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입을 옷 (골3:12-17)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들 중에서 옷을 만들어 그 자신의 몸에 입고 사는 것은 사람뿐이다. 식물이나 동물들은 자연생태 그대로 살고 있으 나 오직 사람들만이 옷으로 자기들의 몸을 감싸고 살고 있다. 옛 우리 속담에도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고 또 "입은 거지는 살아 도 벗은 거지는 굶어 죽는다'고 하였다. 우리 사람들에게 의복은 이와 같이 귀중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의복은 우리 사람들의 육신 의 세속생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정신생활, 또는 신앙의 영적생활 에도 의복은 중대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너희는,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갈 3:27)고 권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막연하게 느껴진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옷을 제시해 주었다. "너희는 을 옷입고"하였다. 우리 사람은 새 옷을 입으려면 먼저 입었던 옷은 벗어 버려야만 한다.그래서 바울은 무슨 무슨 옷을 입으라고 권하기 전에 즉 분과 악의 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들을 벗어 버리라고 강조하고 나서 ". 을 입 으라"고 권해 주었다. 그러면 바울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입으라는 새 옷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첫째 긍휼에 관한 것이다. 고대 인간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긍휼이라는 것은 전연 결여되어 있었다.동물들이 아무리 괴로워도 인간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고 같은 인간 관계에서도 불구자, 병자들은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긍휼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노인과 병자들, 신체장애자들, 어린이와 부녀자들 심지어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애호하는 긍휼의 운동 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훈과 사랑의 실 천생활에서 받은 영감의 산물이었다.
둘째, 자비 또는 자애이다. 역사가 요세퍼스는 구약 이삭의 이야기 속에서 그의 행위의 자비성을 지적해 준 일이 있다(창 26:17-25). 이삭이 우물을 팠다가 다른 사람 들과 이 우물때문에 시비를 하고 싶지 않아 시비를 걸어온 자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그 자리를 뜬 것을 자비를 베풀었다고 지칭하였다.
셋째 겸손이다. 겸손은 기독인들의 덕의 근본이고 최대,최고의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주장했다. 위로는 하나님께 창조함을 받은 자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 고 자기 위치와 받은 자라는 자신을 끝내 지켜나가는 노력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겸손인 것이다. 처음 아담 부부의 실패는 창조함을 받은 자가 창조주와 같이 되려는 욕심, 즉 오만에서였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인은 나 자신과 모든 것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 그 곳에 진정한 겸손은 움트게 된다.
넷째 온유이다. 희랍의 철인 아리토텔레스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 온유 라고 하였다. 온유한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경우에는 노하고 노하지 않아야 할 때 참을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관용 또는 인내이다. 이것은 이웃에 대해 너그러우매 오래 참는 것을 뜻한다. 이웃의 무 능, 이웃의 실수에 대해 관용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좋고 값진 옷을 몸에 이것 저것 입었다고 해도 그것은 단단히 매어주는 때가 없다면, 안의 것과 밖의 것 그리고 위의 것과 아래의 것을 하나하나 매지 않고 그대로 겉치고만 있다면, 그 옷은 흘러 내리 고 드디어는 벗겨지고 말게 된다.그대로 걸치고만 있다면, 그 옷은 흘 러 내리고 드디어는 벗겨지고 맡게 된다. 그리고 띠를 허술이 맨 상태 로는 허전해서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옷을 입은 자들 은 띠를 단단히 매어야만 한다. 이와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은 신앙의 옷도 이를 하나하나 단단 히 매어야만 된다. 바울은 그 띠를 사랑이라고 하였다.그리스도인들에 게 사랑이 결 른 어떤 좋은것을 지니고 있어도 그것들 은 언젠가는 우리 몸에서 흘러져 벗어지고 벌거숭이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띠로 우리들의 옷을 단단히 매어야만 그리스도인 으로 능력있게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사랑의 찬가속 에서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외쳤다.
첫째 긍휼에 관한 것이다. 고대 인간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긍휼이라는 것은 전연 결여되어 있었다.동물들이 아무리 괴로워도 인간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고 같은 인간 관계에서도 불구자, 병자들은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긍휼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노인과 병자들, 신체장애자들, 어린이와 부녀자들 심지어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애호하는 긍휼의 운동 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훈과 사랑의 실 천생활에서 받은 영감의 산물이었다.
둘째, 자비 또는 자애이다. 역사가 요세퍼스는 구약 이삭의 이야기 속에서 그의 행위의 자비성을 지적해 준 일이 있다(창 26:17-25). 이삭이 우물을 팠다가 다른 사람 들과 이 우물때문에 시비를 하고 싶지 않아 시비를 걸어온 자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그 자리를 뜬 것을 자비를 베풀었다고 지칭하였다.
셋째 겸손이다. 겸손은 기독인들의 덕의 근본이고 최대,최고의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주장했다. 위로는 하나님께 창조함을 받은 자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 고 자기 위치와 받은 자라는 자신을 끝내 지켜나가는 노력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겸손인 것이다. 처음 아담 부부의 실패는 창조함을 받은 자가 창조주와 같이 되려는 욕심, 즉 오만에서였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만인은 나 자신과 모든 것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 그 곳에 진정한 겸손은 움트게 된다.
넷째 온유이다. 희랍의 철인 아리토텔레스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 온유 라고 하였다. 온유한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 경우에는 노하고 노하지 않아야 할 때 참을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관용 또는 인내이다. 이것은 이웃에 대해 너그러우매 오래 참는 것을 뜻한다. 이웃의 무 능, 이웃의 실수에 대해 관용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좋고 값진 옷을 몸에 이것 저것 입었다고 해도 그것은 단단히 매어주는 때가 없다면, 안의 것과 밖의 것 그리고 위의 것과 아래의 것을 하나하나 매지 않고 그대로 겉치고만 있다면, 그 옷은 흘러 내리 고 드디어는 벗겨지고 말게 된다.그대로 걸치고만 있다면, 그 옷은 흘 러 내리고 드디어는 벗겨지고 맡게 된다. 그리고 띠를 허술이 맨 상태 로는 허전해서 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옷을 입은 자들 은 띠를 단단히 매어야만 한다. 이와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은 신앙의 옷도 이를 하나하나 단단 히 매어야만 된다. 바울은 그 띠를 사랑이라고 하였다.그리스도인들에 게 사랑이 결 른 어떤 좋은것을 지니고 있어도 그것들 은 언젠가는 우리 몸에서 흘러져 벗어지고 벌거숭이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띠로 우리들의 옷을 단단히 매어야만 그리스도인 으로 능력있게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사랑의 찬가속 에서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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