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준비하고 있어라. (마24:36-44)
본문
올해의 8.15는 뜻이 깊습니다. 건국 50년이 되고, 해방 53년 째 가 됩니다. 나라를 세운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민족이 반쪽나 있 으니 완전한 나라는 아니요, 해방이 된지도 쉰 세해나 되었지만 나라가 두 동강이나 있으니 완전한 해방은 올해도 달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길게도 기다려온 세월입니다. 그러나 올해도 우리는 갈망하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민족이란 공기 처럼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민족을 담는 그릇인 나라가 없어지면 비로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은 가족이며, 민족은 피쏢이고, 민족은 생활이며, 민족은 나의 일상입니다. 민족은 나의 습관이고, 민족은 나의 과 거요, 나의 미래입니다. 민족이 없어지면 이 모두가 없어집니다. 아프카니스탄이나 유고 등에서의 전쟁 난민에게는 일상이 보장 되지 않습니다. 따뜻한 잠자리가 없고 입맛에 맛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집니다. 가족이 떨어져야 하고 일상의 안전이 보장되 지 않습니다. 매일 당연시 되어 오던 습관과 문화를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민족입니다. 우리가 민족의 통일과 해방을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안녕이며 나의 생 존이요, 나의 일상의 보장이며, 나의 과거와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 인들은 주님의 재림이 아주 급박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죽기 전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 지어는 데살로니까 교회에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못하고 죽은 자는 어떻게 될까하고 걱정하는 자들의 정도가 심해서 바울 이 죽은자의 부활에 대해 따로 가르쳐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 자신들의 나이는 자꾸 들어 가고 이제는 늙 어 꼬부라져 이 생을 마감할 날이 다가 오는 데도 주님은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재림할 것인가 이것이 초대 교회 교우들의 화두였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의 편집적 배경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 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 다"(36절)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급박하게, 지정된 시간 없이 오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도둑 처럼 온다고 비유를 했습니다. 도둑 처럼 훔치러 온다는 것이 아니라, 도둑 처 럼 기습적으로 가장 방심한 시간에 온다는 것이겠지요. 노아의 홍수를 비유로 든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늘이 저렇 게 쨍 하고 맑은데 하고 방심하는 순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종합을 하면 방심하는 순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기습 적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예측을 벗어 납니다. 인간들은 종종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이 때 성공을 주지 않습니까 왜 이 때 건강을 주지 않습니까 왜 이 때 재난을 피하게 해 주지 않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때에 맞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용은 하나님의 계산법에 의해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 의 시간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괴로울 때 하나님의 때를 묻습니다. 하나님 홍수는 대채 언제 그칠 것입니까 하나님 대채 경제위기 관리 체제는 언제 끝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 독재정권은 언제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 일제에서의 해방은 언제입니까 하나님 이 민족의 통일은 도 대채 언제입니까 하나님 이 지긋 지긋한 상황은 언제 끝이 납 니까 이 고난은 언제 까지입니까 우리 인간은 모릅니다. 점을 치는 사람은 알아 맞춘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때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주권이 하나님에 게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선하신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고, 준비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깨어 있으라(42절), 준비 하라(44절) 고 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을 가르켜 주겠다가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입니다.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은 비단 종말의 시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깨어서 준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홍수의 비를 멎게 하시는 분도, 가을 걷이 를 보존케 하시는 분도, 경제위기 체제를 빨리 끝내게 하시는 분도, 개인의 고통의 역사를 중지 시키시는 분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통일의 시간을 우리는 깨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역사의 큰 일은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주권이 필요 합니다. 일제 해방은 갑자기 왔습니다. 박정희 18년 독재 정권의 종식 도 갑자기 왔습니다. 홍수도 첨단 기상대가 예측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갑자기 왔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갑자기 옵니다. 인류의 종말도 갑자기 올 것입니다. 이 '갑자기'란 말, 우리 인간편에서 갑자기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오랫 동안 치밀하게 예정되고 준비 된 시간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하늘이 저 렇게 맑은 데 홍수는 무슨 홍수야'이렇게 말할 ㄸ 노아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시대를 미리 보고, 하나님의 때를 미리 보고, 신앙 의 눈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갈망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메시아는 깨달아 졌습니다. 민족의 통일을 준비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옵니다. 그러면 완전한 민족 해방, 통 일의 준비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선 사상의 차이를 넘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공산당에 대해 좀 얘기를 나눴드랬습니다. 600명 되는 향촌 동네 에 공산당원이 대개 한 6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택동 시절에는 중국돈으로 1만원 뇌물 받은 성장(省長)이 처형되는 걸 보았는데, 지금은 그보다 몇 배의 뇌물을 받아도 처벌이 안되는 걸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등소평 이후의 개혁 개방에 대해서는 지지 를 하는 편이 었습니다. 그러나 잘사는 사람은 한국의 부자 정도 로 엄청나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6-700원 정도의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라 또 불만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능력 껏하라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실업자도 많습니다. 그래도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나름대로 단점과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는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두 주의와 사상을 모두 포용할 수도 있고 모두 배척할 부분도 있습니다. 왜 요 우리의 잣대는 말씀이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체제나 사상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선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외국인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선생이라는 호칭 대신에 끝 까지 목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고급관리들도 다 그렇게 불러 줬습니다. 이 정도라도 된 것은 예수님의 정신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우리가 성심껏 섬긴 결과입니다. 예수만 믿으라 하고 다른 고통은 나 몰라라 했다면 아마 그들 공산당원, 관리들도 마음으로부터 승복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성심으로 섬기고 이웃 형제로 사랑해서 그 마음이 전달 된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공산당 핵심 당원들에게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물론 예수 믿으라 안 믿으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자체가 사랑이고 나눔이고 희생이니 그런 예수라면 배척할 이유 도 없고 못 믿을 이유도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공산당 핵심당원 인 어떤 분은 그러면 못믿을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돈 많이 벌어 서 일조시에 교회 하나 짓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양 쪽의 사상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남북의 사상체제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양쪽의 사상을 뛰어 넘어 남북을 통 일 시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넓은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 들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 합니다. 그 다음은 아는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한 세기 이상 차이를 끌어 안으려면 우선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번 중국 여행을 하면서 참 불편하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 70년대 상황이 생각이 났습니다. 중국이 이 렇다면 이런 중국을 선진국으로 생각하는 북한은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변소, 잠자리, 더위, 교통, 생필품. 모두 우리의 불편감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 것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요. 사랑을 하려면 사랑 이전에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않는 사랑은 허구이거나 감상적인 사랑이라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해는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정보는 앎이지요. 사랑의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야 실체를 이해할 수 있고, 잘 이해해야 올바르고 굳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민족에 대해 많이 알도록 준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나눔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통일은 나눔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의 나눔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나눔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진정한 통 일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눔은 근본적으로 개인 개인이 해야할 문제입니다. 왜요 정부정책이나 행정처분으로 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의 나눔도 있어야겠지만 무 엇 보다 따뜻한 마음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평등에 기 초한 나눔, 이것이 통일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빚진자의 심정' 이것은 북녘 동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북녘의 형제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우월한 자본주 의 잘 사는 나라에 있다고 우월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녘 형제들에게 있어 채무자입니다. 먼저 복음에 빚을 졌고, 사랑에 빚을 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는 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노력 위에 결정적인 하나님의 개입의 역사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땀흘려 사상을 뛰어 넘는 노력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 진정한 나눔의 준비를 다 했다 해도 이 모든 환경을 동원 하시고 결정적인 때를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께 무엇보다 열심히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 습니다. 바른 생각과 열망으로 민족의 아픔을 탄원하는 우리의 간구를 주님은 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깨어서 준비하고, 땀흘려서 사랑의 준비를 하는 자들에 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기쁨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8.15를 맞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해야할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 인들은 주님의 재림이 아주 급박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죽기 전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 지어는 데살로니까 교회에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못하고 죽은 자는 어떻게 될까하고 걱정하는 자들의 정도가 심해서 바울 이 죽은자의 부활에 대해 따로 가르쳐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 자신들의 나이는 자꾸 들어 가고 이제는 늙 어 꼬부라져 이 생을 마감할 날이 다가 오는 데도 주님은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재림할 것인가 이것이 초대 교회 교우들의 화두였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의 편집적 배경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 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 다"(36절)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급박하게, 지정된 시간 없이 오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도둑 처럼 온다고 비유를 했습니다. 도둑 처럼 훔치러 온다는 것이 아니라, 도둑 처 럼 기습적으로 가장 방심한 시간에 온다는 것이겠지요. 노아의 홍수를 비유로 든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늘이 저렇 게 쨍 하고 맑은데 하고 방심하는 순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종합을 하면 방심하는 순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기습 적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시간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예측을 벗어 납니다. 인간들은 종종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이 때 성공을 주지 않습니까 왜 이 때 건강을 주지 않습니까 왜 이 때 재난을 피하게 해 주지 않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때에 맞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용은 하나님의 계산법에 의해 하나님의 때에 이뤄집니다.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 의 시간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때'(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괴로울 때 하나님의 때를 묻습니다. 하나님 홍수는 대채 언제 그칠 것입니까 하나님 대채 경제위기 관리 체제는 언제 끝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 독재정권은 언제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 일제에서의 해방은 언제입니까 하나님 이 민족의 통일은 도 대채 언제입니까 하나님 이 지긋 지긋한 상황은 언제 끝이 납 니까 이 고난은 언제 까지입니까 우리 인간은 모릅니다. 점을 치는 사람은 알아 맞춘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때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주권이 하나님에 게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선하신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고, 준비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깨어 있으라(42절), 준비 하라(44절) 고 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을 가르켜 주겠다가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 준비하라'입니다.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은 비단 종말의 시간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깨어서 준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홍수의 비를 멎게 하시는 분도, 가을 걷이 를 보존케 하시는 분도, 경제위기 체제를 빨리 끝내게 하시는 분도, 개인의 고통의 역사를 중지 시키시는 분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통일의 시간을 우리는 깨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역사의 큰 일은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주권이 필요 합니다. 일제 해방은 갑자기 왔습니다. 박정희 18년 독재 정권의 종식 도 갑자기 왔습니다. 홍수도 첨단 기상대가 예측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갑자기 왔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갑자기 옵니다. 인류의 종말도 갑자기 올 것입니다. 이 '갑자기'란 말, 우리 인간편에서 갑자기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오랫 동안 치밀하게 예정되고 준비 된 시간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하늘이 저 렇게 맑은 데 홍수는 무슨 홍수야'이렇게 말할 ㄸ 노아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시대를 미리 보고, 하나님의 때를 미리 보고, 신앙 의 눈으로 준비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갈망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메시아는 깨달아 졌습니다. 민족의 통일을 준비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옵니다. 그러면 완전한 민족 해방, 통 일의 준비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선 사상의 차이를 넘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공산당에 대해 좀 얘기를 나눴드랬습니다. 600명 되는 향촌 동네 에 공산당원이 대개 한 6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택동 시절에는 중국돈으로 1만원 뇌물 받은 성장(省長)이 처형되는 걸 보았는데, 지금은 그보다 몇 배의 뇌물을 받아도 처벌이 안되는 걸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등소평 이후의 개혁 개방에 대해서는 지지 를 하는 편이 었습니다. 그러나 잘사는 사람은 한국의 부자 정도 로 엄청나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6-700원 정도의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라 또 불만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능력 껏하라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실업자도 많습니다. 그래도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나름대로 단점과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는 가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두 주의와 사상을 모두 포용할 수도 있고 모두 배척할 부분도 있습니다. 왜 요 우리의 잣대는 말씀이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체제나 사상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선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외국인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선생이라는 호칭 대신에 끝 까지 목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고급관리들도 다 그렇게 불러 줬습니다. 이 정도라도 된 것은 예수님의 정신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우리가 성심껏 섬긴 결과입니다. 예수만 믿으라 하고 다른 고통은 나 몰라라 했다면 아마 그들 공산당원, 관리들도 마음으로부터 승복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성심으로 섬기고 이웃 형제로 사랑해서 그 마음이 전달 된 것입니다. 이번에 가서 공산당 핵심 당원들에게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물론 예수 믿으라 안 믿으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자체가 사랑이고 나눔이고 희생이니 그런 예수라면 배척할 이유 도 없고 못 믿을 이유도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공산당 핵심당원 인 어떤 분은 그러면 못믿을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돈 많이 벌어 서 일조시에 교회 하나 짓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양 쪽의 사상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남북의 사상체제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양쪽의 사상을 뛰어 넘어 남북을 통 일 시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넓은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 들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 합니다. 그 다음은 아는 것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한 세기 이상 차이를 끌어 안으려면 우선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번 중국 여행을 하면서 참 불편하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 70년대 상황이 생각이 났습니다. 중국이 이 렇다면 이런 중국을 선진국으로 생각하는 북한은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변소, 잠자리, 더위, 교통, 생필품. 모두 우리의 불편감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는 것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요. 사랑을 하려면 사랑 이전에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않는 사랑은 허구이거나 감상적인 사랑이라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해는 정보를 바탕으로 합니다. 정보는 앎이지요. 사랑의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야 실체를 이해할 수 있고, 잘 이해해야 올바르고 굳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민족에 대해 많이 알도록 준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나눔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통일은 나눔이 될 것입니다. 남과 북의 나눔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나눔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진정한 통 일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눔은 근본적으로 개인 개인이 해야할 문제입니다. 왜요 정부정책이나 행정처분으로 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질의 나눔도 있어야겠지만 무 엇 보다 따뜻한 마음의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평등에 기 초한 나눔, 이것이 통일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빚진자의 심정' 이것은 북녘 동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북녘의 형제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우월한 자본주 의 잘 사는 나라에 있다고 우월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녘 형제들에게 있어 채무자입니다. 먼저 복음에 빚을 졌고, 사랑에 빚을 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는 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노력 위에 결정적인 하나님의 개입의 역사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땀흘려 사상을 뛰어 넘는 노력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 진정한 나눔의 준비를 다 했다 해도 이 모든 환경을 동원 하시고 결정적인 때를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께 무엇보다 열심히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 습니다. 바른 생각과 열망으로 민족의 아픔을 탄원하는 우리의 간구를 주님은 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깨어서 준비하고, 땀흘려서 사랑의 준비를 하는 자들에 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기쁨을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8.15를 맞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해야할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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