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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오라 (마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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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부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타락한 후에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고 숨어 있는 아담을 찾으시던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 역사상에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30장 2절에 보면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 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과 같이 되리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통해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으며 호세아서를 보면 호세아의 방탕한 아내 고 멜을 세번씩이나 용서하여 돌아오기를 간청함으로 하나님의 부름의 간 절함을 상징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계속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당신이 오신 목적을 천명하여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죄인을 부 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수고하는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죄의 멍에 아래있는 인간 을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탕자의 비유'를 비롯하 여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은 동전의 비유''어느 임금의 잔치 조청 의 비유'등 부름에 대한 교훈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정황이 어떠하기에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이 어떠하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애타게 부르고 계실까 잠깐 보 겠습니다. 처음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존재를 "심히 좋았더라'고 기뻐하시며 사랑의 대 상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귀하게 지음받은 인간이 악마 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존재가 되고 말 았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죄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합니다. 탕자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마침내 성서 의 표현을 빌린다면 "가난한 자, 병신, 소경, 저는 자들"이 되어 버렸 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세가지 형태의 벌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을 명백하게 발 견할 수 있을 같습니다.
1. 인간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범죄한 하와에게 "네 남편을 사모하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사모하는 존재, 곧 고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홀로 살 아야 하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의 외로움을 읊어 말하기를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 사오니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시 인은 고독의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시인의 외롬의 아픔은 곧 만 민의 아픔으로서 여러분의 아픔이요, 동시의 저의 아픔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고독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죽음에서 오는 고독, 친구를 잃고 지위를 잃고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은 고독, 삶들 틈바구니 속에 살면서도 홀 로 존재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군중의 한 복판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는 원래 저혼자인 것을 깨닫습니다. 어둠이 스며들 무렵이면 고독은 한결 짙어집니다. 하루가 저물 때도 그렇고 우리의 생애에 종말이 가 까워질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고독에는 숨을 수도 없고 달아 날 수도 없는 두기자 형태가 뒤따릅니다. 이것은 죄책의 고독과 죽음 의 고독입니다.
2. 인생은 죄의 멍에 아래 있는 존재입니다. 범죄한 아내 하와에게 "고통과 수고로 잉태하리라" 고 했고, 남편 아 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죄 값을 치루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내가 범죄한 죄과 를 제거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들어나게 혹은 숨어서 저지른 죄과는 나의 죄과요 나만의 죄과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은 나 외에는 아무도 이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애쓰 고 죽음을 면하기 위하여 고민하여 왔습니다. 수도를 하는 일이나 고 행을 하며 적선을 행하는 일이 모두 죄를 속하며 죽음에서 구원받으려는 데서 생긴 것입니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깊은 동굴 속에서 죽은 시체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수도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몇해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폴 틸릭은 인간에게 있는 세가지 불안을 말하였습니다. 존재의 불안, 양심의 불안, 죽음의 불안이 그것입니다. 인간은 그 태어남 자체부터가 불안한 것이라는 것 입니다. 미지의 운명 앞에서 미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인간인 까닭 에 거기에 불안이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죽음 앞에서 살고 있는것이기 때문에 또한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근원적인 문제는 양심의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이 양심의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죄의식, 바 로 그것입니다. 존재의 불안도 죽음의 불안도 모두가 인간에게 있는죄 가 작용되어 생기는 불안이요, 공포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죄 과로부터 도망할 수도 없고 뻐젓하게 그것을 은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죄책을 지니고 혼자 서있는 것입니다.
3. 인생은 죽음의 존재입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리". 이것이 아담에 대한 마지막 선고였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고독은 내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저 혼자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도, 내 자식도, 내 죽음을 대신할 수 도 같 이 죽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로도 우리를 이 죽음의 고독에 서부터 위로하지 못합니다. 나의 임종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사람도 내가 죽는 죽음을 같이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나만의 죽음입니다. 죽음의 시간을 기하여 전 우주로부터 끊어집니다. 죽음을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지금 까지 가졌던 모든 것을 다 빼앗깁니다. 그때에도 우리가 혼자 있다는 자각까지도 잃어버려야만 합니다. 누가가 이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겠습 니까 이러한 고독과 불안의 존재, 죄의 멍에 아래있는 존재, 그리고 죽음 의 존재인 인간을 본문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라고 표현하 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실존을 절실히 깨닫는 자는 "오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부르시되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아 니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더욱 풍성한 삶"을 주시겠다고 보잡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이 시간에도 여러분을 향하여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리십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지금도 고독과 죄책과 죽 음 아래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인생 문제의 해결자시요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 시간 담대해 나와서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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