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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사는 것 (갈2:19-20)

본문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결정적인 변화에 대하여 즐겨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자인 바리사이파 청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넉넉한 당대 사회가 인정하는 실력자 바울로. 혈기 드세게 예수의 추종자를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가는 그를 지금까지 자신이 경멸하였던 예수가 막아 새웠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실체에 직면한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고정관념과 선입견 사고방식 그리고 편협한 그의 이념이 전혀 새롭고 획기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버틸 수 없는 그리스도의 정의로운 사랑에 온통 휩싸여 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적대자가 이제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농군이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로는 예수가 어떠한 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살림의 기운이 어느곳에서 누구에게나 퍼져들어 결국 살림의 사건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한결같이 먼저 올바름을 사랑하는 것이며 끝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계속해서 아픔을 당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또한 척박하고 암울한 시대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정의로운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예수와 그의 정의로운 사랑에 속ㄷ하기로 결심하였고, 그것이 그의 남은 생애를 결정짓는 사건이 되리란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은 이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때문입니다. 처절한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알아차리고 그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며, 오직 이것이 유일한 사림의 바람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앞에서 자신의 전부를 다하여 “네”라고 대답하고, 의로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그분을 따르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끊어버림으로써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에로 나아감, 형제에 대한 구체적인 봉사,용서, 서로간의 사랑, 하나님 나라의 의로움을 위한 온갖 걸음들로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처럼 이러한 사랑의 도구가 되도록, 또한 그분이 이라한 일이 가능히도록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써 온갖 여러움과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끝내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삶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하여가 아니라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 즉 그분이 세상에 가져오신 사랑과 정의 혁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는 것, 결국 새 사람으로서 예수에 의해 시작된 새 세계의 건설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하고자 합니다. 예수께 우리 마음과 몸의 전부를 다해 “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은 확고한 결심과 의지로써 어려운 순간들을 넘어서며, 예수의 생각에 적대되는 사고방식에 대항하고, 온갖 불의한 현실을 거절하는 용기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연하게 앉아 기다리며 이러한 일이 “언젠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지금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하며 작은 마음을 움직여 정의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이러한 일을 가져올 것입니다. 당장 아무런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하며 인내하며 계속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확신을 가지고 또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의 정의로운 새날을 앞당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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