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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시험받을까 두려워하라 (갈6:1-5)

본문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만나는 것이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와 상관이 없이,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찾아오는 신앙의 어려운일들이 꼭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시험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신앙의 시험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신앙의 시험을 성경속에 나와 있는 것을 예로 삼아볼 때, 제일 먼저 시험의 대표겪으로 나오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는데, 예수님이 받으셨던 이 시험은 우리들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신앙의 시험들이라는데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4:1절입니다. 신약 4쪽입니다. (마 4: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는 말씀이 있고, 그 후로해서 쭉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공생애를 마치시고, 막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일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좀 배워야 합니다. 준비없는 섬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개 사람을 만나도 우리는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 있어 기도라는 영적인 준비가 없다면, 정성을 다하는 육적인 몸가짐이 없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전 40일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광야에서 홀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통을 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는 그냥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입고, 즐길 것 다 즐기고하는 준비가 아닌, 금식을 하시며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금식의 준비 다음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40일의 금식기도, 사역을 위한 준비가 끝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시험을 하되 예수님의 가장 약한 곳을 파고 듭니다. 예수님도 신이시지만 사람과 똑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으신 분이십니다. 곧 사람과 똑같은 육신적인 희노애락이 있으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용어로는 2성1인격이라고 합니다.
분명 인격이라는 개체는 하나인데, 그 하나의 개체에 두가지의 성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는 신, 또 하나는 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우리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랬습니다. 자 이와같이 똑같은 사람의 심정을 가지고 있으신 예수님께서 지금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는데, 처음의 시험이 먹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고 시험하는 것은, 강하고 튼튼하고 정비가 잘 되어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습니다. 요즘도 기도원에 가면 40일 금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0일의 금식을 잘 마치고 하나님의 많은 능력을 체험하여, 신유라든지 예언이라든지, 많은 능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40일 금식을 하다가 죽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음을 들어봅니다. 이처럼 금식이라는 것은 어렵고, 목숨을 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하루씩 돌아가며 기도제목을 놓고 릴레이 단식기도를 해 본적이 있는데, 단식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물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시간이 지나야 다른사람에게 그 단식기도가 넘어가는데, 20시간정도 지나가니까 눈에 뵈는 것이 없고, 배는 쓰리고 아파서 적잖은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벽촌에서 목회를 하는데, 이삼일을 물만 먹고 생활하다 주일날 단위에 올라가 설교를 하려고 하는데, 교인들 머리가 밥그릇으로 보이더라는 간증도 어디서 들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금식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우리 인간은 한시라도 먹지 않으면 안되는데 40일을 굶으신 예수님께, 사단이 처음으로 한 시험은, 그 연약하여질때로, 연약하여진 인간의 심정을 파헤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단연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라는 시험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경계를 해 본다면, 지금 우리의 가장 약해 있는 곳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연약한 곳은 어디인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에 약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사단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끊임없이 공격하여 하나님 섬김을 막을 것이고, 물질에 약한 사람은 돈 버는데에 정신 팔리게 만들것이고, 이성에 약한 사람들은 또한 정욕에 정신팔리게 만들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요.
경계를 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연약해진 곳이 어디인지를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넘어서 하나님까지 시험하는 사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말이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잘 읽어보아, 영적인 양식으로 삼을 만한 귀한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말속에는, 만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이 세상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이 있으면, 이렇게 읽어도 별반 그 뜻이 와전되지 않을 것이며, 그 속 뜻에는 하나님까지도 업신여기는 사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존재여부까지 비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은 우리들에게도 일어납니다. 우리들에게 절망적인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들은 한 번씩은 생각해 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는 것일까 살아계시다면, 내가 그처럼 당신의 사랑스러운 백성이요, 자녀라면, 왜 내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라고 말을 해 봅니다. 사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시험했던 그 말과 같이, 연약해질때로 연약해진 우리들의 신앙에 대하여 공격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너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게느냐, 하나님을 저주하고 침을 뱉아라" 이러한 시험이 우리들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두 번째의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 번째는 시험은 명예입니다. 이 또한 우리인간들이 당하기 쉬운 시험중에 하나입니다. 이 세상모든 권세와 권위를 모두 네게 주겠다, 내게 절만하면은, 엎드려 경배하기만 하면은 이것이 사단의 세 번째 시험입니다. 교회내에서의 많은 일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존귀함 만이 나타나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나타내려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봉사를 해도, 헌신을 해도,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을 기뻐하는 것 보다, 그래도 누군가, 사람이 알아주는 것을 은근히 더 기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약한 인간의 심정을 사단을 절대 놓치지지 않고, 부풀려 결국은 우리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떨어지는, 죄를 낳는 시험으로 발전시켜 놓습니다. 권세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기업화 되어간다는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기업의 구조는 수직하달입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지시와 그것을 처리하여 보고하는 아랫사람 간의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수평적인 관계만이 있어서, 모든 일이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비대함은, 교회의 기업화를 낳았고, 교회의 기업화는 사무적이고, 공적인, 사랑이없는 삭막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목사라는 권위에, 장로라는 권위에, 중진이라는 권위를 앞세워 우리들 각자의 모습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나약함을 사단은 이용하여, 우리들 각자가 많은 성도들을 실족시켜 연자맷돌을 목에 메고 바다에 스스로 빠지지 않으면 안되겠금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와 권위에 대한 예수님의 시험당하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약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시험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의 시험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 아니라, 그 옛날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시고, 끊임없는 공격을 당하였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본문이 말하고 있는 시험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본문 1절 말씀을 읽어 보면 '범죄한'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라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싶이, 다른사람에게 악을 행하거나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나쁜행동을 우리는 범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글사전에도 범죄에 대하여 정의 하길,
1. 죄를 지음, 또는 지의 죄. 이것을 범죄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2. 법률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할 위법 행위.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율법을 어겨서, 그 율법이 정해놓은 형벌을 꼭 받아야 하는 위법에 행위가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갈라디아서 본문 1절의 원어를 살펴보면, 여기의 범죄는 그 성격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어의 뜻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절의 범죄는, 파랍토마 (paravptwma) 로서 그 뜻은, 옆으로 미끄러짐, 실수,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사입니다. 명사라는 것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뜻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 명사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어떤 말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보면 더욱더, 이 뜻에 대하여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파라핍코 (parapivptw) 라는 동사에서 파생이된 말로서, 이 뜻 또한 옆으로 미끄러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갈1:1절의 범죄가 한글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흉악한 죄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영어의 번역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갈 1:1절의 범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흉악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어의 KJV(쉽게 우리들이 이야기해서) 킹제임스 버전이라고 합니다. 이 영어의 번역에는 이 범죄를 fault(포올트) 라고 번역을 해 놓고 있는데, 이 영어단어의 뜻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뜻을 알아 보면, 흠, 결점, 단점 이라고 번역을 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갈1:1절이 말하고 있는 범죄와, 후반부에 말씀하고 있는 시험은 그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원어 뜻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만에 하나 실수로, 그 사람의 흠, 단점, 결점으로인해 잘못했다면, 성령님을 따라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라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라고 해석해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갈1:1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정죄받아 마땅한 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단점으로, 흠으로 생긴 어쩔 수 없는 실수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을 본 우리들은, 그것을 죄로 인정하지 말고, 우리속의 성령님을 의지하여 먼저는, 권면과 기도로 바로 잡아 주고, 이끌어주고, 다음으로는 우리 자신들의 단점과 흠을 돌아 보아, 나도 저러한 시험, 곧 그와 동질의 실수를 범하지 않게끔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 4:14입니다. 신약 306쪽입니다. (갈 4: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말씀을 보면,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어려운 시험을 당하는 자는 지금 사도 바울 자기자신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서술하길 오히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 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라면, 지금 사도바울이 받고 있는 시험을 통해서 정작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까 바로 사도바울을 보고 있는 그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테스트 하시고, 시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무개 집사가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마음고생과 육신의 초취함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기도도 해 보고, 유명하다는 기도원을 가서 상담도 해 봅니다.
그런데 별, 마음에 와닿지않고 어려움은 계속됩니다. 그를 늘 시기했던 모집사님, 겉으로는 안쓰러운척, 잘되야 할텐데 라는 시선을 보내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은근히 고소해하고 있습니다. '지 혼자 교회 봉사는 다하는 것 같이 들낙거리더니 잘됐다' 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자 이 상황을 사도 바울의 말씀한데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시험하고 있는, 테스트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개 집사가 아니라, 바로 그를 바라보고 쾌재를 부르며, 은근히 고소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집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갈1:1절이 말하고 있는 너도 시험받을까 조심하라는 말씀의 핵심이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측량할 수 없는 일하심이 있으며, 이로인해 하나님을 더욱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험당하는 당사자는 물론, 그 주위의 교인들에게도 책임을 묻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 당함의 당사자를 테스트 하시는 것은 물론, 그 주위의 사람들까지 테스트를 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된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가를 알아보시는데에는, 세우신 지도자뿐 아니라, 온 교인들의 믿음의 분량을 테스트 해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험당함을 인하여 지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말고 늘 중보기도로 서로가 시험당하지 않게끔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당한 시험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지만 하나님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다다라, 종국에 천국시민으로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위치까지 이를 것입니다. 갈1:1절에 나오는 시험(temput)의 뜻에는 증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 때는, 우리들의 믿음의 분량을 증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정복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계신 과정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강하여 지고, 품위있어지며, 순수하여져서 하나님을 위해 더욱더 충성되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과정과정마다 닥치는 영육간의 힘든 시험들은 결국 또다시 우리들의 강함을 위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테스트를 당하고 있는 당사자나,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은 분명 달라야 합니다. 본문 2절은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생활을 꼬집기라도 하듯 말씀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갈 6: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우리가 잘아는대로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입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 사랑이요,둘째는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대강령이요, 율법의 완성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말하고 있는 짐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 육신이 육체적으로 져야 하는 물리적인 짐과,2. 육신적으로 지는 짐이 아닌 정신적인 짐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신적인 짐에는, 의무나 책임이라는 짐을 들 수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나, 가정에서나 우리들은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것이 있고, 그 만한 연륜과 직분에 맞게끔 꼭 책임을 져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말씀을 전해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고, 여러분들은 여러분 나름대로 예배에 참석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전반적인 일에, 맡은바 직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무형의 짐은 각기 그 모양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우리들에게 시험으로 나타나고,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하고, 그 나누어서 서로지는 짐은 가벼울뿐더러, 그것이 예수님께서 바라고 원하시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고전 10:13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의 유무형의 짐들을 서로 나누어지지 못했을뿐입니다. 우리가 책임과 의무, 그리고 우리 육신적인 봉사도 나누어 지고, 협력을 한다면, 우리는 교회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분명히 하나님의 테스트를 받지 않고도, 주님이 흡족하게 여기시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빛나게 나타낼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떠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과 역경은, 축복이 가면을 쓴 것 뿐입니다. 그리고 시험또한 우리를 더 존귀한 위치로 높이시려는 하나님의 테스트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시험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그 시험을 휼륭이 통과하여, 하나님께 인정 받고, 성장과 성숙을 고루 갖춘 장성한 성도가 되어,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면류관을 꼭 받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아 시험당하지 않게끔 늘 경계해야 하며, 나의 연약한 곳을 살펴 그곳으로 침투하여, 유혹하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각자가 져야하는 짐이 꼭 따로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히 우리에게 맡는 하나님의 테스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우리들 스스로의 믿음의 역량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기억하시어서 이겨 승리의 기쁨을 맛보시며, 세상속에서 근근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젼을 품고, 가슴을 활쫙열고 주님 주신 21세기를 향해, 천국을 향해 힘차게 나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예화> 한 젊은 재상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은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한 시간 안에 지시하는 거리를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하여 칼든 군인이 뒤따르게 했습니다.젊은 재상은 땀을 흘리며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도착했습니다. 왕은 만족하다는 듯이 웃으며 칭찬해 주며 묻기를, "모퉁이의 구두가게를 보았는가못보았습니다.그럼 쌀 가게는못 보았습니다.그럼 가구점은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느라 아무 것도 못 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하다 보면 시험에 들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공격은 언제나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님께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사회에서 주신, 나 하나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를 지고 열심히 인내하며, 예수그리스도의 표대만을 바라보고 나간다면, 우리는 남의 시험든 것 보고 고소해 할 시간도, 내 자신이 시험에 들어 허덕일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에도 있듯이, 시험에 들지 않게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주인은 하인이 늘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기도입니다. 사냥꾼은 사냥을 할 때, 총에 맞아 죽은 짐승은 그냥 두고, 총알이 스친 짐승을 먼저 잡는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귀도 이미 자기 종이된 죽은 자는 두고, 총알을 빗맞아 도망칠 듯한 신자는 한사코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적으로도 점점더 그 책임과 의무가 커집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점점 자라면, 신앙이 어린아이 같았을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시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장하여,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성장을 넘어 성숙에 이르려면, 우리는 누구나 다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우리들은, 넘어지기도하고, 자빠지기도해서, 엎어놓고, 뒤집어 놓는 연단과 단련과 훈련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다다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어, 늘경계하고, 내게 닥치는 시험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여 슬기롭게, 복되게 이겨나가시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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