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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가는 삶 (고후5:14-20)

본문

우리는 많은 신호를 만들고 그리고 지키며 삽니다. 교통신호가 그렇습니다. 도로표지판이 그렇습니다. 그 많은 표시들은 우리들 서로 간의 약속입니다. 일 방통행이라는 표시를 했을 때 지키지 않으면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옛날에는 먼거리를 통화할 때 모르스 부호를 사용하여 의사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싸인을 보냈을까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므로 용서와 삶의 길을 제공하는 싸인을 주셨습니다(창3:21).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는 그의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표시를 주 셨습니다(창4:15). 죄악이 땅에 관영할 때 물로 심판하여 노아의 식구외엔 전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 두려워 하는 노아의 가족에게 무지개를 주셔서 용 서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싸인을 주셨습니다(창9:13).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싸인은 땅의 티끌이었고 하늘의 별들이었습니다(창13:16, 15:5). 야곱에 게 주신 희망의 싸인은 꿈에 본 사닥다리였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싸인은 하늘 의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간 성도들이 받은 싸인을 이 야기 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싸인을 받은 앞서간 제자들은 어려울 때 용기와 도전을 새롭게 하였고 승리하여 오고오는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싸인은 무엇일까요 힘 들고 어려울 때 넘어지지 않고 붙들 수 있는 지팡이 같은 싸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싸인입니다. 십자가의 싸인은 더하기 싸인입니다. 십자가는 하 늘로 부터 땅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싸인입니다. 십자가는 좌에서 우로 이어주는 횡적 연결의 싸인입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남녀가 하나되며 어른과 아이가 하나되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하나되며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하나되는 싸인입니다.
1)
그런데도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 놓은 거룩한 화해, 그것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엄청난 은총 즉 더하는 삶, 늘어가는 삶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게 하시고 이 땅의 화평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가 이 땅 위에서 이루신 일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일이 위대한 것은 그가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일이 위대한 것은 인간적으로 엄청난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난은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과 지위 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여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의 모든 사역은 우리에게 더하는 일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어심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 히 포기하심으로 이루셨습니다. 그가 행하신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는 더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엡2:14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 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16절에 도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로 말미 암아 거룩한 화해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2)
그런데도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 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만난 베드로의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난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겁많던 사람에서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었 습니다. 주를 향한 열심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그의 강조점도 달라졌습니다. 그의 개성도 달라졌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도 달라졌 습니다. 그에게 있어서의 우선순위는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국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핍절한 백성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타락한 나라를 건실히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전관심 사는 어떻게 하여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가 하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고전 2:2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기록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진센돌프 백작이 젊었을 때 어느 미술관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가지 그림을 구경하는 가운데 그는 한 그림 앞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 그림 앞에서 떠나지 않던 진센돌프는 드디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다가 소 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은 스텐벅이 그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유화였습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나는 너를 위하여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진센돌프는 그 십자가를 바라본 후 달라졌습니다. 삶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살아가는 분명한 목적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귀중하게 헌신하였습니다.
3)
그런데도 만약 우리가 땅에서의 선교와 하늘에 가야할 은총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십자가의 빛 즉 갈보리에서 이루신 늘어가는 삶을 보 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나 땅에 살고 있습니다. 땅에 살고 있기 에 땅의 삶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즉 하늘의 삶에 대하여 무관해 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될 때 로마 군병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다는 권력자나 그 하수인인 군병들이 옷을 벗겨 나누는 행위는 한가지로 딱하기는 마찬기입니다. 그 광경을 내려다 보시던 주님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하 셨습니다(눅23:34). 우리가 십자가의 바른 모습을 보아야만 땅 위의 삶의 의미 를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이루신 그 완성의 의미를 알 때 선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선교의 의미를 알게 될 때 하늘의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1.
그렇다면 화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놀라운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속 에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는 죄성의 다양한 모습의 한 형태입니다. 한 번 생각하여 보세요. 부모형제나 부부가 떨어져 한평생을 지내면서 만나 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한을 품고 살다가 남편이 귀환함으로 만났습니다. 그들의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 모습을 볼 때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그런데 왜 함께 사는 우리는 다투며 싸워야 하는가요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죄성은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신 화해의 은총 밖에 있게 합니다.
(1) 그러나 화해는 그리스도의 배상으로 이루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사이의 다리를 그리스도께서 놓으셨습니다. 바다 가운데 있는 섬과 육지를 다리로 이어주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 리를 놓으신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이 일을 위하여 지불하신 대 가는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화목과 평화를 누리고 그 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땅위에 흩어진 모든 죄악의 저주를 다 끊었다는 선언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그러기에 영 원히 외쳐야 할 우리의 구호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는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지만 지혜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지만 입맛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 습니다. 돈으로 십자가 목 걸이는 살 수 있지만 구원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건물은 살 수 있지만 하늘 나라는 살 수 없습니다. 돈 으로 술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위에게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총 은 하나님과 우리 죄인의 사이를 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화해로 말미암아 늘어가는 삶의 싸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새 가족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마23:8-9에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랍비라 칭하지 말라 너희 선생 은 하나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 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되 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는 힘을 얻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월트 디즈니가 만난 실직의 고통은 엄청난 물질의 복까지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싸인이었습니다. 그가 교회의 창고에서 만난 쥐들을 질거럽다거 나 무섭다거나 더럽거나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쥐들이 친구처럼 정 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 를 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직을 성장의 발판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미키 마우스를 소재로 한 만화영화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희망을 잃고 절망으로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싸인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세운 것이 디즈니 랜드입니다. 사람이 몸에도 많은 싸인이 옵니다. 좀 건강이 시원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몸 에 이상의 신호가 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감기라든가 목이 아프다든가 입술 의 한 쪽에 물집이 생기는 여러 징후들이 나타납니다. 그런 징후는 몸이 피곤하 니 쉬어야 된다는 싸인이랍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싸인을 보냅니다. 경제적인 한파를 통하여 보여주고 싶은 싸인이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을 통하여 보여주 고 싶은 싸인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직접 가르쳐 주기 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싸인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하는 삶, 늘어가는 은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화해의 그리스도는 계속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때 갈보리에서 십자가 지심으로 화목을 이루는 한 사건으 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화목케 하시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십니다. 본문 18, 19, 20절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 아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요15:5). 요17:23에는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엡1:10에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이 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엡4:3에는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화목을 이루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이 화해가 계속되기를 원하고 계 십니다. 답답함을 느끼는 자에게 시원한 생수되신 은총으로 함께 하시기를 원하 십니다.
2.
그렇다면 화해란 무엇입니까
(1) 그는 우리의 화해를 가지셨습니다. 참된 화해는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는 우리의 화해를 가지셨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20절에서 말했습니다. 베 드로도 우리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라 흠없는 어린 양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벧전1:18-19). 화해는 우리의 말이나 양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네가 양보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화해를 이끌어 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돈으로, 어떤 이들은 술을 한 잔 놓고 함께 마시고 나면 화 해가 된다고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 화해를 이룰 수 있다는 꿈에서 깨어나 야 합니다. 화해는 오직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2) 그는 우리에게 재 화해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본문 18절에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 진 무기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이것입니다. 불화하는 개인의 심령과 가 정과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것이 희망이요 소망입니다. 진정한 화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저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안내합니다. 화평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 재물이 더하는 삶, 지혜가 더하는 삶, 보람이 더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후회되지 않는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와서 화해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 초청을 받아드리시고 모 든 문제를 그에게 신실된 마음과 진정으로 내어 놓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화해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우리들에게 분부하십니다. "가라! 가서 이 말, 화해의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무려 31,102 번에 걸쳐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 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고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권 고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풍성한 은혜, 천국 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사죄의 은혜를 누린 백성으로서 감격하며 살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어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 삶은 이루었다는 그 모든 것 들이 헛된 것입니다. 오늘 밤에 우리의 영혼을 찾으면 예비한 것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심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참된 평강, 위로가 빛들의 아버지로 부터 내려오는 풍성한 삶, 늘어가는 넉넉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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