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12:1-4)
본문
고난은 변화의 신호입니다. 고난은 정지신호가 아니라 변화신호입니다. 우리말에 젊어서 고난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는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젊을 때 힘써 준비된 삶을 살아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늙은 자에게도 고난을 주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인생의 황혼기에 소명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나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의미를 깨닫으면 그 고난은 은총의 기호가 됩니다.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고난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이 증거하기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사도행전 7:2-3)고 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브람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창세기 12:1)고 했습니다. 사실 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대 모험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변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이 없이는 결단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습니다.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는 떠나야 합니다.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비의 저주를 받은 함에게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 있습니다(창세기 10:6). 그중에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영웅)이었습니다(창세기 10:8).
그런데 그를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창세기 10:9). 왜 특이한 사냥꾼인가 사냥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사냥하는 남폭한 폭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큰 성 레센을 건축했습니다(창세기 10:12). 나아가서 시날 평지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까지 쌓았습니다(창세기 11:2). 갈대아 지역은 바로 이러한 악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계획을 가지고 아브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첫째: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너는 본토를 떠나라 아브람의 본토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르 란 빛, 불이란 뜻입니다. 빛과 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하는 도시입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탑들을 쌓아서 탑 꼭대기에 해와 달의 모양인 빛과 불을 달아 놓고 그것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곳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세속적인 우상종교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오늘날 당신의 가정과 가문이 지배하는 유교나 불교나 무속적인 삶의 토양에서 영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너의 친척을 떠나라 갈대아 지역을 벗어나면 자연히 우르지역에 살고 있는 혈육의 모든 친척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교우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가장 귀중한 관계는 핏줄로 맺어진 혈육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인간중심의 생활을 청산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혈통으로나 육신의 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요한복음 1:13).
이제부터는 인간중심에서 계약중심으로 살아라는 말입니다. 아비집을 떠나라 그가 갈대아 지역 우르를 떠날 때 아비 데라와 함께 나왔습니다. 그가 우르 지역을 벗어나서 일차적으로 거점을 잡은 곳이 하란입니다(창세기 11:31). 그는 그곳에서 5년을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아비 데라를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가 있었던 그곳도 떠나라는 것입니다(창세기 12:1). 자식에게 있어서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은 아버지의 품을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이제부터는 육신의 아버지를 의지하는 안일주의를 청산하고 하늘의 아버지를 의지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면서 살아라는 말입니다(마태복음 22:37-40, 로마서 12:11).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이 아니라 지시할 땅 입니다. 이전에 지시했던 곳이 아니라 오늘 지금 지시하실 땅을 말합니다. 누가는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사도행전 7:3)고 했습니다.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일 땅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8)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적인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그날 그날의 만나를 먹었던 삶입니다.
둘째:그 말씀에는 이러한 약속이 있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2-3절) 너는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사실 아브람이 소명을 받을 때 받은 이 언약은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75세 고령의 노인이요, 아내 사래도 65세 늙은 몸입니다. 물론 그 아비 데라는 예외적이지만 당시 셈의 후예들을 보면 대부분 삼십대에 자식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아브람에게 주신 명령은 쉽게 믿을 수 있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깨닫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연법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인 산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성벽을 돌라고 하십니다(여호수아 6:1).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유대인에게 아브라함은 가장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 거지가 들어간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누가복음 16:22)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아브라함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전도서 7:1)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이요 곧 인격입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심은 그 인격과 삶을 복되게 하신 증거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할지라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찬송가 1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복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찬송가 28장)라고 부릅니다. 이 복된 구원역사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가 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1)고 했습니다. 당신도 아브람 처럼 당신을 통해서 당신의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게 예수가 흘러 들어간다면 이것은 복의 근원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9-20). 내가 복을 내리고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의 언약속에는 놀라운 은총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니 하나님은 그의 전후좌우를 지켜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미치는 축복이 아브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위하면 복을 받고 아브람을 해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은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그 아내를 빼앗겼을 때 하나님은 그와 그 아내를 지켜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세기 12:17)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해 주실 뿐 아니라 약점이나 허물이나 실수까지도 용납해 주십니다.
셋째:당신도 아브람 같이 순종해야 합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세였더라(4절) 아브라함은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아브람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후일에 그가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도 철두철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세기 22: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좇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그러했고, 하나님의 통치역사가 그러하고, 하나님의 최후심판도 그러합니다. 말씀은 기독교인의 규범이요, 그리스도인의 생활법칙입니다. 당신도 말씀을 좇아 순종의 삶을 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브람은 단을 쌓는 생활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하신 것이 단을 쌓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서 단을 쌓고”(창세기 12:7)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가치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행위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청교도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롯은 덤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을 받은 자는 아브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소명에 동참한 자가 그의 조카 롯입니다. 롯은 아브람과 동행하여 아브람이 받는 복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언약입니다. 그를 위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고, 그를 해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람과 함께 하는 동안에 롯은 복을 받아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브람을 대적하여 그를 멀리했을 때 그 얻은 것 모두를 잃어버리는 불행을 당했습니다(창세기 19:23-26). 시몬과 안드레 곁에 있었던 요한과 야고보는 덤으로 복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5: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서 존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왼편에서 악한 도구로 버림을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사단의 지배 아래서 바로와 느부갓네살과 헤롯같이 악한도구로 쓰임 받는 자들도 있고, 성령님의 지배 아래서 아브람과 모세와 바울같이 쓰임 받는 선한 도구도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민이 당하는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당신에 처한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 약속의 저변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순종하는 자만이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더 나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의미를 깨닫으면 그 고난은 은총의 기호가 됩니다.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고난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이 증거하기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사도행전 7:2-3)고 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브람을 택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창세기 12:1)고 했습니다. 사실 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대 모험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변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이 없이는 결단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습니다.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는 떠나야 합니다.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비의 저주를 받은 함에게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 있습니다(창세기 10:6). 그중에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영웅)이었습니다(창세기 10:8).
그런데 그를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창세기 10:9). 왜 특이한 사냥꾼인가 사냥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사냥하는 남폭한 폭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큰 성 레센을 건축했습니다(창세기 10:12). 나아가서 시날 평지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까지 쌓았습니다(창세기 11:2). 갈대아 지역은 바로 이러한 악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계획을 가지고 아브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첫째: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너는 본토를 떠나라 아브람의 본토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르 란 빛, 불이란 뜻입니다. 빛과 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하는 도시입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탑들을 쌓아서 탑 꼭대기에 해와 달의 모양인 빛과 불을 달아 놓고 그것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곳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세속적인 우상종교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오늘날 당신의 가정과 가문이 지배하는 유교나 불교나 무속적인 삶의 토양에서 영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너의 친척을 떠나라 갈대아 지역을 벗어나면 자연히 우르지역에 살고 있는 혈육의 모든 친척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교우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가장 귀중한 관계는 핏줄로 맺어진 혈육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인간중심의 생활을 청산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혈통으로나 육신의 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요한복음 1:13).
이제부터는 인간중심에서 계약중심으로 살아라는 말입니다. 아비집을 떠나라 그가 갈대아 지역 우르를 떠날 때 아비 데라와 함께 나왔습니다. 그가 우르 지역을 벗어나서 일차적으로 거점을 잡은 곳이 하란입니다(창세기 11:31). 그는 그곳에서 5년을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아비 데라를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가 있었던 그곳도 떠나라는 것입니다(창세기 12:1). 자식에게 있어서 아비집을 떠나라는 것은 아버지의 품을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이제부터는 육신의 아버지를 의지하는 안일주의를 청산하고 하늘의 아버지를 의지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면서 살아라는 말입니다(마태복음 22:37-40, 로마서 12:11).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이 아니라 지시할 땅 입니다. 이전에 지시했던 곳이 아니라 오늘 지금 지시하실 땅을 말합니다. 누가는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사도행전 7:3)고 했습니다.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일 땅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8)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적인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그날 그날의 만나를 먹었던 삶입니다.
둘째:그 말씀에는 이러한 약속이 있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2-3절) 너는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사실 아브람이 소명을 받을 때 받은 이 언약은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75세 고령의 노인이요, 아내 사래도 65세 늙은 몸입니다. 물론 그 아비 데라는 예외적이지만 당시 셈의 후예들을 보면 대부분 삼십대에 자식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아브람에게 주신 명령은 쉽게 믿을 수 있는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깨닫아야 할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자연법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인 산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성벽을 돌라고 하십니다(여호수아 6:1).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유대인에게 아브라함은 가장 존귀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 거지가 들어간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누가복음 16:22)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아브라함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전도서 7:1)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이요 곧 인격입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심은 그 인격과 삶을 복되게 하신 증거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할지라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찬송가 1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복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찬송가 28장)라고 부릅니다. 이 복된 구원역사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가 복음을 기록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1)고 했습니다. 당신도 아브람 처럼 당신을 통해서 당신의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게 예수가 흘러 들어간다면 이것은 복의 근원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9-20). 내가 복을 내리고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의 언약속에는 놀라운 은총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니 하나님은 그의 전후좌우를 지켜 주셨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미치는 축복이 아브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위하면 복을 받고 아브람을 해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은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그 아내를 빼앗겼을 때 하나님은 그와 그 아내를 지켜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세기 12:17)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해 주실 뿐 아니라 약점이나 허물이나 실수까지도 용납해 주십니다.
셋째:당신도 아브람 같이 순종해야 합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세였더라(4절) 아브라함은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아브람은 철두철미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후일에 그가 하나님의 시험을 받을 때도 철두철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세기 22: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좇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그러했고, 하나님의 통치역사가 그러하고, 하나님의 최후심판도 그러합니다. 말씀은 기독교인의 규범이요, 그리스도인의 생활법칙입니다. 당신도 말씀을 좇아 순종의 삶을 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브람은 단을 쌓는 생활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하신 것이 단을 쌓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서 단을 쌓고”(창세기 12:7)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가치가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행위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청교도들이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롯은 덤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을 받은 자는 아브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소명에 동참한 자가 그의 조카 롯입니다. 롯은 아브람과 동행하여 아브람이 받는 복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언약입니다. 그를 위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고, 그를 해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람과 함께 하는 동안에 롯은 복을 받아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브람을 대적하여 그를 멀리했을 때 그 얻은 것 모두를 잃어버리는 불행을 당했습니다(창세기 19:23-26). 시몬과 안드레 곁에 있었던 요한과 야고보는 덤으로 복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5: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서 존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왼편에서 악한 도구로 버림을 받는 자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사단의 지배 아래서 바로와 느부갓네살과 헤롯같이 악한도구로 쓰임 받는 자들도 있고, 성령님의 지배 아래서 아브람과 모세와 바울같이 쓰임 받는 선한 도구도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민이 당하는 고난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당신에 처한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 약속의 저변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순종하는 자만이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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