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생활의 비결 (롬14:16-18)
본문
흔히 쓰는 말 중에 ‘나이는 못 속여!’, ‘작년과는 달라!’, ‘10년만 젊었어도 한 번 해보겠는데’ 라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어디서 본 글인데 사람들은 60대에서는 50대라면 한 번 해보겠는데라고 하고 70대에는 60대라면 한 번 해보겠는데, 80대에는 70대만 됐어도.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게 되면 기력이 쇠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쇠하는 것보다는 나이가 들었다는 마음이 기력을 쇠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끔 경험하는 일 가운데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세시 네 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배고픈 줄 모르다가도 시간을 보니까 배가 고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항상 힘차고 신선한 생명의 충만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변의 변화에 따라 항상 요동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고등 학생이지만 생각은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나이 어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이지만 항상 도전하고 신선하게 살아가는 나이든 분들도 많습니다.
사무엘 울맨이라는 사람이 ‘청춘’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이 글을 맥아더 장군에게 보냈는데 맥아더 장군은 이 글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애송했다는 것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청춘이란 굳센 의지를 지닌 성격, 뛰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 소심함을 물리칠 수 있는 용맹성, 안일하고 싶은 마음을 물리칠 수 있는 모험심 등을 말하는 것이다.
나이를 더하여 가는 것만으로 사람이 늙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상을 포기함으로서만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의 따라 사람의 주름살이 지기는 하지만, 정열을 잃어버릴 때 사람은 늙어 버린다. 걱정, 의심, 자기불신, 공포 그리고 절망-이러한 것들이 사람으로 늙음에 이르게 하고 또한 뻗어나는 기백을 쓸모 없는 티끌로 만들어 버리는 길고 긴 세월인 것이다.
사람의 나이가 칠십이건 이팔청춘이건,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운 것을 좋아하고 별과 별처럼 빛나는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기분 좋은 경이로움, 닥치는 사건에 대한 불굴의 도전, 젊은이처럼 다음에 올 것을 끝까지 알아내고자 하는 불굴의 탐구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승부감 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움, 환호, 용기, 위엄, 그리고 능력에 대한 영감을 지상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동안에는 사람은 그만큼 오랫동안 젊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계시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사람의 마음의 중심부가 온통 비관의 백설과 냉소의 얼음으로 덮이게 될 때에는 사람은 진정으로 늙어 버리며 오직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만을 바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75세에 푸르른 꿈을 안고 약속을 바라보며 순례의 길을 떠났던 아부라함처럼 항상 하나님 안에서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80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우고 출애굽의 막중한 사명을 완수해 낸 모세의 정열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믿음 안에서 마음이 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변화된 마음을 통하여서 운명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떨쳐 버리고 위대한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음은 육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에너지입니다. 사람의 기분이 좋고 나쁜 것 상쾌하고 찌부등한 모든 것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쁘고 즐겁다고 하는 것은 창조적인 호르몬 예를 들어 흔히 말하는 엔돌핀,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이고, 기분이 나쁘고 우울한 것은 스트레스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혈압이 올라가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위장병에 호흡장애까지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약을 먹고 정신 수양을 하기도 합니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과다하게 나오는 스트레스 홀몬을 억지로 적게 나오게 억제하는 것이고 요가, 명상, 단전호흡 등은 무의식 세계로 갈등을 밀어 넣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이나 명상 요법은 분명 효과는 있으나 이 효과가 지속되지 못하고 어떤 일을 당하고서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게 되면 더욱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홀몬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홀몬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감싸는 따뜻한 사랑의 풍성함, 이로 인해 생기는 감사의 마음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모든 어두움에서 구해 주는 보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안한 마음을 원합니다. 그렇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사랑은 없습니다. 감사하기를 바라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감사가 힘든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 가기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로 나오라고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올바른 삶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능력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헛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시는 삶이기 때문에 비로소 삶의 충만한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하는 삶인 것입니다.
여기에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한마디로 말해서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졌을 때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위해 사는 삶의 몇 가지 내용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I. 가치관의 확립입니다.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을 결정을 합니다. 이것의 차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지고 성공과 실패가 좌우가 됩니다.
점심에 만두를 먹느냐 라면을 먹느냐하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는 가치관입니다. 단독주택이냐 아파트냐도 그렇게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라든가, 외적조건을 보고 혼인을 하느냐 성품을 보고 결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정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신앙을 우선에 두느냐, 아니면 내 자신이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 신앙이냐 세상이냐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같은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신앙을 중요시한다면 주일에 이익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예배시간을 지킬 것입니다. 갈등을 일으킬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을 더 중요시하면 신앙은 다음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에 두는 사람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신앙의 위대한 승리를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조지 포먼이 프로복싱 헤비급 통합 챔피언이 된 사건입니다. 권투 선수의 환갑은 40세라는데 45세의 포먼이 20살 아래의 챔피언 무어러를 10회 KO로 승리하고 챔피언에 등극을 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란 일이었습니다. 세계 권투 협회는 포먼에게 도전권을 주지 아니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법정 투쟁을 통하여 도전권을 얻었고 권투계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포먼은 챔피언이 되면서 세계 만방에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74년에 알리에게 챔피언 자리를 뺏기고 77년 프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지미 영에게 패한 후에 링을 떠났습니다. 포먼의 적수가 되지못할 것이라는 선수에게 지고난 후에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슬픔의 냄새가 엄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곤 죽음뿐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금고에 숨겨 둔 수백만 달러의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했고 복싱등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깨달음을 계기로 신앙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는 휴스턴에 교회를 짓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돕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습니다.
거리의 난폭자,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는 복서인 그가 그 공격성을 버린 것입니다. 사나운 셰퍼드를 기르며 자신을 과시하며 다니던 그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명예나 부가 아니라 신앙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복서로서는 환갑이라는 40을 넘기면서 링에 복귀를 시도한 것은 그 이전의 동기와 달랐던 것입니다. 청소년을 전도하는 회관을 건립하고 그들에게 신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만 천하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신앙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저는 사실 포먼의 승리를 보면서 이 설교를 착상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치관은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은 다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자신이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드러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은 내 전쟁이다 내가 싸우껬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일이 주님의 일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주님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감사의 생활입니다.
감사는 관계를 개선시켜 주고 삶에 능력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부자지간에, 부부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성도간에, 목회자와 성도간에. 감사가 있을 때 관계가 아름다워지고 삶의 윤택을 가져옵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요 원망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 대상이 절대로 변화되지 않고 움직일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변화를 가져오고 운명처럼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기쁨이 되는 감격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 사이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감사해요. 당신이 고생함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수 있는 것을 정말로 감사해요.’ 이렇게 나오면 아마도 남편은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그러면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더욱 열심히 하는 일등 남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일생의 최대의 실수였다’고 하든지 웬수라고 하든지 심하게 하여 마귀라고 한다면 아마도 남편은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다. 마귀 맛을 좀 봐라’하면서 심한 적개심을 나타낼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관계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껍데기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무용지물입니다. 감사로 여러분의 삶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감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있게 됩니다. 신앙이 깊은 성도들은 그들의 삶에서 풍성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성숙과 감사가 비례함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욥이 모진 시험을 당하면서도 그는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밝고 희망이 있습니다.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어둡고 삭막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 주를 위하여 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성도의 모습을 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 부족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이 사실만 생각해도 너무나도 감사할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감사,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소속을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며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본연의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탈선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불행을 겪은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성도들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불행한 것입니다. 본인의 삶도 질서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솝 우화 가운데 박쥐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쥐는 날짐승도 같고 길짐승도 같이 생겼습니다. 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피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쌍방에 다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고만 내용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우리는 주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주의 것이 될 때에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과 능력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는데 우리가 피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Augustinus는 그의 ‘고백’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에 그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는 세상에서 평안을 느끼지 못하였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독생자보다도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인 우리가 복되게 사는 것을 주님께서는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시며 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살므로 말미암아 주의 힘과 권능으로 열매맺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체적으로 나이가 들게 되면 기력이 쇠하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쇠하는 것보다는 나이가 들었다는 마음이 기력을 쇠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끔 경험하는 일 가운데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세시 네 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배고픈 줄 모르다가도 시간을 보니까 배가 고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항상 힘차고 신선한 생명의 충만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변의 변화에 따라 항상 요동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고등 학생이지만 생각은 이미 노인이 되어 버린 나이 어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인이지만 항상 도전하고 신선하게 살아가는 나이든 분들도 많습니다.
사무엘 울맨이라는 사람이 ‘청춘’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이 글을 맥아더 장군에게 보냈는데 맥아더 장군은 이 글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애송했다는 것입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청춘이란 굳센 의지를 지닌 성격, 뛰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열, 소심함을 물리칠 수 있는 용맹성, 안일하고 싶은 마음을 물리칠 수 있는 모험심 등을 말하는 것이다.
나이를 더하여 가는 것만으로 사람이 늙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상을 포기함으로서만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의 따라 사람의 주름살이 지기는 하지만, 정열을 잃어버릴 때 사람은 늙어 버린다. 걱정, 의심, 자기불신, 공포 그리고 절망-이러한 것들이 사람으로 늙음에 이르게 하고 또한 뻗어나는 기백을 쓸모 없는 티끌로 만들어 버리는 길고 긴 세월인 것이다.
사람의 나이가 칠십이건 이팔청춘이건,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운 것을 좋아하고 별과 별처럼 빛나는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기분 좋은 경이로움, 닥치는 사건에 대한 불굴의 도전, 젊은이처럼 다음에 올 것을 끝까지 알아내고자 하는 불굴의 탐구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승부감 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움, 환호, 용기, 위엄, 그리고 능력에 대한 영감을 지상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동안에는 사람은 그만큼 오랫동안 젊음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계시를 전혀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사람의 마음의 중심부가 온통 비관의 백설과 냉소의 얼음으로 덮이게 될 때에는 사람은 진정으로 늙어 버리며 오직 인간의 영혼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만을 바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75세에 푸르른 꿈을 안고 약속을 바라보며 순례의 길을 떠났던 아부라함처럼 항상 하나님 안에서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80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우고 출애굽의 막중한 사명을 완수해 낸 모세의 정열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믿음 안에서 마음이 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변화된 마음을 통하여서 운명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떨쳐 버리고 위대한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음은 육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에너지입니다. 사람의 기분이 좋고 나쁜 것 상쾌하고 찌부등한 모든 것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습니다. 기쁘고 즐겁다고 하는 것은 창조적인 호르몬 예를 들어 흔히 말하는 엔돌핀,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이고, 기분이 나쁘고 우울한 것은 스트레스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가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잡한 세상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혈압이 올라가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위장병에 호흡장애까지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약을 먹고 정신 수양을 하기도 합니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과다하게 나오는 스트레스 홀몬을 억지로 적게 나오게 억제하는 것이고 요가, 명상, 단전호흡 등은 무의식 세계로 갈등을 밀어 넣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이나 명상 요법은 분명 효과는 있으나 이 효과가 지속되지 못하고 어떤 일을 당하고서 무의식을 뚫고 올라오게 되면 더욱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홀몬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홀몬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감싸는 따뜻한 사랑의 풍성함, 이로 인해 생기는 감사의 마음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모든 어두움에서 구해 주는 보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평안한 마음을 원합니다. 그렇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사랑은 없습니다. 감사하기를 바라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감사가 힘든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 가기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로 나오라고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올바른 삶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능력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헛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시는 삶이기 때문에 비로소 삶의 충만한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하는 삶인 것입니다.
여기에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한마디로 말해서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졌을 때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위해 사는 삶의 몇 가지 내용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I. 가치관의 확립입니다.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 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을 결정을 합니다. 이것의 차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지고 성공과 실패가 좌우가 됩니다.
점심에 만두를 먹느냐 라면을 먹느냐하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는 가치관입니다. 단독주택이냐 아파트냐도 그렇게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라든가, 외적조건을 보고 혼인을 하느냐 성품을 보고 결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정말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신앙을 우선에 두느냐, 아니면 내 자신이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 신앙이냐 세상이냐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같은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신앙을 중요시한다면 주일에 이익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예배시간을 지킬 것입니다. 갈등을 일으킬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을 더 중요시하면 신앙은 다음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에 두는 사람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신앙의 위대한 승리를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조지 포먼이 프로복싱 헤비급 통합 챔피언이 된 사건입니다. 권투 선수의 환갑은 40세라는데 45세의 포먼이 20살 아래의 챔피언 무어러를 10회 KO로 승리하고 챔피언에 등극을 했습니다. 세계가 깜짝 놀란 일이었습니다. 세계 권투 협회는 포먼에게 도전권을 주지 아니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법정 투쟁을 통하여 도전권을 얻었고 권투계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포먼은 챔피언이 되면서 세계 만방에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74년에 알리에게 챔피언 자리를 뺏기고 77년 프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지미 영에게 패한 후에 링을 떠났습니다. 포먼의 적수가 되지못할 것이라는 선수에게 지고난 후에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슬픔의 냄새가 엄습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곤 죽음뿐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금고에 숨겨 둔 수백만 달러의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했고 복싱등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 깨달음을 계기로 신앙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는 휴스턴에 교회를 짓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돕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습니다.
거리의 난폭자,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는 복서인 그가 그 공격성을 버린 것입니다. 사나운 셰퍼드를 기르며 자신을 과시하며 다니던 그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명예나 부가 아니라 신앙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복서로서는 환갑이라는 40을 넘기면서 링에 복귀를 시도한 것은 그 이전의 동기와 달랐던 것입니다. 청소년을 전도하는 회관을 건립하고 그들에게 신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만 천하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신앙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저는 사실 포먼의 승리를 보면서 이 설교를 착상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치관은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은 다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자신이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드러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은 내 전쟁이다 내가 싸우껬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일이 주님의 일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주님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감사의 생활입니다.
감사는 관계를 개선시켜 주고 삶에 능력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부자지간에, 부부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성도간에, 목회자와 성도간에. 감사가 있을 때 관계가 아름다워지고 삶의 윤택을 가져옵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요 원망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그 대상이 절대로 변화되지 않고 움직일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변화를 가져오고 운명처럼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기쁨이 되는 감격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 사이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감사해요. 당신이 고생함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수 있는 것을 정말로 감사해요.’ 이렇게 나오면 아마도 남편은 정신이 번쩍 들 것입니다. 그러면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더욱 열심히 하는 일등 남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일생의 최대의 실수였다’고 하든지 웬수라고 하든지 심하게 하여 마귀라고 한다면 아마도 남편은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다. 마귀 맛을 좀 봐라’하면서 심한 적개심을 나타낼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관계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껍데기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무용지물입니다. 감사로 여러분의 삶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감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있게 됩니다. 신앙이 깊은 성도들은 그들의 삶에서 풍성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신앙의 성숙과 감사가 비례함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욥이 모진 시험을 당하면서도 그는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밝고 희망이 있습니다.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어둡고 삭막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 주를 위하여 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 성도의 모습을 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이 부족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다는 이 사실만 생각해도 너무나도 감사할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감사,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소속을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며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본연의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탈선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불행을 겪은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성도들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불행한 것입니다. 본인의 삶도 질서가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솝 우화 가운데 박쥐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쥐는 날짐승도 같고 길짐승도 같이 생겼습니다. 수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피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쌍방에 다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고만 내용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우리는 주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주의 것이 될 때에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과 능력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는데 우리가 피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Augustinus는 그의 ‘고백’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에 그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는 세상에서 평안을 느끼지 못하였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독생자보다도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인 우리가 복되게 사는 것을 주님께서는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시며 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살므로 말미암아 주의 힘과 권능으로 열매맺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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