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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종교개혁 (느1:1-10)

본문

느헤미야는 별로 이름 없는 하가랴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일약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궁중 관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세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당하는 것을 바사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후에 그는 바사 왕의 허락과 명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역을 중수하는 중임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대단한 담력과 기민한 수완으로 아닥사스다 왕 32년에 유대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착수한지 52일만에 성벽공사를 완공했던 것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성공하려면 지력과 담력 일사각오의 행동력 그리고 좋은 협력자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좋은 협력자 에스라를 포함하여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1. 느헤미야의 개혁은 마음의 개혁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가장 시급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개혁시키는 개혁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의 개혁입니다. 유대 민족이 70여년 동안 이방 민족의 땅에 살면서 가장 궁핍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궁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메말랐고 영혼은 삭막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느헤미야의 인도로 열심히 예루살렘성의 중수공사를 마치고, 그해 7월에 예루살렘에 있는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제사장이며 율법학자인 에스라로 하여금 모세의 율법을 낭독하게 했습니다. 이때에 백성들은 일제히 아멘으로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율법을 깨닫고 울면서 여호와께 경배했던 것입니다 (느 8:6). 인간개혁 중 가장 큰 개혁은 마음의 개혁입니다. 지금 온 세계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개혁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한국에서도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개혁은 대개 정치적인 의미의 개혁입니다. 그것은 피상적인 개혁입니다. 마음의 개혁은 아닙니다. 참 마음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아멘’하면서 각자 자기의 죄를 깨닫고 땅에 얼굴을 대고 울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도 본질상 말씀의 개혁이었습니다. 중세 역사의 암흑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에서 온 암흑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하게 될 때 생활이 무질서해지고, 도덕적으로 방종하며, 사회의 암흑 속을 헤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은 마음의 개혁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율법을 잘 준수함으로써 다시는 과거와 같은 쓰라린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2. 느헤미야의 개혁은 도덕적인 개혁이었습니다. 이 개혁은 가정의 정화운동이었습니다. 성경은 가정의 신앙적 정화운동(淨化運動)을 위해서 이방혼인을 금했습니다. 창세기 24:3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땅에서 취하지 말고 자기 동족 중에서 취하라고 엘리에셀에게 부탁했습니다. 창세기 26:34에 의하면,리브가는 자기의 장자 에서가 가나안 헷 족속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주위에서 종교와 신앙의 차이로 생기는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찰 28:1,2). 야곱은 후에 열 두 아들을 낳았고,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12지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7:3,4은 기록하기를,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23:12도 이방인과의 혼인이 가져올 불행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서신에서도 이방 결혼의 부당함을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고후 6:14-16).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옛적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 왕가의 실패를 예로 들어 유대민족의 가정정화운동을 펼쳤습니다(느 13:26,27).
솔로몬은 지혜가 탁월하여 주변국에서 그 지혜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잠언 3천을 말하고, 천 여편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모리아산에 성전을 지어 큰 공적을 남겼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대군을 이끌고 남정북벌(南征北伐)하는 공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원방의 임금들에게까지 조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적지 않은 과실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일생을 결산해 볼 때 그는 공적보다 더 많은 과실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의 딸 외에도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여인들을 연모했습니다(왕상 11:1,2). 그는 후비가 7백 명이었고 빈장이 3백 명이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첩을 두고 있었습니다(왕상 11:3). 이 처첩들의 권유에 못 이겨 솔로몬은 많은 이방의 우상들을 받아들이고 전국 도처에 산당과 신당을 지어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왕상 11:6,7).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신 28:15-19). 뿐만 아니라 그는 사치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혈세를 징수하다가 백성들의 원망과 불신을 크게 받았습니다. 결국은 이방여인 때문에 그 화려했던 왕가가 패망하였습니다. 나라가 아무리 부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전 922년 솔로몬의 심복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931년에 르호보암이 남 유다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이방 암몬 족속의 딸에게서 태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방 결혼은 왕조의 붕괴와 나라의 분열까지 초래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3. 느헤미야의 개혁은 성전정화운동이었습니다. 본래 성전이란 광야에서 세웠던 성막을 확대해서 준공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며 여호와의 마음과 눈이 있으며 여호와의 마음과 눈이 있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두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솔로몬의 성전을 시발로 몇 개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제1의 성전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모리아산(창세기 22장)에 7년간의 대역사를 통해 세워졌습니다. 그후 주전 586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훼파되었습니다. 제2의 성전은 주전 515년에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 성전은 규모도 적고 볼 품도 없어서 옛날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은 그 초라한 모습 때문에 울었고 솔로몬 성전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그래도 이 성전은 유대인의 꿈이었고 유대민족의 소망이었으며 정신적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마저도 앗수르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점령으로 우상의 전당으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그후 주전 63년부터 62년 사이에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훼파되었습니다. 제3의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 헤롯이 유대인의 인심을 얻기 위해 주전 2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주후 60년대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성전도 주후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 훼파되고 지금은 그 자리에 회교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 헤롯 성전은 말할 수 없이 타락했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할 것 없이 종교의 타락은 먼저 성전의 타락에서부터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의분을 내셔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요 2:13-16, 마 21:12,13). 여기서 예수님의 성전 청결이 가르쳐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는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 당시 성전에 들어갈 때는 먼저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이 돈은 로마의 화폐로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유대나라의 돈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환전상들이 이를 챙겼습니다. 제사장들의 묵인 하에 한 사람이 여러 자리를 독점하기도 했고, 여러 사람에게 되팔아 많은 이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둘째, 우리는 편리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전은 비둘기와 양과 염소를 파는 가축시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상품화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팔아서 폭리를 취하였습니다. 먼 지방에서 올 때 제물을 준비해서 오지 않고 상인들이 준비한 짐승을 샀습니다. 제사장들은 그들이 지정한 제물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상인들은 폭리를 취하였고, 성전은 비둘기와 양과 염소를 파는 시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셋째, 위선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선지자 말라기 시대에 사람들은 짐승 가운데 좋은 것은 시장에 내다 팔고 병들고 약한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떡을 단에 드리기도 했습니다(말 1:6-8). 그들은 내용이 없는 형식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마음으로 공경하지 않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진정한 두려움은 우리를 악에서 떠나게 합니다(잠 16:6).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진실함과 겸손함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결코 형식적인 제사나 예물을 드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넷째, 교권주의(敎權主義)를 경계해야 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강도와 도적질을 하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의분을 발하셨습니다. 교회지도자의 권세는 남을 명령하고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게 인도하고 가르치고 섬기는 권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듯이 느헤미야도 유대를 개혁하기 위해 먼저 성전을 청결하게 하였습니다(느 13:5-14). 그는 성전을 청결케 하기 위해 제1차적으로 도비야라고 하는 암몬 사람을 성전에서 추방하고 이방신의 부정한 것들을 모조리 성전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 도비야는 혼합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성전기물을 폐기하고 제사장의 제사를 방해하였으며 제사장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을 자신이 점령하였습니다. 또 그는 성전 복판에서 자기 세력을 확장하였던 교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느헤미야의 노력과 정치력을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도비야를 완전히 성전에서 추방시켰습니다.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은 마음을 바꾸는 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심령이 새로워지는 마음의 개혁을 이룩합시다. 또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도덕성을 실천하는 신자가 됩시다. 교회의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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