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내니 두려워 말라 (마14:22-33)

본문

벌써 30년, 30여년 전 얘기가 됩니다. 로켓을 타고 처음으로 달나라를 다녀온 어윙 대령을 한번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호텔 로비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어윙 대령을 만나서 한시간 동안 독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다녀간 줄 압니다. 특별히 달나라에서 지구를 보는 그 광경은 우리가 여기서 달을 보는 거와는 다르답니다. 우리가 달을 보면 달은 작기도 하고 흑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를 보면 엄청나게 크고 그리고 총 천연색이라 합니다. 좌우간 만리장성이 보인다니까요. 이 얼마나 장관이겠습니까! 그 구경하고 온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입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캡슐을 타고 지구를 향해 떨어질 때 낙하산이 둘이 펴져야 합니다. 큰 낙하산을 둘을 펴 가지고 공기저항을 이용해서 조용히 안착하게 되여 있었는데, 낙하산 하나가 터지고는 하나는 터지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비상 수단을 써 봐도 안됩니다. 휴스턴 사령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대로 떨어지면 아주 박살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큰 난리가 났을 때에 속수무책입니다. 모두가 딱 한마디, "기도하자!" 그랬답니다. '그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 이 캡슐을 타고 지금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그도 기도하고 휴스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기도했답니다. 이 길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땅에서부터 회오리바람이 올라 부는 겁니다. 치솟아 불어 올라오는데 그 바람을 맞으면서 낙하산 둘 터진 것과 같은 속도로 조용히 떨어질 수가 있었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건 기적이랍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이건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 인간이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간증을 하고 끌어안고 울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건 확실한 것입니다.
여러분, 로켓은 휴스턴 사령탑에서 조정하는 줄 알았는데 그 뒤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협력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귀중한 간증을 모두가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은 제자들이 적은 배 하나를 타고 디베랴 바다를 건너갑니다.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는 이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또 바다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본 직업이 어부입니다. 그런고로 바다도 잘 알고, 노를 젓는 방법도 알고, 배를 움직이는 방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젠 죽는다 하고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풍랑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풍랑과 인간, 이것은 비교가 안돼는 겁니다. 풍랑의 정도가 지나칩니다. 이건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죽는 것이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자연 현상은 당연한 것입니다. 풍랑도 있고 지진도 있고 재난도 있고 죽음도 있게 마련입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인간의 고통이 있는 것이올시다. 가끔 우리는 차 사고 얘기를 듣습니다. 비행기 사고도 듣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래요, 사람 죽는 게 이상합니까 사람 병들고 죽는 건 당연한 것 중에 당연한 것이에요. 언젠가 내 차례가 오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장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풍랑은 있어요. 과학적 자연 현상이요.
그런데 저들이 지금 이 문제를 놓고 바로 수용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두려움에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먼저는 의식의 문제입니다.
죽은 사람은 조용합니다. 걱정도 없습니다. 살았기 때문에 문제요. 오히려 사건이 내 앞에 다가오면 처연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지금 사건 앞에 직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식, 이게 문제올시다. 어설픈 지식이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큐가 90이하 되는 사람은 절대로 자살하는 법이 없습니다. 걱정도 없고요. 왜냐하면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죽는 시간까지 그대로 조용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생각을 먼저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저럴 것이다. 저러니까 저럴 것이다.' 미리 생각을 해 가지고 미리 지쳐서 미리 죽는 것이올시다. 그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 걱정이 많아요. 똑똑한 사람이 먼저 절망해요. 그걸 알아야 돼요. 피난 가는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는 쿨쿨 잠만 자더라고요. 어머니는 불안해 죽겠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아요. 모르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그는 조용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인간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걱정하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든다 하는 말입니다. 또한가지는 자기의 그 변변치 못한 경험입니다. 이 바다에 살았다고 하는 게 문제요. 그래야 바다가 무서운 걸 알지요. 그리고 자기들이 경험한 세계에서 물결이 이만큼 높으면 '아이고 이건 죽는 거다!' 그걸 알고 있어요. 여기서 자기들의 경험이 그들의 마음속에 고정관념을 만들었어요. 이 정도가 되면 죽는다 이말 이예요. '이 뒤에는 죽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더란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을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는 것이올시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합리적인 추리가 사람을 절망케 합니다. 요새 우리는 다 이렇게 편안하게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밝은 얼굴로 나와서 찬송을 부릅니다만은 요새 경제를 전공하는 사람들은요 얼굴이 노오래가지고요 벌벌 떨어요. 온 세계가 이제는 공항에 빠진다 그거예요. 만나는 사람마다 "큰일났습니다. 큰일 난 것을 몰라서 더 큰일 났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큰일 났다는 지가 오래 됐어요. 늘 그러면서 살아왔는데……" 그랬더니 저더러 웃더라고요. 똑똑한 척 하지 마세요. 어차피 말세고요,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가 그렇게 갈 거예요. 너무 미리 아는 척 하려고 들지 마세요. 그것이 사람을 망치는 것이에요. 자, 이렇게 경험 있는 자, 똑똑한 자, 지식 이것으로 인해서 예견합니다. 예지 합니다.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부정적인 세계로 빠지고 시험에 빠지고 망했다 끝났다 말세다 이래되는 것이올시다.
두 번째, 이들이 이렇게 벌벌 떨게 되는 이유는 뭐냐하면 건망증 때문입니다. 사람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머리 속에 아주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좋은 생의 패러다임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자 보세요. 이 사건은 바로 몇 시간 전에 낮에 디베랴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였습니다. 오천명을 먹이는 굉장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 사건 뒤에 예수님께서는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먼저 가라." 보낸 거예요. 이런 관계인데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큰 하나님의 능력, 그걸 까맣게 잊어 버렸어요. 이 건망증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지난날에 내게 베푸신 은혜, 내게 주셨던 그 엄청난 기적, 그 순간을 절대로 잊으면 안돼요. 그때로 돌아가 생각하세요. 그러면은 오늘의 문제가 풀릴 것이에요. 제가 아는 한 장로님이라고 하는 분은 아주 잘 살지도 못하지만 또 못 사는 것도 아니에요. 웬만큼 잘 사는 분인데 그 안방에 들어가 보면 한 쪽 구석에 커다란 니끄샤꾸가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니끄샤꾸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수 십 년 된 겁니다. 저건 뭐냐 이겁니다. 자기가 좀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사업이 잘 안 풀리고 괴로우면 저 니끄샤꾸를 쳐다 본데요. 저것은 자기가 6.25때 전쟁을 피해 다니면서 둘러매고 다니던 니끄샤꾸에요. 그때에 어디 가서 엎드렸는데 총알이 비오듯하면서 막 쐈는데 그 총알이 몇 개가 거기에 들어 박혔어요. 구멍이 뚫린 그런 니끄샤꾸에요. 바로 그 시간에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시다 생각을 하고 바로 그때의 장면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면은 모든 걱정이 다 그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만대요.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각각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결정적 사건이 있었을 것이에요. 그때의 일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에 나와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주 많은 범죄 행위를 할 때 하나님께서 계속 명령하시는 말씀 중에 꼭 달리는 하나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애굽의 종 되었던 때에 너희를 구속한 하나님을 잊지 마라.' 그겁니다. 십계명 서두에서도 말합니다.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라.
그러므로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출애굽 그때에 그 크고 놀라운 기적, 홍해를 건널 때의 감격, 그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돼는 거예요.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해야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기만 하면 오늘의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보다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때에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의 장면으로 돌아가서 다시 은혜를 기억하세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8장 18절에 같은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억지도 못하느냐 생각지도 못하느냐 어찌하여 깨달음이 없느냐!" 오천명을 먹인 사건은 왜 잊어 버렸는냐는 거지요. 이것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저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렇게 지금 이젠 죽는다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주님이 지금 여기에 같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이 배에 지금 같이 계시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겠지만 예수님은 멀리 계신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이 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것이 문제라고요.
여러분,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 계시는 겁니까 지금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계시다고 해서 멀리 계시는 겁니까 제자들이 이것을 잊어버렸더라는 얘깁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앞치마 끈'이라고 하는 그런 재미있는 동화 같은 얘기인데요, 아주 산중에 물이 조용하게 시냇물이 흐르는 그 언덕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어떤 내외분이 있고 그 어머니가 아이를 하나 낳아서 키우는데 이놈이 장난이 심해가지고 자꾸 밖으로 걸어나가고 냇물로 걸어 나가는 거예요. 빨래는 해야겠고 돌아볼 사람은 없고. 할 수 없이 그놈의 손에다 손목에다 끈을 메고 그 끈을 길게 해 가지고 그 끈을 자기 앞치마 끈에다가 매놓고 이렇게 놓고서 이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자꾸만 앞으로앞으로 나가요. 나가더니 잡아 당겨요. 잡아당기니까 툭 끊어 졌지요. 끊어지자마자 어머니는 다시 이어 가지고 조금 더 길게 매놨어요. 얘는 탁 끊어지니까 됐다 생각을 하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어요. 그리고는 놀다가 이끼가 있는 돌을 밟으면서 미끄덩 넘어졌어요. 넘어지는 순간 그냥 떠내려갑니다. '아이구 난 죽었다!' 고 악 하고 우는데 어머니의 앞치마 끈이 '팽'하니 잡아당기니까 어머니가 달려 나와서 이걸 건져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애가 그래 생각했답니다. '어머니의 앞치마 끈은 되게 질기다.' 끊어진 줄 알았는데 안 끊어 졌어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돼요. 멀리 계신 것 같으나 그는 알고 계세요. 그리고 찾아오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세요. 오늘 본문에 너무 다정한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내니 두려워 말라.' 어딘가 꼭 동화책 보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이들을 다 놓아두고 집 보라 그러고 아무가 와도 문 열어 주지 말라고 그러고, 그리고 멀리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단 말이에요. 똑똑 문을 두드리기만 하면은 만일에 어머니 외의 다른 음성이 들려오면 아 큰일이지요! 무서워하지요. 그러나 언제라도 문을 두드릴 때에 "엄마야" 그럴 때에 그 다음 "내다!" 그러면은 "아, 이젠 살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해요. "내니 두려워 말라.It's me! 나는 나다. 그런고로 두려워하지 마라." 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주관자요, 또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는 내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지금 풍랑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다 알고 계셨어요. 어느 정도의 풍랑에 시달리고 있다고 걸 다 알고 계셨어요. 그 사실이 오늘 본문의 주제입니다. 다 알고 계셔서 기다렸다가 찾아오십니다. 찾아 오셔서 저들을 위로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함께 하실 때에 그들은 안심입니다. 풍랑이야 있던 없던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옆에 함께만 하시면 이제는 걱정이 없습니다.
제가 겪는 얘기입니다만은 60년대 초에 처음으로 자동차 면허를 얻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에는 그때는 뭐 무법 천지라 면허도 없이 지프차를 많이 몰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는 60년대 초에 면허를 얻고 기억하시겠습니다만은 그때에 조그마한 자동차가 있었는데 브리사라고 하는 거, 그거 지금 티코 같은 거예요. 그런 자동차가 하나 있었는데 그거 아주 예쁘고 좋았어요. 그거 그 자동차를 내가 몰고 처음으로 저희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애들보고, 그때 애들 꼬마 둘이 있었는데 "내가 자동차를 몰고 왔다." 하고 "탈래" 하고 그랬더니 이놈들이 전부 나서서 아버지 운전하는 차를 타겠다고 전부 탔어요. 한번 타 본다고…… 그래 나도 애들을 태워 가지고 나는 재미나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저희 집사람보고 "당신도 탈거요" 하고 물으니까 안 탄다고 그래요. "내가 당신은 믿지만 당신의 운전 솜씨는 내가 안 믿어요." 안 탄다고 그래요. 혼자 살려고. 우리 삼부자는 가다가…… 삼부자가 타고 가는데 아이들은 좋아 가지고 말이에요. 노래를 부르고 신났어요. 자동차 안에서. 그러나 저는 겁이 났어요. 내가 처음 운전하는 건데, 안 그래요! 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와 같이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 가지고 마냥 좋은 거예요. 조금도 두려움이 없어요. 생각했습니다. 이 마음으로 평생 살면은 얼마나 좋을까! 왜, 우리는 걱정을 하고 왜 우리는 두려워해야 되느냐!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거 그걸 좀 믿고 평안하게 살수는 없을까! 그것이 믿음이란 말이에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니까 베드로라는 사람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성미도 급해요. 예수님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예수님, 날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해 주세요.그래, 오너라." 물위로 걸어갑니다. 그 용기가 대단합니다. 아주 적극적이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자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가면서 주님만 보아야지 왜 바람과 바다는 보는 겁니까! 주님께로 가는 사람이 왜 딴 데 신경을 쓰느냐 말이에요. 결국은 빠져들어 갔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하시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두세요.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 무서워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내가 오라고 했으면 나만 보고 나만 듣고 내게로만 와야지 왜 여기저기 보느냐, 왜 딴 생각은 했더냐는 것이죠. 믿음이 무엇입니까 대단히 중요한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세대에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큰 교훈을 주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더 확실하게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 토마스 에디슨이라고 여러분이 잘 아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생일, 그러니까 100주년 되는 때에 큰 축하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축하 행사에서 아주 근사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은 마지막에 그가 죽기 전에 사용하던 테이블 서랍을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서랍을 10년 동안 잠가 둔 것인데 이것을 한번 열어보자. 그래서 잠긴 서랍을 열었더니 아무 것도 없고 종이 한 장이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더랍니다. '캄캄하고 어려울 때는 요나를 생각하라.' 요나는 분명히 바다에 빠졌고 큰 고래가 집어 삼켰습니다. 큰 고기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지만 그는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타고 그는 니느웨 성으로 직행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 당하고 캄캄할 때는 저 고래 뱃속에 들어가 있던 요나를 생각하라!' 이것이 에디슨의 생활 신조였습니다. 여러분, 괴롭습니까 요나를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시려고 직행하게 하시려고 예비한 그 어둡고 캄캄하고 괴로운 그 큰 물고기 뱃속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더란 말입니다. 풍랑의 이유 있습니다. 깊은 곳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권세를 우리에게 확증해 주시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이 엄청난 사건은 있습니다. 주는 말씀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기도하십시다.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57 페이지