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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사는 이유 (빌1:12-30)

본문

어느덧 가을입니다. 다소 늦더위가 있지만, 자연은 벌써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지난 한주간의 안부를 묻기에 약간 어색합니다. 김효진 집사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제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사고에 대하여 여러분이 느끼는 무게는 다르겠지만, 본인에게는 물론 가족, 친지, 교회 식구들도 이런저런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육체적인 상처와 마음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길 기도합니다.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마음과 생각 들이 오늘 예배를 통하여 위로받으시고 평안얻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왜 살고 있을까요 또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냥 살아있으 니까 사는 것일까요. 부모님이 우리를 낳았으니까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살기위해 먹고 일하게 되었을까요 먹고 일하기 위해 호흡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사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 같이 각박하 고 분주한 시대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정신 없이 살다보니까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도시인은 말할 것도 없이 농촌에 사는 사람들 역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언가에 기는 듯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어른, 노인할 것 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기사가 두해전만 해도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자살하는 이유는 장가를 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죽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 목을 매겠습니까 그래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골로 시집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한편 연변에서 조선족 처녀가 시집을 오지만 이들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 면 이혼을 하거나 종적을 감춰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제난이 가중된 요즈음은 실직과 파산으로 인하여 자살을 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기 초가 파괴되는 현대사회의 질곡을 낳고 있습니다. 죽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방법으 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깊은 사랑과 관심을 보일 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청소년층의 자살이 제일 많은 나라는 미국입니다. 1년이면 오천명 이상이 스스 로 목숨을 끊고 떠나갑니다. 그들이 목숨을 끊고난 다음에 그 의미를 과연 발견했겠습니 까 남은 것은 가족들의 비애와 슬픔뿐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배고프고, 못살아서 생활에 쪼들리다 생을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들 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이유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죽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사는 이유 를 우리는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그 소망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에도 우주 생명의 원리가 담겨져 있고, 생명은, 특히 인명은 전적 으로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이 어느 종교나 동서양 사상의 원천입니다. 사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땅에 묻히게 되어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의 년수는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냥 죽는 것은 왠지 억울합니다. 장수는 축복입니다. 건강하게 아름다운 생활을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생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살기가 그렇게 힘들고 답답도 하겠지만 제대로 죽기 위해서도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알고보면 너도 나도 모두 살고자 하는 일인데 질투와 욕심으로 죽 여야 살고,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말고 청지기로서 생명의 주 인인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한번 상기하십시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갈 림길에서 깊은 고뇌를 가지고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사람입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이제 출세 가도만 달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기업의 회장들이 서로 사위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자기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렇게 당당했던 청년이 어느 날 그렇게 경멸하고 무시했던 예수를 만나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간직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똥과 오줌으로 여기고 예수를 전하기 위해 일평생을 바쳤습니다. 이 사람은 장가도 가지 아니하고, 혼자 떠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 이후의 최고의 복음 전도사, 기독교인을 만든 장본인, 천하의 대사도였던 바울 선생도 엄청 난 고민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죽어야 하느냐, 살아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바울의 고민은 바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생의 절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심 정은 1장 23절에 나와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두 갈래길에서 죽음을 선택하던지, 삶을 선 택하던지 한쪽에 결단을 하여야 하는 인간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는 다른 것이 아니라 정말 죽어야 하느냐! 아니면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는 죽지 못해 할 수 없이 산다는 사람들은 생명의 거룩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죽고 싶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아예 죽게 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은 아예 죽어서 주님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좋겠 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머물며 미련을 두고 싶지 않은 사도 바울의 이 외로운 마음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생스런 생활을 하였기 때 문입니다. 솔직히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언제인가 개척교회 부부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생개척하면서 고생 고생하는 이야기가 동 역자들로부터 나왔습니다. 특히 사모님들의 이야기는 간절했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절망하면 서 아예 하나님이 생명을 거두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오늘 바울과 같은 생각이 지요. 그러나 그때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있던 것을 발견하며 인내로 그 순간을 이겼을 때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 설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듣고 많은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늘의 편지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바울이 숨가쁘게 살아온 일생은 한마디로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습니다. 수없이 매를 맞았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았 고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들을 당하면서 내가 꼭 예수를 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죽음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대로 죽고 싶은 것입니다. 이 정도 일을 했으면 천국 에 갈 것 같습니다. 주님계신 그곳에 들어가 오직 주님과 함께 있으며 안식을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바울의 말년은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가정의 따스한 재미도 없었고, 사랑받고 줄 수 있는 아내도 없습니다. 이제 몸 기댈 자식도 없습니다. 오직 일생을 예수에 미쳐서 복음만 전하여 살아왔습니다. 고통과 고생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고생이 너무 심하면 죽고 싶어합니다. 고통 이 너무 심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힘을 잃어버립니다. "살아야 한 다"는 이유가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연 그 의미를 알고나 있는 것입니까 신 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입니다만 대신앙인, 대사도였던 바울도 죽고 싶은 상황에 직면해 있었는데, 평범하고 믿음없는 우리가 사는 의미를 어디게 두겠습니까 우리의 얇은 신앙으로 과연 이 세상을 넉넉하게 물리치고 살아갈 힘은 이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여러분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바울의 신앙도 그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한계가 찾아왔을 때 어떠한 생각 과 행동을 하여햐 하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지치고 실망할 때 죽음을 생각합니다. 신앙인도 믿음 으로 이긴다고 하지만 예외가 아닙니다. 기도의 사람 엘리야는 기도를 통해서 많은 기적을 나타내보였습니다. 비가 오게 했고, 불이 내리게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었습니다.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기도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다니다가 지쳐 쓰러졌을 때 아예 자기의 생명을 가져가 달라고 애원하 였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 욥도 고통과 곤욕을 참지 못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탄 식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곤고하고 쇠잔할지라도 즉, 죽고 싶 고, 사는 것이 원망스럽고, 내게 도움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냥 이대로 죽어서 예수님 곁에 있고 싶던 바울이 살아야 하겠다고 외친 것입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되고 어려운 삶이었지만 죽음을 택하지 아니하고 삶을 선택했습니다. 1장 24절을 보면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즉 살아있음으로 해서 너희를 위하여 유익되게 한 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고 고달프다 하더라도 삶의 용기 를 잃어버리지 말고 삶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야 하겠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 을 선택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겠노라고 생명을 선언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역 시 생명의 선언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살아야 할 이유는 천국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게는 천국이 중 요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어서 가는 천국보 다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며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 가고 안가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달려있기 때문에 천국을 꼭 가야지 하는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천국이 없다면 한국교회의 교인가운데 50%는 떨어져 나갈 것이고, 25%는 습관적으로 다니고, 10%는 혹시 그래도 천국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니고, 나머지 5%는 여기가 천국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닐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 없다면 우리 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신비는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천국은 있어야 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겠습 니까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하늘까지 끌려올라 갔었다고(고후12장2절) 고 백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힘들 고 어려워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를 당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늘 나라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에 들어가 서 살 수 있는 연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운동선수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합니까 먹고 마 시고 노는 것을 억제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이겼을 때 승리의 메달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근면과 절제와 인내의 생활을 통해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고난을 물리치고 하늘 시민으로 멋지게 살아갑시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은 우리의 가장 약한 것을 찌르고 있습니다. 바람이 가득 찬 풍선에 바늘 끝만 갖다대어도 풍선을 터지고 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만, 그안에 불평 과 원망, 세상적인 욕심이 들어있으면 순식간에 터질 위험에 놓이게 되고, 바늘 끝으로 세상 이 우리를 눌렀을 때 아야 소리도 못하고 생활이 무너집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할 장소가 아닙니다. 잠깐 살다 떠나야 하는데 어디로 떠나야 할까요 예수안에 있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서 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가장 크게 해야 할 일은 천국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징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이러한 교훈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 자처럼 세상에 있을 때 천국 준비를 하질 못하면 지옥에 가고, 아무리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도 경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매일 매일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 까지 살아서 천국을 준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1장 25절에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죽고 싶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이야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살 아갈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왕에게 기름을 부어야 할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할 일 없는 사람은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죽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어렵고 힘들어도 살아야 할 이유를 복음전파에 있다는 거룩한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주는 것은 생명을 살려주는 일입니다. 지옥으로 가지않게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 바로 복음을 전하는 길보다 더 좋고 값진 일은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과 능력을 잊는다면 이 세상 최고 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주님 의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천국백성답게 살아갈 때 그 길이 이어집니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가 할 일을 다할 때 복음은 증거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들러냅니다. 우리도 오늘 삶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낙심해도 안됩니다. 절망해도 안됩니다. 희망 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천국이 증거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서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성공자가 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인 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천국을 보여주고 영생을 증거해 주기 위해서 우리는 죽지 말고 망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정말 멋진 삶으로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만들어가는 믿음의 한식구 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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