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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의 신앙 (행8:26-40)

본문

스데반 집사의 순교이후 흩어진 성도들이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 을 전하면서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질 무렵에 특별히 일곱집사중 하 나인 빌립집사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화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받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이 사건은 에디오피아가 기독교국으로 변화되는 대 역사의 시발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대개가 빌립집사의 복음전파에 대한 그 은혜를 강조 하게 되고 내시의 신앙에 대해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으나 여호와 하나님 의 역사에 있어서는 상대적인 관계가 크기 때문에 특별히 오늘 우리는 내시의 신앙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오늘 교회에서 증거되는 말씀임 성도 각자의 심령속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내시와 같은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곳 에서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 입니다.
둘째, 서로의 각자에게는 내시와 같은 사명의 주어져 있다는 사 실입니다. 이 내시는 복음을 받아 가지고 자기의 고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복음을 전파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시의 신앙이 어떠했기 에 그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자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막대한 사명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결과가 성공적이 못되는 이유는 바로 내시와 같은 신앙이 되 지 못하는 까닭이 아닙니까 이러한 시각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1. 예배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인으로서 예루살렘까지 마차를 타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가사(Gaga)는 예루살렘에서 서남 방향으로 서남 방향으로 약 60 마일이 되는 곳으로서 이곳은 애굽지역에 속한 곳인데 이곳까지 빌 립이 성령님의 지시로 이끌려서 여기서 내시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시68편31절에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에디오피아 인)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고 하신 예언 성취 일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내시는 예배의 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예배의 제단을 통하여우리와 만나기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 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시128편5-6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 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죄인이 죄를 용서받는 장소요, 시간이요, 죄인이 하나님 과 만나는 시간이요, 하늘의 축복을 받는 시간이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의논하는 시간입니다. 이 보다 더 귀하고 복된 자 리가 어디있습니까 우리는 이 예배 시간을 사모해야 할 것이요, 가까이 해야 할 것 이요, 늘 참예하는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성경애독 광야길이란 험란하고 타고 있는 마차는 걷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오늘의 승용차와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의 사는 인생살이는 바로 광야를 살과 있는 생활입니다. 늘 안정이 없고 평안이 없고, 쉬는 시간이 없고, 조용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시는 마차 안에서 두루마리를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읽은것이 사53장의 메시야 장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이 도를 걷는 생활이라고 한다면 날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영의 양식이라는 말은 귀에 익은 말입니다. 성경을 멀리 한적이 얼마나 됩니까 옛 조상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의 지시에 따라서 살아갔다면 오늘 우리는 성경에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성경을 읽읍시다. 영의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그 리고 성경 연구하는 공부 시간에 많이 나와서 배웁시다. 신앙은 상 식이 아니라 아니라 진리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분명하게 알게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성경은 우리 영혼을 살지게 하는 양식 입니다.
2) 성경은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3) 성경은 어두운 밤에 갈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입니다.
4) 성경은 무딘 심령을 깨우쳐 주는 예리한 칼이요.
5) 성경은 감추인 죄악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을 멀리하면 내 영혼이 죽어가고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 며, 캄캄한 밤을 헤메이다가 이리나 곰에게 죽게 되고, 양심이 마 비되어화인 맞게되고, 죄를 짓고도 죄의 두려움을 모르고 뻔뻔스럽 게 살아가게 되어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멀리하면 내 영혼이 죽어가고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 며, 캄캄한 밤을 헤메이다가 이리나 곰에게 죽게되고, 양심이 마비 되어 화인 맞게되고, 죄를 짓고도 죄의 두려움을 모르고 뻔뻔스럽 게 살아가게 되어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소요, 성경은 축복을 받는 길을 보여 주는 지도요, 성경은 지혜 롭게 사는 도리를 지도하는 스승인 것입니다. 요5장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은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겸손 내시가 빌립과 서로 대화를 한 것을 보면 이 내시는 너무나 겸손 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신분을 볼때 빌립은 전도자로서 사 회적으로 초라한 신분임에 반하여 내시는 에디오피아 국왕 간다게 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있는 내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내시의 취한 태도를 보면 30절에서 빌립이 "읽는 것을 깨닫느뇨"하고 물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31절에서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 을 수 있느뇨"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겸손한 태도 입니까 요즘 사람은 별 지식도 없으면서 어디 가든지 잘난척하고 남의 지시는 받지 않고, 남을 지도하려는 교만한 태도와 별로 아는 것이 없어도 남에게 배울려 하지 않는 오 만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자만, 이것이 마음엠 가득 하게 있으나 이 내시는 태도 하나만 보아도 얼마나 겸손한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을 청해서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했고 이사야서 의 내용은 누구를 가르침이냐고 묻고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 가 세례 받음에 무슨 꺼리낌이 있느뇨"하는 태도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내시에게 함께 있는 호위병도 있을 것이요 마차를 모는 마부 도 있을 것이나 모든 체면을 불사하고 겸손한자의 가는 길에는 광 명이 있게되는 것입니다. 빌2장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는데 겸손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4. 신앙고백 37절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느다"고 했는데 랄프엘레(Ralph Earle)는 "37절은 신약 신학의 정신이다"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마16장16절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자 기독교회의 기초가 되는 고백문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바로 내가 믿는 신앙의 내용을 입으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나올때 마다 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스 스로가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마다 고백하는 것도 이러한데서 뜻이 있는 것입니다. 내시의 심령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토록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위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네 이름은 베드로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축복했습니다. 이 내시의 신앙고백 위에도 엄청난 축복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신앙 고백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신앙을 지녀 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신앙고백의 내용이 많습니다. 요1장49절에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한 고백과 27절에 마르다의 고백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입니다. 요20장28절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본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 의 하나님 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 하나님 자신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것을 고백한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서는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 와 대소요리 문답으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1647년에 작성된 것으 로서 지금까지 고백도어져 내려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7년 요리문답을 발간했고, 1917년 9월 제6회 총회때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적당히 수정 채용을 했고, 신도개요서 와 성경 대소요리 문답을 채택하게 된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기독교의 옳바른 신앙고백이 없습니다. 무조 건 믿음만 가지면 된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한국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복사상이라든지 요즘 유행하는 귀신사상 이라든지 잘못된 신앙이 교회안에 들어와서 기독교 신앙을 흐리게 하고 있는 시기에 오늘 내시가 올바르게 신아을 고백함과 같이 올바른 신앙고백적 믿음을 간작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5. 은혜충만 본문 30절에서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 니라"라고 합니다.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갔습니다. "혼연히"라느 말 은 기쁨과 환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내시의 주장을 살펴보면
1) 몰랐던 성경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3) 세례를 받고 성령님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4) 인생의 가장 어렵고도 깊은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 그의 마음 속에는 더 부러울 것이 없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의 길을 가고 있었으나 그에게는 천국길이요,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항상 불만과 불평과 괴로움과 불안과 고통으로 살아가도 만족이 없는 모습은 하나님앞에 해결 할 것을 다 해결하 지 못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 습은 누구의 탓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신의 탓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이 내시처럼 죄를 용서 받고 회개하고 자신의 마음속 에 잇슨 괴롭게 하는 문제를 해결받고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서 심령 속에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광야와 같은 세상 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 하기를 "항상 기뻐하 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장 했던 것입니다. 기쁨을 찾읍시다.
그러므로 혼연히 인생의 길을 갑시다.
6. 복음전파 에디오피아는 본래 왕상10장1절을 보면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 여 왕이 많은 금은 보석을 가져왔는데 금 120달란트와 많은 향품과 보 석을 솔로몬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왕상10:10). 이때 스바 여왕 의 몸에 솔로몬의 자식을 잉태하여 갔으므로 그들이 솔로몬의 후손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이 내시도 예루살렘에 와서 이방인 뜰에서 제사드리고 예배에 참여하고 가는 길이었으나 이 내시는 빌 립을 통하여 참 하나님을 발견 하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방인의 뜰에서 예배를 드릴것이 아니고 직접 구속받은 자녀로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되었고 예루 살렘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에디오피아에서 직접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축복을 내시는 에디오피아에 가서 증거하므로 이 나라는 전체가 국교로서 하나님을 공경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 받은 나라가 되기도 한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하게 굶어 죽는 민족이 되고 만것입니다. 이 내시가 받은 이 놀라운 사실을 증거한 것처럼 우리도 이 복음 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다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이 내시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1) 예배의 귀중됨.
2) 성경을 사랑해야 하는것.
3) 겸손한 신앙의 태도.
4) 옳바른 신앙고백.
5) 은혜 충만한 생활>
6) 받은 은혜를 증거하는 복음전파 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갖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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