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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12:1-13:20)

본문

오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아브람은 창세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볼 때 창 세기 1-11장은 하나님께서 믿음 조상 아브람을 부르신 역사 배경이라 고 볼 수 있습니다. 에덴에서부터 홍수 심판을 지나 바벨에 이르는 역 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점철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심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구속역사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요,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 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가를 배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2:1-3)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구절에서 "가라"는 말은 1-3절까지의 주동사입니다. 1-3절에는 많은 동사들이 나옵니다. 이루고, 복을 주어, .창대케 하고, 될 지라, .축복하고, 저주하고, 복을 얻으리라. 이 모든 동사들은 "가라"는 명령의 목적이나 약속, 결과들을 나타내는 보조 동 사들입니다. 본문에 "너는 가라(go by yourself)"는 말은 도덕적 여격 (ethcal dative)으로서 친숙한 환경과의 관계를 단호히 끊음으로써 자 기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라는 뜻입니다.
1)
그러므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은 지연 과 혈연에 얽매인 인본주의적인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새로운 땅으로 가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새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특히 아브람이 태어난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 수메르 지방의 상업,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수메르 지방에는 우상숭배가 성행했습니다. 하늘 신 아누(Anu)대기와 땅 신 엔릴(Enlil), 태양 신 우투, 달 신 "난나, "물 신 "에아(Ea)", 등 여러 신들을 만신전에 모셔 놓고 섬겼습니다. 특히 우르 왕조는 달 신을 섬겼습니다. 아브람 의 아비 "데라"라는 이름도 달 신과 관련된 이름이고, 사래라는 이름 도 달신의 아내 arratu에서 온 말입니다. 아브람이 당시 머무르고 있 던 "하란"도 달 신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비 데라는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들도 섬겼던 것 같습니다(창 31:53; 수 24:2).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되 상대주의적인 신앙으로 섬기고 있었 습니다. 아브람이 떠나야 할 본토, 친척, 아비집은 바로 이런 곳이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런 곳을 과감히 떠날 것을 명령하 셨습니다. 아브람도 어려서부터 이런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자라면 서 그들의 생활 습관에 젖어들었고, 그들의 가치관, 인생관을 배웠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친구들도 그런 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브람이 이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지 못한다면 아브람도 그들 의 일원으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숭배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으로 하여금 본토 친척 아비 집 을 떠나게 함으로써 상대주의적인 신앙 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새로운 믿음의 삶을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지금까지 가졌던 인생관, 가치관, 친구관, 가족관, 우주관 등을 버리고, 하나님을 중심한 새로운 인생관, 가치관, 친구 관, 가족관, 우주관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혈육의 정에 얽매인 옛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새 생활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전폭적으로 믿고, 믿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이 말씀은 결코 부담스러운 명 령이 아닙니다. 축복된 명령입니다. 이는 마치 신부가 자기를 지극히 사랑하는 신랑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 정든 고향 산천 과 친정을 떠나 시집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를 진정으로 축복하기 위해서 본토, 친 척, 아비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이 부르심에 순종하면 어떤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 속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 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 라" 짧은 구절 속에 축복이라는 말이 5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실 하나님 의 축복에 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여러 가지 약속들이 있 지만 한 마디로 아브람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천하만민을 축복하시 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람을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그 시대에 아브람을 통 해서 하나님만 섬기는 큰 민족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때는 홍수 심판이 있은지 36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 때는 노아의 후손들이 열국 백성으로 나뉘어졌으며, 왕들의 권력은 절대화되었습니다(창 10:32; 12:15). 약소국들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잔인하게 보복을 당했습니다(창 14:1-12).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도시 국가들은 여호와의 동산같이 아 름답게 꾸며 놓고, 여호와 보시기에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창 13:10,13).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유1:7). 또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창 19:14). 이처럼 그 시대는 도덕적 타락, 전쟁의 공포, 물질과 우 상숭배, 영적 무지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큰 민족 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브람은 건장한 청년도 아니었고, 나이가 75나 되고 자식도 못 낳는 할아버지였습니다. 아브 람은 인간적으로도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실 뿐 아니라 그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운명과 슬픔과 절망 가운데 살던 아브람에게는 이 약속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310회 나오는데 창세기에서 88회가 나옵니다. 이만큼 창세기의 하나님은 인간을 축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사람들은 복이라고 하면 장수, 부, 평화, 풍작 그리고 자식들 과 같은 현실적인 축복들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적으로 볼 때 축복이란 물질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적인 축복은 부수적인 축복들입니다. 창세기를 근거로 생각해 볼 때 가장 큰 복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그 복을 도로 찾는 것입니다. 곧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창조의 목적과 존재 의미를 찾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결 코 인간 조건의 개선이나 소유의 양에 달려 있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서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아브람이 우 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게 된 이 자체 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데라는 아브람을 낳고 그가 "고상한 아버지"가 되도록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식도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7: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이는 "열국 의 아비"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아브람의 이름 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이 유명해지기를 무척 원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자기 이름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자기 이름을 써 놓고 가기를 좋아합니다. 지난 봄 경주 월드 방갈로에 갔을 때 벽 천 정할 것 없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자기 이름을 새까맣게 적어 놓았습니다. 고 김일성 주석은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명당이라는 곳은 다 찾 아다니며 자기 이름을 크게 새겨 놓았습니다. 남북 통일이 되면 그 이름을 지우는 데도 몇 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여름 이스라 엘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 을 기념하여 세운 주기도문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지하 굴 입구에 한국말로 붉은 글씨로 "낙서금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낯이 뜨거웠습니다. 한국 사람만 유독히 바위에다 자기 이름을 새기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위대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이름 없는 어부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위대한 성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탕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백성들이 위대한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크게 쓰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고, 이름을 창대케 하면 아브람이 어떤 사람이 됩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 라" 이 말씀에는 반드시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일인칭의 의 지가 반영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수동 명령 축복형 으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어다!"는 뜻입니다. 복의 근원이라는 말 은 복(福),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순 우리말로 하면 "복덩어리(a blessing)"가 되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3절과 연관된 말로서 땅의 모 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3절을 보십 시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 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 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아브람을 축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아브람을 저주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아브람을 배척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 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22:18에서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 이 씨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갈 3:16).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 대로 아브람의 씨,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 게 하시고,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 을 받게 하셨습니다(갈 3:14).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을 축복 하실 뿐만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셔서 천하 만민을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 르신 줄 믿습니다. 일생 동안 허무주의와 운명주의의 사로잡혀 소망 없이 살아갈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사 온 천 하 만민을 축복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Ⅱ.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람 (12:4-9) 그러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첫째, 말씀을 좇아 간 아브람(4,5).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 더라."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지 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람 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첫째로 아브람 에게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형편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너무 황당하여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75살 난 내가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루겠는가', '내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가'하는 불신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실 줄을 믿었습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반드 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21).
그러므로 자기의 인간 조건과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기쁨으로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인간 조건이 좋아서 복의 근원으 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형편과 조건을 바라보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쓴 세리 레위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멸시받고 천대 받던 공인되 죄인(public sinner)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자기의 인간 조건과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믿음으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께서 성 마태 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고기 잡는 어부였지만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좇았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께서 약속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 셨습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 거"입니다(히 11:1).
그러므로 현재의 형편과 조건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과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결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믿음으로 결단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나갔 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구체적인 결단의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아브 람이 결단을 내리기 가정 어려운 문제가 아비집의 문제였다고 생각됩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이 때 그의 아비 데라가 145살이었습니다. 데라는 아브람이 떠난 후 60년을 더 살 고 죽었습니다(창 11:26,32).
그러므로 당시에 아브람은 장남으로서 늙은 아버지를 섬겨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 은 아비 데라를 하란에 버려 두고, 부르심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5 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 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 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람이 믿음으로 혈육의 정을 끊고 아비 집 을 떠나 지시하신 땅에 나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갈 1:15,16). 그랬을 때 그는 위대한 주님의 종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심에 순종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쓰시고자 하실 때 약속을 믿는 믿음과 결단하는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약속의 땅에 우거하는 아브람(6).
6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가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신천신지(新 天新地)가 기다릴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시하신 땅에 도착하니 가나안 족속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 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자식도 없는 아브 람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손을 허락해 주실 것이며, 그 자손들이 이 땅을 자치하게 될 것을 믿고, 이 가나안 땅에 거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아브람이 일생 동안 믿음으로 우거하며 새 역사 를 창조해야 할 사명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구체적으로 우거해야 할 사명의 땅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 땅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로서 우거하며 장막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세겜 땅, 모레 상수 리 나무 사이에 잠시 있다가, 다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쳤 습니다.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습니다(9). 아브람은 가나안 땅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이삿짐을 끌고 다니며 장막 생활을 해 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막 생활을 하는 아브람에게 발붙일 만큼 의 유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행 7:5).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심지어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도, 고향에 묻지 않고, 막벨라 굴을 사서 그 땅에 장사를 지 냈습니다(창 23:16-19).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 으로 기업으로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약속의 땅에 우거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 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10)" 아브람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우거했으며, 이삭 야곱 3대 에 걸쳐서 장막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3대에 걸쳐서 장 막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고 사명의 땅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명의 땅 그 자체가 우리의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땅에서 열심히 말씀 에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질 때 끝까지 사명의 땅에 우 거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단을 쌓는 아브람 (7,8)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 라고 하시자 아브람은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는 것은 이방 신을 섬기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겠다는 그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자기들과는 다른 제단을 쌓는 것을 보고 경계하고, 비웃고 조롱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기도 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루터는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했다고 번역했습니다. 아브람은 이방 땅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 선교사들이 이 방 땅에 가서 먼저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양이 없으면 화분이라도 갖다 놓고 혼자 사회도 보고, 말씀도 전하고, 특송도 하 고, 헌금도 하며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 단을 쌓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인도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 하나님께 경배와 희생을 드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아브람은 개척지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비천한 자를 부르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신 그 한 가지 사실을 감사하며 가는 곳마다 감사의 단을 쌓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람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 려울 때나 괴로울 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 며, 적극적으로 감사의 단을 쌓은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Ⅲ. 믿음을 연단하신 하나님 (12:10-13:18) 12장 10절을 보십시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 라." 아브람이 약속의 땅에 거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가 물질 문제였습니다. 새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땅에 심한 기 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온 땅에 식량이 떨어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 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본 생활이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브람에게 식량 문제는 생존이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 였습니다. 약속의 땅에 우거하다가 굶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 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땅이 비 옥하고 물이 넉넉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은 물질 문제에 부 딪혀 사명의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1-13절을 보십시오. 아 브람이 애굽에 가까이 이르자 자기 아내 사라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강포한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 아내를 누이라 하기 로 했습니다. 14-16절을 보면 아브람은 그 거짓말때문에 올무에 걸려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물질 문제를 해결하 려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까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7-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라의 연고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 리셨습니다. 바로 왕이 이 사실을 깨닫고 아브람을 불러 그의 거짓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과 그 아내와 모든 소유를 내 보내었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13:1-4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애굽에서 얻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다시 남방으 로 올라갔습니다. 처음 단을 쌓았던 곳, 벧엘과 아이 사이에 도착하 였습니다. 아브람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람이 처 음 단을 쌓았던 곳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출발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무엇보다 기도 한 마디 없이 사명의 땅을 떠났던 자신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또 애굽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였다 가 불신자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힌 죄악을 회개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감당해 주 시고, 애굽 왕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자기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 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이미 복의 근원 인 것을 심령 깊이 영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택하신 자의 허물과 약점을 감당해 주시고, 사랑으로 섬겨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부르심의 은혜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우거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 은 이 한 번의 실수를 통해서 자기의 불신의 죄악을 뼈아프게 회개하 고 다시는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라가 죽었을 때도 고향 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삭을 결혼시킬 때도 고향으로 보내지 않 고, 종을 보내어 자부를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믿음으로 우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가나안에 부르신 것은 아브람이 굶어 죽게 하 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사랑을 체험하고, 신앙의 뿌리가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이삭도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 가려고 하다가 믿음으로 가 나안 땅에 거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해 100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창 26:12).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그곳을 떠 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놀라 운 믿음의 비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가운데 인내를 배우고, 반석과 같은 믿음을 덧입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좀 어렵다고 하여 약속의 땅을 떠나 버리면 철새와 같은 떠돌이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브람과 같이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우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그후 아브람과 롯 사이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 겼습니다. 가축은 너무 많고, 땅은 너무 좁기 때문에 아브람의 목동들 과 롯의 목동들이 서로 싸웠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권위를 내세우며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족장으로서 먼저 자기 좋 은 것을 선택하고 롯에게 불리한 곳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 브람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좋은 땅을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이 처럼 아브람이 물질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소망이 땅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브람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좋은 챤스가 왔다고 생각하고,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땅을 택했습니다(10,11).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의 동산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비옥한 땅은 애굽과 같았고, 물은 양을 치기에 넉넉했습니다. 결국 롯은 요단강 양 편의 계곡과 온 들을 택하고 그 장막을 점점 옮겨 소돔으로 들어갔 습니다(12). 그러나 저자는 그 당시 소돔 사람을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13). 롯은 물이 넉넉한 곳을 택 했습니다. 소돔 사람이 여호와 보시기에 큰 죄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롯은 소돔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롯의 가치 관은 물질적이었습니다. 영적인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을 따르면서도 썩어질 세상과 도시 문화 생활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4:12에 보면 롯은 소돔 성에 들어가서 거했으며, 19:2에 보면 그곳에 집을 샀습니다. 아마 오랫 동안 아브람을 따라다니며 떠 돌이 생활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아니면 그가 애굽에 다녀오는 동안 문화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롯 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소돔에 살다가 큰 화를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창 19:30-38). 물질문제로 아들과 같았던 롯을 떠나 보낸 아브람의 심정은 한없이 외롭고 슬펐을 것입니다. 또한 좋은 땅을 양보한 현실문제 앞에 마음 이 좁아진 것같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연약한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좁아진 마음을 넓혀 주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 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 르리라(14,15)." 또한 그 땅에 티끌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힘없이 앉아 있는 아브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땅 을 종과 횡으로 걸어 다니도록 하였습니다(17). 하나님은 연약한 아브 람을 찾아 오셔서 부르심의 소망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아브람은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헤브론이란 교제(fellowship) 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연약할 때 찾아 오셔서 약속을 새롭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 이십니다. 이 소망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 시고,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약속의 땅으로 주신 줄 믿습니다. 이 소망의 하나님께 오늘은 감사의 단을 쌓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람과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끝까지 약속의 땅에 우거하여 복의 근원으로 성장할 수 있기 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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