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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오라 (마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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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마다 년말을 당하면 헨델의 메이아곡을 즐겨 듣습니다. 그의 12개의 영창 중에 제 6번째로 나오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는 은혜의 말씀이 Soprano에 의해 불러집니다. 우리가 그 노래을 들으면서 항상 마음에 떠올리는 것은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 을 생각하면 할수록, 세월과 함께 연륜이 쌓이면서 더 깊은 위로의 말씀으로 들려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님의 자비로운 음성을 들을 때마다 생활 에 시달리던 피곤과 격무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달래 주는 위로의 말씀으로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주 아프리카에 들어가 자신의 일생을 받친 메리 스레소(Merry Slessor)의 기록을 보면서 크게 감명을 받은바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00여년전만 해도 Africa에는 오늘 도저히 우리가 상상조차도 못할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칼라바>해안 지방에서는 쌍둥이만 낳으 면 그 산모는 급히 뒷벽에 구멍을 뚫어 어린애들을 질그릇에 담아 밖으로 내 보내 어 숲속에 던져 식인종들이 갔다 먹거나 밀림지대의 독충들의 밥이 되게 해야만 했 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낳은 아이는 악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두면 죽음과 재난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그 산모는 마을 사람들이 짐승처럼 끌어내어 들짐승들과 함께 살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모가 쌍둥이만 낳으면 남이 알세라 이렇게 쉬쉬하며 갔다 버려야 했습니다. 또 그곳에서는 사람의 해골을 위하고, 사람을 잡아서 <쥬쥬신>에게 제사를 드렸 고, 자기들의 세워 놓은 법을 어긴 죄인은 독약을 먹이거나 끓는 기름 가마에 넣어 죽이며, 추장이 죽으면 수백 명의 사람을 동시에 묶어 무참히 죽여 버리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신을 위하여 1년에 한번씩 남녀를 묶어 바다에 장사지내며, 모두 벌고 벗고 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메리 스레소(Merry Slessor)라는 선교사가 들어갔습니다. 그는 여자의 몸으로 그곳에 들어가기를 자원했습니다. 그는 학벌도 없었습니다. 한낮 여직공으로써 가난에서 허덕이던 보잘 것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일찍부터 예수를 믿고 교회의 일을 돕고, 주일학교를 열심히 도왔고, 빈민굴에 들어 가 전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던중 리빙스톤(Livingston)이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미개했다는 <칼라바>해안 지대의 선교 운동의 열이 움틀 때 <스래소>는 거기에 지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 28세의 젊은 나이로 1876년 선교사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혈혈 단신으로 더욱이 약한 여자의 몸으로 갈 때, 숫한 시험과 유혹이 그 를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 자기의 길을 맡기고 그야말로 모험의 길 을 나셨습니다. 그는 시편 37:5절에 말씀을 대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기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 리로다" 라는 말씀을 의지하고 떠났습니다. 처음 그는 그곳에 집한채를 짓고서, 벌어진 쌍둥이들과 그 어머니들과 억울하게 무당들의 판결로 추방된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강한 의지와 불굴의 투 지로 직접 추장을 만나 그릇된 풍습을 시정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이 동풍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스레소의 영향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들에게 스며들 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번화한 영국의 에딘 의 거리를 거닐 때도 혼자 못 다녔고,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의 옆을 지나려도 두려워 못 갔고, 교인들의 집회시 남자들이 한 명이라도 끼었어도 부끄러워 말을 못했으나, 내가 어떻게 그런 음탕스럽고 무서운 술에 취한 야만인들을 능히 막아내어 봉변을 당치 않았는지 그것은 곧 기적이었다"라고. 그는 또 간증하기를 "나의 생애는 해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기도하는 것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의 기록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완전 히 놀랄 만큼 증거할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나의 손에 들려주시는 가장 능력 있는 무기였다"고. 후에 어떤 본국의 여인이 묻기를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용감해 질 수 있었는 가"라고 물었더니 "아! 여보, 나는 지금도 깊은 숲속을 거닐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 께 하신다는 것을 일순간이라도 잊으면 그 밀림을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소"라고 대 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자기도 약한 보통 인간이란 것을 말하였습니다. 결국 15년간 활동한 결과 그의 믿음의 열매는 맺혔습니다. 원주민들은 이제 그의 말이라면 범하지 못할 율법과 같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영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백인이 살아보지 못한 그곳에 대리 영사로 그를 임명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들은 곧 이 어머니를 찾아와 판결을 구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떠난 생활은 무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어떤 인간에서든지 <그리스도>와 <옷>을 벗기면 야 만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드디어 30년간의 그의 선교 활동이 끝나는 해인 1915년 1월13일 그는 조용하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세상에 왔던 주님 따른 흔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미개했던 그곳에 그가 떠나던 때에는 벌써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세상에 왔던 한 여인의 희생적 삶의 자취를 보면서 깊은 감회를 가져 보았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 여호와를 의지한 사람의 힘은 위대한 변 화를 일으켰습니다. 한낮 가냘픈 여인 Slessor는 갔지만 그의 믿음의 열매는 오늘도 정오의 빛같이 아프리카 대륙을 빛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주님과 함께 하는 힘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역경에서도, 어떤 위험한 순간에서도 주님이 함께 함을 믿는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낙심이 없습니다.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본문을 다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자기에게 오라고 부르십니다.
1. 세상은 모두 <가라>고만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온통 <가라>는 말뿐입니다. 몸담고 있던 일터에서도 가라고 하고, 그렇게 절친하게 지나던 친구도 우리를 가 라고 합니다. 이용할 가치가 없고, 도움될 필요성이 없어질 때, 세상은 우리를 모두 가라고 합니다. 젊음도 우리를 붙들지 않고 가라고 합니다. 어느덧 우리는 또한해를 보내면서 뒤로 밀려났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가라고 떠밀어냈기 때문입니다. 꿈많던 학창시절도 학교도 스승도 우리를 가라고 합니다. 심지어 부모도 형제도 마지막에는 가라고 합니다. 아니 일생을 같이 했던 부부도 결국은 가라고 할 날이 올 것입니다. 눈물을 지으면서도 이렇게 인간사(人間事)는 다 서로가 가라는 슬픔으로 끝나게 됩니다. 어느것 하나도 세상은 우리를 가라고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애틋한 사랑의 연인들이라도 서로가 혜여져야 하는 슬픔 위에서 만나는 과정들일 뿐입니다. 내게서 매력이 상실되는 순간, 더 기대할 것이 살아지는 순간, 언젠가는 가라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누가 일찍이 이 진리를 깨달았느냐에 따라 처세하는 방법도 다를 것입니다.
2.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오라>고 하십니다. "내게로 오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1마음이 괴로운 분도,
2고독한 분도, 3사업에 실패한 분도,4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도, 5친구에게 배신당한 분도, 6병중에 소생할 가망이 없는 분도, 7죄인도, 8살인자도, 9강도도, 10자식들에게 배척을 받은 늙은이들도, 11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한 어린이들도 12패륜아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지금도 누구든지 다 자기에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생애는 오라는 말로 시작하였고 오라는 말로 끝마쳤습니다. 처음 제자들을 부를 때도 "와 보라나를 따라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누 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오라는 곳에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합니다. 손님을 오라고 친절하게 맞는 점원의 미소에는 그리고 또 오세요하는 말에는 반 드시 대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오라 하심은 1돈 없는 자도,2가 난한 자도, 3창기도,4세리도, 5문등병자도, 6소경도, 7반신불수도, 8귀머거리 도, 9앉은뱅이도, 10학자도, 11선생도, 12유대인도, 13헬라인도, 14남자도, ⑮여자도, 다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대가를 받고 오라는 것이 아니었 습니다. 값없이 대 가없이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문 밖에서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두드리고 있습니다. 1내가 낙심할 때,2내가 혈기를 낼 때, 3내가 범죄 하려 할 때,4내가 낭패와 실망을 당할 때, 5지금도 나를 찾고 부르고 계십니다. 무거운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계시록 22:16절에 "성령님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오라할것이 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3. 이제 우리는 얼마나 더 <가라>고 하는 세상을 따르려고 하십니까 세상은 우리를 자꾸만 가라고 밀어 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순간에도 오 라고 하십니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고 하십니다. 얼마나 더 세상에서 머뭇거리려고 하십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결국 우리를 가라고 밀어냅니다. 아무리 좋다는 것을 다 소 유했어도 결국 세상은 우리를 가라고 밀어내 버릴 것입니다. 왜 아직도 무엇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또한해가 다 가기전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아직도 죄의 자리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위하여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가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문밖에서 기다리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나의 더러워진 심령을 깨끗게 하기 위하여 오 시었습니다. 나의 방탕한 생활에서 경건한 생활로 인도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나의 교만했던 생활에서 겸손한 삶의 복을 누리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던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20세기가 다 간다고들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리적 시간은 하나님 앞에 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이 시게 20세기가 다가 건, 21세기가 다가오건 그런 것이 문제 일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영접했느냐 못했느냐 가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지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해 드리는 뜻깊은 강림절이 되기 를 바랍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거기에 참된 쉼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즐거움과 평안은 주님 안에서 성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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