는 이는 사역자도 직분자도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에 민감하게 순종하고 복종할 따름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임은 하나님께서 거하실만한 성전으로 아름다워져 가고 있습니까 내 심령의 성전이 하늘의 시민권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될려면 이 교회에서, 저와 여러분의 심령속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대접받아야 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보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구역에서 그리스도보다 구역장이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각 가정에서 그리스도보다 남편과 아내가 중심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기업을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보다 사장 자신이 더 중심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보이시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된 교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다운 삶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고 장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유산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폭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은혜가 강조되면서, 그 은혜에 걸맞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께서 새롭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도록 축복해 주실줄 믿습니다.
1. 본래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였습니까 하나님은 에베소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밖에 있었을 때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의 차이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상승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장에 들어와서는 우리들이 주님을 알기 전의 모습을 얼마나 상세하게 보여주는지 모릅니다. 몇가지 단어만 들어도 우리의 옛모습과 그때의 운명을 자세하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묘사합니다.
1).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으며
2). 육체의 원하는 것을 따라 살던 우리였고
3).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우리의 신분이었습니다.
4). 하나님의 복을 감히 받을 수 없는 이방인이들이었습니다.
5).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객이었습니다.
6). 하나님의 은총과 기업을 받을 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상태가 이교도의 우상과 미련한 풍습과 육체를 따라서 살아갔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어두움 가운데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형벌을 면치 못하는 처지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대단한 식견과 야망과 자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두가 다 바람을 잡는 것같은 허풍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원수로 지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축복도 약속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약속, 성령님의 약속, 축복의 약속, 영생의 약속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밖에 있었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축복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조 시대에 적자가 누리던 신분과 유산을 받을 수 없었던 서자의 서러움과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자가 아파하고 서러움에 탄식하며 가졌던 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의 차원이 아니라 저주의 차원이요, 멸망의 차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운명을 안고 살았으며,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실 유일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가 없음으로 희망도 없이 스스로 멸망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소망이 없는 삶을 살었던 것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일 뿐입니다. 이 땅에 대한 소망이 어찌 소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변하고, 지나가고, 사라져 허무하게 되고마는 것들 앞에서 인생의 장래가 정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없는 자의 처절한 실상입니다.
2. 신분상승-“그러므로 생각하라”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아버지는 그 먼 상거밖에서 매일 기다리시면서 돌아온 아들에게 이는 내 죽었다가 살아돌아온 아들이라면서 동네 사람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좋은 옷을 입히면서 자기의 아들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에게는 극적인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안고 살아야 할 저주를 온몸으로 받으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분이 다 받으신 후 우리에게는 놀라운 신분 상승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분은 십자가로 모든 것을 소멸하셨고, 막힌 담을 허무셨으며 갈라진 틈은 다리가 되어 매우셨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의 신분은 바뀌어 이제는
1). 하님의 자녀가 되고,
2). 상속자가 되었으며,
3).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으며,
4).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5). 전제는 약속밖에 있었으나 이제는 약속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미국 시민권)
6). 이제는 은총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귀순자)
그러므로 생각합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비극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바르게 예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헌신의 삶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었던 존재였으며,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어떠한 존재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기억해야만 바로 믿을 수 있고 바로 설 수 있게 됩니다.
3.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신분 상승에 대한 감격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함께 주의 성전이 되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분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백작의 아들이 되어서도 거지의 삶이나 소매치기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으면 주염열매와 돼지들이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서는 안됩니다. 어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다 내것이 되었음으로 형제와 화목을 이루며 식솔들과 함께 평안을 누리면서 한 상에 둘러앉아 손으로 수고한 떡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왕자가 되어서는 왕자의 걸맞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시녀들을 괴롭히고 시중드는 신하들을 때리는 망나니의 삶을 살면 안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라져야 하는 삶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본문은 두서너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서로 연결되라는 말이고
2).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거룩성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다운 인간 관계, 그리스도인다운 사회 생활이 첫 번째 내용이라면, 생의 중심이 언제나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강조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거룩성이 개발되는 성도여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강조점입니다. 얼마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제는 시민으로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질서도 의무도 책임도 사고 방식도 달라져야 진정한 시민이 되고 시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으로 온전한 처소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상 교회는 여전히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온전한 교회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두 사람 이상 모인 성도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드시는 이는 사역자도 직분자도 아니라, 오직 성령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에 민감하게 순종하고 복종할 따름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임은 하나님께서 거하실만한 성전으로 아름다워져 가고 있습니까 내 심령의 성전이 하늘의 시민권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될려면 이 교회에서, 저와 여러분의 심령속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대접받아야 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보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구역에서 그리스도보다 구역장이 중심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각 가정에서 그리스도보다 남편과 아내가 중심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기업을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보다 사장 자신이 더 중심이 되어있지는 않습니까 보이시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된 교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다운 삶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고 장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유산을 기업으로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폭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은혜가 강조되면서, 그 은혜에 걸맞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께서 새롭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도록 축복해 주실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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