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너는 방주를 지으라 (창6:5-18)

본문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노아 시대에 세상 사람들은 육의 것을 찾아서 각각 자기 눈에 아름다운 것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만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가쁘시게 해야 할 피조물이 그렇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물은 분명히 젆려 다르게 창조했는데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똑같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살지 않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 사람들과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믿는 사람의 가는 길은 다릅니다. 지식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사람은 다르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느 시대에 살든지 그 시대와 그 흐름과 그 문화와 다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그 시대를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본받는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케마’ 라고 하는데 유행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유행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유행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날 때에는 그저 노래나 의복 정도가 조금 유행을 탔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행을 떠나서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유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유행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식문화도 유행을 좇아가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생활필수품들도 전부 유행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언어도 결혼도 건축까지도 모든 것에 유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행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유행은 바람이기 때문에 따라서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옷도 오래 입으려면 유행을 따르면 안됩니다. 천국에 가려면 유행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멀리 바라보는 사람은 유행을 따라 움직이면 안됩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은 유행이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이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것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버림을 받는 것이 유행에 따라 움직이는 제품들입니다. 사람이 제품처럼 버림받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축복 받는 삶은 살아가려면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변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 예수께서도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의 사랑이 변치 않습니다. 우리는 변치 아니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우리의 집을 짓고 우리의 남은 길을 달려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값비싼 인생, 위대한 삶은 유행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2. 노아의 신앙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행하므로 오는 은혜도 있습니다. 자식이 조금 부모에게 잘 하면 부모가 더 사랑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전자의 은혜와 후자의 은혜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1). 은혜의 사람 노아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쾌락을 좇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좋ㄹ은 집 짓고 내 마음에 드는 예쁜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 이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고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위에 있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으로서 참 만족을 누리네”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서 기쁘고 즐거워했던 것이 바로 노아의 삶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는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노아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길로 가지만 노아가 그 길로 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함께 하면 같이 가지 않습니다. 같은 술판에 앉아서도 별로 술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불의한 자와 같이 살아가면서도 불의의 유혹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 못 견디면서 예수 믿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좋아 못 견디면서 겨우 교회에 나오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입니다. 세상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가 별로 좋지 않게 여겨지면서 그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 유행이 전체를 덮을 때에도 그 유행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없이는 안 된다고 하지만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은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은혜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천지만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은혜가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고, 여유 있게 하고, 기쁘고 즐겁게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꼭 잘 해줘야 감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눈에 만족해야 기쁘게 살아갑니까 눈을 감고도 찬송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기쁜 것입니까 은혜가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게 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는 여간 채소를 먹으면서도 살진 소를 먹는 것보다 더 기쁘게 살아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은, 천국은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의 삶이요 또 하나는 율법의 삶입니다. 율법은 과학적입니다. 논리적입니다. 현실적입니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근거도 없고, 조건도 없습니다. 과학적이 아니어도, 확실하지 않아도 좋고, 믿고 재미있고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가정은 은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사이처럼 법이 가정을 지배하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가정은 법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낳으면서도 한없이 행복하고 만족한 것입니다. 그것을 움직이는 힘은 가정 안에 있습니다. 밖에 있는 조건을 찾고, 보이는 것을 좇아갈 때 가정들이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학교도 마찬가진입니다. 사명을 가지고,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향하여 정성을 다하며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학교의 생명입니다. 마치 기차와 같이 스승이 앞에 있는 하나의 엔진 역할을 하는 겁니다. 학교를 사랑과 희생과 헌신과 정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끌어가야 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법이 점점 켐퍼스로 찾아 들어갑니다. 선생에게 이제 애정은 필요 없어졌습니다. 법으로 다스려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들을 향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칠 수 없는 시대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생활도 은혜가 넘쳐야 은혜로 예배보고 은혜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은혜가 메말라가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행복 창고는 주머니가 아닙니다. 집안에 있는 금고가 아닙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여유 있게 살아가느 원동력은 마음에 있습니다. 영혼의 창고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찬송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 어떻게 그 시대를 잘 살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방주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서 지었습니다. 방주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13,900톤 급의 배입니다. 여기에 17,600 종류에 달하는 동물들을 집어넣었는데 모두 45,000마리가 되었습니다. 이 방주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1,
2,3층으로 지었는데 그 규모가 미식축구장의 1배 반이 됩니다. 얼마나 큰 배입니까 이것을 노아의 식구들끼리 지은 겁니다. 건축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만한 힘도 없는데 어떻게 지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 은혜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우리가 잘 살아가느냐 잘 사는 길, 그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은혜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어려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스포츠가 이기고 지는 것도 운이라고 하고, 정치도 투표하는 날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에 따라서 일이 뒤집어집니다. 농사짓는 것도 아무리 과학영농이 발달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날씨 한 번 이렇게 하시느냐, 저렇게 하시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만이 우리를 영원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으려고 교회에 나옵니다.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해결하고 은혜로 잘 살고 은혜로 복 받기 위해서 나옵니다. 은혜는 과학적이 아닙니다. 은혜는 논리적인 것도 아닙니다. 은혜는 지식적인 것도 아닙니다. 창조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내리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사람 노아는 모든 사람에게 수군거림과 욕함과 멸시 천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대로 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에 욕을 얻어먹기도 하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산 위에다가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세계를 멸하신다. 앞으로 살려면 저 방주로 들어가야 된다” 고 해도, 모두다 비웃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건져낸다고 해도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다고 할 때는 제자들도 안 믿었습니.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날을 살아가려면 그 시대를 따라가십시오. 그러나 영원한 승리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가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스타는 비웃음을 먹고 자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머라이어 캐리라는 분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교회학교 교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앞으로 가수가 되렵니다.”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말하기를 “너 정도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길가에 수도 없이 많다. 착각하지 말아라”고 했답니다. 흑인 가운데 앤더슨이라고 하는 분은 인류역사 백년에 한 병 나올까 말까 하는 최고의 성악가입니다. 흑인들이 존경하는 분이 마틴 루터 킹과 이 애더슨입니다. 얼마나 유명합니까
그런데도 그가 처음 맨하탄에서 음악 발표회를 했을 때 음악 평론가들은 한 명도 좋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같다고 하고, 앨토인지 소프라노인지 분간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만은 “낙심치 말아라, 너를 비난하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위로했습니다. 내 안에 용기가 있으면 다 이겨냅니다. 내 안에 은혜의 창고가 차고 넘치면 인간의 삶은 언제, 어디에서나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노아 시대는 심히 어두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범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시대를 물로 심판할 때도 있고, 불로 심판할 때도 있고, 전쟁으로 심판할 때도 있고, 전염병으로, 기근으로 심판하실 때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개인이나 범죄가 깊어지면 심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은혜가 충만한 자에게는 구원이 가까이 오고, 범죄가 충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잘살기만 하면 된다. 성공하고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은혜 안에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범죄하지 아니하고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면 경계선이 있습니다. 폭포는 모두 산에서 떨어지는데 나이아가라 폭포의 특징은 호수에서 그냥 밑으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수에다가 경계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라인은 세 개입니다.
첫째 라인까지는 내려왔다가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라인까지 배가 내려오면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거기는 아주 잘해야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라인에서는 거의 못 돌아서고 그대로 폭포로 떨어집니다. 겉에서 보면 물이 조용한 것 같지만 아주 급하게 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 겉으로 보면 그냥 편안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라인을 꼭 의식해야 합니다. 술을 먹어도첫째 라인에서는 술을 끊고 돌아설 수 있지만둘째 라인만 되어도 어렵습니다.셋째 라인, 즉 폐인이 되기 전에 끊어야 합니다. 모든 죄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죄든지 하나님이 경고한 그 선을 넘지 말고 두려워하면서 이 시대를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여려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가 난다고 하신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노아는 받아들였습니다.
3) 순종의 사람 그리고 노아는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아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에 자기 몸을 던져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던지는 겁니다. 우리의 일생을, 장래를, 앞날을 하나님 앞에 믿고 던지는 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제가 한 십 여년 전에 서커스를 본 일이 있습니다. 서커스에서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공중곡예입니다. 공중곡예는 몇 바퀴를 공중에서 돌고 사람을 잡고 떨어지는 묘기입니다. 이쪽 그네에서 그냥 뛰다가 줄을 놓고 그대로 가서 저쪽 그네를 잡는 것, 참 아슬아슬하지요. 공중곡예의 생명이 뭔지 아십니까 몇 바퀴를 치고 떨어질 대 절대로 자기가 그 사람으 잡으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 손에 힘을 주면 손목이 부러진다고 합니다. 그냥 가만히 그대로 맡겨야 합니다. 그때 위에 있는 사람이 한쪽 손을 그대로 잡아주는 겁니다. 신앙은 내 자녀를 그대로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자녀를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나라를, 내가 우리 가정을, 내가 이 기업을 일으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죄를 맡기는 것입니다. 내 앞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5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