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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7-39)

본문

예수님께서는 얘루살렘에 초막절을 지키시기 위하여 조용히 올라 오셔서는 명절 중반 즈음에 스스로 나타내시어 말씀하시다가 반대에 부딪치셨습니다.
그런데 초막 절 절기 마지막 날에 다시 한번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이시고는 구원에의 초대를 하 고 계시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 37절을 보시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라는 말로시작하고 있습니다. 요 한복음 7장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면 초막절 이라는 그 배경을 잘 이해해야만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초막절이나 유월절, 혹은 오순절 을 지키는 것 자체에 하나의 큰 메세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그 절기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채 오직 형식 자체를 지키는 데만 급급해 있는 모습으로 아주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제대로 잘 이해하고 나면 우리들의 신앙에도 그런 요 소 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의 멧세지를 잘 모르면 형식적 인 주일성수가 되기 쉬우며, 십일조와 헌금의 의미를 잘모르면 외식적인 연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러한 면들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23:4-8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 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 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말지 니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성회로 모일 때의 중요한 조건은 노동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회가 자주 행해지는 안식일 같은 경우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을 더욱 강조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동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 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구 사항이 우리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이 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요구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어떤 결과가 생기는 조건으로써 요구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계명을 요구하실 때는 그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긴다는 식의 단순한 메시지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나 '도적질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지키라고 하실 때 그 절기를 지킴 으로써 그 지킨 것에 대한 대가로 상을 내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절기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한 누림이요, 감사요,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 체가 축복이요, 상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월절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일 때문에 요구된 절기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안식일부터 추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출20:8-11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여새 동안은 힘써 내 모든 일을 행 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 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둔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 였느니라" 안식일을 쉬라고 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요구 조건이 아닙니다. 제 칠일을 쉬 라고 하는 것은 육일 동안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모든 것을 누리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몇번째 날에 창조하셨습니 까 제 육일째, 그것도 맨 나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 졌을 때 인간이 할 일은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것만 남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둥이나 땀흘릴 조건이 없었습니다. 철따라 과실이 열리고 해함이나 싸 움이나 죽는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칠일 안식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 하셨는가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즉 제칠일 안식일을 잘 지키면 나머지 엿새 동안은 잘 살게 해주신다는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되자 땅이 저주를 받아서 땅은 사람에게 엉컹퀴를 내고 가시떨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네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종의 형벌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처음 약속하신 이것들은 지금도 영향력이 있어서 엿새 동안은 일해서 막되 제칠일은 일하지 않아 도 먹을 것을 주겠다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희생과 절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주일날 꼭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고 계신다면 안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주일날 일한다고 할 때에 그것이 죄 이기 이전에 안해도 되는 일을 하였더니 본전이더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어떻게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을 향해 가던 광야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십니다. 만나는 매일 아침마다 나가서 자기가 하루 동안 먹을 것을 거두어 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욕심을 내서 많이 거두어도 하루분이고, 적게 거두어도 하루분입니다. 그러나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분이 내립니다. 그래서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분을 거두도록 되어 있는 데도 안식일에 거두러 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히 나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 히려 손해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할 때에는 안식일을 지키면 무었이 된다는 그러한 요구가 아니라, 안식일을 그렇게 지켜서 괜챦고 좋을 일이있기 때문에 요구된 절기 라는 것입니다. 유월절도 그렇습니다. 유월절은 무슨 절기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준비하셔서 애굽에서터 탈출 시켰기 때문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그 절 기는 어디서 지키도록 되어 있다고 했습니까 출애굽기에서 시작을 했지만 가나안 에 이르거든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 12장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허락한 땅에 이르거든 이 예식을 행하라 그 때 너희 자녀들이 묻 거든 우리가 애굽 나라의 종이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해 주신 일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면 구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 해 주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애굽에서 유월절을 지켰더니 꺼내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구해 줄 터이니 그것을 가나에 가거든 기념하라는 말입니다. 사건은 비록 애굽에서 생긴 일이지만, 절기로 지키는 것은 가나안에 도착해서의 일입니다. 가나안에서 지킬 때는 이미 그 일의 결과를 지킨 것이지, 그 절기를 지킴으로써 결과가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초막절 마지막 큰 날'에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불러 일으키시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었인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킨답시고 외려 잘못 이해하여 율법을 오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만 무슨 결과가 따라온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면 어떻게 되고 안식일을 지켜 야 어떤 좋은 결과가 온다는 식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를 오해할 소지가 많습니다. 그 예로 기독교인이 교리를 깨우치고 계명을 지켰다고 해서 구원을 얻거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의 죄값을 씻으시고 그의 자녀라고 선언하시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이 된다는 사실을 바로 알때에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며 통회하며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인으로서 자기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감각을 갖게 되어 하나님 편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디서 누가 기독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소리를 하면 그것이 비록 틀린 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이기 때문에 교회가 교화답지 않는 데에 화가 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면으로든 지 교회에 관한 일을 멸시하거나 조롱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 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는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계명을 지켜야 되며, 신자답게 살아야 하는 데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신자가 되고 안 살면 신자가 아니라는 법칙은 없습니다. 그 점이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일단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 다는 데서 출발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의 메시지의 중심은 '너희는 은혜 를 입은 자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 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바로 논쟁거리입니다. 성경의 요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기준을 삼고 있고, 인간들은 언제나 무슨 말로 대꾸를 하느냐 하면 45-49절 까지를 보십시다.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 새인들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가 저주를 받은 자 로다." 그들은 율법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안다는 것이 무었이냐 하면, 무었을 했 을 때에 거기에 맞는 부류의 법칙 이외의 것은 생각을 못하는 취약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라는 토를 달고서 초 막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레위가23:33-36절로 돌아가서 보시면, 초막절은 앞에 있었던 유월절이나 안 식일을 지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 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 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이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 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여기 초막절은 팔일을 지킵니다. 안식일도 칠일, 유월절도 첫날 성회 칠일 성회 인데 초막절만은 첫날 성회 그리고 팔 일을 성회로 모입니다. 이것이 특이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안식교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 로 지킵니다. 그러나 칠일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마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 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쉬시지 않고 구속 역사를 위한 일을 계속 하셔야만 했습니다. 새창조를 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 왜 안식일에 일하시느냐고 묻자 '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쉬시는 것이 아니 라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팔일입니다. 구약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자가 다 나았을 때는 제 팔일에 제사장에게 가서 제사를 지내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도 팔일에 관한 개념 이나 칠일에 관란 개념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초막절만 필 일인 것은 완성의 날 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이 시작이라면 유월절의 마침은 초막절입니다. 또한, 여기서 분명히 파악해 야 할 것은 유월절은 가나안에 가서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지 킬 때에는 양만 잡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무교병과 연결되어 무교절을 이어서 지킵니다. 여기서 무교병 즉, 누룩을 넣지 않는 떡을 만들어 먹으려면 곡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씨뿌리고 추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추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는 가을의 수확기인 초막절에 합니다. 이렇게 초막절과 유월절은 불가 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지킬 때에는 유월절을 상기하면서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분명히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집 밖으로 나가 초막을 짓고 거기 들어가서 지내게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거둔 수확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뿌린 것의 결실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 시는 것으로써 절기를 설명하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관해서도 확실하게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31:13절을 보시 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 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징표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 말씀에서 보면 안식일을 지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너희로 알게 함이 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이 무었이 며 해주신 것이 무었인가를 상기하는 것이지,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는 것이 뒤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5:12-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 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안 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일을 지키라 하는 것은 이미 한 일에 대한 추억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즉, 애 굽에서 너희를 구원한 것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안식일에는 이러한 멧시지 가 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절기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를 향하여 하신 일을 기념하는, 즉 누리는 날입니다. 초막절은 그 결정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훨씬 우리의 내부로부터 율법적인 원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죄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첫 범죄를 생각해 봅시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그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악과는 선악과 자체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그 선악과를 따먹게 된 근본이 문제입니다. 뱀이 와서 하와를 유혹하기를 '왜 하나님이 못 따먹게 하는 줄 아느냐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그러느니라' 이렇게 유혹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같게 되려 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와같이 신자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잘 넘어지는 이유는 죄의 근본 에 관한 문제로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은혜를 구하고 긍휼을 구하고 싶지 않고 내가 한 것으로 떳떳하게 서고 싶어합니다. 그것만큼 우리를 혼동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이 문제를 신약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7:21-27절을 보십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니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 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오지만 내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나를 믿는다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 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르시는데 자기네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우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다가 공연히 나 혼자 예수님을 믿다가 나도 이런 대우를 받으 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비유를 잘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한 것을 듣고 행한 자와 행치 않은 자의 싸움이 아닙니다. 실천에 관한 싸움이라면 무었에 비교가 되 어야 합니까 홍수가 나서 넘어진 집은 무래 위에 지었기 때문이고, 넘어지지 않은 집은 반석 위에 지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는 기초를 비교하고 있지 위에 지은 집을 비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는 벽돌로 지었고 하나는 나무 로 지었다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있는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와 "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라는 말씀도 내 말을 들은 한 사람은 실천했고, 한 사람은 실천하지 않았다는 비교가 아니라, 그의 행위가 내 말이 근거인 행위를 한 자와 하나는 내 말에 근거치 않는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읽으면 말씀을 듣고 행한 자와 행하지 않은 자를 비교한 것같이 보이지만,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 이 근거인 자와 아닌 자를 비교하는 말씀입니다. 또 앞에서 무슨 말씀이 나옵니까 '주여 저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난 모른다. 나는 그런 것을 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 7:15-20절 말씀을 보십시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컹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는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 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히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처음 으로 입을 열어 말했던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좋은 열매를 맺자는 구절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는 무슨 나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숭아나무, 배나무, 사과나무를 구별할 수 있으십니까 수확기에 열매를 맺는 것 을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얘기는 네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열매를 맺 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나무가 아닌데 그러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다 나무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을 생각하지는 않고, 사 과를 맺으려고 사과를 사다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매다는 작업만 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바뀌어야만 무제가 풀려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 히 바뀌는 일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금부터라도 계명을 지키고 주를 위하여 열심을 내서 무었을 적금 붓듯이 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켜 드리고 헌금을 내드리면서, '하나님, 오늘은 그래도 제가 헌금을 조금 냈습니다.'하면서 흡 족해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일차적 으로 요구하는 것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7:37-38절을 보시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 라" 그렇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 나오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도 차이 가 납니다. 다른 종교가 자연인인 인간이 어떤 도를 깨우쳐서 자신을 초월자의 자 리로 끌고 가는 것이라면, 기독교는 우리는 못하기 때문에 죄지은 인간이 아닌 제3 자가 와서 우리를 이끌고 가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세 주입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는 제3자입니다. 우리는 도와달라고 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고치거나 변경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께 구해 야 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내게로 오라는 이 말씀도 단순하게 내게로 오면 된다는 율법적 제시가 아 닙니다. 7: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 돌아가 겠노라" 이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이 없이 초막절이 없듯 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없이 우리의 초막절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누리는 초막절입니다. 성경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 너희가 뿌린 것이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이 엄청난 은 혜와 축복이 나의 노력과 애씀으로 이루어 진것이더냐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싸움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의 자녀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들이 자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공부를 시키는 것이지, 그 부모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자신의 아들 딸로 태어난 자들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훌륭한 자리로 가는 싸움이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자녀가 되 기 위해 노력하고 몸부림 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에서 영광 으로, 은혜에서 은혜로의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아니 모른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모르면 마땅히 누릴 복을 누리지 못하고, 감사할 것에 바로 감사드리지 못 하고, 더 많은 찬송을 부르지 못하니 손해일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에 나아왔습니다. 무었 때문일까요 그것은 구원을 얻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자와 예수 믿지 않는 자의 확실한 근거는 여러분이 과연 하나님의 편인 가 아닌가를 확인해 보신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눈을 의식 하고 있는가 아닌가 를 짚어보면 될 것입니다. 반드시 믿는 자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거룩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자 만큼 제멋대로 행동을 하는 자들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뭣대로 행동을 해놓고는 뭐든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못박고, 잘못을 했으면 무조건 회개만 하면 된다고 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려 놓고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하면서 얼마나 멋대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인 것입니다. 물론 수 준으로 말하자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를 낳아 놓으시고 내버려 두신 예는 한번도 없으십니다. 언 제나 당신의 눈에 맞을 만큼 성장시키고 성장시키신다는 것을 성경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축복들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시고, 그러한 누림들과 확복된 운명 들을 갖고 있는 자인 것을 확인하셔서 여러분의 마음 맨 밑바닥에 흔들릴 수 없는 자신과 감격이 여러분을 굳게 잡아매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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