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면 (마6:25-34)
본문
염려에 압도된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믿음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 습니다. 우리 이런 경험 우리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떻하지 어 떻하지 어떻게 살지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셔도 계속 '어떻하지' 입니다. 하나님이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건 내 주려 해도 받을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지'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런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
그러므로(25절)'는 앞 구절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24절)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원칙 을 밝히겠다는 말입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원칙 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원칙'은 언뜻 보기 에는 전혀 동떨어진 말 같지만 사실은 그 뜻이 하나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간 삶의 도구들을 어떻게 정 렬시켜 놓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의 말씀입니다. 재물이 든 의식주든 우리는 현실적으로 입는 것, 먹는 것 뭐 이 런 것에 목숨을 의탁하고 삽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은 좀 황당하고 너무 원칙적인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무 이상적이고 너무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 들이 비상한 방법으로 능력 중에 살아갈 수 있는 원리 를 제시한 말씀이기에 우리는 경청해서 들어야 합니다.
먼저와 나중의 원칙 염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고,둘째는 세상의 염려가 그것입니다. 세상의 염려라도 그냥 한 번 지나가는 염려는 누구나 있 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열심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일하게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려가 장기화되고 고질화되고 조직화되면 이거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무 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자꾸 염려하는 것, 안 될 일 입니다. 염려에 압도당하고, 염려 이외에는 하지 않는 것,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이라'(32절)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구하다'(에피제투신)는 문법적으로 현재형입니다. 한 번 그냥 염려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끈질기게 염려에 묻혀 지낸다는 말 입니다. 일상의 염려와 추구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좋 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염려는, 오히려 구원을 이루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 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 망을 이루는 것이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고후 7:10) 그러나 오늘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개는 염려 의 순서도, 열심의 순서도 모두 잊어버리게 됩니다. 염 려의 목적도, 열심의 종착점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아주 딱 부러지게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절)
이 구절이 참 의미 심장합니다. 음식은 짧지만, 목숨은 길고 중한 것입니다. 옷은 유한 하지만, 몸은 소중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음식이 목숨을 위해 있고, 옷이 몸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몸이 음식을 위해 있고, 몸이 옷을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중요한 것, 참으로 본질적인 것에 가 치를 두라는 것입니다. 참 가치가 있는 것에 그만한 정 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안목 있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세 살 난 아이에게 만원이나 천 원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만원 짜리는 팽개치고 천 원 짜리 만 갖겠다고 울어 제칩니다. 액면가 일 억원 짜리 수표는 팽개치고 천원 짜리 현금만 고집합니다. 이것 성숙하 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것, 참으로 중요한 것은 골방에 모셔 놓고, 지엽말단을 잡고 열심을 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본질 싸움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도 본질 싸움입니다. 바리세인들이 책망을 받은 것도 본질을 흐렸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정성으로 하는 것인데 액수로 합니다. 안 식일은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하는 날인 데, 손놓고 아무일도 안 하는 것을 최고로 압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생전에는 항상 본질이 가꾸로 섰습니다. 섬김의 도보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안 씻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십자가의 성취보다는 스승이 죽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게 본질이 흐려진 것입니다. 이것이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무엇이 본질이냐 이것 목숨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본질 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믿음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이란, 본질적 인 것을 결단하고 부차적인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입니다. 믿음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다 순서의 문제요, 중요도의 문제입니다. 자 예를 한 번 들어봅시다. 주일예배 드리지 못할 일은 충분히 있습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이웃사랑이 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가족 사랑이요, 친목 계원 들과 보내는 시간은 형제사랑이요, 봉사활동 하며 보내는 시간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본질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면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 시간입니다. 이 모든 일 속 에 계신 하나님의 뜻 그 원칙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때문에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하 고 본질적인 시간입니다. 이렇게 먼저와 나중이 질서가 잡히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33절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그리하면'입니다. '그리 하면'이 열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을 더 해 달라고, 필요를 충족해 달라고 열심히 간구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르고 목적이 바르고, 순서가 제대로 되어야 속한 응답이 옵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는 구하지 않고, 무조건 필요를 구한 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저절로' '더해주시는' 풍성한 공급은 맛보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의 일상과 존재를 책임져 주시는 그 풍성함은 맛보 기 힘듭니다. 남의 자녀는 와서 어렵게 동정을 구해야만 몇 푼이라 도 던져 줍니다. 그러나 자기 자녀, 그 중에서도 맘에 꼭 드는 자녀는 알아서 풍족하게 공급해주는 것이 부모 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렵게 매번 간구의 시스템에 매 달릴 것입니까 아니면 자동적이고, 보너스적인 시스템 에 맡길 것입니까 먼저 주의 나라,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에 집중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여기에는 두 가지 영적인 원칙이 숨어 있습니다. 저절로(AUTOMATIC의 원칙) 첫 번째는 '저절로'의 원칙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괄호 안에 '저절로'라는 구절을 넣어 읽으면 뜻이 더 확실하 게 떠오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저절로) 더 하시리라 "(33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확고한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동장치를 마련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은 세속의 필요를 구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복권 당첨식의 요행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값싼 축복의 남발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문서된 조항도 아닙니다. 이것은 확고한 믿음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은총이요, 기적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이 원칙을 확고하게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뤄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더하시는 원칙(BONUS의 원칙) 두 번째는 '더하시는 원칙'입니다. '그리하면'은 조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막무가내로 졸라만 대는 자식 보다 부모의 뜻을 잘 헤 아려 가는 자식에게, 정이 가고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주님과 동 행하면서 주의 나라를 추구했기 때문에, 요구하지도 않 은 장모의 열병을 예수님이 알아서 척척 고쳐 줍니다. 이것이 '더하시리라'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보너스의 원 칙입니다. 솔로몬의 일생이 보너스 원칙(더하시리라 원칙)을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나자,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소원을 구하라 합니다. 솔로 몬은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존귀도 구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정의의 지혜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부귀와 영광도 더해 주십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교훈과 가르침과 사건이 있지만, 원리를 말씀할 때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원리란 개개 사건에 언제나 적용되는 원칙을 말 합니다. 오늘은 되고 내일은 안 되는 것은 원리가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서는 되고 저 사람에게서는 안 되는 것도 원리가 아닙니다. 육중한 비행기는 양력과 부력을 얻고 추진이 되면 언제나 나를 수 있습니다. 몇십 만톤 되는 배는 부력과 복원력 추진력을 얻으면, 누가 배의 키를 잡든 설날이든 추석이든 떠서 항해합니다. 이것이 원리예요.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 원리는 언제나 누구 에게나 조건만 지켜지면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입니다. 더구나 이 원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명 예로 보장된 원리이니 어김이 없습니다. 때문에 성경에서 '원리'를 제시하면 무릎을 꿇고 온 마음을 열어 집중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원리에는 축복의 길과 바른길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 리를 발견하고 지키면 하찮은 많은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하나님 나라 를 먼저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저절로'의 원칙과 '더하시는'원칙이 풍성하게 이뤄진다는 이 귀중한 원리 를 목숨처럼 믿고 지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25절)'는 앞 구절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24절)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음 원칙 을 밝히겠다는 말입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원칙 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원칙'은 언뜻 보기 에는 전혀 동떨어진 말 같지만 사실은 그 뜻이 하나로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간 삶의 도구들을 어떻게 정 렬시켜 놓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의 말씀입니다. 재물이 든 의식주든 우리는 현실적으로 입는 것, 먹는 것 뭐 이 런 것에 목숨을 의탁하고 삽니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은 좀 황당하고 너무 원칙적인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무 이상적이고 너무 비현실적인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 들이 비상한 방법으로 능력 중에 살아갈 수 있는 원리 를 제시한 말씀이기에 우리는 경청해서 들어야 합니다.
먼저와 나중의 원칙 염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고,둘째는 세상의 염려가 그것입니다. 세상의 염려라도 그냥 한 번 지나가는 염려는 누구나 있 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열심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일하게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려가 장기화되고 고질화되고 조직화되면 이거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무 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자꾸 염려하는 것, 안 될 일 입니다. 염려에 압도당하고, 염려 이외에는 하지 않는 것,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이라'(32절)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구하다'(에피제투신)는 문법적으로 현재형입니다. 한 번 그냥 염려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끈질기게 염려에 묻혀 지낸다는 말 입니다. 일상의 염려와 추구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좋 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염려는, 오히려 구원을 이루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 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 망을 이루는 것이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고후 7:10) 그러나 오늘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개는 염려 의 순서도, 열심의 순서도 모두 잊어버리게 됩니다. 염 려의 목적도, 열심의 종착점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아주 딱 부러지게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절)
이 구절이 참 의미 심장합니다. 음식은 짧지만, 목숨은 길고 중한 것입니다. 옷은 유한 하지만, 몸은 소중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음식이 목숨을 위해 있고, 옷이 몸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몸이 음식을 위해 있고, 몸이 옷을 위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중요한 것, 참으로 본질적인 것에 가 치를 두라는 것입니다. 참 가치가 있는 것에 그만한 정 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안목 있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세 살 난 아이에게 만원이나 천 원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만원 짜리는 팽개치고 천 원 짜리 만 갖겠다고 울어 제칩니다. 액면가 일 억원 짜리 수표는 팽개치고 천원 짜리 현금만 고집합니다. 이것 성숙하 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것, 참으로 중요한 것은 골방에 모셔 놓고, 지엽말단을 잡고 열심을 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본질 싸움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도 본질 싸움입니다. 바리세인들이 책망을 받은 것도 본질을 흐렸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정성으로 하는 것인데 액수로 합니다. 안 식일은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하는 날인 데, 손놓고 아무일도 안 하는 것을 최고로 압니다. 베드로도 예수님 생전에는 항상 본질이 가꾸로 섰습니다. 섬김의 도보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안 씻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십자가의 성취보다는 스승이 죽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게 본질이 흐려진 것입니다. 이것이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무엇이 본질이냐 이것 목숨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본질 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믿음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을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이란, 본질적 인 것을 결단하고 부차적인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입니다. 믿음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본질적인 것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다 순서의 문제요, 중요도의 문제입니다. 자 예를 한 번 들어봅시다. 주일예배 드리지 못할 일은 충분히 있습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이웃사랑이 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가족 사랑이요, 친목 계원 들과 보내는 시간은 형제사랑이요, 봉사활동 하며 보내는 시간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본질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대면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 시간입니다. 이 모든 일 속 에 계신 하나님의 뜻 그 원칙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때문에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하 고 본질적인 시간입니다. 이렇게 먼저와 나중이 질서가 잡히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33절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그리하면'입니다. '그리 하면'이 열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을 더 해 달라고, 필요를 충족해 달라고 열심히 간구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르고 목적이 바르고, 순서가 제대로 되어야 속한 응답이 옵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는 구하지 않고, 무조건 필요를 구한 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물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저절로' '더해주시는' 풍성한 공급은 맛보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의 일상과 존재를 책임져 주시는 그 풍성함은 맛보 기 힘듭니다. 남의 자녀는 와서 어렵게 동정을 구해야만 몇 푼이라 도 던져 줍니다. 그러나 자기 자녀, 그 중에서도 맘에 꼭 드는 자녀는 알아서 풍족하게 공급해주는 것이 부모 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어렵게 매번 간구의 시스템에 매 달릴 것입니까 아니면 자동적이고, 보너스적인 시스템 에 맡길 것입니까 먼저 주의 나라, 복음증거와 사랑의 실천에 집중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여기에는 두 가지 영적인 원칙이 숨어 있습니다. 저절로(AUTOMATIC의 원칙) 첫 번째는 '저절로'의 원칙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괄호 안에 '저절로'라는 구절을 넣어 읽으면 뜻이 더 확실하 게 떠오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저절로) 더 하시리라 "(33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확고한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동장치를 마련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은 세속의 필요를 구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복권 당첨식의 요행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값싼 축복의 남발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문서된 조항도 아닙니다. 이것은 확고한 믿음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은총이요, 기적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이 원칙을 확고하게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뤄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더하시는 원칙(BONUS의 원칙) 두 번째는 '더하시는 원칙'입니다. '그리하면'은 조건이 있다는 말입니다.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막무가내로 졸라만 대는 자식 보다 부모의 뜻을 잘 헤 아려 가는 자식에게, 정이 가고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주님과 동 행하면서 주의 나라를 추구했기 때문에, 요구하지도 않 은 장모의 열병을 예수님이 알아서 척척 고쳐 줍니다. 이것이 '더하시리라'의 원칙입니다. 이것이 보너스의 원 칙입니다. 솔로몬의 일생이 보너스 원칙(더하시리라 원칙)을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나자,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소원을 구하라 합니다. 솔로 몬은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존귀도 구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정의의 지혜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부귀와 영광도 더해 주십니다. 원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교훈과 가르침과 사건이 있지만, 원리를 말씀할 때는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원리란 개개 사건에 언제나 적용되는 원칙을 말 합니다. 오늘은 되고 내일은 안 되는 것은 원리가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서는 되고 저 사람에게서는 안 되는 것도 원리가 아닙니다. 육중한 비행기는 양력과 부력을 얻고 추진이 되면 언제나 나를 수 있습니다. 몇십 만톤 되는 배는 부력과 복원력 추진력을 얻으면, 누가 배의 키를 잡든 설날이든 추석이든 떠서 항해합니다. 이것이 원리예요.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 원리는 언제나 누구 에게나 조건만 지켜지면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입니다. 더구나 이 원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명 예로 보장된 원리이니 어김이 없습니다. 때문에 성경에서 '원리'를 제시하면 무릎을 꿇고 온 마음을 열어 집중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원리에는 축복의 길과 바른길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 리를 발견하고 지키면 하찮은 많은 수고를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하나님 나라 를 먼저 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저절로'의 원칙과 '더하시는'원칙이 풍성하게 이뤄진다는 이 귀중한 원리 를 목숨처럼 믿고 지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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